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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정 / 이방인 이야기

이선영

이방인 이야기

  

이선영(미술평론가)

  

한 지역 내의 타지 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수년간 작업을 지속해왔던 신미정은 모하 창작스튜디오에서 울산의 해녀를 소재로 작업했다.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이어오던 작가가 본격적으로 영상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녀가 지역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목소리와 함께 기록하기 위해서이다. 독학으로 섭렵한 영상이라 화려한 편집보다는, 이야기에 방점을 찍는다. 그렇지만 그동안의 작업으로 부산 국제 비디오 아트 페스티벌에도 참여하는 등, 새로운 언어의 장벽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그동안 일제강점기 때 익산에서 태어나 자랐던 일본 할머니, 실향민들이 모여 살던 속초 아바이 마을의 할아버지, 동학교도였던 대전의 할머니 등의 사연이 작품화되었으며, 앞으로 작가가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이 목록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타지 인이라는 주제는 그들의 이야기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작업이나 직업을 따라 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가 바로 작가이기에, 작품 속 굴곡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코 남 이야기가 아니다. 주로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왔던 신미정은 2015년 이후 새로 매년작업 장소를 옮길 때마다 그 지역의 타자 인에 대한 기록을 영상작품으로 구현해왔다. 이주와 정착에 관련된 그녀의 주제는 외재적이지 않고 내재적이다. 이러한 내재성은 예술의 조건이기도 하다. 신미정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유난히 부침이 심했던 한국 근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향을 떠나 낯선 시공간에 던져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새롭게 좌표화 된 시공간에서 서로 다른 이상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갈등과 고초를 겪었던 사람들 이야기이다. 그들의 개인사에는 식민지, 전쟁, 종교, 산업화 같은 굵은 주제들이 배경을 이룬다. 2018년 울산에 머물렀던 시기에 작가의 관심을 끈 해녀는 보통 제주도민을 생각하게 되지만, 울산에도 해녀가 있으며, 울산지역의 상당수—작가의 조사에 의하면 70%를 차지—해녀가 제주출신이다. 


해녀는 토속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마저 가지고 있지만, 한 겨울에도 바다 속에서 작업하는 극한의 직업이고, 특히 상당수가 고령의 여성들이라는 점에서 이미 범상치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미정이 이 전시에서 특화 시킨 주제는 해녀 그 자체가 아니라 타지 인이라는 점이다. 극한의 직업이라고 경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고, 한정된 자원을 원주민과 나눠야 하는 근본적 문제가 있으니 만큼, 타지 인으로서의 해녀는 이중의 힘겨움을 지고 살아왔던 셈이다. 외지인이라는 상황은 몇몇 특정인에게 해당되는, 요컨대 극히 소수자에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연속성과 특이성이라는 양축을 견인해 왔던 그간의 영상들을 보면 그들의 이야기는 보편성을 지닌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울산에 정착한 해녀 양순택 할머니(1933- )를 이야기의 축으로 삼았다. 양순택 할머니는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모두 해녀였던, 3대째 해녀 일을 해온 분으로, 지금 활동하는 해녀들 가운데는 1세대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대표성을 가진다. 










울산 남자와 결혼하여 이 지역에 정착한 후 78세까지도 물질을 했고, 지금은 물에 들어가지는 않고 물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87세라는 주인공의 나이는 큰 거리감을 주지 않는다. 정주민/이주민의 관계는 이제 더욱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소수의 문제가 다수의 문제로 변할 수 있는 독특한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작가에 의해 재구성된 한 개인의 일대기를 보는 셈이지만, 작품에 흐르는 주제는 보편적이다. 전통 이후의 모든 사회에서 개인이 속한 자리의 유동성은 더욱 커졌다. 우선 근대에 도시로의 대대적인 유입이 일어났으며, 근대의 분업화는 굳이 지역을 이동하지 않아도, 제자리에서 유목하게 했다. 평생직장이나 직업의 개념이 사라지고, 개인이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이 호환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생업은 기계를 포함하여 누가 해도 상관없는 일로 변해가고 있다. 신미정이 그동안 주목했던 타지인은 현재 보편화된 상황을 먼저 겪었던 전형적인 개인이다.


소수자에게 지워졌던 무거운 굴레는 이제 희석화 된 채로 대중의 운명이 되었다. 그들의 일상적 삶은 이제 역사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경험되기보다는 추적과 추리가 필요한 작업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작업이 그러하듯, 많은 불연속의 지점이 있다. 당시에 흔했던 것일수록 망실(亡失)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작가는 역사보다는 계보학적—선적인 역사관을 극복하려 했던 철학자들(니이체, 푸코)에 의해 대안의 역사라고 명명되어진—방법을 통해 잃어버린 시공간을 재구성한다. 역사학이 실증과학과 가깝다면, 계보학은 예술과 가깝다. 관객의 적극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대목은 자료들 사이에 화면들 사이에 있는 간격이다. ‘출향(出鄕)’이라는 부제가 붙은 전시는 13분 분량의 영상과 그 영상이 가능하기까지 필요했을 여러 자료들의 배치로 구성된다. 영상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영상작품은 더 흡입력이 있고, 작가의 의도가 더 드러나 있지만, 영상 이외의 자료들은 보충적 관계에 있다


출전; 모하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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