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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 끊어내며 나아가기

이선영

끊어내며 나아가기

  

이선영(미술평론가)

  

  

이현정의 작품은 전경과 후경 모두에 적용된 역동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균형감이 있다. 재현적 요소의 비중이 크지 않은, 전체적으로 추상적 화면이기에 이러한 균형감은 돋보인다. 실재감과 중력감이 있는 작품은 추상적이면서도 장식적이지 않다. 한편 몸에서 떼어낸 살점 같은 작품을 단위로 삼아 컴퓨터를 이용해 패턴으로 만들어 양탄자 무늬나 우표로 만든 또다른 작품들에는 추상이 장식 및 기능(디자인)과 가지는 관계가 드러난다. 이러한 그림의 확장은 조형적 유희가 아니라 상징적 차원을 가진다. 거기에는 개별과 보편 사이의 갈등부터 동일자의 몸통을 이루는 타자의 위상이 포함된다. 칸딘스키를 비롯한 초기 추상 화가들이 가졌던 염려, 즉 참조대상이 사라지고 나서도 예술이 리얼리티를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한 이현정의 해법은 추상적 어법을 활용하면서도 현실 문제에 천착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할 말이 많은 젊은 작가는 그림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생각에 서사 작업도 병행한다. 




레이디 랍스타   145.5 x 112.1 장지에 혼합재료 2018



레이디 치킨 (비명)   112.1×112.1  장지에 혼합재료  2018



작가는 틈틈이 단편소설을 쓴다. 그렇다고 그림이 글의 삽화는 아니다. 텍스트는 그림과 상보적 관계에 놓인다. 작가는 그것을 소설 형식의 작업노트라고 말한다. 원래 동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쓰기와 그리기가 이질적인 것은 아니다. 그림과 소설의 내용은 작업 중심에 놓인 당면한 현실은 작가의 자의식부터 여성의 사회적 상황에 이르는 광폭의 범위에 걸쳐있다. 중간 톤으로 조절되어 있지만 청/홍계열의 색감, 즉 살색 섞인 붉은 계열과 블루 그레이가 주는 대결적이면서도 보완적인 부분이 특징적이다. 대구를 이루는 형식에는 에너지의 흐름이 잠재해 있다. 그 한 가운데서 동양화의 시원한 필획을 떠올리는 검은 선의 출렁임이 있다. 하늘과 대지, 또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상징 색은 조화롭게 어우러지지만, 이현정의 작품에서는 이미 이루어진 조화가 아니라, 조화를 향한 과정 중에 생겨나는 갈등과 투쟁이 전면화 된다. 


무언가의 경계를 이루었을 듯한 검은 선이 내용물을 탈각시킨 채 혼돈에 가세한다. 회오리치는 검은 선들은 기존의 경계가 와해되고 있지만, 새로운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과도기적 시공간의 궤적들이다. 검은 선들은 여린 담쟁이 손들처럼 단단한 판을 더듬으면서 나아가며, 무엇인가를 포획하려 한다. 그러나 포획 이후에야 무엇을 원했는지 비로소 깨닫는, 다소간 맹목적인 투망(投網) 작업의 연속이 바로 작업이다. 때로 검은 선들은 쇠꼬챙이나 칼처럼 단단하다. 검은 선들은 체액이나 살을 떠올리는 형상과 상호작용한다. 이현정의 작품에서는 무엇이 절단 나는가. 작가의 최근 관심사인 페미니즘은 전통적인 희생물이었던 여성을 주목한다. 작품 [레이디 랍스터](2018)와 [레이디 치킨(비명)](2018)에 나타나듯이, 여성은 껍데기에 갇혀있다. 그러나 껍질의 외곽선은 명확치 않다. 온전한 랍스터나 치킨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들이 포식자에게 먹히기 위한 가공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링링 30 x 30 each  장지에 혼합재료 2020 이현정



