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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자 전 / 여성적 현실 속에서 피어오른 초현실

이선영

여성적 현실 속에서 피어오른 초현실

황영자 전 (10.4—11.29, 유엠 갤러리)

  

이선영(미술평론가)


  

황영자는 1941년생이니 곧 팔순이다. 예술에 나이를 따져서는 안되겠지만,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생 후반기에 폭발적으로 터진 ‘나이답지’ 않은 에너지에 누구라도 압도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꺼이 그러한 이상(異常) 에너지에 전염되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어쫍잖은 현실이나 현상 유지를 위해 억압되거나 억압하고 있던 꿈과 열정 등을 이러한 기회를 통해 자극받는다. 필자는 우연찮게 이 전시에 앞서 ‘놓아라!’라는 재미있는 부제로 열린 청주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도 보았다. 청주 전시는 황영자가 가지는 다양한 색깔을 전시장 벽면까지 구현했다. 여성주의라는 묵직한 주제를 풍자와 해학으로 소화하면서, 자신의 색과 끼를 한껏 발휘한 ‘놓아라!’ 전이 끝나기 무섭게 열린 이번 전시는 청주에서만 하기 아까와 오랫동안 작가와 관계가 있었던 서울의 전시장에서도 선보인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장이 있는 가로수길 가에 펼쳐진 내걸린 ‘나는 그림쟁이다’라는 전시 부제는 그곳을 많이 지나다니는 젊은이들이 보기에도 매우 도발적으로 다가올 법하다. 




내 안에 여럿이 산다, 162 x 162cm, Acrylic on Canvas, 2006 - 2008


색깔 속의 아바타, 73 x 61cm, Acrylic on Canvas, 2015



늙은이고 젊은이고 간에 이제 누가 ‘그림쟁이’임을 그토록 선명하고 강하게 주장할 수 있겠는가. 팔순의 작가가 하는 대형전시라고 할 때 회고전이나 자료전 비슷하게 꾸려지는 것이 보통인데, 청주에서도 그 넓은 공간을 최근작으로 가득 채웠고 규모는 작지만 요모조모 그림을 걸 수 있는 면이 많은 서울에서의 전시 또한 최근작 30점을 볼 수 있었다. 작품들은 자신에서 출발해서 자신으로 귀결되는 기본적으로 모든 작품들이 자화상에 해당되는 것으로, 자기로부터 출발하는 부담 없는 선택을 통해 외연과 내포를 확장해가는 방식이다. 초상에 기반한 작품들은 미술사가 이은주의 표현대로 ‘자아 확장의 무대’로 삼는다. 그림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무대이며, 작가는 그 무대를 총괄하는 연출자이기도 하다. 자기 안에 있는 무수한 타자들을 캐릭터화시켜서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작가는 자아의 분신인 그들과 대화하면서 대중과 소통한다. 저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이고 들려야 하는 분장과 대사, 그리고 화려한 조명이 무대 같은 속성이 다소간 과장되어 보이는 인물들에 스며있다. 


그러나 필자가 멀찍이서 본 바로는, 작가가 현실에서도 엄청나게 튀는 패션 감각이 있었으며, 그것이 [내 안에 여럿이 산다](2006-2008)나 [몽상가](2011) 같이, 패션잡지(VOGUE KOREA)와 협업한 사진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작품 [색깔 속의 아바타](2015)에서 작가는 푸른 연기같이 피어오른 머리에 있는 살바도르 달리와 프리다 칼로, 그리고 자기 얼굴을 배치했다. 광대적 기질이 있었던 살바도르 달리, 자신의 생애와 연관된 솔직하고 강렬한 작품의 작가 프리다 칼로와의 관련성을 말해준다. 그것은 황영자 작품 속에 있는 초현실주의와 현실의 조합을 상징한다. 황영자의 작품 또한 그들처럼 환상적이면서도 그러한 자신의 현실이라는 무게추가 공존한다. 해부학 따위는 무시하면서 어깨 뒤로 불쑥 솟은 손에 붓 또는 담배들 든 도발적인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선글라스는 타인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가리는 다소간 공격적인 장치지만, 작가는 푸른 물감이 칠해진 안경을 착용하고도 상대를 보는 자신을 눈을 감추지 않는다. 이러한 이미지는 그림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예술가적 자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황영자, 나는_그림쟁이다 전시전경 (사진출전; 유엠갤러리)



