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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주, 자비에 베이앙 전 / 인간의 보편성과 이질성

이선영

인간의 보편성과 이질성

무한주 전 (2018. 12.20—2019.3.3,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라이즈 호텔)

자비에 베이앙 전 (2019. 1. 10—2.15, 313 아트프로젝트)

  

이선영(미술평론가)



브랑쿠시로부터 시작된 현대조각의 두 흐름


인체를 기본으로 조형적 언어를 습득하는 조각가들에게 인간은 중요한 기준이다. 조각이 아니더라도 인체는 그 변화의 정도를 가늠하는 미묘하고도 결정적인 경계이다. 변형이나 왜곡의 기준 자체가 모호한 여러계가 공존하는 현대의 조각가에게 인간의 경계는 역동적인 실험의 장이다.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 전과 무한주(Endless Column) 전의 조각가들은 그들의 모태 언어인 인체로부터 시작하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여정으로 인간을 이끈다. 이들의 작업에서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인간을 중심에 놓는 기존의 방식을 뒤흔든 것은 기계 및 기계적 환경이다. 큐비즘을 조각으로 표현한다면 그렇게 보일 법한 자비에 베이앙의 작품에서 모델을 스캐닝하거나 조각하는데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첨단기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전주의 조각의 역동성을 좋아한다는 그의 작업은 구성주의로 대표되는 근대조각의 고전적 뿌리를 예시한다. 근대조각에서 인간이나 자연은 분석적 형태의 기준이 되어왔다. 그 흐름이 바뀐 것은 미니멀리즘 이후에 지속적 실재를 강조하는 경향이다. 



Xavier Veilhan, Marc, 2018, Carbon, polyurethane varnish, 210 x 68.8 x 41.7 cm_5(사진출전;313아트 프로젝트)



이동욱_결합을 위한 결합 Combination for Combination_2018_mixed media_dimensions variable (detail)(사진출전; 아라리오 갤러리)



김인배_섬광 속의 섬광 Flash_2016_resin_12x22x18(h)cm

권오상_지그재그 기둥 Socle en Zigzag_2013-2018_mixed media_38x33x71(h)cm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현대조각사의 흐름]의 논지에 의하면, (근대의) 닫혀있음 속의 순간적 명료함이 아니라, (탈근대의) 불투명성으로 열린 지속적 흐름이다.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자체 완결적인 형식미를 보여주는 자비에 베이앙이 전자에 속한다면, 무한주 전의 작품들은 후자에 속한다. 무한이라는 개념 자체가 자체 완결성보다는 열림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동욱의 작품에서 인간의 작은 크기는 자연이나 기계적 환경을 더욱 거대한 것으로 다가오게 한다. 사진/이미지를 이어붙이거나 맞붙여 3차원적으로 구성한 권오상의 작품에서 인간은 거대한 코드화의 과정에 녹아든다. 이동욱과 권오상의 작품에서 동물에서 인물, 예술에서 사물에 이르는 것들은 동일한 반열에서 접붙여진다. 수직으로 쌓은 형태들이 인간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쌓인 것들의 관계는 임의적이고 일시적으로 다가온다. 관객과 마주한 수직의 존재가 인간을 떠올린다면, 그들의 작품에서 인간은 이것저것이 얼기설기 연결된 것이다. 반면 이미지들은 코드의 속성을 넘어서 묵직한 물리적 속성을 갖춘다. 권오상의 작품에서 천정에 매달아 놓은 이미지들은 중력에 반응하여 아래를 향해 있다. 


