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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 조각잇기로 만들어진 조각

이선영

조각잇기로 만들어진 조각

  

이선영(미술평론가)

  

한 덩어리의 돌을 바라보면서 조각가는 거기에서 현실화될 수 있는 잠재적 형태를 생각한다. 김지영의 조각은 여러 덩어리의 돌을 다양하게 사용한다. 그것은 색 때문이다. 인공석은 물론이고 자연석에도 여러 가지 색이 있지만 대개 조각작품 하나에 한 가지 돌(=색)을 활용한다. 그 이유는 종이나 캔버스와도 다르게 다루기 힘들기 때문이다. 조각에 여러 가지 돌을 사용한다고 해도 김지영처럼 하나의 부피 안에 한 덩어리처럼 결합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돌조각을 한다고 하면 양감이나 질감으로 승부를 걸지, 색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지상에서 우뚝 서 있을 수 있는 3차원적 구조물인 조각에서 색은 부차적이다. 색은 주로 회화의 영역에서 그 힘을 발휘한다고 믿어진다. 부피가 있는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도색한다면 문제는 다르지만 말이다. 그 경우에는 재료의 순수함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 단점이 있다. 김지영은 자연석이나 인조석이 가지는 여러 가지 색감을 활용한다.

 

특히 결합의 방식을 통해 색을 더 도드라지게 한다. 색과 연결된 환상성이 돌에 내재된 묵직한 실재감과 함께 한다. 색은 무게감을 덜어내고 돌은 상상을 현실화한다. 마치 전통 조각보를 입체화시킨 듯 여러 색과 형태가 합쳐진 조각은 특이하다. 디지털 차원에서 오리기와 붙이기가 더욱 쉬워진 만큼, 실제 재료로 오리기와 붙이기를 한 산물은 재료의 저항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술력이 필요하다. 돌은 점착성이 전혀 없는, 그래서 큰 모래 알갱이와도 같은 물질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결합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해법이 요구된다. 기하학적인 형태로 재구성되는 여러 색의 돌덩어리는 조각잇기로 만들어진 조각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는 그러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그랭이 공법을 활용했다. 작가에 의하면 그 공법은 ‘기둥이나 성곽, 석탑 등에서 서로 맞붙는 부분의 이를 꼭 맞게 하기 위하여’ 쓰였던 전통적 기술이다. 


오래된 석 건축에서 종이 한 장 끼울 수 없을 만큼 꽉 맞춰진 구조물들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며, 그 놀라운 기술력은 현대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곤 한다. 여러 가지 기원을 가지는 것들을 합치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에게 전통적 기술 또한 작업의 한 요소로 합해진다. 조각은 원래 건축의 일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조각에 건축의 방식이 활용되는 것은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조각이 건축을 비롯한 여러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되어 자율화되었을 때 얻은 것만큼이나 잃은 것도 많았다. 특히 조각이 화이트 큐브에서 단지 보여지기만을 위해 영상을 비롯한 다른 장르와 경쟁하게 되었을 때, 그 물질적 차원이 버거움은 부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어릴 때 동네 한 켠에 돌 다듬는 곳이 있었는데,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르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정과 망치로 돌 표면을 다듬어 형태를 만드는 석공들을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제 그런 작업은 기계가 할 것이다. 3D 프린터로 교량을 출력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지 않았는가. 건축이나 인테리어 등, 기능의 일부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매개로서의 돌 다루기는 예술의 영역에서 계속된다. 정교한 짜맞추기 기술인 그랭이 공법은 화합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적합하다. 작가는 여러 색의 돌을 의식적으로 혼합하며 그것을 작품의 메시지로 삼는다. 최근 작품에서 [합(合)]이나 [화합] 같은 제목은 여러 색, 형태, 종류의 돌을 접합하는 작가의 방법론과도 관련된다. 작가는 내용과 형식의 수렴을 추구한다. 하나의 덩어리처럼 매끈한 실루엣을 공유하는 두 개의 돌덩어리다. 한 쌍처럼 제작된 작품 [합 1, 2]는 마치 캡슐 약처럼 반반이 정확하게 나눠진 검은색/회색의 조합이 있다. 이 작품들은 하나는 자연석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석이어서 자연과 인공의 조화라는 메시지도 포함한다. 모호한 하나가 아니라 차이가 각인된 하나는 하나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다. 


