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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사람들 전 / 신화에 의한 역사의 갱신(2)

이선영

(1편에서 계속됨)


3. 작품들


➀ 연극의 무대; 쉴라 고우다, 쑨위엔 & 펑위, 정정주, 피터 바이벨, 정만영


닫혀 진 공간에서 연출된 연극적 상황이 두드러진 작품 군은 ‘닫혀있음으로서 열린’(블랑쇼)의 역설, 즉 셀링이 말한 ‘유한 속의 무한’을 따라 복합적 은유로 확장된다. 쉴라 고우다(인도)의 [dark room](2006/ 2020년 재현)은 겉으로는 작은 신전처럼도 보이지만, 타르를 담는 통을 펴서 판자 집처럼 만든 방이다. 실제 인도 빈민의 집에서 착안한 이 형태는 기어서 들어가야 하는 취약한 공간이다. 그러나 관객이 안으로 들어가서 천정을 보면 어두운 공간에 별이 가득하게 펼쳐진다. 드럼통은 땅속 깊은 곳에서 채굴된 유기물의 잔해를 저장하는 용기이며, 인류에게 빛을 포함한 에너지를 제공한다. 인류는 자연 에너지를 활용하여 어둠을 극복하고 24시간 돌아가는 현대사회를 도래하게 했지만, 이러한 발전이 인간성에 내재한 어둠까지 몰아내지는 못했다. 쑨위엔 & 펑위(중국)의 [no way](2015)는 온통 검게 칠해진 방 안에 의자 두 개를 마주해 놓았다. 천정 위에서는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데, 300도로 가열된 테이블 철판은 물을 즉시 수증기로 변환시킨다. 고요한 가운데 긴장감이 감도는 이곳은 취조실 같은 분위기다. 그것은 진실의 탐문인가 고문인가. 




쉴라 고우다Sheela Gowda, Darkroom다크룸-광주, 2020(concept 2006)



쑨위엔_펑위, No Way, 2015



정정주, 응시의 도시_광주, 2020



피터바이벨, Video Lumina, 1977(concept 1972)



정만영, 순환하는 소리, 2020



정정주의 작품 [응시의 도시](2020)는 5.18당시 사건의 무대가 되었던 실제의 건축 모델을 축조하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작은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관객을 무대에 통합시킨다. 항쟁이 일어난 장소부터 시체들이 안치된 장소까지, 광주사람들은 다 알만한 장소들이다. 이제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음험한 감시 사회의 모델은 이제 알아서 규범을 지켜야 하는 조절사회로 이행했다. 피터 바이벨의 작품 [신음하는 돌](1969)은 전시장 곳곳에서 설치되어 의도치 않은 장소에서 신음, 울음, 외치는 소리 등이 들린다. 또 다른 작품 [video lumina](1977)는 구형 모니터 에서 바라보는 눈이 나타난다. 두 개가 아닌 하나의 깜박거리는 눈들은 무엇인가 비밀스러운 장면을 목격한 것 같은 모습이다. 목격된 사건에서 비롯된 고통은 말이 아니라 소리로 들려온다. 정만영의 [순환하는 소리](2020)는 수도꼭지 여러 개가 구불구불한 호수로 연결되어 있다. 관객이 수도꼭지를 틀 면 작가가 광주에서 채집한 소리들이 나오고 잠그면 멈추는 사운드 설치다. 새소리부터 5.18 관련 시가 낭송되는 소리 등 다양하다. 국가 폭력 사태에 자발적으로 봉기한 광주 민중들의 풀뿌리 연결망은 흐름을 막아서는 영토화에 저항한다. 복잡한 도관은 탈주의 궤적이기도 하다. 

