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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화진 / 놀이하는 운명론자

이선영

놀이하는 운명론자

  

이선영(미술평론가)

  

그자체가 작품으로도 변신하곤 하는 오화진의 재봉틀은 화가의 스케치북이나 캔버스처럼 자신이 상상한 것을 받아들여 3차원적 대상으로 창조하는 전능한 도구이다. 창조라는 단어는 사회가 신학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났을 무렵부터 신학의 세속적 계승자로 자처한 예술이 전용했던 관념이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관념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오화진의 작품을 설명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다. 오화진의 전시장은 능숙한 드로잉과 바느질 등으로 완성되는 별의 별 종의 기이한 가상의 동식물 컬렉션이 되곤 한다. 가히 21세기형 산해경(山海經)이라 할만하다. 그것들은 저 바깥에 있는 외계의 것이 아니라 자식뻘, 또는 친구뻘이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기이한 곤충에다 ‘충구(곤충의 친구)’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다. 신이 자신의 창조물에 명명하는 권한을 가지듯이, 작가는 자신의 창조물에 [핏빛 영혼](2010), [영감포착포식자](2011)같은 기이한 이름을 붙이곤 한다. 




조물조물조물주_씨실과날실展_전시장면2_2018_서울시립미술관(본관)


 
충구_53×65cm_종이위에 아크릴, 펜 등_2017(개인의문화_세상을디자인하다 전시장면)



그런 단어들은 존재와 너무 밀착되어 있어 작품 제목이라는 느낌보다는 이름 같다. 전에 없었던 기기묘묘한 형상들에 대해 창조 외에 어떤 적절한 표현이 가능할 수 있을까. 작가는 최근 전시에서 사용된 ‘조물조물조물주’라는 리드미컬 표현을 통해 창조자에 내재되어있던 형이상학적 분위기도 털어낸다. 오화진이 가정하는 신은 관습적으로 가정되는 남성(아버지)이 아니라,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사랑의 역사]에서 말한, ‘메마를 줄 모르는 흥분의 원천인 동시에 불가능한 대상이고 명명할 수 없는 비밀이자 절대적 금기인 원초적 어머니’와 더욱 가깝다. 이 어머니는 ‘문화를 자연으로, 화자를 생물학으로 변질시키는 이상야릇한 주름’(줄리아 크리스테바)이다. 이 어머니는 생명을 주는 동시에 생명을 빼앗는 양면성을 가진다. [빨간 방]으로 정점을 찍은 붉은 피부를 가진 피조물들은 원초적 어머니의 양면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작가가 창조자라면 그것도 모성적 창조자라면, 그 모성은 그저 사랑으로 충만한 두리뭉실한 모성이 아니다. 


그것이 특히 운명적 사랑이라면, 잔인한 사랑일 것이다. 오화진의 작품은 대개 천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중력에 순응하는 형식이다. 공간에 유아독존 식으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 또는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늘어져 있고 걸쳐 있다. 퇴행하는 것인지 성장하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들이 과정 중에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모종의 생명이라면 죽음 또한 분명히 새기고 있다. 지금까지처럼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평생을 작업을 하고 살 것이라는 계획 이외에는 거대한 계획 없이 진행되는 작품들은 즉흥과 우연을 포함한 제작자의 순발력 있는 창의성이 발휘된다. 직조, 펠트, 염색, 텍스타일 디자인은 물론 패션과 만화, 일러스트를 두루 연마한 작가에게 재봉질이나 바느질을 거의 화가의 붓과 같은 급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상상과 실제가 큰 차이가 안 난다고 생각될 만큼 섬세하게 구현된다. 상상을 3차원 상에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예상 밖의 변형 또한 포획해 낼 만큼 솜씨가 좋다. 오화진은 예술가적 상상력에 장인의 솜씨를 겸비한 보기 드문 작가이다. 손이 따라가 주지 않는 상상력이나 상상력 없는 기술이란 얼마나 허술한 것인가. 



look at the mirror & see your face_70 x 100 x 210cm_스티로폼, 인조가죽, 침핀, 비즈, 스팽글, 필름 등 _2001



'max'_전시장면 2003_인사아트센터



그렇다고 그림을 안 그리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체질화된 자유로운 화법, 대개는 그림이기보다는 드로잉인 선적 표현은 상상을 받아쓴다. 천이나 오브제 등을 활용한 입체화에서 상상/드로잉의 어떤 부분은 약화되고 어떤 부분은 강화될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여러 매체를 활용하고, 그것을 상보적으로 싸안는 ‘개인의 문화’를 강조한다. 끝없이 차별성이 요구되는 균질의 문화 속에서 개인의 문화는 ‘세상을 디자인 한다’ 이러한 주제를 내건 이전의 전시에서 작가는 ‘신(God)놀이를 통해 제멋대로 표현한’ 이미지의 작업들을 선보였다. 그것들은 한 번 창조된 후 계속 상상력이 접붙여지며 자체적으로 증식해 나간다. 그리기와 만들기를 통해 완성된 피조물들은 ‘기괴하고, 선정적인 형상을 집요한 방식으로 화려하게 표현’ 하는 오화진의 작업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작업했던 ‘우상타파(Iconoclasm)’ 시리즈에서, 조각된 스티로폼에 인조가죽을 뒤집어 씌운 후, 그 위에 PVC 필름, 비즈, 스팽글 등을 장식한 작품들은 타파하고자하는 우상 못지않게 화려하고 과장된 형태로 눈길을 끌었다. 우상을 타파하려면 그 못지않은 파워가 필요한 법이다. 


