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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락 / 발견된 오브제로 퍼즐 맞추기

이선영

발견된 오브제로 퍼즐 맞추기

  

이선영(미술평론가)


  

최규락은 도예를 전공했으나 최근 작품에서 도예의 비중은 낮아졌다. 도자가 아니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나름의 확신이 선 이후의 일이다. 이번 전시는 올해에 집중적으로 수집한 사물들로 채워졌다. 도자예술이 그릇 만들기라는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 난지는 오래되었지만, 최규락은 무엇인가를 담는다는 기능 만 남기로 다 변형시켜가고 있다. 이전의 도자 작품에서도 이질적인 것이 접붙여지긴 했지만, 그래도 최종적으로는 도자작품이라 할만한 동질성과 통일성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쓰레기를 포함한 다양한 사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에게 예술작품은 더 이상 ‘그릇’은 아니지만, 무엇인가를 담는다는 점만 확실하다. 이번 전시 제목인 [시차적 관점]은 작가의 생각을 담으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내가 본 사회와 시대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 짧은 대답 안에 ‘나, 사회, 시대, 이야기’등의 개념이 들어가 있지만, 현대미술에서 그런 것들을 작품에 담는 것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   




im hungry 100* 35* 15 cm



put on a happy face 30* 30* 60



최규락의 작품은 풍자적이다. 이번 전시작품에서 풍자의 대상은 크게 세 갈래이다. 하나는 그가 오래전부터 해왔던 정치풍자이고, 두 번째는 예술분야에 대한 풍자, 세번째는 예술과 경쟁관계에 놓이기도 했던 대중문화에 대한 풍자가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부록처럼 동물들이 등장한다. 정치와 대중문화에 대한 풍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일상적 문화에 대한 것이고, 예술에 대한 풍자는 예술에 대한 자기비판이다. 예술은 신화, 종교, 그리고 정치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한 이래 스스로를 겨냥해왔다. 종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예술을 위한 예술 뿐 아니라, 과학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형식을 중시하는 흐름 또한 그 스스로를 지시했다. 새로움은 예술의 역사 내부에서의 자기 반란이며, 대중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무엇에 대한 변화인지를 알려면 그 내부에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전문인의 영역인 것이다. 이번 전시작품에서 예술에 대한 풍자를 위해 호명한 작가들이 대중적 인지도가 있다는 점은 풍자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을 염두에 둔 것이다. 


정치인이나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은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 작가가 추가하는 부분에 대해 소통하기 용이하다. 최규락의 작품이 풍자와 사물의 수집에 기대는 점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진다. 장점은 기존의 코드를 사용함으로서 대중적 소통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제작에 대한 어려움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풍자의 대상에 의지해야 한다는 점, 수집의 목록은 늘 부족하기 마련이라는 점이 한계이다. 누군가를 비판하면서 다시 한번 그것을 보여줘야 하는 점은 난감하다. 그것은 비판과 숭배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진천에 있는 그의 작업실 입구에 세워진 슈퍼 히어로 복장을 한 전직 대통령의 모습은 세계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지 않겠는가. 이전 작품에서 김구, 안창호, 노무현 같은 정치가들의 모습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이며, 이번 전시에 포함된 유관순 열사의 초상 또한 그렇다. 수집의 경우 어려움은 더 커진다. 




viva la vida (인생만세) 100 *43* 20



7-2-3 권총 30* 27 *17



그것은 이미 사물들로 가득한 그의 작업실 상황에 나와 있는데, 개인의 공간에 수집품목을 무한히 쟁여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찾으려 하면 안 찾아지는 것이 수집물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자신의 욕망에 딱 부합하는 오브제를 시적(詩的)으로 여기며 작품화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끈질긴 도시의 산책자였기 때문이다. 최규락도 올해에 작품 스타일을 변형시키면서 제주도를 비롯해서 동해, 서해 등을 많이 돌아다녔다. SNS에 작품 사진을 올려 소통하기도 하는 젊은 세대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자료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인터넷 붙여넣기 기능 때문에 얼마나 많은 글들과 작품들이 비슷해졌는가. 직접 다니면서 수집하는 방식은 인터넷이라는 공통의 아카이브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기에 소중하다. 필립 블롬은 [수집]에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추구한 르네상스 시대에 수집의 장은 이전 시대와 달랐음을 지적한다. 그들은 이제 세계 발견의 장을 도서관보다는 시장으로 보았다. 


