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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 현실 속의 또 다른 현실

이선영

현실 속의 또 다른 현실

 

이선영(미술평론가)


  

김주영의 작품에는 개인지, 여우인지, 토끼인지, 또는 그 모두가 합체되어 변형된 괴물인지 알 수 없는 동물이 주인공으로 나타난다. 양쪽으로 뾰족 솟은 귀와 튀어나온 주둥이가 귀여운  미지의 동물은 굳이 어떤 종(種)에 정확히 속할 이유가 없다. 정확한 분류란 주도적인 시스템을 전제하는데, 유희와 예술의 세계에서 지배적 시스템은 상대화 된다. 물론 놀이의 규칙이 설정되면 나름의 고정된 시공간 속에서 행해진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자연이 법칙에 따른다면, 사회는 규칙에 따른다’고 보는데, 이러한 규칙에서 매혹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화려한 원시인의 몸 장식부터 하위문화에서의 사도매저키즘적 유희에 이르기까지, 나름의 원칙에 따르는 의례적 관행이 편재한다. 놀이나 예술 또한 규칙이다. 개인에게는 거시사회의 규칙 속에서 또다른 규칙을 설정할 수 있는 자율적 공간이 필요하다. 어릴 때는 자연스럽게 주어졌지만, 어른이 돼서는 애써 재구축해야 하는 이 시공간 속에 예술 또한 포함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자유롭고 자율적인 공간은 추억이나 이상으로 남는다.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지배적 시스템은 생산과 노동을 위한 것일 따름이다. 이 시스템은 구성원들의 위치를 추상적으로 배열한다. 보다 많은 타자를 도구화하는 시스템 속에서 놀이나 예술 또한 생산과 노동처럼 소외된다. 김주영의 작품 속 개체들은 체계 안에 위치 지워지지 않고 스스로 자리를 잡고자 한다. 그래서 일견 비체계적이며 무질서한 존재들 같다. 동물 주인공과 어울리는 식물들 또한 종을 알 수 없다. 다만 풀이나 나무 같은 형태에서 취한 요소들이 활발한 동세 속에 결합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 모두가 한 전시 공간에 모였을 때 종간의 차이를 무시하는 어울림과 축제적 활기가 가득하다. 작품 [deliver](2018)는 붉은색 사암으로 조각된 동물과 그 위에 올라타고 있는 식물이 서로 대화를 한다. 이종(異種)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환상적 상황은 측면의 머리에 정면의 눈이 붙은 ‘비과학적’ 구성에도 존재한다. 


통상적으로 캐릭터들은 깔끔하게 색을 입힐 수 있는 플라스틱이나 늘 품고 다니는 애착인형처럼 푹신한 느낌의 재료로 돼있기 마련인데, 김주영의 작품에서는 돌이나 금속 같이 다루기 힘든 재료가 주로 사용되었다. 돌이나 금속—스테인레스 스틸은 최신의 것이지만—같은 전통적 재료는 신적 위상을 가지는 인간처럼 기념비적이고 영구적인 주제와 어울리는데, 이제 캐릭터들도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다 보니 고색창연한 반열에 오를 수 있다. 현대적 시간감각에 비한다면 100년은 이전시대의 1000년이 넘는 세월에 해당되는 변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류에게 현대미술은 해방구이기 보다는 압박감을 주는 낯선 현실로 다가온다. 어떤 부류에게 대중문화의 캐릭터는 자본가의 이해관계가 관철된 문화산업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은 예술과 문화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주영 세대의 젊은 작가들은 총체화 된 대중문화 속에서 자라났다. 


이들에게 문화는 자연에 다름없는 또 하나의 생태계이다. 이전세대가 논둑밭둑에서 뛰놀면서 자연적 서정을 자기화했다면, 이들은 거의 동시적으로 출시된 같은 상품의 구매를 통해서 전 세계 어린이들과 공통의 언어로 추억을 쌓아왔다. 가령 1990년대에 텔레토비 동산의 아이들은 전지구적이다. 최초에는 구매된 대량 상품 중의 하나에 불과했어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함께 한 것은 단순한 상품을 넘는다. 그것은 보다 많은 겹을 가진 사물이 되고 예술이 된다. 이 과정이 어른이 돼서까지 지속되는 부류는 키덜트라고 칭해지며, 이 또한 마케팅의 대상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은 현실원칙이 지배하는 차디찬 세계, 즉 객관적 현실이라 불리워지는 영역으로부터 개체를 보호하는 중간층을 가정한다. 피터 풀러는 [모더니즘 이후의 미학]에서 정신분석학자 위니코트의 이론을 소개하면서, 아이가 철이 드는 과정을 쓰디쓴 ‘각성’(가상에서 깨어나기)이라고 묘사한다. 이러한 각성은 아기에게 ‘하나의 모욕’으로 다가오며, 이후에 반복되는 트라우마의 원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와 예술은 이 중간영역을 담당한다. 이 영역에서 장난감이나 예술작품은 동일한 위상을 가진다. 예술 또한 ‘잠재적인 공간을 꽉 채워서 격리상태를 모면하려고’(위니코트) 한다. 이때 예술가의 과제는 ‘현존하는 현실 내의 다른 현실’(마르쿠제)이라고 할 수 있는 가상을 창조하는 것이 된다. 피터 풀러는 기존의 상징적 우주를 파괴하고 물자체를 지시하는 경향이 있는 현대미술은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없고, 원시시대나 중세시대(근대의 이상주의자 러스킨이 모델로 삼은)의 ‘예술’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거기에는 개체와 전체의 언어가 서로 상충되지 않는 오롯한 상징적 우주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원시, 중세와 대중문화와의 친근함, 현대미술에서 원시, 중세, 대중문화의 수렴점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전례 없는 위험에 노출된 현대인의 자기보호 본능과 밀접하다. 김주영은 놀이를 어릴 적 추억으로 끝내지 않았다. 


