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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선 / 살아있는 시간의 얼굴

이선영

살아있는 시간의 얼굴

  

이선영(미술평론가)


자연은 다양성의 원천으로, 그와 비슷한 목적을 추구하는 예술은 늘 거기에 뿌리를 댄다. 그러나 현대예술은 플라톤 이래의 재현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적 실재로부터 벗어나면서 형식을 위한 형식에 매몰될 위험에 처했다. 진선미를 구분하려는 근대의 흐름은 미술을 ‘전문화’시키기는 했지만, 텅 빈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한편 진리는 과학이 독점했다. 과학과 예술의 대화를 추구하는 프로젝트들은 그러한 구분이 예술에도 과학에도 좋지 않았음을 인식한다. 박정선의 전시에서 종종 발견되는 장황하고도 건조한 기술적 장치들은 설치미술이 하나의 장르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이지만, 실재와 유리된 형식에서 야기되는 자의성으로부터 벗어나 실재의 진면목을 감각적인 형식으로 포착하려는 집요한 관심의 산물이다. 과학은 그들만의 언어인 난해한 공식과 수식을 넘어서 보여줘야 하는 과제가 있고, 예술 또한 근본적 원리를 필요로 하다 보니 두 영역은 상보적 관계를 가진다. 




미생물 소리 / 2018 / 1000x500x1600 / 인터랙티브 사운드 설치, 컴퓨터, 아두이노, 스피커, 웹캠, 미생물배양액, 한천, 부패한 과일 / 기술지원_김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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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선의 작품 제목 [미생물 얼굴](2017)에도 있듯이,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 얼굴을 만들어준 상상력이 재미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배제된 해부학이 아니라 시간을 중요한 변수로 하는 생리학에 가깝다. 미생물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19세기에 이르러서 고대로부터 전해온 자연발생설이 무너지면서였다. 그러나 현대에도 현미경으로 조사하기 전에는 미생물은 직접적이기 보다는 간접적으로 파악된다. 대개 이상(異常)이나 질병을 통해서이다. 박정선은 이 전시에서 과일이나 얼굴형태 등이 상하는 과정을 직시하게 하는데, 그것은 잔인해 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 보자면 한 개체의 죽음이 또 다른 개체들의 삶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정상과 이상의 엄격한 구분을 통하여 삶과 죽음의 연관 고리를 끊어내려는 현대는 죽음을 비극으로만 간주하지만, ‘질병은 생명의 새로운 과정’(조르주 캉길렘)인 것이다. 


전시장에서는 또 다른 생명의 과정이 축제처럼 펼쳐지고 있으며, 기술자와 협업하여 만들어진 일종의 증폭 장치는 그러한 축제의 소란을 전달한다. 실험수조 속의 얼굴은 전시 기간 내내 시시각각 변한다. 그냥 물리적인 변화가 아니라 관객과 상호작용적인 변화이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작품이다. 작품은 관객의 움직임이 미시적인 변화를 야기해서 피드백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미생물이 보내는 신호를 사운드화 하는 작품은 여기에 나 혼자, 또는 인간만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우주적 유대감--한 관객이 ‘우주에서 온 소리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을 만든다. 그것은 미시우주로부터 온 소리다. 동시에 그것은 거시우주의 현상과도 조응한다. 텔레비전 등에서 지글거리는 신호는 확장하는 우주가 저 멀리서 보내는 신호라고 알려져 있는데, 필자는 실험 수조와 연결된 헤드폰에서 가깝고도 먼 곳에서 오는 소리를 들었다. 인간이라는 주체의 비대화에 의해 눈멀고 귀 먼 상태를 벗어나 타자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미생물 소리_환청 / 2018 / 1000x500x1600 / 인터랙지브 사운드 설치, 컴퓨터, 수중마이크, 진동스피커, 헤드폰, 웹캠, 미생물배양액, 한천, 사과 / 기술지원_김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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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지각의 주체가 미생물의 차원으로도 변모함을 암시한다. 지글거리는 소리는 아직 그 소리들이 분절화 되어 있는 인간의 언어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려준다. 빅토르 주어칸들은 [소리와 상징]에서 소리는 정제되지 않은 음들, 아직 인식되지 않은 음들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또한 [소리와 상징]은 생리학자의 연구를 인용하면서 물리적 시간과 생물학적 시간을 구분한다. 하나는 시작과 끝이 없이 일관된 방식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생물학적인 것으로 유기체의 지속과 관련된다. 박정선이 작품에 끌어들인 생명은 ‘기억하는 시간, 살아있는 시간’(빅토르 주어칸들)이다. 작가는 소리를 통해서 유기적 과정의 시간성을 추출한다. 썩어가는 과일과 미생물, 배양액등이 실험수조에 담긴 작품 [미생물 소리]에서 헤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낯선 소리들은 보이지 않지만 현존하는 생명들의 소리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경이롭다. 