김인배의 작품에서 인체 형상은 확실한 만큼이나 과격하게 변형된다. 안면을 깍아지른 절벽으로 만들기도 하고, 길게 빼거나 늘린 다음 싹뚝 잘라낸 것 같은 형태도 보인다. 그의 작품은 몇 세기 동안 인간에게 가해졌던 모든 힘들이 압축된 듯 충격적이다. 상징적인 차원에서 지배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인물은 작지만 기념비적이다. 그의 작품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된 순간부터 괴물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변신의 과정은 폭력적이며, 그 방향은 예측 불가능하다. 프랑스와 한국의 중견 조각가들이 모두 브랑쿠시를 언급하는 점이 흥미롭다. 재료나 형태에 있어 본질을 추구한다는 자비에 베이앙은 브랑쿠시의 ‘숭고한 보편성’에 다가서려 한다. 컴퓨터에 입력된 값을 물리적으로 실행하는 기계는 인간을 에워싼 새로운 기계적 환경을 인간에게 덧입힌다. 그렇게 하나의 원형이 생겨나면 이를 위반하려는 또 다른 움직임이 생겨날 것이다. ‘무한주’라는 제목으로 모인 한국의 세 조각가는 보편성보다는 이질성을 강조한다. 이질성은 보편성보다 엔트로피(무질서도)가 크다.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알과 하늘 끝까지 연결되는 듯한 기둥을 만든 한 인물 브랑쿠시는 모더니즘의 형식적 자족성과 그 자족성에 내재 된 불완전성을 동시에 암시했다. 청담동, 성북동, 홍대 일대에서 열린 전시의 조각가들은 같은 뿌리를 가지는 두 가지를 더욱 성장시켰다. 

      


자족적 완결성을 해체하고 확장하는 움직임 



Xavier Veilhan, Natasa, 2018, Aluminium, polyurethane paint, 108.3 x 63 x 72.5 cm_1



Xavier Veilhan, Natasa, 2018, Silver, 13 x 15 x 15 cm, Edition of 3+1AP_09



Xavier Veilhan, Studio Line n˚2, 2018, Stainless steel, birch plywood, carbon, polyurethane varnish, 84.7 x 136.3 x 6 cm



자비에 베이앙의 작품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을 듯한 기하학적 모서리들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에 적용된다. 카본(탄소섬유), 알루미늄, 스텐레스 스틸, 금, 은, 황동같은 광물질은 물론 나무로 제작된 것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제작 의뢰한 자작나무 합판으로 만든 작품 [Jana]는 모델을 3D 스캐닝하고 이를 컴퓨터 절삭으로 만든 것으로, 마치 통나무의 나이테처럼 합판의 절단면이 드러난다. 면을 깍아 내는 각도에 따라서 단면의 기하학적 무늬는 다채로워진다. 카본으로 제작된 남자 입상들은 조명에 따라 빛나는 부분이 다른 날카로운 소각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소각면들은 그의 작품을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맡은 바 임무를 정확하게 수행할 듯한 도시적인 인물상은 알루미늄이나 은으로 제작된 여성 좌상들도 마찬가지다. 각각 실존하는 모델이 있는 작품들에서 특정 개인임을 알 수 있는 얼굴은 익명적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작가가 상대와의 관계 속에 파악된 특징은 보존된다. 구체적 데이터를 산출하는 살아 움직이는 모델의 존재, 그것은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활용되는 조각 예술에도 여전히 실재와의 관계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은 인간의 형태는 물론 표정마저도 기하학적인 점과 선의 관계로 읽어내는 AI의 시대를 반영한다.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구체적 형태가 드러나는 점은 구름 같은 이미지를 평면에 ‘조각한’ 작품 또한 마찬가지다. 구체적 대상이 추상화될 수 있다면, 그 반대도 가능하다.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유기체나 자연은 새로운 물질과 방식으로 합성될 수 있다. 초현실주의와 누보로망의 작가 레이몽 루쎌의 트레일러 차량을 합판으로 정교한 축소모델로 구현한 작품 [Roulotte]는 기능주의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를 통해 군더더기 없는 형태와 원재료를 그대로 노출하는 그의 방식을 보여준다. 복잡한 선들이 늘어져 있는 다양한 전자음향기기들이 있는 스튜디오의 실루엣과 그러한 기기에서 나오는 음이 형상화된 작품 구체예술(Art Concret) 풍의 작품들은 정보에 의해 합성된 세계이며, 추상과도 차이가 있다. 물론 실제의 인간이나 상어, 자동차는 그가 사용하는 재료로 되어있지 않지만, 인간의—물론 그는 탄소라는 유기물과 연관된 상징적 재료도 사용한다—이미지를 물질적 재료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물질적 재료로 된 존재를 예시한다. 인간은 자연이 아니라 상징적 우주에서 태어난다. 유전자라는 언어로 이루어진 인간이 해독되어 그 언어가 재편집될 가능성이 있는 세계가 열렸다. 상징적 우주를 형성하는 언어는 그 어느 시대보다 기계를 매개로 한 인공성의 강세를 말해준다.  