 

➁ 그림자 극장;  마사엘라 멜리안, 뮌(김민선 & 최문선), 조덕현, 오순미


빛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이 전시에는 그림자 극장 같은 분위기의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가려진 빛에 갇혀 사는 동굴 인이 등장하는 ‘플라톤의 동굴’같은 유명한 철학적 비유도 있지만, 이제 빛이 편재하는 만큼 어둠도 편재한다. 어둠은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마사엘라 멜리안의 [lunapark](2006)는 테이블 위에 유리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형태의 투명한 용기들이 모여 있고 빛이 비춰져 그림자가 벽면에 투사된다. 움직이는 빛이 반투명한 대상을 비춰 생겨난 그림자들은 무지개빛을 머금은 빛의 도시이다. 화려하면서도 음울한 느낌의 도시를 연상시키는 풍경은 누군가의 유토피아는 다른 누군가의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뮌(김민선 & 최문선)의 [auditorium](2020)은 관객이 들어가서 볼 수 있는 원형 진열장 형식인데, 밖에서는 그림자도 볼 수 있다. 둥글게 도는 좌대 위에 오브제들이 보이고, 고정된 것도 있다. 5.18은 물론 80년대 전반의 문화와 관련된 기록들과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작이다. 뜨거운 사건과 차가운 일상이 고르게 분포된 수집물들은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 면 먼 40년전 세상에 대한 추리적 상상력을 작동시킨다. 




미샤엘라 멜리안, 루나파크-광주, 2020



뮌, 오디토리움(광주), 2020



조덕현,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티나, 2020, 설치 퍼포먼스



오순미, 불안전한 평정, 2020



조덕현의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2020)는 80년대 시위문화의 한 단면인 돌을 쌓아 놓고 관객들로 하여금 하나씩 집어 들고 제단 위에 얹게 한다. 제단 뒤로 돌아 가면 스크린이 펼쳐져 다른 관객의 행위가 그림자 연극으로 비춰진다. 배경음악은 윤이상이 5.18 광주에 헌정한 곡이다. 오순미의 작품 [불안정한 평정](2015)은 관객이 올라갈 수 있는 원형 무대 위에 쏟아지는 빛을 보여준다. 글자들이 파인 둥근 구가 천정에 설치되어 그 그림자가 어두운 방으로 퍼져 나간다. 정확히 읽을 수는 없지만, 일반인의 욕망과 관련된 문장들이 새겨져 있다. 바닥의 구조물 위에 선 관객은 그 위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게 되는데, 수평을 맞출 때 암전된다. 평정을 이루는 극히 짧은 찰나에 욕망의 언어들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➂ 징후적 이미지; 조정태, 길종갑, 공성훈, 안두진   


회화 작품들은 광주라는 오래되고 아름다운 도시가 맞은 불길한 징후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별이 가득한 밤을 표현한 조정태의 작품은 전시 부제와 직접 관련된다. 조정태의 [별이 된 사람들](2020)은 전시 부제와 동명의 작품으로 194x1042cm의 대형 화폭 아래에 펼쳐진 무등산과 광주 시가지 위로 화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짙푸른 하늘이 시야를 시원하게 뚫어준다. 여러 패널을 이어서 약간 휘어지게 설치한 이 작품은 작가가 생각하기에 다소간 형식적으로 치러지는 듯한 5.18관련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하늘을 봤을 때의 경험을 반영한다. 길종갑의 최근 작품 [광주](2020)는 조정태의 [별이 된 사람들](2020)과 마주보고 설치되어 있어서 그 의미를 증폭시킨다. 그는 강원도에 사는 농부이자 화가지만, 매해 5월이 되면 광주에 와서 자기만의 풍속도를 그려왔다. 무등산과 금남로 등이 보이는 광주의 그림지도에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저력이 스며있다. 산과 물이 아름다운 빛의 마을 풍경에는 군데군데 불길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아름다운 장소에서 벌어진 사건은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하늘에 가득한 별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은 지상에 남은 자들에게 빛을 던져줄 것이다. 




