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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여수 국제아트 페스티벌 / 근대화 또는 세계화의 표면과 이면

이선영

근대화 또는 세계화의 표면과 이면

제8회 2018 여수 국제아트 페스티벌(9.14—10.14, 여수엑스포 D전시홀, 엑스포아트갤러리)


이선영(미술평론가)


지금 여기에서


제8회 2018 여수 국제아트 페스티벌의 주제 “지금, 여기 또다시”(예술감독 김기라)는 전시가 열리는 장소의 특수성을 생각한다. 전시 키워드 중의 하나인 ‘여기’가 그것이다. ‘여수 밤바다’라는 유행가에도 나오는 이 아름다운 항구도시는 일제 강점기에 인력과 물자가 드나들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으며, 전시가 열리는 원래 자리인 귀한정은 일제 패망 이후에는 각지에서 귀환한 이들을 임시로 수용했던 난민촌 같은 곳이었다. 뒤에 높은 시멘트 공장을 배경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던 초라한 자리는 얼마 전 KTX가 코앞에 있는 엑스포장으로 개발되었고, 범국가적 차원의 행사가 열리고 난 후, 공간 재활용의 맥락에서 예술부문에도 기회가 주어져 올해로 8회를 이어오고 있다. 재개발된 장소는 원래의 장소보다 더 빨리 시간의 흐름을 타기에, 이제는 거대한 창고처럼도 보이는 전시장은 야생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조명시설 등은 열악했지만, 현대미술전시장으로서는 매력적인 장소로 다가온다. 


전국 각지에서 비엔날레 급 전시의 동시개봉으로 다소간 조용히 치뤄진 전시지만 국내외 작가 49명이 참여한 내실 있는 국제전이었다. 국내외 작가 비중이 반반정도 되고, 한국 작가의 경우 30대에서 70대를 아우르는 광폭의 세대 참여가 특징적이다. 엑스포 전시홀 4개동에서 열린 본전시 외에 ‘여수미술의 역사’를 조명하는 특별전도 함께 열렸다. 일제 강점기가 지나고 나서 여수는 더 큰 고난을 맞게 되는데, 그것이 근대국가의 폭력 사태인 여순항쟁--‘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무장봉기가 발발하였다. 제주도 초토화 작전을 위해 제주도로의 출동명령이 하달되었지만 여수 주둔 군인들은 이 명령을 거부하고 동족상잔 결사반대, 미군 즉시 철퇴를 주장하며 봉기했다.’(주철희 박사)--이다. 많은 민간인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된 이 사건은 제주의 4.3, 광주의 5.18 못지않은 역사적 상흔을 주었다. 그러나 그 사건을 다룬 작품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전시의 대담자로 참여한 최열은 ‘여순사건을 형상화한 예술작품이 드물다는 것은 아마도 그 상처가 그만큼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1948년의 여수는 저항의식을 지닌 예술가들조차 접근하기 어려운 두려움의 대상’(최열)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 비극이 아니더라도 현재진행형의 문제는 재현되기 힘들다. 재현이라 함은 정리, 즉 추후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또다시”는 파란만장한 여수의 역사를 재현하려 하지는 않는다. 이 전시에 포함된 ‘무브 온 아시아-동원된 표상’(2017, 갤러리 루프) 전의 작품들 또한 관객들이 각자 알아서 의미를 편집해야 하는 기록물로 제시되었을 뿐이다. 이 전시는 총체적 재현이라는 방식이 권력이 작동하는 또 다른 방식임을 인정한다. 대신에 강대국이나 국가 같은 거대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 개인들의 현재적 상황을 주목한다. 그 범위는 비슷한 근대화를 겪었던 아시아이다. 현재 아시아는 제국과 경쟁하는 또 다른 제국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우리나라도 역동적 국면에 돌입한 상황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 개인의 실존


여수에서 다큐멘타리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박성태의 작품은 여수 한센인들에 대한 사진적 기록이다. 이제 약 한 알이면 해결된다는 한센병 환자의 사회적 고난은 절대적 타자(신)를 응시하게 했다. 여수는 바다를 가까이에 둔 관광도시 같은 면모가 있지만, 역사를 되집어보면, 오태원의 거대한 물방울 형태의 작품은 눈물, 핏물, 땀방울들이다. 그것들은 한데 모여 거대한 진주가 되어 빛을 발한다. 제주에서 작업하는 강요배는 여수와 제주 사이의 긴밀한 역사적 공유점을 떠오르게 한다. 그의 비극적 역사가 담겨있는 풍경은 그것이 아름다운 만큼이나 슬프다. 여수출신의 작가 강종열은 자신과도 비교될 수 있는 늙은 어부의 삶을 통해 불 꺼진 등대 같은 1980년대의 사회 분위기를 보여준다. 강창구의 작품 속 여수항이나 딸의 모습은 땅과 핏줄에 얽힌 작가의 애정을 드러낸다. 철도의 침목을 소재로 인간군상을 표현해온 정현의 작품은 바닥에 깔려 있던 것들을 일으켜 세워 기념비화 한다. 박광수는 죽죽 그어 내린 선으로 만들어진 검은 숲, 그리고 그 안에서 배회하는 막막한 인간을 보여준다.