먹지 않으면 먹히는 치열한 관계 속에서 괴물과 싸우는 자는 똑같이 괴물이 된다. 번쩍거리는 표면과 침 핀으로 꼭꼭 찔러 제작하는 방식은 사도매저키즘적인 면모가 있다. 사드의 잔인함과 마조흐의 환상성은 결합되며, 작품들은 그러한 역할극에 필요한 물신이 된다. 그러나 겉보기의 육중함과 잔혹함, 그리고 어두움은 실제 무게는 별로 안 나가는 재료와 놀이 방식에 의해 상쇄된다. 오화진의 작업은 자연의 법칙을 놀이의 규칙으로 변환시킨다. 운명에 대한 믿음은 법칙보다는 규칙에 관련될 것이다. 결정론적인 자연은 예술의 자유로움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예술 또한 엄격하게 실행되어야 한다. 중심과 표면이 일치되지 않는 형식은 ‘욕망(Desire)'(2005-2008)을 주제로 한 작품을 낳았다. 시점도 종점도 불확실한 표류하는 욕망에 대한 자각은 즉흥성을 중시하는 ‘짝짓기 프로젝트 (The Mating Project)’(2009-)로 이어진다. 짝짓기 프로젝트는 드로잉과 섬유소조(塑造)로 진행된다. 한 날 한시에 구입한 의자 두 개 중 하나는 작품이 되고, 다른 하나는 그냥 의자로 남아있다.


 


핏빛영혼_ 75X178X100 cm     모직, 솜, 한지, 알루미늄 망, 조명, 등  바느질    _2010



빨간방_The Red Room_162X130 cm_캔버스위에  아크릴_2010



'개인의문화_세상을디자인하다'_전시장면_2017_space9



고양스튜디오 작업실에서 본 작품 [Able man](2012)에서 천에 감싸인 플라스틱 의자는 다리 넷이 달린 괴물로 변신해 있다. 뒷면은 의자형태가 어렴풋이 암시되어 앉을 수도 있는데, 의자 등에서는 또 다른 개체가 표피를 찢고서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한다. 오화진의 작품에서 예상치 못한 경로로 예상치 못한 존재가 출몰하는 것은 흔히 일어난다. 그것이 작가가 말하는 운명, 짝짓기 등의 용법이다. 운명적 짝짓기의 대상은 훌라우프처럼 간단한 것에서 재봉틀같이 준 가구 급에 해당되는 물건까지 다양하다. 올해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획전시 ‘씨실과 날실로’ 전에서 선보인 재봉틀은 만드는 존재이면서 만들어지는 존재를 표현한다. 그것은 창조자에게서도 일어난다. 창조자는 무엇인가를 만들면서 스스로도 변신한다. 오화진의 작품에서 명백한 기능을 가진 물건들은 작가가 부여한 새로운 피부를 입고서 불가사의한 사물로 변신한다. 울 재질의 도톰한 피부는 새롭게 부여받는 생명의 온기를 품고 있다. 작업실을 차지하는 상당분량의 짐이 각종 천들, 즉 앞으로 태어날 것들의 피부이다. 


운명을 믿는 작가에게 짝짓기는 우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이다. 생활과 작업하는 와중에 틈틈이 적어놓은 메모지의 단어들이 조합되어 기묘한 돌연변이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새로운 괴물들은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나 오화진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쉽게 이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낱장들로 된 메모지들로 만들어진 이야기라서 비약과 도약이 심하다. 바느질, 또는 재봉질은 대개 이러한 비약과 도약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어쨌든 누군가에게는 잠꼬대나 헛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가 다양한 형태와 맥락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중요하다. 상상이 또 다른 상상을,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형상이 또 다른 형상을 낳는 과정은 표류와 비교될 수 있다. 진위를 결정할 기준이 없는 이야기들은 거듭되는 위기이자 열락이다. 작업은 무작정 시작되지만, 그것이 갈무리되는 방식의 완결성으로 인해 가상과 실제 간의 왕래는 다채로우면서도 구체적인 결실을 맺는다. 상상된 것은 그려지고 제작되어 만져진다. 그리고 또 다른 상상을 낳는다. 


  


영감포착포식자_Inspiration Predator_ 60x70x40cm_촛대, 울혼방, 가죽, 솜, 종이 등 _바느질, 드로잉_ 2011



Able Man_능력자_59x100x110cm_플라스틱 의자, 울혼방, 솜 등  바느질_2012



출전;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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