링링_ 112.1×112.1_ 장지에혼합재료_ 2020



멜라린부인의초상_91.0 x 91.0_ 장지에혼합재료_ 2020



 분노 180.5 x 83  장지에 혼합재료  2018



유기체가 잘리고 뒤섞이는 모습이 있는 작품에 작가는 [분노](2018)라는 보다 직접적인 제목을 붙이기도 한다. 최근에 완성된 분노에 대한 단편 소설에는 ‘...그녀의 어머니인 그녀도, 또 그녀의 어머니와 또 어머니도 벗어날 수 없으셨을 뿐이다...’는 내용이 나온다. 남성은 문명과 함께 진화해왔지만 여성은 ‘영원한 여성’, 즉 자연이다. 인류사의 상당기간 동안 운명이었던 임신과 육아는 여성을 자연과 묶어 놓았다. 임신의 시작부터 자식과 명확하게 구별되지 못하는 어머니는 주체가 아니다. 애초부터 경계가 불확실한 존재, 즉 괴물인 [인어](2019)는 통째로 갈려지는 중이다. 작품 속 희생물들은 먹히기 위해 잘려지거나 먹히지 않기 위해 자체 탈주를 감행하는 과정 중에 있다.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단편 이미지를 반복해서 만든 무늬는 종합이 아닌 반복의 기제를 보여준다. 인간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성, 가족, 국가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탄생에 앞서 선재하는 상징적 틀은 지속적인 반복과 강제를 통해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이현정의 작품은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듯한 강고한 질서가 우연히 고착되어 만들어진 무늬임을 암시한다. 20세기 초기의 추상화가 칸딘스키는 ‘내적필연성’을 주장했지만, 21세기의 여성화가에게 필연이 자유일 수만은 없다. 여성/화가에게는 필연으로 행세하는 상징적 규칙의 임의성을 들추는 것이 더 자유에 가까운 행위일 수 있다. 2019년에 제작된 [붉은 드로잉] 시리즈와 그 패턴은 잘리고 매달리고 하는 난리 통조차도 조화로운 양탄자처럼 전환된다. 이러한 기계적 배치는 불확실한 형태와 경계를 다루는 주요한 방식일 것이다. 그렇게 핏빛 현실은 근본적인 자리를 이루는 것이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일단 고착되면 힘을 발휘한다. 인류학. 언어학, 정신분석학에서는 그것을 상징계로 명명했다. 상징계를 대표하는 것은 언어이다. 언어의 최고 단계가 법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붉은 드로잉 시리즈1 판화지에 혼합재료 70x100 2019, 붉은 드로잉과 그 패턴1 프린팅이미지 59.4x84 2019



붉은 드로잉 시리즈3 판화지에 혼합재료 70x100 2019, 붉은 드로잉과 그 패턴3 프린팅이미지 59.4x84 2019



붉은 드로잉 시리즈4 판화지에 혼합재료 70x100 2019, 붉은 드로잉과 그 패턴4 프린팅이미지 59.4x84 2019



그 사회의 구성원 전체를 강제하는, 아니 인간 그 자체로 만드는 언어에는 ‘아버지의 법’ 즉 가부장제가 선명하다. 아버지에 대한 해묵은 감정이 표현된 형상과 그것을 패턴화 시킨 한 작품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반복성을 암시한다. 기계적 반복의 억압성은 작업이라는 차이를 둔 반복으로 변화한다. 그렇지만 상징계에 악역만 맡기는 것도 일면적이다. 상징계가 없이는 인간도 문화도 사회도 없기 때문이다. 상징계 바깥의 모성과 사랑의 힘을 믿었던 크리스테바는 ‘상징계 없이 예술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현정은 야생적 회화작업을 통해 더 근본적인 현실(실재계, 기호계 등으로도 명명된)에 접속하고자 한다. 라깡은 재현될 수 없는 현실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했는데 그것은 육체와 대지였다. 이현정의 작품에 푸른빛과 더불어, 또는 단독으로 등장하는 붉은 빛은 그러한 야생적 실재를 떠올린다. 그것들은 문화가 되기 위해서 파헤쳐지고 잘려지곤 한다. 