인간중심적 사고에 의하면 미생물은 미미한 존재일지모르지만, 인간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지구의 진짜 주인공이다. 프리초프 카프라는 [생명의 그물]에서 지구 전체가 살아있다는 가이아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의 진화는 극히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진 에피소드에 불과하며, 가까운 미래에 갑작스럽게 끝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러한 예언조의 말들은 인간이 아니라 미생물이 지구생물에 대한 대표성을 가짐을 암시한다. 한편 인간을 포함한 큰 유기체들이 진화를 포함한 시간의 시험에 대한 결과물로 나오는데 오랜 세월이 걸리는데 비해, 미생물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시화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시공간을 압축하여 재현하는 실험에 딱 알맞은 소재이다. 박정선의 작품에 동원된 미생물은 형광대장균, 붉은 박테리아(세라시아), 곰팡이 등이다. 동영상 작품은 시간에 더욱 가속도를 붙인다. 




얼음 속의 기억 2 / 2018/600x600x1800 / 냉동장치, 얼음, 곰인형, 꽃병, 해골모형, 더미, 화석, 한천, 곰팡이 / 제작_아시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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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박스 안팎의 요소들은 시계톱니 바퀴처럼 물려 돌아가는 필연성의 산물이다. 그러나 박정선의 작업은 과학기술과도 공유되며 그 부분과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면서도 단순히 어떤 현상을 재현하는데 머물지는 않는다. 작품 [미생물 소리_환청]은 미생물의 소리에 작가의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를 덧입혔다. 직접적인 소리의 추출 보다는 자신을 통한 재해석이다. 실험수조에 다가간 관객은 배양액 속의 미생물의 변화가 야기하는 시각적 징후와 주/객관적인 소리를 동시에 감각한다. 미생물의 소리와 함께 들리는 말은 작가가 직접 쓰고 읽은 시적인 텍스트로, 관객에는 굳이 그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려 하지는 않는다. 신학적 사고가 아니어도, 자연에는 그 안에 해석해야할 기호가 있으며, 예술적 기호 또한 단번에 파악되는 신호 같은 것이 아니라, 거듭해서 해석해야 하는 미완의 텍스트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기억을 호출했다. 


지각이 공간적인 범주에 호소한다면 기억은 시간적이다. 박정선이 작품의 중심에 놓는 소리는 시간을 통해 지각된다.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는 유한한 존재로서의 생명은 시간의 흐름에 민감하다. 작품 [얼음 속의 기억 2]은 냉동장치 안에 들어있는 이런저런 사물들이 얼었다 녹았다 하는 변화를 보여준다. 실험수조 위쪽에서 분사되는 물이 영하 8도의 바닥면에 놓여있는 작가의 기억의 단편들에 작용한다. 아래에 놓여있는 것은 돌멩이, 곰 인형, (굿할 때 쓰는)종이 꽃, 자개화병 등이다. 그다지 특별한 사물이라 할 수 없는 목록들은 작가가 개인의 기억을 시시콜콜하게 재현하기 보다는 보편성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기억이라는 현상을 시간이 편집하는 방식은 박정선이 한때 영상 작업에도 몰두했던 이력과 관련된다. 곰팡이 핀 얼굴은 미라 같은 느낌이다. 유적지의 고분에서 미라가 발굴될 때 그가 생전에 썼던 물건들이 함께 있는 것 같은 맥락이다. 




미생물 얼굴 / 2017 / 싱글채널 비디오 247



실험수조 안에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안개와 물방울, 얼음 등은 기억이 활성화되는 주요 변수로서 기후조건을 암시한다. 기억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몸에 스며들며, 또한 몸의 상태로부터 풀려나오는 것이다. 기억의 메커니즘 자체가 그렇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제처럼, 어떤 기억이 활성화되는 순간은 우연적일수도 있다. 물론 호출된 기억은 마치 꿈 해몽의 과정처럼 무의식의 영역을 떠나 의식화되곤 한다. 현대의 심리학은 기억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잠재되어 있다가 어떤 계기가 될 때 활성화된다고 해석한다. 작가는 기억에 관련된 잠재성과 현실성의 문제를 얼고 녹는 과정을 통해서 가시화한다. 여러 가지 정교한 장치들이 구동되는 박정선의 작업은 완벽하게 조절되기는 힘들다. 그것은 기술적인 방법론에만 매몰될 수 없는 예술가의 한계이기도 하고, 그녀의 작품이 던지는 또 다른 메시지이기도 하다. 


 출전; 2018 아티언스대전 (대전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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