황영자 전(사진 출전; 청주시립미술관. 2019.6.27--9.15 열린 청주시립미술관 기획전 '놓아라!'의 한 장면)



사랑의 슬픔(비나리), 91 x 117cm, Acrylic on Canvas, 2016



하늘 길, 112 x 162cm, Acrylic on Canvas, 2016



작품 [세월은 가도 나는 남는다](2015)에서 작가로 추정되는 등장인물은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있지만,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고양이는 안경 너머로 관객을 바라본다. 고양이는 인간사회 속에 들어와 산 대표적인 동물 중의 하나지만, 야생성이 남아있다. 아무도 모를 고양이 속내는 고양이와 예술과의 내적 친근함을 암시한다. 예술가야말로 현실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현실에 길들여지지 않는 존재 아닌가. 작품 [우리는 닮았다](2014)에서 두 마리 고양이와 마스크 시트를 한 인물은 모두 앞을 바라본다. 자화상의 중요한 도구인 거울은 초상화에 그 이미지를 빌려준다. [거울의 역사]의 저자 사빈 멜쉬오르 보네의 말처럼, 거울은 ‘닮았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거울과 상호작용하는 자화상이라는 주제에는 분열과 타자라는 테마가 흐른다. 황영자의 작품에서 타자화된 자신의 모습은 분장뿐 아니라, 동물이나 인형같은 대상으로 나타난다. 작품 [내 안에 여럿이 산다](2006–2008)는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부처상까지 자신의 것으로 삼을 만큼 타자에 대해 열려 있는 모습이다.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타자는 가족일 것이다. 두 손이 모자라 손이 여러 개 있기를 바랄 정도로 바쁘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자전적 배경이 깔려있다. 여럿으로 분열된 팔에는 양복 입은 남자와 붓 등이 쥐어져 있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여왕처럼 앉아있어도 멜랑콜리한 표정은 감추어지지 않는다. 작품 [붉은 여왕의 법칙](2012)에서도 남성이나 늙은 여성, 아이 등이 함께 하는 여성의 모습이 침울하다. 막대 모양의 머리 장식물들은 머리통을 관통하는 듯하다. 물론 가족은 행복의 조건이지만, 가족의 부양에 필요한 희생은 카리스마가 있는 여왕조차도 코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다. 아이와 남편, 시부모 등 가족을 보살피는 역할을 맡았던 여성은 온전히 자기이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60년대 초반 유망한 H대 미대 재학생이었던 황영자가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키워나갔던 꿈을 접고 있다가 마흔이 넘어서야 다시 작업을 시작한 이유 또한 이 땅의 수많은 여성 화가들의 공통적으로 풀어야 했던, 또는 견뎌야 했던 인생의 과제와 관련된다. 




