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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현대미술 이야기](9) 해프닝

진중권

ㆍ회화 밖으로 나온 회화…잭슨 폴록의 ‘그리는 행위’에서 영감

“폴록이 죽었다는 두 해 전의 비극적 소식은 우리 중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슬픔을 주었다. 우리는 위대한 인물이 죽은 데에 슬퍼했을 뿐 아니라, 그와 더불어 우리 자신 속의 무언가가 함께 죽은 것 같은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우리는 그의 한 부분이었다. 그는 아마도 절대적 해방에 대한 열망과 … 낡은 테이블을 전복시키려는 내밀한 바람의 구현이었으리라. 우리는 그의 예에서 놀라운 신선함과, 모종의 황홀한 맹목성을 보았다.” 앨런 카프로는 ‘잭슨 폴록의 유산’(1958)이라는 글에서 폴록의 죽음을 이렇게 회상했다.

■ 폴록의 죽음

전후 미국의 미술사는 폴록의 유산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카프로의 말대로 당시 미국의 화가들은 모두 자신들이 이 고독한 영웅의 “한 부분”이라 느꼈다. 물론 각자 폴록의 각기 다른 “한 부분”들이었다. 폴록의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당시에 두 개의 상이한 규정이 존재했다.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썩 내켜하지는 않으면서도 그의 작품을 ‘추상표현주의’라 불렀다. 반면 평론가 해럴드 로젠버그는 폴록의 작업을 ‘액션 페인팅’으로 규정했다. 전자가 폴록의 ‘작품’에 주목했다면, 후자는 화가의 ‘행위’에 주목한 셈이다.

앨런 카프로의 ‘유체’(1967). 작가와 관객이 함께 얼음을 쌓아 벽을 만들었다. 작품은 얼음이 녹으면서 몇 시간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첫 번째 노선, 즉 평면성을 지향하는 ‘추상회화’의 노선은 뉴먼과 로스코를 거쳐, 회화이후추상과 미니멀리즘으로 발전한 후, 개념미술에 도달하여 소멸한다. 두 번째 노선, 미술에서 화가의 행위를 강조하는 ‘퍼포먼스’의 노선을 잇는 것은 앨런 카프로의 ‘해프닝’(happening)이다. 사실 폴록의 작업을 ‘액션 페인팅’으로 규정한 로젠버그의 해석은 순수회화를 강조하는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강령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실제로 해프닝에서 미술은 미술이기를 그치고, 다른 매체, 가령 연극에 가까워진다.

폴록의 화풍은 이미 1950년대 말에 대학에서 가르치는 관학적 회화로 전락한 상태였다. 일각에서는 죽어가는 모더니즘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팝 아트가 그것이다. 이렇게 폴록의 신체적 사망이 예술적 사망으로 이어지던 시점에, 카프로는 그의 유산 중에서 아직 그 잠재성이 충분히 탐구되지 않은 것이 있음을 발견한다. 카프로의 해석에 따르면, 폴록 자신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었으나, 지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잠재성이란 회화가 회화 밖으로 진화할 가능성이다.

■ 폴록의 두 유산

“그는 몇몇 장엄한 회화를 창조했다. 하지만 그는 회화를 파괴하기도 했다.” 카프로가 주목하는 것은 당연히 후자의 측면이다. 폴록은 회화를 파괴했다. 그리는 ‘행동’의 측면에서, 폴록의 드리핑은 인상주의 이후 점점 강렬해진 신체적 제스처의 극한이라 할 수 있다. 그 행동의 자유로움은 당연히 전통적 ‘형식’의 파괴를 낳는다. 작품의 거대한 ‘규모’로 인하여 그는 회화 “안에” 들어가 전체를 조망하지 못한 채로 작업을 하게 되고, 그때 그리기의 장(場)은 화폭의 사각에 갇히지 않고 방안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폴록은 회화의 전통을 파괴하고 해체해왔다. 후배 화가들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두 가지 대안이 있다. “하나는 그 길로 계속 가는 것이다. 아마도 폴록의 미학과 결별하거나 그것보다 더 나아가지 않은 채 그것을 이리저리 변형시킴으로써 많은 ‘근사-회화’(near paintings)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회화-즉 우리가 아는 직사각형 혹은 타원형의 평면-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폴록 자신이 그렇게 하는 데에 거의 근접한 바 있다.” 카프로의 선택은 당연히 후자였다.

