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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아트랩(ARTLAP) 대전

이선영

2019 아트랩(ARTLAP) 대전


이선영(미술평론가)

  


1. 빛으로 감싸인 소우주 ; 이지혜, 김경호

 

이지혜

지구 위의 모든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태양은 빛은 근원으로,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인류학자와 철학자, 사회학자들은 여기에서 인간의 제한적 경제를 초월하는 풍요의 근원을 본다. 상징적 교환에 근거한 일반적 경제는 아낌없이 주고받는 축제적인 예술을 가능케 할 것이다.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여 생산력으로 고양하는 과학기술은 인공태양을 개발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존재가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태양은 절대자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실재를 상징해왔다. 이제 24시간 인공조명이 가능한 시대에, 자체적으로 빛을 발산한다는 중세적 사고 대신에 따로 조명해야 한다는 사고가 생겨났다. 빛으로 가득할 천국은 지난 한 우회의 과정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시공일 것이다. 천상으로부터 추락한 존재가 빛을 다시 찾아가는 구도의 여정과 예술적 탐구는 중첩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미디어아트를 전공한 이지혜는 빛을 매개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조명’ 한다. 



이지혜


작가는 ‘보이지 않는 차원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빛을 매개로 하여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말한다. 전시는 초승달에서 보이지 않는 나머지 달의 부분,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뿌리, 불 켜진 아파트 창들에서 보이지 않는 삶 등, 자연과 인공은 막론하고 보이지 않는 부분을 밝히기 위한 시도로 채워진다. 이 전시의 대표작인 [동행]은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켜지는 빛을 반사하는 100여개의 아크릴 조각들로 구성된다. 이것은 어디를 가든 동행하는 자의 온기를 전달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보는 이를 되비추는 작품들은 절대적 타자의 짝패인 주체를 암시한다. 매 작품마다 그에 걸 맞는 성경 말씀을 인용할 정도로 독실한 신도인 이지혜의 작품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약간의 교란적 요소조차 곧 질서와 중심을 잡는다는, 또는 잡을 수 있다는 희망적 서사를 담는다. 관객이 다가가야 상호작용적으로 작동하면서 환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작품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관심과 집중임을 말한다.  

  


김경호(Kyle Kim)

전시장의 하얀 벽면 위에 하얀 네온사인으로 ‘The Foggy Night’라는 전시부제를 붙인 김경호의 작품들은 배경에서 도드라지지 않게 나타낸 글자들처럼 자세히 볼 것을 요구한다. 마치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 수도승들이 쓴 필사본처럼, 작은 면적 안에 밀도 높은 내용물을 담아냈고, 관객에게도 그러한 태도를 권한 것이다. [The Foggy Night] 시리즈의 경우 타원형 모양의 은하계처럼 정방형의 작품들을 배치해서 작품 하나하나가 별처럼 빛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밤풍경은 별들이 모인 은하수 같지 않은가. 풍경이지만 풍경에 어울리는 시선의 주파를 허용하지 않고 현미경적인 관찰을 요구하는 작가는 이 작은 사이즈의 작품들에 대해 ‘그 풍경을 끌어안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인적이 없는 안개 낀 밤의 풍경은 낭만적이지만, 낭만주의 풍경화에 깔려 있는 숭고함보다는 알고 이해하여 소유한다는 미적 태도가 두드러진다. 



김경호 Kyle Kim_The Foggy Night, Untitled #1_2017_Archival Inkjet Print_8x8in


풍경은 이국적이지만 그곳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알 수 없게 처리했다. 밤은 작가의 감성을 전달하는데 불필요한 부분을 생략하고 보이는 대상들을 하나의 분위기로 묶는다. 가로등을 비롯한 광원으로 빛에 산란 된 안개와 색의 변화를 장 노출로 잡아낸 작품들은 풍경을 고립시켜 평온함과 신비로움을 준다. 사진기라는 실증적 도구를 사용하는 그의 작품은 낮의 명증함 대신에 밤의 깊이를 택한다. ‘새로운 지형학(New Topographics)’을 주창하는 사진 운동의 영향으로, 자연과 인공물이 함께 있는 작품들은 영화같은 분위기다. 복도의 벽에 걸린 [I’m Complex] 시리즈는 폐기된 군사시설을 찍은 것이다. 19세기에 많이 사용되었던 동판 작업 (Photogravure)으로 표현된 풍경은 버려진 장소를 지금은 잘 안 쓰는 방법으로 재현했다. 인간은 등장하지 않는 폐허에서 문명비판을 읽을 수 있다. 지금은 관광지로 변한 군사시설은 냉전의 산물이며, 훌륭한 전망을 가진 곳은 공격과 방어를 위한 요새임도 알려주기 때문이다.