그것은 모든 재현과 생산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날 것/익힌 것’이라는 구조주의 도식처럼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농사꾼과 요리사, 화가는 비슷한 일을 한다. 작가의 상징계의 위상에 대한 도전은 또 다른 방식으로도 이루어진다. 그것은 의미를 탈각시키는 전략이다. 최근 이현정은 다큐멘타리 풍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터넷에서 구입한 구글 이미지에다 자막을 넣은 시리즈이다. 자막은 물론 같이 제시되는 단편 소설은 사용된 이미지와 무관하다. 그것은 의미와 무관한 기표들이 떠도는 현대사회에 대한 작가의 반응이기도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는 의미로 재현되는 것들에 대한 해체적 충동이다. [링링](2020)이라는 작품제목은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이며, 그림자체도 의미가 없다. 작품 속 사과는 그림의 자율성을 쟁취하는데 커다란 일보를 내디딘 대가의 주요 소재이기도 했다. 세잔의 사과는 사과의 재현이 아니라, 회화라는 자율적 바탕 면을 짜기 위한 방편일 따름이다. 



어떤 풍경 42.0 x 29.7 each , 36.7 x 16.7 판화지에 혼합재료 2020 이현정



어떤 풍경 42.0 x 29.7 each 판화지에 혼합재료 2020 이현정



콤프라치코스의 아해들 1_ 324.3×130.3_ 장지에 혼합재료_ 2020_ 이현정



콤프라치코스의 아해들 2_ 422.8×130.3_ 장지에 혼합재료_ 2020_ 이현정



세잔의 사과는 인류의 원죄를 낳았던 유혹의 상징도 아니고, 삶의 유한성을 경고하는 알레고리도 아니다. 세잔이 사과를 그린 방식과 산을 그린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현정의 ‘링링’은 ‘다다’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발상과 비슷하다. 여러 개를 동시에 진행하는, 손가는 대로 그린 작품들에는 [의미심장한 시리즈]라는 역설적 제목을 붙였다. 장기나 체액의 흔적을 떠올리는 [의미심장한 시리즈]는 날것의 현실을 기존의 상징적 체계로 환원하거나 재단하는 것에 반대하는, 즉 ‘해석에 반대하는’(수잔 손탁) 태도가 깔려있다. 분절화는 언어의 특징이다. 언어는 분절될 수 없는 현실을 분절한다. 즉 분류하고 계층화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 주변화 되는 타자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젊은/여성/예술가는 다중 분절화 된 타자이다. 물론 타자적 항목은 무한정 더 추가될 수 있다. 가령 가난한/이주한/아이 딸린,,,등등. 삶과의 어떤 거리도 가질 수 없는 극단적인 타자는 결국 유령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도 뭔가를 자른다. 이현정의 많은 작품에서 절단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잔인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다. 최근 몇 년간 작가의 관심사인 페미니즘적 관점에 따른다면 거세공포를 떠올린다. 남성이라는 하나의 성을 중심으로 정신분석학을 구축했던 프로이트주의의 관점에 따르면, ‘애초부터’ 거세된, 그래서 불완전한 존재인 여성의 성을 떠올릴 것이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벌어진 상처같은 여성의 성기는 ‘기괴함’의 원천이었다. 물론 이러한 ‘여성적’ 기괴함은 정신분석을 페미니즘적으로 다시 읽은 학자들에 의해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기괴함은 컬트 문화 등, 하위문화의 주된 코드였다. 그러나 기괴함이 또 다른 대상화인가 대안인가에 대한 경계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이현정의 작품에서 절단의 이미지는 구속을 끊어내고 탈주하는 과정도 떠올리며, 단편들이 자유롭게 결합되어 리좀적으로 나아간다는 새로운 정신분석학의 가설과도 연결될 수 있다. 