세월은 가도 나는 남는다, 117 x 91cm, Acrylic on Canvas, 2015



포커 페이스, 91 x 73cm, Acrylic on Canvas, 2019



연기가 숲을 향기롭게 한다, 45 x 40cm, Acrylic on Canvas, 2001



물론 여성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여성들끼리 스스로 위로하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으며, 설득력이 없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예술가가 아니라 일반인으로 살기도 버거운 세상이다. 다만 작업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동안 못다 풀었던 개인의 열정과 재능이 마침 그 작가에게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황영자의 작품은 그림이 아니었다면 어디에서 자신의 억제된 열망을 풀어냈을까 싶을 정도로 직접적으로 자신을 쏟아낸다. 지루하고 애매모호한 우회는 없다. 이러한 일차적 과제는 조형적 세련됨이나 관념적 승화보다 앞서 있다. 세련이나 승화보다 날것이 더 소중하다. 그것은 새롭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이질적이다. 팔순 가까운 나이에 날것이라니! 이러한 이유로 황영자의 작품은 예술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막 그려서 붙인 듯한 최근작 [매직 카페트](2019)는 자신의 욕망에 부응하는 도상들을 꼴라주 한 듯한 모양새다. 그러한 구성에서 조화와 비례가 잘 맞춰져 있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더 적절하게 전달한다. 


얼굴 부분을 차지하는 수많은 또 다른 얼굴들은 자기 안의 타자들이며, 이것도 모자라 인형이나 고양이까지 양팔에 끼고 있다. 일찍이 자식 둘을 잃고 우울증에 빠져 있었던 작가의 어머니가 만들어주곤 했던 인형은 해골의 탈을 쓰고 다시 나타났다. 마름모 무늬의 어릿광대 옷을 입은 인물은 자신 속의 타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줄타기하듯 조율한다. 작품 [모노 드라마](2015)에서는 모피 옷에 붉은 하이힐을 신었지만, 비슷한 구성이다. 진한 화장이나 분장, 은유적 대상들을 장식물로 쓰는 화려한 의상은 마치 가면이 그러하듯이 자신을 은폐하면서  노출한다. 잘린 목을 들고 가는 몸체가 있는 작품 [하늘길](2016)은 진지하게 대화해야 할 타자로 사자(死者)도 포함한다. 늦게 다시 시작한 작업은 나이 든 모습뿐 아니라 반항기 가득한 불량소녀부터 레드카펫을 밟는 여배우에 이르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에 자신을 투사한다. 색색의 머리칼에 열 손가락에 반지를 낀 모습은 현실에서 할 수 없었던, 또는 현실보다 더 나아간 자신의 소망이 투사된 모습이다. 그러나 예술은 늘 과도함의 산물 아닐까. 




전생, 117 x 80cm , Acrylic on Canvas, 2012



붉은 여왕의 법칙, 162 x 130cm, Acrylic on Canvas, 2012


매직 카페트, 91 x 73cm, Acrylic on Canvas, 2019



여성이 아니더라도, 공적 영역에서 소외된 이들의 작품은 환상적이다. 황영자의 작품 속 환상은 분열적이라 싶을 만큼의 다양한 타자들이 공존하는 까닭에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다. 그것은 경계위반의 문제이다. 자기 안에 타자를 품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현실적이면서도 원형적인 여성의 체험은 경계가 위반되는 이상(異常)적 상황을 일상화한다. 여성/자신의 현실에 주목할수록 환상성이 배가되는 점은 황영자에게도 해당된다. 작품 [전생](2012)에서 아이를 잉태한 여자는 자연과 하나로 간주 된다. 아담과 이브에 관련된 신화처럼 여성이 자연이었을 때 충만과 죽음이 함께 한다. 청주에서 발표된 작품 중 비슷한 구도로 [상처입은 이브](2012)을 들 수 있다. 검은 양복 입은 성인 남자를 아이처럼 또는 인형처럼 부여안은 여성은 ‘자연’으로서의 그녀의 역할이 상처일 수 있음을 알려 준다. 어떤 여성에게 그러한 상처는 치명적이다. 그렇지만 예술을 상처 또한 자신의 동력으로 삼는다. 작가는 ‘나는 그림 안에서 그림과 함께 산다’고 하며, ‘내 마음과 머릿속 지나온 추억이 내 그림의 자궁이다’라고 말한다. 황영자에게 여성-자연이라는 존재는 집과 자궁으로 그리고 예술로 펼쳐진다.

  

출전; 퍼블릭 아트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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