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진성은 / 자연과 신화의 격세유전적 발현

이선영

자연과 신화의 격세유전적 발현

  

이선영(미술평론가)


  

진성은의 작품 속 여성은 신화적 분위기에 감싸여 있다. 작품제목에 신의 이름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현실과 역사보다는 상상력에 호소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상상력에도 현실과 역사는 내재한다. 상상을 위한 상상, 즉물적 현실 그 자체는 흥미롭지 않다. 예술은 원래 상상력에 호소해 왔지만, 상상력은 낭만주의에서 정점을 찍은 후, 현대 예술에서의 그 비중은 점점 줄어든다. 낭만주의는 물질주의가 세상을 휩쓸 자 나타난 근대적 반응이었다. 순수예술 또한 근대의 산물이었기에 낭만주의는 예술의 몸통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 마저도 키치나 대중문화의 전유물이 되자, 현대 예술은 달콤한 상상보다는 현실보다 더한 현실 같은 씁쓸함을 통한 충격요법을 구사함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기계적인 것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상상력은 적당히 소비될 수 있는 것으로 가공되지 않는 한 불필요하고 불가능하며 불온한 것으로 취급된다. 




Gaze 1_watercolor on paper_116.8x97cm_2018



stare into the abyss_Mixed media on papaer_162.2x130.3cm_2020



상상력은 고무되는 만큼이나 희귀한 것이다. 신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진성은의 작품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화면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대개 여성으로 나타나는 인물은 사실적 묘사에 충실하고 배경 대부분은 회화적이다. 그러나 인물이 절세 미인이기 때문에 그 또한 환상적으로 보여진다. 작품 속 인물, 또는 그런 인물을 태어나게 한 작가의 정념이 배경에서 추상적으로 풀어헤친다. 재현적 필촉과 회화적 처리가 겹치는 부분은 흩날리는 긴 머리칼이며, 대개 인물이 상상하는 어떤 장면과의 자연스러운 연결망을 형성한다. 신화적 여성상과 잘 어울리는 것은 자연이다. 진성은의 작품에서 동물은 자연을 대표한다. 에덴동산에서 인류에게 금기를 위반하도록 유혹한 뱀부터 지상과 하늘에서 최상위 포식자에 해당되는 동물들까지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진성은의 작품에서 동물은 인간의 저급한 측면이기 보다는 근원적 부분이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현실화된 근대 이후의 경향, 즉 동물 및 인간의 동물성을 부정한 대가는 지금도 매우 크다. 


동물은 잊혀 진 자연의 원초적인 힘으로, 전성은의 작품에서 여성과 잘 어울린다. 물론 여성-자연-동물/ 남성-문화-인간을 마주보게 하는 이항 대립적 사고에 의하면, 전자(타자)는 후자(동일자)의 지배 아래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 잘못된 것임이 드러나면 열등함은 신성함으로도 도약할 수 있다. 타자는 동일자의 한계를 극복하는 풍요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진성은의 작품에서 이항대립은 극복되기 위해서만 나타난다. 작품 속 신 또한 양성적이다. 작품 [Venuzeu](2020)는 여신과 남신이 합쳐진 전능한 존재로, 작가는 자신이 만든 신조어 ‘Venuzeu를  venus+zeus’로 설명한다. 그것은 기존의 신화에 또 다른 신화적 상상력을 보태 만든 새로운 존재의 이름이다. 동물과 인간, 여성과 남성, 신과 신이 만나 더 강력하고 전능한 존재로 거듭난다. 신성의 조건인 전일성(wholeness)은 한 인물이 안과 밖을 동시에 바라보는 야누스처럼 분열을 통합한다. 




Aura of the Beast_Oil on canvas_162.2x97cm_2019



Gaze 2_Oil on canvas_162.2x97cm_2019



통합은 유아독존적인 주체를 대변해온 남성보다는 상대와의 관계를 중시했던 여성에게 더 적합해 보인다. 만약 남성이라면 자기 내부의 여성적 영혼(아니무스/아니마의 신화에 나타나듯이)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여신을 떠오르게 하는 아름다움과 전능함을 갖춘 인물이 등장하는 진성은의 작품은 여성/신에 대한 원형적 상상력이 투사되어 있다. 원형적 상상력은 근원적인 것에 주목함으로서 보편성에 호소한다. 로버트 A 존슨이 쓴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에 의하면, 근원적인 것일수록 직접적이고 단순하게 표현된다. 그에 의하면 신화는 개인이 쓰거나 창조한 것이 아니라, 전 세대와 문화 전반에 걸친 집단적 경험과 상상력의 산물이다. 즉 먼저 어떤 동기가 등장하고 그 동기가 다듬어져 마침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존슨에 의하면, 보편적인 주제를 지니는 이야기들만 끝까지 살아남게 된다. 결국 신화는 모든 사람에게 진실이라고 인정받는 내용을 다루게 된다. 