오원배는 인형들로 환원된 현대적 군상들을 권력이 작동하는 추상적인 공간에 배치한다. 익명적 힘들은 인형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통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통제한다. 관객이 다가오면 이를 감지해서 움직이는 마리오네트의 창조자 박종영은 어느 날 갑자기 훅 다가올 AI시대를 피노키오를 비롯한 동화적 상상력으로 선취한다. 비인간적 노동은 인간을 사물화 한다. 이정형이 연출한 페인터공의 작업흔적과 거대한 손가락은 예술에도 엄존하는 노동의 몫이다. 정연두의 작품에 나오는 23살에 홍콩에 밀입국하여 60년간 방직공장에서 일했던 소녀와 현재의 소녀는 세대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로 타자화 된 여성의 공통분모를 드러낸다. 신학철, 그리고 김기라x김형규의 작품은 갈등하는 구성원들끼리의 지글거리는 듯한 덩어리가 강렬하다. 신학철은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대목을 모아서 거대한 욕망의 흐름으로 나타냈고, 김기라와 김형규는 하나의 나무에 걸쳐 있는 잔가지들의 바람 잘 날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태극기 부대를 떠오르게 하는 또 다른 작품은 신념과 행동의 결집체라고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존재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


세계화의 표면과 이면


도미나가 요시히데(Tominaga Yoshihide)의 작품 [세계평화]는 도로포장에 동원되는 롤러를 이용한 거대한 판화로, 모든 곳으로 통해야 하고 모든 이들이 숙지해야 하는 세계화의 폭력적 확장성을 풍자한다. 어눌한 영어로 세계화에 대한 궤변을 늘어놓는 지도자를 풍자한 아이다 마코토(Aida Makoto)의 작품 또한 세계화가 각국의 아전인수적 논리로 귀결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2차원과 3차원의 교묘한 유희를 조각적 실험으로 보여주는 권오상은 점차 평면화되어 가는 세계를 표현한다. 그 평면은 갖가지 코드로 이뤄져 있으며 인간 또한 그와 유사할 것이다. 주춘린(Joo Choon Lin)의 작품은 그 위에 놓은 모든 것들을 서서히 삼키는 기묘한 표면이다. 김지민은 상표들을 평평한 픽셀처럼 활용하여 지폐에 나오는 인물들을 구성한다. 각 나라에서 존경받는 정치지도자들과 상표의 결합은 정치와 경제의 긴밀한 연동을 말한다. 잡지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와 색을 추출하여 색으로 바꿔 추상적 평면을 만든 문형민의 작품은 빅데이터 속의 중요한 의미와 이미지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이들의 작품에서 평면화된 세계는 즉물적이면서도 모호하다. 전준호가 거대하게 확대한 지폐는 자본화된 세계를 압축하는 평면이다. 그러나 그 소우주는 생각 외로 고요하다. 작가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그곳에서 지도자의 생가가 불타거나 백악관을 지우는 등의 위반적인 행위자를 심어놓는다. 극사실적인 인체 조각상으로 잘 알려진 최수앙은 인체의 부분들을 가판대의 상품처럼 늘어놓는다. 캔에 들어갈 정도의 극소형 인물상들로 잘 알려진 이동욱은 작품 [모두 다 흥미로운]에서 기이한 색과 모양의 돌들을 수집하여 길게 배열한다. 계열을 이루며 끝이 없다는 특징이 있는 수집은 이미 기능주의를 초월하고 있는 소비의 방식이기도 하다. 장종완이 각종 동물 가죽 안에 섬세하게 그린 유토피아는 다른 개체의 죽음을 담보로 한 기이한 모습이다. 영상작품 속 동화 같은 집 또한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환영이기에 기괴하다.


구조화된 권력의 산물인 개인


사이 후아 콴(Sai Hua Kuan)의 작품에서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목줄이 짧게 메어져 있는 개들의 모습은 어딘가에 메어있는 모든 존재의 상징이다. 왕궈펑(Wang Guofeng)의 작품 속 경직된 표정의 북한 아이들의 모습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멀리에 있는 북한에 대한 인상을 강화한다. 비디오 아카이브 코너에서 [북한 노동자의 하루](2004)를 보여주는 네덜란드 영화감독 피터 플러리의 작품에서도 이질적 타자로서의 북한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쑨쉰(Sun Xun)은 필묵과 목판화를 이용한 이미지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서 중국 지배계급의 권력 투쟁 등, 그가 직면한 시대를 비판한다. 비디오 아카이브에서 상영한 [홍색낭자군](1970)는 문화대혁명기에 만들어진 선전선동 극으로 잘 훈련된 발레리나들이 출연한다. 그 자료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고전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려준다. 필리핀 작가 마크 살바투스(Mark Salvatus)는 군부독재 시절에 녹음된 군악대의 연주를 재연한다.


아버지의 LP 콜렉션 중 언뜻언뜻 드러나는 다양한 명반들은 단조로운 군부독재의 상징곡과 대조된다. 딘 큐레(Dinh Q. Le)의 작품 [모든 것이 재연이다]는 코스프레를 위한 군복을 꺼내 입고 들판에서 포즈를 취하는 사람을 담고 있다. 비디오 아카이브 코너에서 낡은 모니터에 담아 상영한 김청기의 [똘이장군] 시리즈는 1970년대 어린이들에게 만화영화로 인기 있었던 만화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사람이 늑대로 나오는 전형적인 반공 선전 극 또한 제작했음을 알려준다. 영화 시작 전에 무조건 봐야했던 대한뉴스의 인구 억제 캠페인은 인구폭발을 저지하고자 하는 계몽이다. 아이를 안 낳아서 고민인 지금과 격세지감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유럽연합에 못지않은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아세안 커뮤니티에 대한 영상은 ‘동남 아시아’로 불리는 아시아 회원국 10개국이 협력해야 함을 홍보한다. 2015년에 만들어졌지만 기본 방식은 1945년 루프 피임법 홍보물의 유치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출전; 아트인컬처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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