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우진명 / 영혼의 산

이선영

영혼의 산

  

이선영(미술평론가)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동네 야산부터 세계의 지붕으로 알려진 유명한 산에 이르는 다양한 진폭을 가지는 우진명의 산풍경은 그저 이러저러한 지형적 특성을 담은 것에 머물지 않는다. ‘심산’, ‘영혼의 산’이라는 키워드를 포함한 작품 제목은 작가가 이러한 풍경에 깊은 종교적 감수성을 투사했음을 말해준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나의 작업의 조형 언어는 성서에 기반하며, 형식적인 면으로 절대자의 응답 받고 마음의 평화와 편안한 안정감이 임하는 상태에서의 표현’이라고 밝힌다. 내가 있기 전부터 있었고 내가 사라진 이후에도 있을 그 산들은 유한한 인생보다 영원할, 어떤 선재 하는 질서의 상징이다. 그것은 신과 달리 가시적이다. 한국어 표현에 신과 산이 점 하나 차이라는 우연도 재미있다. 영원하다고 해서 고정된 것은 아니다. 산 자체도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단지, 시간의 스케일이 인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 따름이다. 산 풍경의 몇몇은 파도와도 다를 바 없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흐르는 용암이 굳은 것이 산이니만큼 그러한 비교는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영혼의 산] 시리즈 중에는 산봉우리들이 무한대로 배열된 것, 산의 능선이 가득 잡힌 풍경은 마치 파도같은 흐름을 각인한다. 




우진명, 히말라야 남벽.30호P.아크릴릭.2017



하얀 포말과 함께 다가오는 파도가 있는 바다 풍경의 경우, 공간 전체를 충만하게 채우는 빛의 표현에 집중 한다. 시시각각 달라질 유동적 표면은 편재하는 빛의 조율에 의해 고요함 또한 포함한다. 첩첩이 포개진 산들 안팎의 빛들 또한 산 앞에 ‘영혼의-’라는 접두어를 붙일만하다. 그가 그리는 바다와 대지는 실재의 원형이며, 여기에 빛이 더하여 풍경은 물리적 법칙을 초월한 무엇으로 거듭난다. 지구의 관점에서 볼 때, 빛은 퍼도 퍼도 고갈되지 않는 물질-에너지의 원천이며, 지구상의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지속적인 존재를 인간이 상상했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연결망을 형성했다. 물론 태양신을 숭배하는 특정 종교와 작가가 믿는 종교는 다르다. 가령 그는 양 떼 앞에서 설교하는 예수를 그린 작품을 보여주는데, 빛이 가득한 배경 면에 신의 말씀으로 간주 되는 단어들이 빼곡이 적혀있다. 산의 실루엣 아래로 쏟아지는 빛줄기가 마치 십자가처럼 보이는 작품 [심산] 또한 그가 자연 한가운데서 불현듯 느낀 전능한 존재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공간에 편재하는 빛이 종교적 도상으로 변하는 이 작품은 일반 신도가 아닌 화가가 종교적 체험을 했을 때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예다. 




우진명, 심산-설악



우진명, 영혼의산.30호F 종이에 아크릴.2010.



작가는 몸이 아팠던 마흔 무렵, ‘새벽기도를 하던 중에 시편 121장의 말씀으로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면서 산을 그리게 되었다’고 밝힌다. 물론 그것은 평소에 ‘새벽 산의 기운을 좋아했던’ 취향과도 조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체험과 더불어 ‘공(空)과 해탈’을 말하는 작가는 동서양을 관통하는 풍경의 어법을 구사—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 내재한 ‘화론육법의 기운생동의 터치’를 지적한다--한다는 점에서, 특정 종교를 넘어서 보편적인 종교적 감수성에 호소하는 경우다. 종이에 콘테로 그린 [심산-드로잉]는 출렁이는 봉우리들의 표현이 마치 먹으로 그린 것 같다. 작품 [영혼의 산-티벳]에서는 하얀 사원을 품고 있는 장엄한 산이 있다. 티벳의 경우는 아기자기하게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험준한 자연적 악조건이 종교를 필요로 하는 인간을 낳았음을 알려준다. 세계의 주요 종교들이 사막같은 역경의 환경에서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막 같은 현실 속에서 인간은 다시 종교를 찾는다. 푸른 빛의 서늘한 기운이 가득한 작품 [히말라야 암벽]은 산이 허락해줘야 인간이 오를 수 있다는 절대적 타자의 면모를 가진다. 우진명이 그린 영혼의 산은 작가의 팔렛트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화면에서 바로 섞이는 듯하다. 이러한 미묘한 발색은 볼 때마다 달라지는 산의 느낌과 비슷하다.


출전; 구리아트홀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