집단적 상상력의 산물인 신화는 오랜 구전(口傳) 시기를 거쳐 나중에 문자로 정리된 것이기 때문에 전형적이다. 글이 아닌 말로 전해지기 위해서 기억하기 쉬운 정형구에 의존하게 되듯, 원형(archetype)에 대한 시각 이미지 또한 그렇다. 특이하다 못해 하찮은 것에 대한 취향이 생겨난 것은 기억될 만한 것이 더욱 쉽게 재현 될 수 있는 문자와 인쇄물 시대의 산물이다. 현대문화이 지배종이 된 대중문화에 각을 세우는 예술은 신화와 역사를 오고간다. 현대예술과 비평은 일상과 신화의 관련성을 밝혀왔다. 반복되는 일상은 신화가 지배한다. 그러나 새로움과 진보의 상징 또한 신화적으로 간주되어, 근대미술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움의 신화’라는 관념도 생겨났다. 신화는 삶의 반복이 있는 한 이래저래 떼어낼 수 없는 관념이다. 아름다움은 신화적 원형에 호소한다. 여신은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였고, 현대의 미인은 고대적 여신의 광휘를 가진다. 




Helios_Oil on canvas_162.2x97cm_2020



La Vittoria_Oil on canvas_162.2x97cm_2020



진성은의 작품 속 인물은 푸른 눈에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향기처럼 피어오르는 여인을 그린 작품 [La Vittoria](2020)는 여성성의 화신이라 할 만하다. 긴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부드러운 턱선, 목덜미와 손까지 여성미가 철철 흐른다. 신화라는 전형적인 서사의 구조 속에서 미인은 언제나 주인공이다. 그들은 응시의 대상이 되고, 가끔 응시를 되돌려줄 따름이다. 진성은의 작품에 자주 나타나는 주제인 응시는 말없는 이야기이기도 한 회화를 통해 상대와 대화한다. 보지 못하는 상황 또한 응시와 관련된다. 화면 밖을 응시하는 야수와 미녀를 그린 작품 [Gaze 1](2018)에서 미녀의 머리 장식같이 얹혀진 독수리는 여성의 한쪽 눈을 날개로 가리고 있지만 최소한 눈 세 개가 관객을 응시한다. 작품 [Gaze 2](2019)에서 화면의 주인공은 눈을 감고 있지만, 시각의 체계는 여전히 작동한다. 고양이 과 동물을 떠올리는 강렬한 눈빛들은 보여 지는 여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만든다. 


작품 [stare into the abyss](2020) 또한 자신은 바라보지 못하고 타자의 시선에 맡겨진 인물이 있다. 그녀는 보지 못하는 대신에, 또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머리 위에 펼쳐진 상상력은 더욱 풍부하다. 그 안에는 공격적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뱀들이 앞이 보이지 않는 맹목(盲目)적 상황과 죽음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가장 강력한 신화인 에덴동산의 서사에서 뱀과 여성은 유혹과 죽음의 쌍으로 연결돼 있지만, 뱀은 또한 앎과 영생의 상징이기도 하다. 진성은의 작품에는 자아와 타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시각의 불균형적인 교환을 신화적 이미지로 표현한다. 시각과 욕망의 관계에 대한 현대 정신분석학의 이론들이 삼위일체같은 고전적 신화와 비슷한 구조(가령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에 대한 라깡의 이론)를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시선을 매개로 하는 나와 타자 사이의 불일치에 대한 신화적-정신분석학적 서사는 사회적 비극이기도 하지만, 주체와 객체 사이의 차이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설득력 있는 모델이다. 




Teach to Fall faster 1_Mixed media on paper_162.2x97cm_2020



Teach to fall faster 2_Oil on canvas_162.2x112.1cm_2020



낯선 용어와 도표들로 가득한 방정식에 가까운 그 복잡한 이론들은 욕망이 무한하고 충족되기 어렵다는 다소간 상식적인 삶의 경험과 조응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진성은에게 이러한 불일치는 비극적이다. 작품 [Teach to Fall faster 1](2020)에서 산산이 조각난 채 하계(下界)로 추락하는 여인의 눈은 어둠에 가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추락에도 희열은 있다. 작품 [Teach to fall faster 2](2020)에서는 죽음에 가까운 깊은 잠의 달콤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긴장을 해소시키는 과정에는 쾌락이 있기에 심리학자들은 죽음본능과 쾌락본능을 연결시키기도 했다. 야수와 함께하는 초상들은 강인한 인상을 준다. 포효하는 사자의 갈퀴와 인간의 머리카락이 한데 얽혀있는 작품 [Aura of the Beast](2019)는 직사각형 캔버스에의 대각선을 기준으로 결기 있는 전사와 맹수를 배치함으로서 동물성을 인간성의 하위 범주가 아니라 동등하거나, 심지어는 더 힘을 받는 듯한 위상을 부여했다. 


작품 [Gaze]에서 맹금류의 강함과 여성적 부드러움이 대조되면서 합쳐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여신과 흑표범과 함께 있는 작품 [Helios](2020)에서 검은 동물은 태양의 광휘를 더욱 빛내준다. 신화적 도상이 있는 진성은의 작품에서 동물은 신화와 더불어 격세유전(隔世遺傳)적 인 경험을 제공한다. 앙드레 지오르당은 [내 몸의 신비;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에서 첫 인류로부터 나에 이르기까지 4 백만 년의 경험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나를 지배하는 시스템의 대부분은 나의 동물 선조들에서 시험된 바 있는 것들’, 즉 ‘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역사, 생명의 장구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앙드레 지오르당은 생물학적 유전을 문화적 유전에도 대입시킨다. ‘생명의 역사가 내 세포 안에 언제나 분명하게 현존하고 있듯’, 문화적 유전자인 신화 또한 격세 유전적 기억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진성은의 작품은 이러한 육체적 정신적 잠재성이 현실화된 것이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0년 봄호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