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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책정하는 이 지면의 원고료는?

이선영

공무원이 책정하는 이 지면의 원고료는?


이선영(미술평론가)


1990년대 중반에 등단한 이후 미술계 변화 중에서 가장 반가웠던 것 중의 하나는 증가하는 레지던시의 비평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일이었다. 비평의 공적 무대가 협소한데 많은 사람들이 지원해서 뽑힌, 소위 ‘경쟁력 있는’ 작가들과 매칭이 되어 작업실에서 작품을 보며 대화하고 평문을 쓰고, 공적 기관에서 참가비 또는 원고료를 받으니 얼마나 좋은가. 거리와 시간에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일보다 우선순위를 두었고 비용은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참가해왔다. 그런데 작년에 한 레지던시에서 작가 두 명의 평문을 10포인트 크기로 빽빽하게 6장 넘게 써서 마감했는데 원고료가 13만원이 나온 황당한 일을 겪었다. 나름 미안해 하는 경남창작센터 담당자들을 문제삼고 싶지는 않다. 


매년 그 먼거리에도 불구하고 참여한 이들의 원망을 들어야 할 그들도 피해자다. 서로 자기 담당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는 그들은 ‘재단법인 경남예술문화진흥원’에서 발행한 ‘2018년 지방자치 인재개발원 수당 기준’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에 의하면 원고 규격별 지급액은 글자 크기13p, 줄 간격160%로 해서 1면당 13000원!! 내가 마감한 원고의 10포인트를 13포인트로 변환하면 얼추 10장이 나오니 13만원은 정확한 액수였다. 다른 것들도 살펴보니, 강사수당 지급기준으로 ‘특1급’으로 전직 국회의원 및 광역자치단체장, 대기업 회장. ‘특2급’은 전직 차관(급), 기초자치 단체장을 포함하여 전체 7단계로 나뉘었다. 그들 기준으로는 비평을 30년을 했든 40년을 했든 비평가는 상위에 끼기 힘들다. A4 1장 분량의 원고료가 13000원이라는 기준을 만든 사람들은 공무원이겠지?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올 3월 말에 치러질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력이 39.2: 1, 그중에서 가장 높은 게 교육행정 부문인데 171.5: 1이고 평균 연령은 29.0세라고 나와 있다. 그런 살인적 경쟁률을 뚫고 된 공무원이라면 요즘은 한 반에 30-40명 정도 된다니까 거의 1등 하는 수재들임에 틀림없다. 기업은 수익이 늘어도 사람을 잘 안 뽑고 40대 중반부터 짜를 연구만 하니 많은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공무원을 원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추세라 치자. 그래도 인구가 줄고 있는데 취업률 때문에 공무원 수 늘리는 정책에 나라의 망조가 든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많다. 이러한 공무원지상주의라는 조건 속에서 예술은 어떤 위치에 있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개미들이 열심히 일할 때 예술을 빙자해서 노는 베짱이? 관리 및 감시를 받아야 할 의심스러운 존재들인 베짱이야말로 개미들이 실제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도 겪었지만, 기관의 높으신 분들이 친히 납시는 자리는 자연스러운 대화 대신에 어색한 형식이 지배하는데, 그때 그들은 하나같이 ‘미술은 잘 모른다’고 말한다. 현대미술이 어려워진 면도 있고, 시민들에게 겸손해야 해서도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은 진짜 미술을 모른다. 그럼 뭘 아는데? 행정? 누구를 위한 행정인데? 국사, 윤리, 헌법, 상식같은 수험서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씹어먹을 듯이 딸딸 외워서 차지한 자리니 얼마나 대단하겠나. 그들은 미술을 모르면서 중요한 자리에 앉아서 결정권을 쥐고 가당치 않은 기준을 객관적인 법칙인 양 제시한다. 


미술인에게 갑질하는 그들이 평문 1페이지라도 제대로 쓰려면 그들의 한끼 점심값 수준인 13000원의 부당함을 깨달을 것이다. 작업실에서 봤던 작품들과 대화를 기억해가면서 며칠 밤낮으로 쓴 원고가 실린 자료집은 받아보지도 못했다. 작가에게 준 원본이 작가의 다른 개인전 때 활용되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3월에야 자초지종을 파악해 항의 전화를 했는데, ‘신성한’ 주말에 이런 민원성 전화를 받은 이들은 특근수당을 챙겨야 할지도 모른다. 기준이야 다 공무원들이 정하는 것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원고료의 원천징수액이 3.3%에서 6.6%로 올랐는데, 그들은 앉아서 숫자만 고치면 자동으로 세금은 초과로 걷히니까 아쉬울 게 없다. 그러나 작업도 마찬가지겠지만 평문의 필자는 주말이고 뭐고 꿈속에서도 글을 쓰는 때가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출전; 서울아트가이드 2019년 4월, [지금, 한국 미술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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