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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솔 / 시각에 도입된 시간

이선영

시각에 도입된 시간

  

이선영(미술평론가)

  

이진솔의 ‘무한한 시간 속의 유한한 소리’ 전은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소리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루소가 [언어의 기원에 대한 시론]에서 말했듯이, 음악의 영역은 시간이며 그림의 영역은 공간이다. 미술의 전형적인 형식인 이미지가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라 할 때, 작가가 시간/소리 쪽에 방점을 찍는 것은 특이하다. 현대미술에서 미니멀리즘 이후 연극적 국면에서 장르 간이 혼합되는 대세를 생각하면, 드로잉 뿐 아니라 영상설치 작품이 포함된 이 전시의 시/공간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진솔은 선천적인 청각 장애가 있었고, 이제는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받고 꾸준히 훈련하여 보통사람 못지 않게 듣고 있지만, 자신의 한계 상황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는 듣기를 작품의 전면에 내세우는 점이 특이하다는 것이다. 이미지란 원래 소리가 없는 것이고, 어릴 때부터 미술을 해왔던 그녀가 굳이 전형적인 그리기의 방식을 거부하는 점이 그렇다. 




Find objects according to sound (소리에 따라 물체를 찾는다), branch, brick, pencil, conte and ink on paper 2018



Find objects according to sound performance #2, 영상 스틸컷, 00’24’14, 2018



물론 그것은 재현주의를 거부해왔던 현대미술의 흐름을 함께 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음악이다. 현대 미술사에서 큰 획을 그었던 백남준에게서는 현대 음악가로서의 경력이 발견된다. 칸딘스키를 비롯하여 초기 추상 미술가들이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하나의 국면은 추상을 넘어서 구체(concret)를 다룬 존 케이지에서 발견된다. 이때 사물이나 침묵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미술의 흐름를 자기화 하는 것 이외에, 자신의 콤플렉스를 피해가지 않고 오히려 원동력으로 삼는 돌파의 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콤플렉스는 특히 예술에서 특이함을 낳는 동력이 된다. 물론 자신의 단점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극복했다는 단서가 붙는 것이지만, 이미 이진솔은 상당 부분 자신의 신체적 콤플렉스를 극복해왔고, 특히 그녀가 집중하고 있는 예술은 자기 극복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작업의 과정 자체에 듣기라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고, 그것을 드로잉 등 시각적 언어로 번역하는 또 다른 과정이 있는데, 이진솔에게는 이 두 과정이 거의 동시적으로 진행된다. 어떤 음악, 또는 소리에 대한 차후의 감상이나 해석이 아니라, (인공와우용)이어폰과 몸속의 인공와우를 통과한 음의 즉시적인 발현인 것이다. 모든 작품, 특히 드로잉은 퍼포먼스의 결과물이라는 특징도 가진다. 작가는 귀 뿐 아니라 몸 전체로 듣고, 몸 전체로 그린다. 작가가 말하듯이 요즘의 작업은 ‘소리의 흐름과 세기 그리고 소리의 높이를 들으면서’ 행하는 ‘매핑 내지 에스키스’라고 할 수 있다. 소리가 몸과 정신을 통과하는 동안 어떤 변형이 일어나고 다양하게 구비해 놓은 필기구들은 그것을 지진계처럼 기록한다. 바닥에 깔린 종이는 주어진 시간에 자신을 통과했던 모든 것을 쏟아내는, 또는 받아내는 장(場)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에선 종이—주로 드로잉하는데 저항감이 없는 소포지를 사용한다—외에 석고 가루를 입히고 판 드로잉들이 선보인다. 




sound drawing #26, pencil, conte and charcoal on paper, 90.5 x 120.0 cm, 2018



sound drawing #27, pencil, conte and charcoal on paper, 90.5 x 120.0 cm, 2018



소리의 강약을 반영하듯 강하게 후벼판 부분들이 명암대조를 통해 드러난다. 추후의 가필 없이 한번에 끝내는 것이 중요하므로, 작품 한 귀퉁이에는 작업 진행 시간을 적어 놓기도 한다. 대개 30분 안팎이다. 여러 감각이 동원되는 강도가 높은 작업이다 보니 중간중간 쉬면서 한다. 주로 드로잉의 성격을 띄는 작품의 선과 선 사이에는 불연속이 있다. 듣기-그리기의 흐름에서의 특이점들이 기록되는 구간은 작품들 간의 차이를 낳는다. 말이나 글도 중간의 여백이 있어야 의미가 전달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작가의 신체적 상황과 관련시켜본다면 침묵의 시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작품에는 작가가 들었던 소리와 들을 수 없었던 또는 듣지 않았던 소리가 공존한다. 불연속적 지점들이 다수 발견되는 것은 작가가 한 작품에도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는데서도 온다. 작업하는 과정을 보면 연필, 콘테, 잉크 같은 필기구 뿐 아니라, 돌이나 나뭇가지 등의 사물도 동원된다. 


