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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경 / 계룡산 기슭의 종교적 연대기

이선영

계룡산 기슭의 종교적 연대기

박찬경 전ㅡ‘신도안’ (2008. 6.21--8.17, 아틀리에 에르메스)

  

이선영(미술평론가)

  

 45분짜리 영상물이 주가 되고, 영상에 나오는 인물이나 장소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고 할 수 있는 스틸 사진과 건축 모형물, 자료들의 재구성으로 이루어진 박찬경의 전시는 어느 날 자신에게 충격을 준 계룡산과 그 안에 자리한 지역 신도안에 대한 계보학적 탐구이다. 그것이 엄격한 의미의 실증적, 또는 역사적 다큐멘타리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불과 얼마 전까지 생생한 문화로 살아남아 있던 어떤 실체가 망각과 왜곡에 의해 대부분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작품은 신도안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입장을 가진 여러 부류들에 의해 수집, 분류, 보존되어온 자료들을 분석하고, 작가가 현지에서 직접 취재하고 찍어온 장면들을 상호 텍스트적으로 편집하여 잃어버린 문화를 재구성한다. 이렇게 새로이 짜여 진 신도안이라는 텍스트는 실증적 사료와 신화적, 종교적 상상이 구별할 수 없을 만큼 긴밀하게 엮여 있다. 


태조 이성계가 신 도읍으로 예정할 만큼 풍수 지리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그곳은 충청남도 계룡 시로, 지금은 사라져 버린 지명이다. 이름이 사라졌다함은 그 실체도 사라졌다는 것을 말한다. 작품에 의해 다시 호출된 신도안은 현재로부터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현실과 상상을 종횡으로 오고가면서 가려져 있던 실체를 드러낸다. 지금도 ‘계룡산’하면 도인들과 도사들, 괴짜와 은둔가의 본거지를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작가의 조사에 따르면 그곳은 풍수도참설과 민족종교, 신종교 등에 의해 이상사회의 중심지로 믿어졌으며, 일제시대 이래 수백 개의 종교단체가 창궐했던 곳이다. 작품은 민간 종교들을 풍미한 미신적인 비합리성과 허무맹랑함 보다는, 굴곡 많았던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억압되고 타자화 되었던 기층 민중의 종교적 무의식을 드러내는데 집중된다. 


작품에 나타난 신도안은 봉건시대와 일제 식민지시기를 거쳐, 외세 독재 정권이라는 지배 문화에 쫒기고,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잠재적인 뿌리가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곳이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회에서 추방된 자들의 해방구였다. 특히 ‘정화’라는 명목으로 70-80년대 군부독재 세력에 의한 강제 철거당하는 장면들은 그곳이 기존의 질서를 지탱하기 위해 필요했던 희생양의 역할을 담당했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해로운 전염병을 몰아내듯 기세등등하게 등장하는 ‘정화’ 세력들은 완장과 새마을 모자를 착용하고 집과 종교시설을 파괴한다. 그것은 신도안의 진면목을 알아채고 자세한 조사를 수행했던 일제의 집요하고도 면밀한 시선에 비해 무식하고 야만적이다. 어쨌든 이러한 부정적 관점으로 작성된 신도안의 자료들 역시 그곳의 실체를 재구성하는데 결정적인 참고 사항이 되어준다. 


영상은 6개의 독립되면서도 연결된 소주제로 이루어진다. 반복적인 리듬으로 강한 몰입의 효과를 주는 배경 음악은 듣는 이의 신경 줄을 잡아당긴다. 도입부는 계룡산의 큰 나무 아래에 난립한 종교 시설 표지판들로 시작된다. 흑백의 희미한 자료 사진들은 작가가 작품 사이사이에 끼워 넣은 간단한 설명과 인터뷰 뿐 아니라, 카메라의 줌 인, 줌 아웃에 의해 시각적 내러티브가 형성된다. 과거와 현재, 흑백과 컬러, 정지화면과 동영상 등이 적절히 교차되어, 침묵하던 자료들은 비로소 말하기 시작한다. 다양한 시공간 속에서 만들어진 자료의 파편이 영상의 서사구조에 편입되면서 영상에 친숙한 현대의 대중들에게 오래되었으면서도 새로운 주제로 각색된다. 기층 민중의 종교적 무의식을 다룬 박찬경의 작품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상생과 해원’이라는 민중미술의 주제와 연결된다. 


첫 작품 [삼신당]은 ‘선녀님’의 계시를 받은 한 여성 수행자의 사연과 일상이다. 자신이 신봉하는 교리 자체의 논리에만 함몰된 두서없는 말들처럼 들리지만, 자신의 몸에 기(氣)가 들어오는 체험을 들려주는 목소리가 확신에 차 있다. 삼신당 당주 김정심씨의 종교적인 경험은 자아라는 동일성의 경계가 찢기는 타자의 난입에 해당된다. 그것은 폭력적이면서도 신비하고, 공포스러우면서도 희열에 찬 체험으로 강한 전염성을 지닌다. 두 번째 작품 [영가무도]는 낡은 자개장이 있는 허름한 방에서 고대부터 전해진 구음과 몸짓을 시연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소리와 춤에 완전히 몰입된 영가무도 수행자 송순기, 나상현씨의 진지한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아낸다. 그들은 단지 특이한 소재로 대상화 된 것이 아니라, 신처럼 영원하지 못하기에 한계를 가지는 그래서 근본적으로 종교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보편적 존재 조건이다. 


