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이교준 / 현실과 개념

이선영

현실과 개념

이교준 전 (2.28—4.20, PIBI Gallery)


이선영(미술평론가)

  

전시는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개념 이외의 요소를 ‘가급적’ 축소한 작품들로 채워졌다. 가급적이라 함은, 개념으로의 환원이 그 의도와 달리 완벽히 이루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말했듯이, ‘환원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완전한 환원의 불가능성’이다. 사진, 텍스트, 회화 등이 함께하는 이 전시의 다양한 경향은 환원주의는 아니지만, 환원주의에 내재된 금욕성은 분명하다. 작가는 ‘무제’라는 전시 부제이자 작품 제목처럼, 아름다운 색과 형태, 소재의 진기함이나 주제의 심오함 같이 시각예술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억제한다. 그러나 언어는 무엇인가를 담는 것이기 전에 그자체가 현실화될 수 있다. 그러한 언어의 가능성을 최대한 펼치려 한 사조가 모더니즘이며, 개념미술은 그 정점에 있다. 베란다, 창틀 등의 배치가 거의 기하 추상회화라고 할 수 있는 문밖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은 단순하면서도 많은 것을 함축한다. 그것은 추상미술이 시작될 무렵 건축이나 디자인과 조형적 어법이 공유되었고 이후 국제양식을 통해 환경적 차원이 되었음을 말한다. 현실로부터의 추상은 다시 현실화는 것이다. 




 Untitled, black and white photographs, 40 X 45 cm, 1980 (each)(사진제공; 피비갤러리)



 Untitled , black and white photographs, 80 X 120 cm, 1981



 Untitled , photographs on paper, 75 X 108 cm, 1997



개념은 언어, 지식, 정보 등 가족 유사성을 가지는 것들과 함께 구체화 된다. 작가는 같은 장면을 여러 장 복사하여 모듈같은 방식으로 조합하고 배치하기도 한다. 이교준의 작품이 기대고 있는 개념미술은 예술이 철학, 특히 수많은 철학 중에서도 언어에 대해 엄밀했던 철학에 바탕하고 있지만, 삶은 물론 예술도 철학도 진공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 전시처럼 몇 십 년 간의 작업 활동이 포함된 시간적 추이가 드러날 때 그러하다. 미술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답하려는 치열한 논리적 탐구였던 개념미술이 일반 관객들에게는 더 투명한 소통이 아니라 단절을 야기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대중적 소통의 어려움은 개념미술에서의 개념이 내용이기보다 형식이라는 점에서 온다. 엄지와 검지를 벌려. 무엇인가 잡으려는 한 작품은 무엇인가를 잡으려는 행위에 초점이 있지, 대상은 희미하고 멀기만 하다. 


풍경 사진을 여러 모양으로 오려 붙인 작품에서 더 강하게 부각 된 것은 비슷한 장소를 찍은 듯한 자연이 아니라 기하학적 프레임들이다. 대상보다는 그것을 담는 그릇의 중요함을 말하는 그의 작품은 재현주의를 벗어나려는 현대미술의 경향과 함께한다. 작가의 의도가 담긴 몸짓들, 그것을 기록한 사진들, 사진의 개념적 배열, 문자들의 배열, 그리고 회화의 조건에 대한 사유가 담긴 이교준의 작품들은 작가가 청년기였던 1970-80년대에 집중했던 실험적 미술에 대한 기록이면서 작품이다. 개념적 미술에서는 현대미술에 대한 정의와 기록, 그리고 작품이 일치시켜 나간다. 작품이자 비평이자 미술사적 평가이기도 했던 개념미술은 미술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려 했던 모더니즘적 전통에 속한다. 1979년 대구 현대미술제를 시작으로 해서, 에꼴 드 서울(Ecole de Seoul), 타라(TA.RA)같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지점에 놓여있는 소집단에서 활동한 작가의 여정은 한국적 모더니즘의 실험이라는 중요한 맥락이 깔려있으며, 많지 않은 작품 중에서도 전시 기획자는 그러한 점을 잘 부각시키고 있다. 




 Untitled, acrylic on canvas, 60 X 60 cm, 2018



 Untitled, acrylic on canvas, 60 X 60 cm, 2018



Untitled Installation view at PIBI GALLERY



'Untitled' Installation view at PIBI GALLERY



같은 이미지를 나열하고 다른 단어를 병치한 작품은 언어처럼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없음을 알려준다. 개념미술가들이 즐겨 제기했던 미술의 본질에 대한 물음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검거나 흰 바탕에 검거나 흰 글자를 쓴 동어 반복적이거나 대조적인 작품들은 지시대상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기표들의 논리적 유희를 보여준다. 작가는 개념적 실험이 용이한 사진이나 텍스트 이외에 그림을 통해서도 그러한 실험을 했다. 부분이 선이 되고 나머지가 배경, 즉 공간이 되는 작품은 배경과 형태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전복시킨다. 글자가 바탕으로 녹아들 듯이 점차 사라지는 작품은 지시대상으로부터 자율화된 기표의 자가당착적인 면모를 암시한다. 개념미술은 미술을 정확하게 규정하려다 미술의 불확실성을 깨닫는다. 그러나 미술을 포함하여 무엇인가 죽었다고 선언하는 미학적 강령들의 진짜 의도는 위기에 처한 대상을 긴급 복구하고 연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기만도 자기모순도 아니다. 골치 아픈 예술은 달콤한 독에 대항하는 쓴 약처럼 작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출전; 아트인 컬처 2019년 5월호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