길종갑, 광주, 2020, 캔버스에 아크릴릭, 270x940cm



공성훈



서로 다른 시기에 제작된 공성훈의 작품들은 각각 흐린 하늘(2013), 무궁화 꽃 위에 비행기가 지나가며 생긴 직선의 구름(2014), 숲 속 바위 위의 촛불(2012) 등이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이번 전시의 맥락과 관련하여 자연적 현상에서 투사된 역사적 알레고리로 읽혀진다. 안두진의 작품 [먹구름이 몰려오는 어느 날](2011)은 성스러운 도시를 비추는 빛이 먹구름에 가려지는 서사시적 풍경이다. 그것은 사건 전야의 불길한 징후를 보여준다. 작품 [지평선](2011)에서는 원통형 구조 안쪽에 그려진 파노라마적 풍경을 펼쳐져 있다. 이 둥근 구조물은 직선적 역사를 순환적 신화로 바꾸어 놓는다. 지평선이 둥글게 이어진 스펙터클한 풍경에는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징후가 보인다. 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오렌지색 건축 구조물 사이에 촘촘하게 배열한 작은 오브제들은 대전투를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는 듯 긴장된 모습이다.

  

➃ 시간 여행; 장동 콜렉티브(김소진 & 이하영), 오재형, 연기백, 채우승, 정광화


역사는 어떤 작가들에게 일상으로 나타난다. 역사는 새로움이고 일상은 반복이다. 예술은 역사의 편에도 일상의 편에도 섰다. 어떤 사건을 1년에 하루만 기억한다면, 그것은 기계적 반복에 해당하며, 그 사건은 잊혀 진 것과 다를 바 없다. 장동 콜렉티브(김소진 & 이하영)의 3 채널 비디오 작품 [5월 식탁](2019-20)에는 ‘밥 먹듯이 기억하는 5월의 광주  5월 식탁’을 제시한다. 마루 위에 놓인 5개의 작은 소반 위 모니터에서는 나물과 국수 등 음식 만드는 장면 나온다. 외할머니로부터 5.18을 경험한 일반인들이 5월에 먹은 음식들에 대해 듣고 음식 만들어 먹으며 5월을 기억하고자 한다. 당시 시민들이 나눠먹던 주먹밥을 연상시키는 쌀도 한 봉지씩 가져가게 했다. 그것은 이들에게 ‘5월을 기억하는 새로운 방법’이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의 기억 5월’이다. 오재형의 2채널 영상작품 [봄날](2020)에는 광주 곳곳을 배경으로 무용수들이 춤과 행위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출연진들은 소설 [소년이 온다]를 함께 읽고 마치 죽은자가 광주에 다시 온 듯한 상황을 표현한다. 당시 도청에 있었던 어머니의 체험도 함께 녹아 있다. 




장동콜렉티브, 오월식탁, 2019-2020, 5채널비디오



오재형, 봄날, 2018-2020, 2채널비디오



연기백, 푸른언덕, 2020



채우승, 백색의 방, 2003-2017



정광화, 라 팔레트, 2020



자개 장농 문짝을 분해해서 설치한 연기백의 [푸른 언덕](2020)은 1980년 당시 여느 집에도 하나쯤은 있었을 법한 전통 공예품을 활용한다. 버려진 자개장에서 자개 하나하나를 떼어내서 3차원으로 배열한 작품은 승천하는 듯한 기운마져 느껴진다. 조각조각 하나하나 발굴하듯이 재구성된 빛을 머금은 사물은 멈춰진 시계처럼 어떤 순간을 예시한다. 떨어져 나온 문짝만큼 일상이 단절되었을 광주는 사물의 어법으로 말해진다. 기둥이나 벽에서 흘러내리는 옷자락 같은 것을 설치한 채우승의 작품은 수수께끼 같다. 여기저기 어중간하게 걸쳐진 장막이 걷히면 감춰진 진실은 드러날까. 본질이 아니라 가면 속의 또 다른 가면이 계속 나타나지는 않을까. 작품 [백색의 방](2003-2017)에는 벽과 같은 하얀색이라서 스며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한 부분적 흔적들이 보인다. 천정 부근에 앉아있는 인물상은 전지적 시점으로 모든 상황을 알고 있을 듯하다. 전시장 한 켠에 세워진 석고로 만든 종이꽃이 상여에 달 던 장식물임을 떠올릴 때 추모의 분위기는 더해진다. 정광화의 [la palette](2020)는 넓은 탁자 위에 영험한 풍경이 펼쳐진 듯한 모습이다. 석고가 물을 만나면 굳는 성질을 이용한 이 작품은 수증기를 계속 발생시켜 굳어져 가는 지형도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에서 망각을 본다. 검은 공간에서 백색 망각이 진행되는 과정이다.