세 번째 작품 [기념 촬영]은 1924년에서 1975년 사이에 존재했던 신도안의 종교단체들의 기념사진을 소재로 했다. 괴상한 형태의 단체복을 입은 집단들도 눈에 띈다. 종교의 종류도 그 신봉자들도 무척 많다는 사실이 놀라운데, 그것은 이 작품의 다큐멘타리적인 측면이 최대한 발휘되는 대목이다. 1983년 신군부 정권에 의해 철거될 당시에도 이미 종교인들이 5400명이나 남아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들의 문화가 ‘환경 정비’의 일환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군사 시설로 대체되었음 알려준다. 작품은 희미한 흑백사진 자료에서 갑자기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생경한 영어 나레이션으로 바뀐다. 일제시대의 자료에 일본어 대사가 들어간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는 합리화, 체계화 되었지만, 동시에 보다 파괴적이고 공격적이 되었다. 전시실에 있는 작품 중, 호랑이가 그려진 민화와 양복을 입은 호랑이 사냥꾼이 대조되는 장면들이 강조하는 바가 그것이다. 


외세와 결탁한 한국적 근대주의에 의해 시련을 겪는 많은 민간 신앙들이 나오지만, 기존의 자생적 문화를 깔아뭉개고 새로이 건축된 팔각형 형태의 군사시설 역시 종교적 기원과 무관치 않다는 역설을 밝힌다. 희생양을 만들어 기존의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메카니즘 자체가 종교와 사회의 기원이라면, 종교 대 과학, 전통 대 현대의 대결이 아니라, 한 종교에서 또 다른 종교로의 수평 이동을 가리킬 뿐이다. 지금은 소수이지만 나중에 다수가 될 신념이 있고, 또 그 역도 가능하다고 볼 때, 현대 및 지배문화로부터 배제된 기층민중의 종교적 무의식을 조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옛 영화 [계룡산]의 장면들을 삽입하여 천제를 사칭하는 교주와 횃불을 들고 경배하는 민중들의 모습은 영화 속의 영화를 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여기에는 현실과 상상을 정확히 가르는 기준이 없다. 그것은 제한된 조건에서 한 현상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는 효과적인 방식이지만, 무엇보다도 현실 자체가 인간의 신념과 의지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무엇보다도 자기만의 상징적 세계 속에서 온전하게 살고 있는 작품 속 수도자들의 삶에 반영되어 있다. 


네 번째 작품 [시천주]에는 1924년부터 1983년까지 존속한 동학 시천교의 수행자가 주인공이다. 흑백 자료 사진에서 현재로 이동하며,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빈 방에 홀로 선 모습으로 나타난다. 동학 성도교 도주 문경장씨는 ‘삼라만상은 시천주이다’라고 하면서 시천주의 의미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는 번듯한 연설 무대는 그 종교의 현재 상황을 예시한다. 시천주를 구음으로 읊조리고 정좌하고 글을 쓰는 동안 주인공의 대사는 계속된다. 대개 종교적 교리를 말하고 있는데, 장면은 현재의 썰렁한 일상생활이 나옴으로서 어떤 불일치가 드러난다. 다섯 번째 작품 [쿠베라]는 스리랑카의 신 쿠베라의 이야기와 부처의 진신사리가 계룡산으로 옮겨 왔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이다.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인도 여자, 혜성처럼 날아와 계룡산에 꽂히는 신령한 기운을 다른 작품에서 등장했던 주인공들이 각각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계룡산 연천봉]은 말세 이후 살아남은 젊은이들이 계룡산에 집결한다는 이야기이다. 작품의 여섯 에피소드가 진행됨에 따라 허구적인 요소는 더욱 강조되는 듯하다. 계룡산을 지키는 신령한 호랑이 대신에 호랑이 인형 옷을 입은 청년, 종말을 재촉한 대홍수에서 헤치고 온 스킨 스쿠버, 험한 산에 어울리지 않는 하늘하늘한 원피스 입은 소녀, 교련복에 검은 봉지를 쓴 인물, 그리고 몸통 없이 옷만 움직이는 초현실적 존재들이 손을 맞잡고  연천봉에서 나름의 의식을 치룬다. 작품은 진지하게 진행되다가 다소간 허무맹랑하게 끝난다. 이러한 이중성 자체가 종교가 가지는 특성 아닐까. 종교가 가지는 근본주의는 공허한 동일성에 매몰된 현대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타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등장인물들은 비천시 되는 주변인들이면서도 초월적이며 성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부침하는 지배 계급이 희생양으로 삼은 계룡산의 다양한 민간종교들은 지배질서를 공고히 하는 보수적 역할을 하기도 하고, 그 질서의 틈을 벌리기 위해 저항적인 힘이 결집된 신화적 중심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우리 사회가 어지러울 때마다 신도안은 활기를 띠었다고 지적한다. 계룡산의 민간신앙들은 평소에 이단으로 억압되고 있다가 어떤 시기에 혁명적인 전망을 제시하곤 했던 서양의 종말론과 비교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는 사회와 역사, 예술 보다 더 근본적인 질서의 바탕이 된다. 종교성은 우리가 가장 알지 못하면서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무의식의 근저에 존재하면서 결정적이고도 끈질긴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성이나 이해관계, 사회 계약 같은 개념들은 종교라는 무의식의 대해 위에 살짝 걸쳐 있는 표면에 불과하다. 따라서 종교와 같은 비합리주의에서 맹목과 퇴행이 아니라, 해방의 계기를 끌어내는 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일 것이다. 


출전; 컬처뉴스(www.culturenews.net) 기사입력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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