붙이기 힘든 재료를 붙이면서 작가는 합을 향한 희망을 표현한다. 그것은 타자와의 연대를 말한다. 자신 안에도 타자는 있다. 가령 작가는 하트 모양의 작품 [화합]에 대해, ‘재질도 마감도 다른 그린 마블을 품은 하얀 대리석 조각들은 다름을 품은‘ 이미지라고 말한다. 주체의 자율성은 의심에 붙여진다. 물론 자율성이란 주체로 하여금 자유와 독립을 가능하게 하는 훌륭한 것이지만, 자명하게 존재하기보다는 애써 획득해야 하는 가치이다. 근대철학이 가정한 주체의 자율성은 결코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배타적이고 공격적이기도 한 근대의 ’자율적‘ 주체는 창조와 파괴를 결합시켰다. 김지영의 작품에서 색색의 돌을 원래 그것이 하나였던 것처럼 완벽하게 붙이는 것은 타자와의 공존과 대화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존과 대화의 조건은 차이이다. 대화를 추진하는 것은 차이이고, 차이가 원만히 인정되었을 때 공존이 가능하다. 


예술은 어떤 분야보다도 차이의 감각을 고양한다. 그것은 일률적인 기준으로 차이를 가늠하는 차별과도 다르다. 철학자 뤽 페리는 [미학적 인간]에서 자아동일성의 모습이 절대 필요한 순간에도 차이의 흔적이 있다고 말한다. 즉 뤽 페리가 자아의 분열이나 타율성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하듯, ‘사유해야 할 것은 동일성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차이의 작용 또는 유희’, ‘서로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것으로서의, 그것들을 서로 구별해주는 것으로서의 차이의 움직임’(데리다)이다. 김지영의 작품은 하나의 기원이 아니라, 여러 기원을 담는다. 그리고 그러한 기원들의 흔적을 남긴다. 차이의 흔적을 보존하는 것은 경계를 명확히 의식하면서도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모호한 혼합이나 환원이 아니다. ‘합’이라는 관념의 대표적인 행동방식은 협동일 것이다. 인간은 협동을 통해서 다른 동물에 비해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나는 약점을 극복하고 ‘만물의 영장’이 되었지만, 협동이 쉽지는 않다.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각지에서 흩어져 살던 오랜 역사를 뒤로 하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라지는 순간이 점차 많아지는 세계화 시대에, 합이란 이상적 가치이다. 권력 관계의 차이가 선명한 현대사회에서 합은 불길한 의미마저 포함하고 있다. 우리 근대사만 해도 식민지의 기억이 선명하고 해방 이후에도 제국의 헤게모니는 여전히 관철된다. 김지영의 작품에서 합은 화해나 화합의 이미지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흑백 대리석을 합쳐서 깔대기 모양으로 만든 작품 [합]은 색이 다른 돌 좌대 위에 꽂혀있는데. 그것은 합을 향한 불안한 역동을 보여주는 듯하다. 정반합이라는 철학적 원리도 있듯이, 합은 이미 있는 것이 아니라 도래해야 할 것이다. 대리석들을 모아 하트모양 핵심부를 그린 마블로 만든 작품, 그리고 두 가지 색상의 대리석으로 도넛 모양의 형태를 [화합]이라고 붙은 제목의 작품들에도 차이는 소멸되지 않고 또 다른 변화를 위한 요소로 남아있다. 


거기에는 미지의 것을 향한 설렘과 긴장감이 있다. 일률적인 합이 아니라 차이가 보존된 상태의 합이 중요하다. 일률적인 합은 그렇지 못한 현실을 가상으로 봉합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한다. 강요와 자발적 복종에 따른 허위의식은 지배적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한다. 김지영의 작품에서 합의 이미지가 정육면체나 구, 원기둥 등 기하학에서 자주 관철되는 것은 그것이 이상과 가깝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합] 시리즈에는 고흥석으로 구 모양의 형태를 짜맞춘 것, 화강석과 대리석을 합쳐서 원기둥 모양으로 만든 것 등이 있다. 여러 색의 돌이 정육면체를 이룬 작품은 마치 큐브 맞추기와 같은 유희적, 기술적 요소가 돋보인다. 합의 이미지는 의자같은 기물의 형태로도 나타나는데, 작가는 등받이 부분을 여러 색의 여러 크기 여러 모양의 돌들을 모아서 두세 명이 앉으면 될 자리를 마치 작은 무대처럼 연출한다. 비어있음과 열려있음이 연결된 이 자리는 변화를 위한 빈자리로 다가온다. 이 빈 의자는 누군가 실제로, 또는 상상으로 앉을 때 합으로 완성될 것이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1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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