  

➄ 비극에서 희망으로; 하태범, 천경우, 원성원, 임옥상, 전원길, 김현수


하태범의 [시리아2](2016)는 세계의 재난지역을 소재로 한 시리즈이다. 그는 작품명에 장소를 밝히지만, 재난 상황은 어느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5,18 또한 광주에 한정되지 않는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비슷한 갈등으로 비슷한 충돌이 벌어진다. 그가 재난지역의 자료를 활용하여 재구성한 정교한 구조물에서 피 튀기는 사건들은 하얗게 탈색 되어 있다. 탈색된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기억되지 않은 역사는 비극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천경우의 [사과의 테이블](2018)과 [100개의 질문](2011)은 설치된 작품에 진입한 관객이 후미진 곳의 책상에서 메시지를 쓰고 틈에 넣으면 세단기로 잘라져 그 결과물이 검은 거울 테이블 위에 수북하게 배열되는 작품이다. 벽에는 예/아니오 로만 답할 수 있는 100가지 질문이 적혀 있다. 그것은 소통에 있어서도 잔인하면서도 강압적인 면이 있음을 암시한다. 다수의 민간인 희생자를 낳은 가공할만한 국가 폭력 사태가 이제는 세세한 증거들이 필요한 지루한 법적 공방 같은 것이 된 것과 같은 차원이다. 원성원의 작품 [언론인의 바다], [공직자의 얼음기둥], [IT 전문가의 물풀네트워크], [금융인의 돌산](2017)은 언뜻 그림 같지만, 절묘하게 짜 맞춰진 사진 꼴라주다. 작가는 가상이든 현실이든 자명하게 주어지는 것이란 없고, 퍼즐처럼 맞춰져야 함을 보여준다. 특히 [언론인의 바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건질 수 있는지 묻는다. 




하태범, 시리아 시리즈, 2016



천경우, 사과의 테이블, 2018-2020, 설치 퍼포먼스



원성원, 타인의 풍경, 2017



 전원길, 백초를기다리다, 2020



임옥상의 작품 [광장에서 2](2019)는 300x990cm의 거대한 화폭에 80년 광주와 그 이후에 전개된 촛불혁명을 연결시킨다. 55개의 캔버스를 이어 만든 거대한 화면에는 구호외치는 시민들의 모습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흙을 덮어 얇은 부조처럼 이미지를 새겨 넣었다. 소실점 부근에 광화문이 보이고 촛불을 상징하는 듯한 밝은 원들이 둥실둥실 떠있는 빛의 바다는 광주의 봉기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전원길의 작품 [그때 거기에서 핀](2020)은 연약한 식물이 철판을 뚫고 나온 듯한 모습을 표현했다. 식물 주변의 크랙을 선명하게 표현하여 쇠를 뚫는 민초의 힘을 강조한다. 도청 등 5.18 관련 장소에서 채취해 온 흙에 잡초를 심었는데, 잡초가 자라는 백시멘트 바닥의 구멍은 총 자국이 연상된다. 안성에서 광주까지 곳곳의 휴게실에서 흙을 채취하여 심은 잡초들은 전시 시간 중에 무성하게 자란다. 김현수의 [백련-범문화적 의식](2015)은 550x260cm 크기의 활짝 핀 백련의 이미지다. 이 작품은 평범한 조각 작품이기 보다는 퍼포먼스의 도구이다. 함께 설치된 영상에서는 유럽의 여러 장소—광장, 수도원, 미술관 등--에서 관객이 참여한 퍼포먼스가 함께 나온다. 꽃을 가운데 두고 108배를 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하얀 백련은 빛을 가득 받은 모습이며. 빛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매해 다시 피는 꽃나무는 재생을 상징한다. 오월 광주는 역사를 넘어 신화의 지평으로 나아간다. 


