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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경계에 걸쳐 있는 김선두의 먹그림

이선영

다양한 경계에 걸쳐 있는 김선두의 먹그림

  

이선영(미술평론가)

  

김선두의 최근작 중 [별을 보여드립니다] 시리즈는 지상의 초라한 땅 한떼기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맞붙혀 놓는다. 하찮음과 숭고함의 조우이다. 그러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작가는 몸을 한껏 낮췄을 것이다. 거의 꼬물거리는 벌레에 가까운 시점으로 말이다. 물론 그는 한국화가니까 서양의 원근법같은 것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수많은 원근법 중의 하나로 상대화 될 것이다. 세상을 색다르게 보려면 벌레 아니라 뭐라도 되려는 이들이 바로 예술가 아닌가. 얼마 전 포스코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의 가장 큰 작품 [長春]에는 1cm 이하 크기의 사람들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자연 여기저기에서 소요하고 있었다. 벌레와 그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자연의 굴곡 면을 따라 자리한 여로 위의 사람들은 자신이 서있는 토대를 망가뜨릴만큼 어리석지 않다. 먼 곳은 크게 가까운 곳은 작게 그리는 역원근법이 적용된 김선두의 산수화에서 자연은 대상이 아니라 꿈틀거리는 유기체에 가깝다. ‘별일 없이 잘 지낸다’는 뜻을 가진 장춘(長春)은 지상의 척도가 되어 자연과 대척점에 놓인 인간이 아니라, 자연의 품속에서 노니는 모든 존재의 유토피아가 되었다. 하나의 원근법이 아닌 이동시점이 적용된 산들의 파노라마는 이산저산의 조합이며, 이때와 그때의 조합이다. 



To show the star-sparrow 98x130cm ink powder color on Jangji 2018



별을 보여드립니다-붉은옥수수 140x180cm 장지에먹.분채 2018



별을 보여드립니다-아기소나무 140x180cm 장지에먹.분채 2018



별을보여드립니다-밟혀주는사람 67x93cm 장지에 먹 분채 2015



[장춘]은 2017년 국제 수묵 프레비엔날레에 출품한 것으로, 남도 스케치 여행의 산물이면서도 어릴 적 봄의 풍경이 담겨 있다. 역원근법이 적용된 풍경은 화면의 위가 근경이고 아래가 원경이기에 비현실적이다. 비현실은 현실을 포함하니만큼 현실보다 더 융통성 있다. 이동시점은 공간 뿐 아니라 시간에도 적용되었다. 거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점이 있다. 전체를 관통하면서 그것을 이해하고 소유하며, 결국 지배하고자 하는 그러한 전능한 시점은 없다. 작가는 어수선한 풍경조차 기꺼이 수용한다. 어떤 현실에도 진실의 한 단락은 있기 마련이다. [별을 보여드립니다] 시리즈에서 화면 아래에 자리한 지상은 무질서하다. 거의 쓰레기장 수준이다. (밤)하늘의 색이 고정된 것이 아니듯, 작품마다 하늘에 해당되는 부분을 차지하는 색은 다르다. 심지어 빨간 밤하늘도 있는데, 그것은 보다 가까이에 당겨져 있는 지상이라는 무대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심신 상태를 반영한다. 가령 작품 [별을 보여드립니다-수탉]에서는 치킨이 아닌, 의기양양한 수탉의 기개와 연결된다. [별을 보여드립니다-000] 식의 제목에서 방점은 별이 아니라 뒤에 있다. 이 단어는 그가 호출하는 대상들을 지칭하곤 하는데, 그것들은 밤하늘의 별에 버금가는 소중한 것으로 간주된다. 


앞서 언급한 수탉 외에 길고양이, 참새, 해바라기, 호박꽃, 마른 옥수수, 아기 소나무 등이 있다. 때로 ‘일곱 개의 꿈’같은 추상적인 단어가 뒤따르기도 한다. 그는 왜 이런 변두리의 추레한 풍경에 주목할까. 김선두는 중 3때 서울에 올라와서 서울사람도 시골사람도 아닌 어정쩡한 자신을 변두리와 비교한다. 그는 변두리 풍경의 주요 특징을 큰 간판과 고압선, 적치물과 쓰레기가 많은 점, 그리고 텃밭이라고 지적한다. 방치된 변두리는 인간 욕망의 산물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초라한 무대에서 가운데를 차지하는 것은 텃밭의 작물과 그것을 에워싼 경계, 그리고 참새 같이 의인화될 수 있는 동물이다. 식물과 새가 등장하는 현대판 화조도라고 할 수 있다. [득음] 시리즈에서 작가를 떠오르게 하는 작은 새는 경계선들과 상호작용한다. 처음에는 팽팽했을 경계선이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지고 엉킨 선들은 오선지같은 음의 비유가 된다. 그것은 시각적인 언어에 다른 감각이 포함된 공(共)감각적인 작품이다. [느린 풍경] 시리즈에서는 별이 빛나는 밤부터 아지랑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상과 현상이 압축된 추상적 선으로 펼쳐진다. 또는 접혀진다. 