인어 장지에 혼합재료 193.9x130.3 2019



인물드로잉 장지에 혼합재료 130.3x97.0 2019



메두사를 주제로 한 작품 [신메두사](2018)처럼, 괴물의 머리를 자르는 것은 혼돈을 질서화 하는 대표적인 신화적 모티브다. 신화에서 괴물의 머리를 치고 미녀를 구하는 존재는 남성 영웅이다. 토막 치기는 무질서한 자연을 질서화 하는 과정이다. 무정형적인 것을 정형화하는 것이다. 그것이 문화의 역할이다. 물론 자연은 절대 무질서하지 않지만, 인간 중심의 생산주의적 관점에서 자연은 노동을 통해 변화되어야 하는 재료로 간주된다. 이때 이성적 인간은 자연을 포함한 모든 것을 대상화 한다. 대상은 원래의 모습을 잃고 주체의 이익을 위해 도구화한다. 환원이나 구조 등은 그 방식이다. 타자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주체가 대상에게 행하는 노동을 향유(jouissance)와 대조한 바 있다. 레비나스는 인식 또한 그러한 이성적 주체의 노동과 같은 계열에 있다고 본다. 이성. 인식, 노동, 도구는 개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널리 권유되는 가치이다. 


여기에 예술이 끼어 들 여지가 있는가. 예술은 여성만큼이나 타자이다. 이현정의 페미니즘은 이 지점과 상호작용한다. 자연/문화의 이분법에서 문화의 역할은 남성이 맡아왔다. 문화가 아무것도 아닌, 그저 여분의 무엇일 때나 여성의 몫이었다. 이현정은 여성이자 작가의 권력을 발휘하여 붓이라는 칼을 휘두른다. 온전해야 하는 전체를 강제로 잘라낸 절단면은 남성의 목젖 제거부터 여성의 경력단절 같은 내용에도 적용된다. 그림의 틀 또한 무엇인가를 잘라내는 선택의 과정이다. 작품 [어떤 풍경](2020)처럼 창밖에 괴물이 안쪽의 관객을 보는 듯한 작품에 나타나듯이, 괴물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이 괴물을 만든다. 순수와 오염을 나누는 기준에 대해 연구한 인류학자 메리더글러스가 말하듯이 ‘절대적인 오물이란 없다.’ 메리 더글러스의 [순수와 오염]에 의하면, 성스러움은 개인과 종의 통일이며 완전성이기에 각기 다른 범주의 사물이 뒤섞이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신메두사  116.8×91.0 장지에 혼합재료 2018



재배인간 (수확)  162.2x130.3 장지에 혼합재료  2019



그러나 ‘모든 분류체계는 반드시 비이례적인 것을 낳기 마련이며, 모든 문화도 자신의 존재 조건에 반항하는 사건들에 직면한다.’(메리 더글러스) 이현정에게 모태언어라고 할 수 있는 먹으로 그려진 선은 경계가 와해되고 구축되고 다시 와해되는 연속적인 과정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푸른빛과 조화를 이루는 붉은 빛은 그림과 더불어 제시되곤 하는 단편소설의 지원을 받아 선혈이 낭자한 분위기로 변모하곤 한다. 도축 공장에 끌려간 인어부터 납치한 어린애를 구경거리 괴물로 만들어 팔아먹는 범죄 집단--[콤프라치코스의 아해들](2020) 시리즈--에 이르기 까지, 고(古)지도부터 벽지같은 이미지까지, 상상과 현실을 아우르는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는 인류 문명사에 늘 있어왔던 잔혹과 희생, 위반과 탈주가 자리한다. 그러한 작업들은 작가에게 카타르시스와 치유적 효과를 주었다. 작가는 작업이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일깨워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매개 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출전; 영천 예술 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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