고전적 조각상으로 훈련받은 손을 가진 어른은 다시 그 때의 시공간을 호출한다. 누군가에게는 퇴행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러한 방식은 놀이와 예술의 공통점이며, 그것은 김주영같은 작가에게는 몰입과 지속가능성을 부여한다. 자신을 상징하는 캐릭터는 현실보다는 쾌락이 앞서는 환상 세계로의 여행을 떠난다. 작품 [selfportrait](2020)는 작품 속 귀여운 동물이 자신의 분신임을 알리는 자화상이다. 꼬리부분은 다른 동물의 모습인데, 이 개체는 동일자의 경계를 해체하고 증식, 또는 변형되는 중이다. 작품 [Adventure](2016)에서 좌대 역할을 하는 금속 육면체 표면에 새겨진 기기묘묘한 식물들은 붉은색 자동차를 타고 있는 귀여운 캐릭터가 꽃길만 가야함을 암시하는 듯하다. 작품 [우주여행](2015)은 금속과 돌로 된 탈 것을 타고 이동하는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조각가만이 수월하게 다룰 수 있는 육중한 재료들로 환상여행(trip)을 표현한다. 골판지로 만들어진 작품 [채집](2016)은 곤충 채집하러 가는 아이의 모습과 닮았다. 조각 작품은 한자리에 서있지만 어떤 여정의 한 단계이다. 


여기에서 저기로 떠나는 이동수단은 일상 어디에나 있다. [당신의 안녕을 위하여](2019)는 마치 선반처럼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선반의 가장 아래쪽은 바퀴달린 악어 모양이다. 동물과 식물, 그리고 사물의 다양한 요소가 조합된 선반 위의 미지의 생명체들은 표정과 몸짓이 유쾌하다. 이 작품은 제자리에서의 여행, 또는 이동 가능한 소우주를 이룬다. 김주영의 작품에는 회화적인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원천으로 다양한 형식(상품)으로 확장되는 캐릭터 문화의 방식과 비슷하다. 조각보다 덜 물질적인 회화는 다른 세계와의 만남을 보다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 오일 파스텔로 그려진 작품 [Previous life story](2019)에서 거울과 같은 화면 사이로 마주보는 네발 달린 육상동물과 어류, 이 둘은 실제로는 마주할 수 없는 공간에서 대화한다. 작은 공간에 꽉 들어찬 찼지만 별로 답답한 느낌을 주지 않는 2019 서울 국제 조각페스타에서의 전시 작품들은 한데 모였을 때 더 활기참을 알려준다. 


동물이 있으면 식물이 있어야 하고, 하나의 계에서 다른 계로의 이동은 밀접한 거리 안에서 활성화된다. 2019 창원 아시아미술제에서의 전시작품들은 나무와 풀을 모티브로 한 환상적 정원을 연출한다. 바닥에는 머리가 뾰족뾰족한 동물도 보인다. 자신이 속한 환경을 흉내내는 의태 동물 같은 모양새는 환상정원의 식물들과 공(共)진화한 결과물이다. 계의 구성요소들은 화음을 맞춰 합창하는 듯 율동감이 있다. 작가는 구상조각 분야에서 큰 상을 받은 경력이 있지만, 작품 속 구성요소들을 조합하여 추상화시키기도 한다. 작품 [Adventure](2016)에서 마치 좌대처럼 육면체로 만든 표면들을 가로지르는 경쾌한 흑백 형태는 그 위의 사암 조각으로 현실화된다. 평면 이미지와 입체는 서로를 반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3차원과 2차원은 오고갈 수 있다. 김주영의 작품은 내용 뿐 아니라 형식을 통해서도 가상과 현실 사이의 다리를 놓고자 한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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