  


2. 확장성 있는 구조 ; 김태훈, 김영웅

 

김태훈

전시공간의 3면을 가득 채우는 영상이 있는 김태훈의 작품은 특정한 대상 앞에 관객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으로 밀어 넣는 연극적 무대를 지향한다. 한 가운데에 관객이 쉴 곳을 마련하고 파도치는 바다 풍경과 숲 내음이 가득한 숲속 풍경 등을 지나가게 했다. 미니멀리즘 이후 현대미술의 어법이 된 연극성은 미디어와 결합하여 미디어 극장이 되기에 이르렀다. 영화에서도 전방뿐 아니라 객석 좌우의 벽면을 이용하여 무대 앞에 존재하는 제4의 벽을 무너뜨리는 예가 있었다. 전설적인 그룹 Queen이 나오는 이 음악 영화는 마치 콘서트 현장에 있는 것같은 현실감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 외에도 3D 영화 등, 가상적 현실은 끊임없이 현실과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애쓴다. 이미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가상에 심신을 담그고 살아가는 현실에서 이러한 경계의 혼돈은 대세가 될 듯하다. 미디어를 다루는 작가는 이렇게 일신 우일신하는 경향을 무시할 수 없다. 



김태훈


그렇지만 대규모 노동력과 기술력, 그리고 자본이 투입되는 산업과 예술은 경쟁하기 힘들다. 그러나 굳이 경쟁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작가를 포함하여 현대인이 가상과 현실에 동시에 관여하는 삶의 방식이 반영된 필요는 있다. 게임이나 영화 등 대중적인 방식은 어떤 정해진 메시지를 향한 선적 서사에 치중해야 흥행이 가능하고, 그것은 제작 단계부터 고려되기 때문에 대부분이 오락에 머물고 만다. 작가는 대중적인 가상/현실에 지배적인 선적 흐름을 단절시킨다. [기억의 집; 조각모음]이라는 전시 부제는 쇄도하는 자극의 나열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 그중에서도 기억을 촉발시키려 한다. 풍경이 연속되는 영상은 기억을 위한 바탕이 된다. 작가가 연출한 기억의 집 안에서 관객은 시간의 흐름을 타고 펼쳐지거나 접혀지는 기억에 몰입하게 된다. 매번 재편집되는 기억은 지배적 미디어가 선적 재현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과 대조된다.

 


김영웅

이번 전시가 첫 개인전이기도 한 김영웅은 그동안 해왔던 작품들을 다 쏟아놓은 듯했다. 전시 준비기간 동안 분초를 다퉈가며 그렸을 벽화를 필두로 해서 작은 액자에 담긴 것들, 입체화한 것들 등 다양한 형식이다. 단편들이 모여 있지만 산만하지 않고 복잡한 와중에도 특유의 필치를 느낄 수 있다. 어떤 대상을 지시하거나 연상시키지 않는 추상적 요소들로 이루어진 작품은 여러 면이 중층적으로 배열되어 있곤 한다, 김영웅의 작품은 그리기와 쓰기의 중간 단계인 드로잉의 위상과 관련된다. 부분 부분의 영역들을 차지하는 선적 흐름과 형태적 요소는 꼴라주의 방식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벽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작가의 작품 위에 작가가 또 다른 드로잉을 한 것도 있다. 누에고치에서 나온 실처럼 한 개체에서 나온 선들이지만, 작가는 여기에 최대한의 이질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것이 텍스트라면 새로움이 발생하는 텍스트 사이의 틈들은 선명하다. 그것은 유기적 통일성을 가졌다기 보다는 단순히 집합되어 있다. 



김영웅


리좀의 방식 같은 연결망은 전체와 부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라, 뻗어나감 그자체가 중요하다. 들뢰즈에 의해 탈주라고도 이름 붙여진 이러한 이동은 기존의 지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자체가 새로이 지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재료들도 열려있다. 열선이나 스티로폼 등 적절한 필기구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다수 등장한다. 작품 제목도 [한 땀 한 땀] 같은 의성어 같은 단어가 자주 보인다. 어감이나 글자의 모양새 등도 형태에 영향을 준다. ‘안구 표면에 있는 핏줄’, ‘오래된 책의 오염’, ‘바다 위의 반짝임의 모양’, ‘다 먹은 아이스크림 통에 남은 잔해’ 등 김영웅의 작품이 될 수 없는 대상은 별로 없다. 복도에 걸어 놓은 것들은 2017년부터 지금까지 해온 데일리 드로잉에서 선별한 것이다. 작가는 그 ‘하나하나가 그날 그 순간’이라고 말한다. 작은 세부와 단편들, 부스러기와 잔해들은 무의미로 사라지지 않고 자기들끼리 엉겨서 또 다른 이야기를 향한다. 

