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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택 / 세계의 시작과 일상의 지속

이선영

세계의 시작과 일상의 지속

  

이선영(미술평론가)


  

솟아오르는 해와 뛰는 말의 모습이 담긴 김삼택의 작품들은 무엇인가 시작되는 순간의 설렘을 담고 있다. 광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도시든 들판이든 웅장하고 경이롭게 다가온다. 하늘을 치르는 높은 타워가 함께 담겨 있는 일출과 이국적 풍광 속 가축 떼의 모습은 현대인이건 (현대에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유목민이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모습이다. 세계적인 대 재난에 의해 요즘처럼 일상이 단절된 때, 해가 매일 뜨고 지고, 가축 떼들과 목자들의 건강과 안위가 유지되는 모습은 그자체로도 위로가 된다. 지구환경의 변화로 태양빛은 도시에 도달하기 힘들 수도 있고, 더 이상 유목민이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염려해야 할 정도로 지구 환경은 급격하게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업으로 삼는, 즉 작업이 일상인 김삼택 또한 그런 ‘일상적’ 장면들을 포착하기 위해 반복해서 작업했다. 작가가 같은 장소를 수없이 찾아간 이유는 ‘태양은 매일 떠오르지만 시간을 맞춰 하늘을 올려다보기엔 우리의 삶은 너무 고단하기’ 때문이다.

 



김삼택, 번영을 위한 해맞이 1500x3750, 2017



김삼택,축제의 날 59 x110, 2016



세계는 매번 다시 시작되지만 현대인은 그에 무감각하다. 같은 일출이라고 해도 뉘앙스가 다른 여러 장면들, 몽골 지방에서의 사계절이 오롯이 담겨 있는 풍경들은 일상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보여준다. 특히 숭고함이 두드러진다. 작가가 이 전시에서 주목한 시작 자체가 숭고한 개념이다. 카오스에서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 ‘빛이 있으라’고 호명한 신적 행위는 숭고하다고 여겨진다. 이후에 진행된 창조는 최초의 행위를 반복한 것이고, 반복인한 재현될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시작은 재현될 수 없고 제시될 따름이다. 김삼택이 포착한 일출은 매순간 다르다. 그가 만난 일출은 ‘부끄러운 아기 볼처럼 붉게 물 드는 날도 있었고...어미의 품처럼 포근하기도 했으며, 다가서기 두려울 정도로 광활한 빛을 내뿜기도 했다’. 미와 숭고를 구별한 미학자들의 관점에 따르면, ‘아기 볼’이나 ‘어미 품’이 아름다움이라면, ‘다가서기 두려움’이 바로 숭고다. 그런데 작가에게 가장 기억에 남았던 풍경이 호주의 레드 사막이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계획에 바다 사진이 포함되어있는 것을 볼 때, 그는 숭고에 방점을 찍는다. 


사각 프레임이라는 유한한 공간 속에 무한을 담으려는 것이다. 해와 말 사진은 공통점도 있지만 미묘한 대조군을 이룬다. 그것들은 대조를 통해 연결된다. 먼저 현대 도시의 일출풍경을 살펴보자 [구리타워의 환희](2015)에서 태양 빛은 지상의 모든 것을 실루엣으로 만든다. 산보다 더 크게 나온 인간의 기념비도 마찬가지이다. [번영을 위한 해맞이](2017)에서 화면의 3/4이상을 차지하는 구름 낀 하늘은 능선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빛에 조응하여 변화무쌍하게 나타난다. 지상과 하늘을 연결시켜주는 듯한 타워의 실루엣이 포인트다. 구리타워를 화면 한가운데 배치한 [희망의 구리시](2017)는 마치 하늘과 땅을 가르는 영험한 힘이 뻗쳐 나오는 듯하다. 몽골의 풍경에서 말은 비록 가축이지만, 집단 사육의 틀을 벗어난 자유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말은 오랫동안 인간에게 중요한 가축으로 간주되어 왔다. 고고학적 기록에 의하면, 말은 기원전 5000년 전후에 우크라이나 평원에서 가축화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말은 식용, 농사와 이동 수단, 전쟁과 스포츠 등 여러 측면에서 인간과 함께 해왔다. 




김삼택, 질주의 본능 59 x110, 2017



김삼택,  출발 59 x110, 2017



목자와 말떼들이 있는 [대지의 생동감](2018)에서 작가는 초원지대의 생산력을 견인했던 가축들과 고단하면서도 낭만적으로 보이는 유목민의 활동을 담아냈다. 마치 관객 앞으로 달려올 듯한 말 떼들의 모습이 실감나는 [물보라](2017)나 [역동의 말몰이](2018)는 마치 영화의 벤허의 대전차 경주같은 명장면을 연출한다. 말떼를 조종하는 목자들의 행위는 시급한 생존의 문제와 달려있기에 힘찬 것을 넘어서 치열하다. 하지만 말과 사람은 여유 있는 동행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길을 따라 줄지어 이동하는 말들이 있는 [희망찬 돌진](2017)이나 지평선을 따라 줄지어 이동하는 말을 마치 연속적인 동작으로 보여주는 [매력적인 발굽소리](2018)가 그것이다. 김삼택의 작품에서 도시와 자연, 서양과 동양이 수직과 수평의 구도 속에 잡혀있다. 물론 작가는 도시의 구조물보다 자연 부분을 더 많이 할애하고, 자연 속 삶에도 치열한 인간의 생산 활동이 감지된다. 


구리시와 페상은 모두 동양에 있다. 하지만 도시 일출 사진에서 빠지지 않는 수직의 타워는 대개 검은 실루엣으로 잡혀서 십자가를 닮은 것은 차치하고, 저 높은 곳을 향하는 진보/발전주의의 단면으로 보여 진다. 어떤 지고한 목적을 향한 끝없는 진보/발전주의는 어디에서 어느 민족이 실행하든 서구의 대표적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동양에 전형적인 윤회사상은 선적 진보가 아니라 돌고 돈다. 그것은 수평적이다. 몽골 유목민의 말떼 몰이는 사계절의 차이를 넉넉히 품어내는 드넓은 평원의 수평적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말떼들과 목자는 지평선을 타고 천천히 이동하거나 화면 깊숙한 곳에서 전경으로 달려 나온다. 높이가 아니라 삶의 굴곡 면에 충실하다. 말떼몰이를 통해 얻는 생산력은 현대 도시에서의 노동에 대한 대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적을 것이지만, 진보/발전주의의 한계가 명확하게 다가오는 현재, 자연과 융화되는 삶은 초라하지 않다. 유목은 21세기에 다시 부각되는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다.

                

  

출전; 구리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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