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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림 / 불안정한 삶의 조건

이선영

불안정한 삶의 조건

  

이선영(미술평론가)

  

관객이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영상작품은 정오의 빛이 내리 쬐는 때 위가 열린 투명한 병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여준다. 뚜껑 열린 병으로 들어간 그 동네의 개미들은 쉽게 다시 나가는 것들이 있는가하면, 그 안에서 뱅뱅 돌며 못나가는 것들도 꽤 있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 간단한 실험은 재미있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다. 빛을 담고 있는 병 안, 활짝 열려 있는 출입구를 못 찾아 방황하는 개미들은 빛의 미로 속을 헤매는 셈이다. 별로 위험하지 않은 이 함정은 누군가에게는 악무한의 공포일 수 있다. 주로 (땅)표면만을 바닥 삼아 이동하는 개체는 유한한 부피도 무한하게 받아들인다. 마찬가지로, 3차원적인 동물인 인간에게 4차원은 불가사의한 힘으로 다가올 것이다. 유리병을 빠져 나가지 못하는 개미가 느끼는 공포는 정확한 위협의 대상이 없으니 불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백색소음이라는 것이 있다면 백색공포라는 것도 있다. 




흔들리는 빛에 대하여 4 - 개미 | HD video | 01:31 | 2018



흔들리는 빛에 대하여 - 전시전경, 모하창작스튜디오



흔들리는 빛에 대하여 2 - 새 전구 | 전구,전기장치 | 가변설치 | 2018 



흔들리는 빛에 대하여 2 - 새 전구 | 전구,전기장치 | 가변설치 | 2018 



무더웠던 2018년 여름 모하 창작 스튜디오 인근의 산이 보이는 장소에서 행해진 이 간단한 실험은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비추어 줄 것이라고 믿어지는 빛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음을 보여준다. 계몽주의와 함께 시작된 근대의 낙관주의가 계몽의 양면성이 드러나면서 의문시 되었듯이 말이다. 개미들은 인간을 대신하여 인간도 감정이입 할 수 있는 상황을 표현한다. 이나림의 작품에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지만, 인간 이외의 것들을 통해 인간적 상황을 표현한다. 기계가 보편화되기 이전 시대에는 동물이 우화적으로 말했다. 이제는 기계로 대표되는 사물이 인간보다 더 설득력 있게 인간적 상황을 재연한다. 전시장 안쪽은 어둡다. 작가는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을 개미에게 일어난 것 같은 상황 속에 밀어 넣는다. 즉 인간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흔들리는 빛에 대하여]라는 전시 부제 아래의 작품들은 관객의 다가감이나 간단한 조작 등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빛을 연출한다. 


이나림의 작품은 밝거나 아니면 차라리 아주 어두울 때 느껴지는 안정감을 박탈한다. 초입에 전원 플러그들이 놓여있는 가장 안쪽의 작품은 7개의 전구가 마치 별자리처럼 빛난다. 관객이 플러그를 뺄 때 전구가 깜빡임을 멈춘다. 관객이 7개의 플러그를 다 뽑으면 7개의 전구는 안정적으로 빛을 발한다. 플러그를 다시 끼면 깜빡거린다. 플러그를 꽂는다함은 작동을 의미하는데, 이 작품에서 작동은 깜빡거림이다. 컨트롤러와 센서를 이용해서 일부러 깜박이게 만든 전구는 불안정한 상황에 대한 상징이 된다. 체온을 유지해야 살아갈 수 있는 동물에게 빛/에너지는 생명의 상징이다. 지구는 빛을 화학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는 최초의 생명체인 식물에 의해 삶의 조건이 형성되었다. 개체가 죽으면 먼저 눈빛이 사라진다. 빛을 가득 머금던 수정체는 아무 반응이 없는 물질 덩어리가 된다. 생명은 항상성을 필요로 한다. 변화는 그 다음의 일이다. 




흔들리는 빛에 대하여 - 전시전경, 모하창작스튜디오



흔들리는 빛에 대하여 5 - 폐 전구 | 전구,전기장치 | 가변설치 | 2018 



흔들리는 빛에 대하여 5 - 폐 전구 | 전구,전기장치 | 가변설치 | 2018 



그런데 이나림은 그러한 빛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상황을 오히려 정상으로 간주한다. 안정이 아니라 불안정이 삶의 조건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예술 하는 삶이 그렇다. 안정에 대한 욕망이 개체를 움직이게 하지만, 모든 욕망이 그렇듯이 충만하게 만족되는 순간은 없다.  안정, 또는 안정을 찾았다는 착각은 오히려 덫으로 작용할 것이다.  근대는 전통사회에서 안정되어 있던 많은 것들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실이 드리워진 작품은 잘 켜져 있다가 관객이 실을 건드리면 불안정해지며, 사색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책상 위의 조명도 잘 켜져 있다가 스위치 건드리면 깜빡거린다.  작가는 이전 작품 [빛 수집가](2015)에서 관객이 병을 만지면 빛이 나오는 따스한 느낌의 작품을 만든 적이 있는데, 이번 전시는 그 반대인 셈이다. 이번 작품은 좀 더 냉혹하게 현실을 직시한다. 기억과 추억을 불러일으키던 빛은 이제 관객이 당면한 지각적 상황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불확실성에 빠트린다. 빛을 담는 매체인 유리 또한 취약하다. 그것은 쉽게 깨질 수 있다. 


죽음, 또는 꺼짐은 차라리 확실하다. 그러나 이제 사물화 또는 기계화되어 가는 삶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버려진 전구들을 수집하여 전시장 구석에 설치한 작품은 아예 컨트롤 자체가 안 된다. 그것은 불이 켜진 것, 깜빡거리는 것, 꺼진 것 등이 복합적으로 집합된 것으로, 각자 얼마큼 남았을지 모르는 에너지를 불태우며 그곳에 있다. 정확히는 다양한 상태가 방치된 채 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소진은 반드시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만화경으로도 볼 수 있게 만들어 무지개 빛으로 빛나는 이 작품은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한편 이나림이 이 전시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전구는 이제 사라져 가는 것이기도 하다. 기능적 물건은 그 기능을 다할 때 쯤 시적 사물로 예술작품에 등장하곤 한다. 깜빡이는 빛을 담는 매개체는 그자체로도 한시적이다. 이러한 이중의 사라짐에 대한 인식은 비극은 아니다. '필연의 인식은 자유'라는 변증법적 철학자의 기준에 의한다면 말이다.    

  


(참고작품) 빛수집가, 전시전경, 모하창작스튜디오



(참고작품) 빛수집가-겨울 | LED, 전자부품 | 15x10.5x10.5 | 2015 



(참고작품)빛수집가-호수 | LED, 전자부품 | 12.5x11x11 | 2015



출전; 모하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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