  


3. 3차원에 서있는 회화 ; 손민광, 백요섭

 

손민광

손민광은 적지 않은 장소를 삶의 터전 및 작업장으로 삼아 이동하면서 만나게 되는 인간들을 주목해 왔다. 직접 만났던 사람뿐 아니라, 어떤 시기에 그가 관심을 가지게 된 공적 인물들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안창호, 유관순, 이응로처럼 이미 널리 알려진 위인 뿐 아니라, 가령 [전 국민의 정의 실현의 결실을 가져온 헌법 재판관]처럼 비교적 근래에 온 국민이 관심을 갖던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인물 등도 포함된다. 대상화된 인물의 얼굴이 심하게 왜복, 변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제목과 연관하여 알아볼 수 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위를 잡동사니 물건을 쌓아놓듯이 하는 방식은 다소간 공격적으로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눈코 입 자리에 들어선 추상적인 요소들은 작가가 상대에 대해 시간을 두고 받은 인상이 종합된 것이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작가의 관심 대상이 된 인물은 한 번의 인상이 아니라 꽤 시간이 투자된 정보수집이거나 경험치가 축적된 결과물이다. 



손민광


그의 반(半)추상적 초상에는 시간성이 내재되어 있다. 큐비즘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시간이 공간화 되고 서사가 조형화 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그러한 인물들을 연결시켜 다양한 방식으로 설치했다. 초상과 초상은 이러한 연결망에 의해 또 다른 사연이 된다. 이러한 이어짐은 관객의 몫이지 작가가 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전시기간 동안 작품의 위치를 조금씩 바꿔놓아 초상과 초상은 경첩으로 연결해서 생겨난 새로운 관계망에 변화를 주었다. 이러한 실험을 하기에 공간이 넓지 않은 점은 있었지만, 대상 그자체가 아니라 맥락을 재창조하려는 발상이 전해지기에는 충분했다. 경첩으로 연결된 스마트폰을 비롯하여 폴더블폰도 대중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현재, 회화가 상호텍스트성을 실험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과학기술적 기기의 소통 방식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전의 문화 예술적 실행에서 온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해지는 시대에 예술과 문화의 영향은 상호적일 수 있다.   

 


백요섭

백요섭의 ‘그림’들은 그렸다기보다는 박박 긁어낸 화면의 흔적이 더 두드러진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작품은 벽에서 떼어내 4개의 면을 약간 곡선을 주어 설치한 것이다. 작품 사진은 이응로 미술관의 야외 공간에서 찍었는데, 작품들은 야외의 나무들처럼 서있으며, 햇빛에 다양한 초록을 반사하는 식물처럼 하나의 색으로 환원될 수 없는 미묘함을 보여준다. 회화가 벽에 기대지 않은 채 그자체로 서 있을 수 있는 이 방식은 예술작품이 자율적이고자 한 이래의 여러 지향들이 종합되어 있는 듯하다. 물론 그 작품은 벽 대신에 바닥에 의지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벽 너머로 시선을 이끄는 환영을 벗어나 관객이 서 있는 같은 공간에서 상호작용한다. 두텁게 여러 번 바른 화면에 단단한 것으로 긁어내 시각성보다는 촉각성에 호소하며, 주변의 빛 및 관객의 시선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벽과 거리를 둔 작품은 배경의 벽 또한 화면에 내재된 많은 결에 또 하나의 층을 첨가한다. 



백요섭


액자 그림 6개를 세로로 붙여 걸고, 결이 다른 붓터치가 한 화면에서 충돌하는 다른 작품들도 그림에 또 다른 차원을 부가하려는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여 만들어낸 중층적 화면은 고대의 양피지(Palimpsest)를 참조한 것이다. 이전의 것이 다 지워지지 않고 남은 흔적이 그다음의 층과 결합되면서 생기는 불연속의 지점들아 다수 포진해 있다. 그의 작품은 한순간에 작품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본 모더니즘과 달리, 거듭되는 지각을 통한 해석을 중시한다. 추상적 시각성이 순간에 승부를 건다면, 그의 작품은 시간적 추이에 따른 지각의 재편집, 즉 기억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는 전시장에 네이버 검색창을 흉내 내어 ‘가상적 흔적이 끼워지는 순간은____이다’라는 질문을 던져 놓았다. 기억에서는 시간이 재편집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층과 층의 간격에서 무엇인가 생성된다. 작가는 여기에서 스펙터클의 홍수 속에 회화가 있어야 하는 자리와 의미를 찾으려 한다.

 

출전; 아트랩대전 작가와의 대화(이응로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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