  

김인배_2의 모각 Things Modeled on 2_2018_resin_40x50x221cm (each) (2)



김인배_개수 Count_2018_resin_dimensions variable



김인배의 입상 [제 2의 모각]은 중간 몸통은 과감하게 생략되고 바로 다리와 머리가 접붙여진다. 다리가 하나인 만큼 머리도 불완전하다. 그 비슷한 개체들이 여럿이다. 직립과 그것이 야기한 큰 두뇌는 인간만의 특징이지만, 얼굴을 비롯한 다른 부분들이 폭력적으로 제거된 이질적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안정적이다. 완전과 안정의 결합이 아닌, 불완전과 안정의 결합이다. 그것은 고대와 현대의 극적인 차이일지 모른다. 공중에 메달린 작품 [개수]에서 얼굴은 미지의 거대한 힘에 의해 뾰족한 촉수를 뽑아낸다. 그것은 변형 중인데, 이 불가사의한 머리는 물방울 모양의 입체도형을 향한다. 변신 중인 머리는 대칭을 이루며 동일성을 내포하는, 보다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양태를 향한다. 이전에 큰 것으로도 발표되었던 작품 [섬광 속의 섬광]은 그 위압적인 자세만큼이나 훼손된 정도가 크다. 김인배의 작품에서 인간의 기념비적인 모습은 풍자적 변형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이동욱_트로피 Trophy_2018_mixed media_dimensions variable



이동욱_숲 Forest_2018_mixed media_dimensions variable (detail)



이동욱은 부스러기들로 이루어진 소우주를 연출한다. 그의 취향이 반영된 수집품에 기반한 것들은 자연물이든 인공물이든 섬세한 세부가 특징적이다. 그가 수집한 수석은 작은 덩어리일 때 조차도 산처럼 보인다. 싸구려 트로피는 거대한 탑으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축소판 자연이거나 도시이다. 스컬피로 만든 작은 인간상들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인간이 당면한 세상을 극적으로 증언한다. 비계 구조물은 파편화된 인간을 부속품으로 삼는 거대한 매트릭스가 된다. [결합을 위한 결합], [부족한 결합], [완벽한 결합] 등의 제목은 그가 결합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려준다. 전체를 일괄할 수 없는 시대, 부분들은 연접(連接)과 이접(離接)을 통해 종횡무진 연결되면서 새로운 입지를 만들려 한다. 인간이 만든 것들은 인간을 에워싸며 인간을 대체하고 인간은 환경의 일부로 고착된다. 그러나 관계망은 견고하지 않다. 그래도 작품 [일시적 결합]에서 두 선의 교차점에 위치하는 것은 아직 인간이다.




권오상_릴리프 29 Relief 29_2017_print on wood, varnish_170x150x7(d)cm



권오상_붉은 셔츠와 휘슬, 칼더의 서커스 Red Shirt and Whistle, Calder s Circus_2018_print on 54 wood panel, varnish, chain, dimensions variable (2)



똑같은 이미지를 앞뒤로 붙인 평면들이 매달린 권오상의 작품은 이미지에 실재의 위상을 부여한다. 관객들로 하여금 이미지의 숲을 거닐도록 한 큰 스케일은 그것들이 자리한 공간을 연극의 무대로 만든다. 전통연극과 달리 주인공도 명확한 서사의 진행 과정도 없는 무대는 예측 불가능한 것들이 쇄도하는 장(場)이다. [릴리프] 시리즈는 이미지들이 빠져나간 네거티브 공간이며, 작가는 고대부터 근대조각으로 이어진 관례를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미술사적 대화를 이어간다. 사진을 찍어서 3차원적으로 꼴라주 하는 ‘사진조각’은 상품, 사물, 예술품, 골동품, 동물, 인물 등, 자연스럽게 이어붙이기 힘든 잡다한 것들을 하나의 조각적 몸체로 종합한다. [매스 패턴스] 시리즈는 수많은 차원에서 끌어내온 패턴들을 수직적으로 얼기설기 쌓아놓는다. 그것들 안에는 무한주의 한 토막도 끼어있다. 이제 무한주로 대변되는 ‘삼계(三界)를 관통하는 중심의 상징’(미르치아 엘리아데)은 불가능할 것이다.  

 

출전; 아트 인 컬처 201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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