4. 기념; 역사와 신화


전시장 초입에는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미술관에서 자체 제작한 인터뷰 아카이브가 흘러나온다. 앉아서 적으면서 들으면 좋을 나무 탁자 안의 모니터에서는 상징성을 가진 14명의 인물이 5.18 경험에 대해 살아있는 목소리로 증언한다. 전시된 작품들이 초역사적 지평까지 확장되어 있다면, 5.18의 역사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이 영상이 담당한다. 미술관 여러 곳에서 나뉘어 상영되는 인터뷰에는 5.18을 겪지 않았던 20-30대도 출연한다. 그들은 지난 40년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올해 맞은 ‘40주기’ 기념 전시는 앞으로도 100주기, 200주기 등이 가능할 것임을 알려준다. 군사독재의 서슬이 퍼렇게 살아있을 때는 국가 폭력에 맞서 싸우다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기족이나 시대의 어둠을 걷어내려는 소수 예술가들의 투쟁적 실천이었을 기념 행위가 40여년이 흐르는 동안 점점 대중성과 보편성을 획득한다. ‘5.18 광주’는 이제 금기어가 아니다. 




김현수, 백련, 2006, 설치 퍼포먼스



봉건제에 저항하는 수많은 민중이 피를 뿌렸던 프랑스 대혁명을 축제로 즐기고 기념하는 프랑스 국민들을 생각해 보라. 한국에서도 얼마 전의 촛불혁명이 축제처럼 진행된 점은 전 세계적인 관심사이기도 했다. ‘별이 된 사람들’ 전 또한 역사의 피해자로서의 지역 정서를 넘어, 시대의 어둠을 극복하기 위해 먼저 용기를 낸 이들을 보다 광대한 지평에 배치한다. 매해 추가되는 1년이라는 시간은 역사지만, 다시 돌아오는 1년은 신화이다. 대표적인 일상의 신화가 제의일 것이다. 이제 제의 또한 점차 사라지고 개인적 휴식을 중시하는 흐름은 현대가 추동하는 세속화의 정도를 말해준다. 그러나 세속성만이 세상의 전부일까. 만약 그렇다면 예술이 가능할까. 아니, 사소한 기념 행위조차도 가능할까. 세속성과 성스러움은 역사와 초 역사처럼, 그리고 이 전시가 비유하고 있는 빛과 어둠처럼 서로의 짝패이다. 중심과 주변의 관계는 변화하지만, 어느 하나도 단독으로 서있을 수 없다. 종교를 부분적으로 이어받은 예술은 딱딱한 형식적 기념식이 아니라, 기념해야할 사건과 내재적인 대화하고자 한다.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스스로 역사철학 입문이라고 밝히는 [영원회귀의 시간; 원형과 반복]에서 기원의 신화적인 시간, 위대한 시간으로 주기적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전통사회의 향수를 분석한바 있다. 부제인 ‘원형과 반복’은 구체적인 시간, 즉 역사를 거부하려는 의지를 압축한다. 기원을 재현하고 원형을 반복하려는 의지에서 보수주의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엘리아데의 주장이다. 특히 부질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표류하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근원적인 시공간으로의 주기적 회귀에 의한 갱신이다. 이를 통해 화석화된 과거는 생생하게 현재할 수 있다. 근원적인 시공간은 새로움의 역사에 의해 묻혀 진 것이다. 모더니즘의 추동력이 고갈된 현대. 이제 예술은 시간(역사) 자체를 갱신하는 초역사적인 모델(신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시의 작품에서도 순환주기를 가지고 나타나는 별의 이미지나 ‘빛의 마을’ 광주의 이미지, 그리고 일상의 신화와 자연의 순리, 권력에의 의지와 반작용 등에서 초역사적 모델은 선명하다. 