연필을 크레파스 잡듯이 잡고 화면에 문지르는가 하면, 양손으로 작업하기도 한다. 마치 지휘자가 지휘 하듯이 들려오는 음과 관련된 액션이다. 최근 작업인 [Find objects according to sound]는 제목 그대로 ‘소리에 따라 물체를 찾는다’. 그런데 이 작업에는 연필과 콘테, 그리고 잉크 외에도 나뭇가지와 벽돌 등이 사용되었다. 나뭇가지나 돌같은 것은 오브제라고 할 수 있는데, 제목에 내포된 작가의 의도에 따른다면, 오브제를 찾기 위해서 오브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진솔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 기법을 떠오르게 하는데, 초현실주의자들의 또 다른 주요 발명(또는 그들이 활성화 한 것)은 오브제다. 사물은 예술과 달리 우연과 무의식을 담지한다. 오브제는 삶 속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고, 이러한 우연이 어떤 감흥을 주는 것은 잠재된 무의식의 현을 건들었기 때문이다. 우연/무의식의 쌍은 필연/의식의 쌍과 달리, 불연속의 지점이 다수 포진한다. 




sound drawing #28, Plaster powder, ink, conte, and scull on the panel, 27.3 X 41.0 cm, 2018



불연속은 침묵이나 무의미와 관련된다. 이진솔의 드로잉 작업에서 발견되는 것은 그러한 불연속들이다. 이러한 불연속이 어떻게 배치되었는지에 따라 작품마다 다른 메시지가 송신된다.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소리 드로잉을 하기 전에 했었던 콜라주 작업이나 네가티브 필름을 이용한 이미지들에도 그러한 불연속성이 있다. 다만 이전의 작업에는 음악이 활용되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다. 영상 설치 작품에서는 최근 작업에서 두드러진 소리의 위상을 보다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시간을 따라 흘러가는 영상은 작가가 작품 속에 새겨넣은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역할을 한다. 듣기 위한 보조기구를 빼고 젖은 머리를 한 작품에서 작은 어항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물고기도 나름의 방식대로 소리를 듣겠지만, 특히 작은 어항 속의 물고기는 감각적인 면에서 결핍감을 자아낸다. 물고기 영상 다음에 수화하는 모습이 나오는 장면은 그러한 결핍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소리를 주요 매체로 하면서 다양한 사물을 활용하는 방식은 현대미술에도 큰 영향을 주었던 존 케이지의 방식을 떠오르게 한다. 존 케이지는 1930년대에  피아노 안에다가 나무, 고무, 유리 같은 여러 물체를 끼워 넣어 이질적인 진동을 야기한 실험적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것은 예술과 사물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 속에 끼어든 사물은 우연과 침묵을 부각 시켰다. 이진솔의 작품에서 잘 들리는 음(소리)는 시각화되거나 아니면 빈틈으로 남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소위 말하는 정상인들이 반쯤은 자동반사적으로 지각하는 우주에 도입된 단절과 간극의 몫이다. 사실 연속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현실 자체가 착각이다. 이진솔은 자신의 불편함을 통해 그러한 착각을 들춰냈을 뿐이다. 작가들은 신체적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처음 보는 사람처럼 봐야 하고 처음 듣는 사람처럼 들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도전에는 기존의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가 개입되기 마련이고 그 점은 현대예술의 고립을 야기하기도 했다. 




물고기의 기록, 단채널 영상 스틸컷, 00'21'42,2018



소리 없는 말, 단채널 영상 스틸컷, 00'04'22, 2018



루소는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에서, 언어를 가장 힘 있게 하고 게다가 보통의 문장을 본래의 모습과는 달리 특유하게 만드는 것은 소리와 악센트와 온갖 굴절들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정확함을 위해 표현력이 위축되어온 흐름이 있다. 이진솔의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리에 대한 감수성은 정확성을 위해 억압된 감각을 도입한다. 소리를 듣는 것, 또는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시간을 지각하는 것이다. 빅토르 주어칸들은 [소리와 상징]에서, 청각적 불완전은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 시간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음악에서의 완성을 향한 요구는 현재의 존재를 그치고 어떤 다른 것, 즉 아직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출현하도록 하는 요구이다. [소리와 상징]에 의하면 불완전함을 듣는 것은 시간을 듣는 것이다. 이진솔의 ‘무한한 시간 속의 유한한 소리’ 전은 ‘시간 속에 일어나는 사건’(빅토르 주어칸들)을 포획하고자 한다.

  

출전; 가창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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