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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중심 유럽에서 만난 거장들 <중> 얀 파브르의 '생명'

임은정

   
안트베르 동물원에 설치된 작가의 거북이 브론즈 작품.
- '파브르 곤충기' 저자 증손자이자
- 안무가·화가· 작가 등 '통섭 예술인'

- 맥주병공장 개조 광활한 작업실서
- 인생의 덧없음 등 주제 엿보이는
- 인간 '뇌' 소재 브론즈작품 준비중

맥주는 무조건 '독일 맥주'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고 특색있는 맥주를 생산하는 나라, 맥주 브랜드만도 500개가 넘는 맥주 생산국, 벨기에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초콜릿과 와플은 물론 맥주와 중세의 찬란한 유적까지 간직한 벨기에 북부의 항구도시 안트베르펜. 소설 '플란더스의 개'로 유명한 이 도시에 얀 파브르(54)의 아틀리에가 있다. 

   
벨기에 안트베르펜 아틀리에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얀 파브르 작가. 임은정 기자
최근 국내 첫 전시(9월 5일~10월20일)를 부산에서 개최하면서 눈길을 끈 얀 파브르는 '파브르 곤충기'의 저자 장 앙리 파브르의 증손자다. 벨기에 출신의 유명 안무가이면서 화가, 공연기획자, 연극 연출가, 디자이너 등 '통섭 예술가(Consilience)'인 그는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현대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2007년과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됐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얀 파브르를 만났다. 육중한 검은색 철문을 열고 들어선 아틀리에는 상당히 컸다. 콘크리트 구조의 4층 건물로 연면적은 무려 1만6000㎡. 작업실 가운데는 1층부터 4층까지 텅 비어 있었고, 그의 대표작인 녹색 비단벌레(딱정벌레의 일종) 날개로 제작된 거대한 입체작품 두 점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청바지와 청자켓을 입은 얀 파브르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언론에 아틀리에를 공개하기는 처음'이라며 사적 공간의 촬영은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국에서 가져간 영자 신문에서 가수 싸이의 사진을 보자 '오, 강남 스타일!'하며 어깨를 들썩이는 장난기도 보였다. 근황을 묻자 '최근 브뤼셀(벨기에 수도) 왕립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안트베르펜 동물원에 브론즈 작품 4개를 재설치했다'고 답했다. 안트베르펜 출생으로 인근 작은 작업장에서 이곳으로 이사온 지 1년쯤 됐다는 작가는 '예전의 맥주병 공장을 리모델링했다. 스펙터클한 작업은 물론 저장과 그림 그리기, 조각 등이 모두 가능하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숙소를 안트베르펜이 아닌 브뤼셀에 잡았다는 말에 서운함을 내비친 그는 고향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과시했다.

   
전시 포스터.
본격적인 작업실 탐방이 이어졌다. 건물 입구에는 그의 대표작인 '뇌(腦)' 작품(레진 소재)들이 놓여 있었다. 화살에 맞은 뇌, 망치가 뇌에 못을 박고 있는 모습, 뇌에 삽질을 하는 인간 형상 등 다양했다. 적나라한 인간 뇌를 직접 꺼내 보인 느낌이었다. 미술 전문잡지('Art in Culture')에서 스테판 헤르트만스 전 크롤러뮐러미술관 관장은 '파브르의 작품에서 몸은 작업의 모든 결정을 위한 측정기준이다. 공간 안무 작품과 미술관 공간 간의 관계, 이들은 모두 미를 위한 척도로 이해되는 인간의 신체에 근거한다. 파브르 작업에 등장하는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도 결국 인간성(그리고 그 한계)에 대한 생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평했다. 

또다른 방으로 들어서자 다음 달 3일부터 벨기에의 크노커에서 전시할 신작 '뇌'작품들이 있었다. 22개 브론즈 작품과 브론즈 작품의 틀인 왁스 11점을 전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뇌 위에 '생명의 나무'를 꽃 피우거나, 본인의 얼굴 18개를 다양한 표정(화 내거나 월계관을 쓴 모습 등)으로 만든 자화상 시리즈(챕터·Chapter)를 선보였다. 다양한 사슴뿔과 찡그린 표정의 두상이 있었고, 젊은 파브르와 미래의 나이 든 파브르도 있었다. 작가는 자화상을 통해 시간과 생명,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시절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과 인간, 곤충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얻은 성찰이 생명의 탄생과 소멸, 인생의 덧없음 등으로 작품에 묻어나는 듯했다. 작가의 얼굴을 한 브론즈가 긴 혀를 내민 전시 포스터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 18~2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피악 아트페어에 소개된 뇌 작품.

작업실 소개가 끝나자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전시된 안트베르펜 중앙역 옆 동물원으로 안내했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원'이라고 말한 파브르는 입구 기둥 양쪽에 모자이크된 두 마리 거북이를 가리켰다. 본인이 키웠던 거북이 야네케(JANNEKE·수컷)와 미에케(MIEKE·암컷)를 소재로 했다며 '모자이크계의 롤스로이스(가장 값비싼 작품)'라고 으쓱댔다. 공원 한 가운데에 브론즈로 된 두 거북이 역시 그의 작품이다. 공원 곳곳에서 만난 관광객들이 작가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이날 방문에서 뜻밖의 수확도 얻었다. 파브르가 연출한 연극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조각 작품 중 하나인 '구름을 측정하는 사람(건물 옥상에서 두 팔을 벌리고 구름을 측정하는 인물상)'이 놓인 건물에서 공연한 이 작품은 1984년에 초연됐으며, '연극적인 미친 힘'을 보여주었다. 

공연은 장장 4시간 15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진행됐다. 30여 분간 무대 위에서 전속력으로 달리거나(숨을 고르는 5분여 동안 배우들이 직접 담배를 피우기도 함) 남자 배우가 여자 배우를 들었다 놓는 과정을 수십 번씩 반복하게 하는 등, 배우들은 관객들과 시·공간을 함께하며 극한 한계 속으로 들고 났다. 스테판 헤르트만스의 평처럼 '인간(신체)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파브르 특유의 작품이었다. 지난 전시에서 부산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긴 파브르는 내년 하반기에 드로잉 작품, 2014년엔 조각 작품으로 다시 부산을 찾을 예정이다.

벨기에 안트베르펜


- 국제신문 2012.10.31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21031.2202220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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