“물감으로 그저 다른 감각들을 암시만 하는 데에는 만족할 수 없기에, 우리는 시각, 소리, 운동, 사람, 냄새, 촉감 등과 같은 독특한 재료들을 사용할 것이다. 모든 종류의 사물이 새로운 예술의 재료가 될 것이다. 물감, 의자, 음식, 전기와 네온사인, 연기, 물, 낡은 양말, 개, 영화, 그리고 그밖의 수많은 사물들이 현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발견될 것이다. 이 대담한 창조자들은 우리 주변에 늘 있었으나 무시당해온 세계를 우리에게 마치 처음인 양 보여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전대미문의 해프닝과 이벤트를 선보일 것이다.”

■ 해프닝

여기서 처음으로 ‘해프닝’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해프닝이란 ‘화가→실행→작품’으로 이어지는 예술과정 속에서 두 번째 요소, 즉 ‘실행’(perform)을 독립적 예술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것을 오늘날 ‘퍼포먼스’라 부른다. 바닥에 깔아놓은 화폭의 네 귀퉁이를 부지런히 움직이는 폴록을 생각해 보라. 중요한 것은 작품이 아니라 행동이므로, 그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자. 그럼 뭔가 재료를 들고 방안을 서성이는 화가의 행동만이 남는다. 여기서 화폭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가 무너진다.

뿌리는 게 굳이 물감일 필요 없고, 깔린 게 굳이 화폭일 필요도 없다. ‘행동’은 어떤 재료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쓰레기통, 범죄 기록, 호텔 로비 등에서 발견되며, 쇼 윈도나 거리에서 보이며, 꿈이나 끔찍한 사건 속에서 감각된다. 으깨진 딸기 냄새, 친구에게서 온 편지, 막힌 배수관을 뚫는 용해제를 판매하는 게시판, 노크 소리, 긁는 소리, 한숨 소리, 끝없이 책 읽는 목소리, 명멸하는 불빛, 중절모 등 이 모든 것이 이 새로운 구체적 예술을 위한 재료가 될 것이다.” 이로써 예술과 일상의 경계도 무너진다.

한편 “물감으로 다른 감각들을 암시만 하는 데에 만족할 수 없다”는 말에서 짐작하듯이, 카프로는 미술에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들을 도입하려 했다. 이 경우 장르들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게 된다. 그린버그가 회화를 그것의 매체성으로, 말하자면 순수 시각성으로 환원하려 한다면, 카프로는 외려 미술을 순수 시각성의 감옥에서 해방시키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카프로의 해프닝은 그린버그식 모더니즘의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을 여전히 ‘시각예술’로 규정한다면, 해프닝은 더 이상 전통적 의미의 미술일 수 없다.

“오늘날의 젊은 예술가들은 더 이상 ‘나는 화가다’ ‘시인이다’ 혹은 ‘무용가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그저 ‘예술가’일 뿐이다. 삶의 모든 것이 그들에게 열려 있다. 그들은 일상 사물로부터 일상성의 의미를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그것들을 비범하게 만들려 하지 않고, 그저 그것들의 현실적 의미를 진술할 것이다. 하지만 무로부터 그들은 비범한 것을, 그리고는 아마도 허무함(nothingness)을 고안해 낼 것이다. 사람들은 기뻐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할 것이며, 비평가들은 혼란스러워하거나 즐거워하거나 할 것이다. 하지만 확신하건대 이런 것이 1960년대의 연금술이 될 것이다.”

■ 액션 콜라주

1956년에 카프로는 이른바 “액션 콜라주”(action collage)를 발명한다. 판지 스크랩, 쿠킹호일, 찢어진 종잇조각, 제 작품에서 잘라낸 부분 등을 마치 액션 페인팅처럼 ‘즉흥적’ 방식으로 배열하여 캔버스에 고정시킨 것이다. 이 즉흥성이 액션 콜라주를 입체주의 콜라주와 구별시켜 준다. 입체주의자들이라면 정교한 미학적 고려를 통해 요소들을 배열했을 게다. 액션 콜라주는 얼마 후 아상블라주(assemblage)라는 3차원 작업으로 확장된다. 비록 차원은 달라졌지만, 결합의 즉흥성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클래스 올덴버그의 ‘도시의 스냅 사진’(1960). 작가 올덴버그(오른쪽)가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저드슨 기념 교회에서 그의 모델인 팻 무쉰스키와 함께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


액션 콜라주와 아상블라주는 카프로의 해프닝이 조형예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 두 작업은 카프로가 회화작업에서 퍼포먼스로 넘어가는 데에 가교가 되어주었다. 1966년에 출간한 ‘아상블라주, 환경, 해프닝’이라는 책에는 마당을 폐타이어로 가득 채운 작업(‘마당’ 1961)의 사진이 실려 있다. 카프로는 이 사진 옆에 폴록의 작업을 담은 한스 나무스의 사진을 배치했다.

