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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적 담론

이선영


1. 미술평론가로서의 삶을 살게 된 계기는?


평문을 쓸 때 마다 내 이름 옆에 미술평론가라는 직함을 써넣곤 하지만, 미술평론가를 목적 의식적으로 지향한 적은 없었다. 나는 미술사를 모른 채 미술사를 공부했고 미술평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 비슷한 것은 하고 있었다. 명확하게 매뉴얼화 할 수 없는 나의 실행에는 맹목성과 자유로움이 역설적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자연에서 사회로 관심이 옮겨온 이후,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 살았는데, 이미지가 주는 힘이 매우 강렬했다. 한 장의 도판이 말하는 사실이나 진실이 몇 권의 책 못지않았다. 그러나 이미지는 그 자체만으로는 모호하고 텍스트의 맥락에 있을 때 더욱 힘을 발휘했다. 미술과 더불어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도 레코드판 사이에 끼어있던 한 장의 해설문을 얼마나 소중하게 읽었는지... 




(참고도판) 18세기 유럽의 오토마타, 글을 쓰는 자동인형



내 앞에 놓인 이 한 장의 이미지를 내 나름대로 이해하고 타자와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은 자연과학에서 인문학으로 전공을 바꿔 진학할 무렵인 30여 년 전과 다를 바 없다. 누군가 그것을 미술비평이라고 한다면 그냥 그렇게 묻어가고 싶다. 비평적 텍스트는 내가 왜 이 이미지에 대해 매혹되고 알고 싶었는지에 대한 탐구이다. 그러한 탐구들은 작품이라는 출발점만 확실할 뿐 결과는 예측 불가능하다. 작품에 대한 만남과 이끌림이 먼저이지만, 그 이유가 처음부터 명확하지는 않다. 평론가란 이렇게 추후적 과정을 애써 밟는 사람이다. 

    


2. 미술평론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말씀해 주세요.




(참고도판) 육태진, [터널], 구조물에 영상, 가변크기, 1998년.



십수년전 처음 가보는 어떤 미술관을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차들이 쌩쌩 내달리는 어둡고 긴 터널을 걸어서 통과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도 고속도로를 건너야 해서 결국은   포기했다. 황당하고도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봐야 할 작품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그 괴로운 여정도 하나의 심미적 체험으로 남아있다. 가령 현대미술의 중요한 계기였던 미니멀리즘은 특정한 예술 작품이 없는 가운데의 어떤 체험을 강조한다. 재난 상황이 아니고서야 그런 일이 또 일어나겠는가. 그것은 괴롭긴 했어도 나름 진기한 체험이었던 것이다. 그 때 내가 해야 할 과제가 기금 사업 결과에 대한 보고서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합리화하면서 다른 자료들을 참고하여 서둘러 마감했다. 그런데 얼마 전 유명한 미술상 후보의 자료집을 들춰보다가 그 보고서가 끼어있는 것을 보고 뜨악했다. 그 전시의 방문 길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 것은 아직도 내가 그런 긴 터널을 통과하는 중 이어서일까.  

  


3. 미술평론가로서 보람되었던 일과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내가 쓴 평문에 타자와의 공감대가 이루어지는 때가 가장 보람되며, 그 반대가 가장 어려운 점이다.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그 평문을 읽는 사람은 해당 작품의 작가이다. 작가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서 대중의 공감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여기에서의 공감이란 작가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말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좁히는 가의 문제이다. 그것은 나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말과 사물]이라는 철학책까지 있겠는가. 말과 사물의 완전한 중첩까지는 아니어도, 그 언저리까지라도 가야 한다. 공감대의 확산은 미술에 대한 글쓰기의 지속을 가능하게 한다. 그 반대는 지속불가능성이다. 공감되는 글을 위해서 난 잠시나마 그 작품 속에 들어가야 한다. 어떤 작품들은 진입장벽이 높다. 


작가와의 관계는 작품에 비하면 2차적이다. 작품을 이해하면 작가도 이해되지만, 그 반대가 당연한 것은 아니다. 나는 자유롭게 쓴다고 믿지만, 나중에 보면 어떤 필연적인 경로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다. 작품이나 여타의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감과 줄을 잡아야 한다. 반대로 작품에 들어갈 수 없다면 제대로 쓸 수 없다. 주변만 뱅뱅 돌다 하나 마나 한 이야기로 끝난다. 작품의 핵심에 닿지 않는 수많은 정보, 지식, 상식, 시사, 선입견, 개인적 취향 등이 비평적 담론의 공간을 가득 채우게 된다. 미술계는 잊을만하면 평론의 존재의미를 때리는데, 그것은 결국 글쓰기라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려준다. 미술잡지들을 비롯하여 비평에 호의적이지 않은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정작 글쓰기 자체의 어려움을 말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것은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 상황과의 싸움이다. 

  


4. 한국미술계에서 꼭 해결해야 되는 과제에 대한 의견을 써주세요.


한국미술계의 적폐는 진정한 공동체나 연대가 아닌, 단순한 패거리 의식이다. 유력한 집단에 줄서기, 이편저편 나누어 서로 뒤를 봐주거나 견제하기, 갑질 행태 등은 그 산물에 불과하다. 이러한 역학관계가 현실화되는 각종 공적 결정들은 냉소적 반응을 낳는다. 패거리 의식이 오래전부터, 가령 학창시절부터 형성된다는 것은 그것이 뿌리 깊고 제거되기도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석사과정에 이어 박사과정 또한 필수 아닌 필수가 되어 ‘학창시절’이 무한대로 늘어남에 따라 모순이 깊고 광범위해질 가능성은 높아진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은 작업/현장은 더욱 취약해져서 그 피해는 대중을 포함한 모두에게 미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에 그러한 집단 문화가 아직도 있나 싶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한 어떤 계기가 불거지면 잠재해 있던 것이 여지없이 현실화되곤 한다. 사회 전반에 걸쳐 시스템이 확대되면서 패거리 문화는 오히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보이는/보이지 않는 전선은 두드러지게 대결 중인 세력뿐 아니라, 주변에도 피해를 준다. 대중은 차치하고라도, 미술 하는 이들만 서로에게 관심을 주어도 외롭지 않을 그 길을 더 척박하게 한다. 그것은 경쟁하며 살아가는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예술이 이러한 상황을 단순히 반영하거나 심지어는 더 악화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예술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기대치가 있다. 

  

  

5. 미술에 관해 ‘미술은 ㅇㅇㅇ 다’ 한 마디로 정의해 주신다면?


미술은 좀 더 진한 삶이다





출전; '한국 현대미술평론의 역사' 展을 위한 설문 중에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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