별을보여드립니다-해바라기 140x180cm 장지에 먹 분채 2018



To show the star-A male chicken 98x130cm ink powder color on Jangji 2018



별을 보여드립니다.-일곱개의 꿈 장지에먹 분채 180x140cm 2018



별을 보여드립니다-내곡동 장지에 분채 189cmx90cm 2011



꽃이 피는 과정을 불꽃놀이와 비교한 [싱그러운 폭죽] 시리즈에서는 직관적으로 푹푹 찍은  얼룩과 먹물의 튄 자국이 바로 개화의 궤적이 된다. 배경이 없이 식물만 가득 그린 그림에서 관객은 먹 자체에 내재한 다양한 색을 유추한다. 갈필로 그린 것은 누런 잎이, 윤기 있는 것에서는 짙은 녹색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흑백사진 같은 색조는 현재를 과거와 연결시킨다. 그는 [장춘]에서 작가의 어린 시절을 포함한 60년대 말의 아련한 풍경을 그려 넣었다. 초상화에서도 그는 젊은 시절을 그렸다. 누구든 젊은 시절이 가장 아름답다. 특히 그가 사랑하고 있는 순간이라면 더더욱. 초상화 시리즈에서는 인생의 짧은 정점, 즉 개화의 순간을 포착하고자 했다. 김선두의 작품에서 지각과 기억은 연동된다. 40년이 넘는 화업을 지속해 오면서 그는 정리보다는 실험을 택했다. 최근의 실험은 수묵과 채색의 수렴이다. 그는 색이 있는 그림 또한 ‘먹그림’으로 간주했다. 늘 어떤 주제를 내건 전시를 해왔던 그가 최근 열린 전시를 ‘먹그림’이라고 칭한 이유는 필묵이 수묵과 채색을 모두 포함한다는 의미다. ‘색으로 그린다음 수묵화로 우겨보자’는 심산이다. 동양화의 밑바탕에 깔린 것은 먹이지만,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먹보다는 붓을 더 중시한다. 


김선두는 채색 붓으로서가 아니라 모필로 호흡을 살려서 그리며, 붓에 함유된 물이 아니라 속도로 조절하면서, 수묵이든 채색이든 한 번에 나오는 속도감과 번짐을 살린다. 물론 이러한 행보가 최근의 선택이라 할 수는 없다. 한국화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 한국화를 자연스럽게 택했지만, 1984년 중앙미술대전으로 화단에 ‘등장’했을 때부터 ‘수묵과 채색의 조화를 살려 작업을 해 나가겠다’고 선언한 터였다. 그에 의하면 ‘묵보다는 필이다. 필법에 의해 묵법도 살고 죽는다. 먹이 색이 되기도 하고 색이 먹이 되기도 한다’ 김선두의 필법에서 중요한 것은 리듬이다. 그는 ‘그리는 도중에 붓은 세웠다 뉘었다, 모았다 깼다, 빨랐다 느렸다, 길다 짧다, 굵다를 구사하면서 리듬을 타고 그림을 완성한다’고 한다. 또한 그는 한국화 재료에서 장지를 선호한다. 견고한 장지 위에 많게는 30-50번 겹쳐 칠해지는 발색기법은 깊은 맛이 있다. 그는 한국화의 명칭에 어울리는 형식을 장지 기법으로 간주하며 입버릇처럼 말해지는 ‘한국화의 위기’를 기회로 뒤집으려한다. 그래서 그는 2010년부터 ‘겹의 미학’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해마다 전시하면서 많은 겹을 수용하는 장지 기법을 알리고 있다. 그는 이러한 ‘겹의 미학’에서 통섭을 본다. 




득음 139x74cm 장지에 먹 분채 2018



득음 180x63cm 장지에 먹 분채 2018



장춘 144x74cm 장지에 먹 분채 2018



날개 62x90cm ink on jangji paper 2010



‘예술은 감각으로 사유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터득한 감각으로 세상을 보면 전에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작품 속 득음하는 참새는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이다. 득음의 과정은 순탄치 않아서 말라비틀어진 해바라기가 함께 등장하는 작품은 새의 고통도 느껴진다. 새는 작물과 함께 어떤 경계 안팎에 있다. 다양한 선율을 떠오르게 하는 선들은 인공적이지만 결국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화 된다. 이러한 선들은 그의 다른 산수화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한국화의 이동시점이 발현된 작품 [장춘]에서 그는 남도의 애잔한 봄을 담았는데, 거기에는 노랫가락처럼 긴 선들이 많이 깔려 있다. 드라마틱한 선은 식물이 등장하는 가까운 풍경에도 적용된다. 자생적이기 보다 이식된 식물인 작물은 피는 것도 있고 지는 것도 있고, 자신을 둘러싼 경계 안에 또는 경계에 의지한다. 그러나 그 경계들은 튼실하지 않다. 밤하늘로 설정된 짙은 배경은 형태이자 선적 요소를 두드러지게 하면서 취약한 경계 또한 강조한다. 경계의 느슨함에서 그는 세상의, 그리고 그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실행하고 있는 한국화의 본질을 본다.

  

출전; 월간미술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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