회화 ‘안’에서 작업을 한다고 했던 폴록처럼, 카프로 역시 자신의 설치 작품 ‘안’에 들어가 있다. 다만 물감이 폐타이어로 변했을 뿐이다.

카프로는 그가 ‘환경’이라 부른 설치작업에 음향을 끌어들이려는 과정에서 우연히 해프닝을 고안했다고 한다. 작업에 쓸 만족할 만한 음향을 찾기 위해 존 케이지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거기서 ‘우연 자체가 하나의 작곡기법’이라는 강의를 듣게 된다. 케이지의 수업에서 그는 여러 사물에서 나오는 다양한 소음을 시간적으로 연결해 곡을 만들라는 과제를 받는다. 카프로는 이 음악적 과제에 콜라주를 비롯한 공간예술의 차원을 추가함으로써 해프닝의 초기 형태에 도달하게 된다.

■ 열여덟 개의 해프닝

‘아상블라주, 환경, 해프닝’이라는 제목은 시사적이다. 액션 페인팅을 콜라주로 변형시킨 것이 액션 콜라주, 이를 3차원으로 확장시킨 것이 ‘아상블라주’다. 이 3차원 구조물을, 그것을 감싼 공간 전체와 더불어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할 때, ‘환경’이 탄생한다. (오늘날에는 이를 ‘설치예술’이라 부를 것이다.) 여기서 작품의 물질적 구조보다 그것을 조작하는 행위에 주목하면, 그럼 다양한 사물을 특정한 환경에서 즉흥적으로 오감의 체험을 만들어내는 행동이 등장할 것이다. 그것이 해프닝이다.

초기의 해프닝에서 실행자와 관객들은 꽤 엄격한 스크립트에 따라서 ‘행동’해야 했다. 해프닝이란 “간단히 말해 그냥 일어나는 사건”으로 거기에 유기적으로 조직된 의미에서 시작이나, 중간이나, 종료가 있을 수 없다. 폴록의 전면화(all over)의 연극적 버전이라고 할까? 하지만 연극과 달리 해프닝에는 실행자와 관객 사이의 구별이 없다. 설사 실행자가 따로 있더라도, 그들의 연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관객의 반응이었다. 관객의 반응이 매번 같을 수는 없기에 해프닝은 늘 ‘일회적’ 작품으로 남는다.

‘6부로 이루어진 18개의 해프닝’(1959)에서 관객은 칸막이로 만든 세 방을 옮겨 다니며 밴드가 장난감 악기를 연주하고, 여인이 오렌지를 쥐어짜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 등을 보게 된다. 여기서 관객의 참여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그후 카프로는 관객들로부터 창조적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들을 작품에 직접 참여시키는 다양한 기법을 발전시킨다. 가령 어느 작품에서 그는 관객들을 방안에 집어넣고, 거기에 가득 찬 정육면체의 얼음 덩어리들을 손으로 만져 녹이게 만들었다.


■ 일시성

후기로 갈수록 카프로는 스크립트에 덜 의존하게 된다. 이로써 ‘즉흥성’이 더 강조된다. 카프로는 해프닝이-일어나자마자 완료되는 사건처럼-‘일회성’에 그 본질이 있다고 보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유체’(1967)라는 작품으로, 여기서 예술가와 실행자와 구경꾼은 얼음벽돌을 쌓아 함께 벽을 만들게 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작품의 일시적(ephemeral) 성격이다. 얼음이 녹으면서 작품은 몇 시간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카프로는 이를 똑같은 사물을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한 비판으로 의도했다.

해프닝이 “1960년대의 연금술이” 될 것이라는 카프로의 예언은 실현되었다. 그의 영향 아래 있던 클래스 올덴버그, 그리고 무엇보다 플럭서스를 통해 퍼포먼스는 미술의 한 분야로 확고히 자리잡게 된다. 나아가 카프로가 해프닝을 통해 발전시킨 ‘인터랙티비티’의 요소는 오늘날 뉴미디어 아트의 본질적 특성이 되었다. 그의 영향은 일상에서도 발견된다. 흔히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가리켜 ‘해프닝’이라 부르곤 한다. 이 어법에는 1950~1960년대에 카프로의 작업을 바라보던 대중의 놀라움과 당혹감이 담겨 있다.



- 경향신문 2012-11-0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1022110035&code=9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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