전시장 입구



역사는 초역사적 맥락에 놓여 의미화 된다. 엘리아데는 역사만큼이나 현실인 신화의 위상에 대해 인간 실존에 대한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가치 부여를 읽는다. 80년 5월 광주에서의 민중의 투쟁과 그에 대한 이후의 해석은 돌발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신화적인 전범의 반복이라는 점이다. 무엇인가를 기념한다는 것이 우주 창조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인간 문화의 중심을 이뤄왔던 의례가 그 예이다. 엘리아데는 어떤 사물이나 행위는 하나의 원형을 모방하거나 반복하고 있는 한에서만 실재적이 된다는 관념을 소개한다. 그에 의하면 실재는 오로지 반복이나 참여를 통해서만 획득된다. [영원회귀의 시간]에 의하면, 전통적인 인간에게 있어서 원형적인 모델의 모방은 원형이 최초로 계시되었던 신화적 순간의 재현이다. 모든 제의는 신성한 원형을 모방한다는 것, 원초적인 통일성을 복원하려는, 달리 말하면 창조 이전의 전체성을 회복시키려는 것이다. 


가령 대표적인 민중미술가인 오윤이 [미술적 상상력과 세계의 확대]에서 설득력 있게 개진했듯이, 리얼리즘과 실증주의를 거슬러 민중의 혼이나 기(氣)를 담으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될만하다. ‘껍데기의 사실성이 아니라, 총체적 사실성의 획득에로 나아가야 한다’는 오윤의 주장에는 어떤 초역사적 모델 또한 깔려있다. 엘리아데는 역사를 신화로 변화시키는 기제가 역사를 감내하기 위하여, 다시 말해 당대의 시건들을 감내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즉 하나의 사건이 신화로 변형되는 과정에서, 역사로 하여금 좀 더 깊고 풍요로운 소리를 내게 해준다는 점에서 신화가 더 진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령 기념 행위의 핵심에 놓인 기억의 예를 들어보자. 엘리아데는 아무리 중요한 사건일지라도, 그자체로서의 역사적인 사건은 민중의 기억 속에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고 본다. 즉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은 그 사건이 신화적인 모델과 근사한 경우에만 시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전시 타이틀



80년대의 리얼리즘 미학이라면, ‘전형’이나 ‘전망’이라고 정의하고 싶었을 이러한 모델은 ‘역사보다도 더 진실한’ 예술의 본질이다. 해마다 재현되는 기념적 행위는 ‘낡은 인간의 제의적인 죽음과 그에 뒤따르는 새로운 탄생이라는 의미’(엘리아데)를 갖는다. 예술은 이처럼 ‘우주창조의 반복을 통한 삶과 세계의 갱신’을 통해 ‘인간은 우주창조와 인류창조의 동시대인’(엘리아데)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처음에서부터 역사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혼돈으로 진입하는’(엘리아데) 예술의 핵심이기도 하다. 나머지들, 즉 사건의 자세한 규명과 증명은 실증적 과학의 몫이며, 역사책에 기록될 정보들이자 예술가들의 참고사항이다.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천체의 시간대에 재맥락화 한 ‘별이 된 사람들’ 전에는 그동안 봉건주의나 신비주의, 심지어는 퇴행 등으로 명명되며 악역을 맡아왔던 신화의 순기능이 드러나 있다. 특히 신화는 ‘역사에 대한 공포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엘리아데) 현대인이 뽐내는 자유, 그리고 우리가 새로움으로 믿고 있지만 그다지 창조적이지 않은 가상들을 걷어내는 중심 추 역할을 할 것이다.  

 

 출전; 광주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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