르네상스 인들은 어부들이 그물을 던져 건져낸 경이롭고 귀한 표본, 어부들이 알려주는 습성이나 이름 따위가 어떤 라틴어 문헌이 제공하는 것보다 훌륭하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필립 블롬은 아름답고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신기하고 불가해한 것을 찾아다니게 만드는 르네상스인들의 호기심이 고대학자들의 지혜 및 박식과 경쟁했음을 지적한다. 역사가 알려주듯이 르네상스인의 선택, 즉 오래된 자료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직접 구하려는 태도는 옳았다. 최규락은 직접 다니는 것 뿐 아니라 지인들에게도 소문을 내서 특이한 쓰레기(폐기물)이 있으면 그에게 먼저 연락을 하게 한다고 한다. 오브제로 쓰이곤 하는 폐기물은 말 그대로 쓰레기지만, 그중에는 보물 같은 쓰레기도 있다. 해안가에 떠내려 온 쓰레기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번 전시작품은 그자체가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생태계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다. 버려진 대상 중에 생명이 포함된 경우가 있는데, 그 또한 생명을 물건 취급하는 세태에 대한 풍자와 경고이기도 하다. 




금수강산 280* 80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45* 40* 40



작가가 아니라 지인들이 구해준 오브제는 한 번 더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오브제는 영감의 시작점이 되며, 생각지 못한 다른 오브제를 연이어 끌어들이게 한다. 그래서 그의 고민은 이러한 연속 점을 어느 선에서 끊어줘야 하는가이다. 사물은 예술에 비해 더 열려있기에 어디까지 한계를 지어야 하는지는 신기한 오브제의 발견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번 전시작품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드림 캡쳐의 재료가 된 둥근 오브제는 많은 것을 매달고 있다. 지인의 신고에 의해 수집한 자전거 바퀴는 세상을 돌고돌다가 그것이 딱 필요한 어떤 작가에 의해 또다른 순회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조차도 한계가 있다. 기존의 사물을 퍼즐삼아 퍼즐을 맞춰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늘 빈칸이 있기 마련이다. 최규락은 그 빈칸을 원래 자신의 전공인 도자예술로 메꾼다. 전체 작품에서 도자기 부분은 매우 적게 차지하지만, 맡은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점에서 그의 모태언어는 여전히 중요하다. 


피카소와 달리에 대한 작품에서 얼굴부분을 차지한 것은 도자 작품이다. 작가는 ‘시대의 자화상이 줄곧 주제’라고 밝히고 있다. 먼저 위인, 또는 정치가 담긴 작품을 살펴보자. ‘내가 보는 세상’으로서의 작품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은 중요하다. 작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유관순 열사의 모습이다. 다른 작품과 달리 흙으로만 이루어진 순수함이 있다. 그러나 몸통은 로봇 모양이다. 당시 10대 소녀로 제국주의에 대항한 결기 있는 성격을 그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달리 본다면, 위인에 대한 코드화된 이해에 대한 풍자일 수도 있다. 로봇 몸통을 한 유관순이 ‘변치 않는 우리의 마음’으로만 읽힐 수 있을까. 물론 예술작품은 작가가 발신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예술은 비효율적이다. 작가가 전시라는 공론장에 던지는 것은 열린 예술작품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american, dream catcher 200 * 75



작품 [아메리칸, 드림캐쳐]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평화에 대한 상징인 드림캐처에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상징들이 주렁주렁 메달려 있다. 원주민들의 수호상징은 그들을 지켜주었는가. 세계 제 1의 강대국이 만들어지기 위해 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있는 폭력의 역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임자 없는’ 대륙은 미국인이면 누구나 합법적으로 소지할 수 있는 권총으로 접수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타자를 정복하는 메카니즘은 타자들로 이루어진 합중국을 유지하는데도 활용된다. 대부분 합법적 시스템을 통해 지배되지만 조그만 균열이 나도 모순과 갈등은 드러난다. 흑인에게 겨누어진 백인의 총부리와 총의 배열은 작가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버려진 자전거 바퀴 하나에서 파생된 세계 질서에 대한 작가의 판단이다. 다음으로는 예술가 시리즈가 있다. 풍자적 예술이 나와 타자를 풍자한다면, 예술가들이 등장하는 작품군은 예술에 대한 풍자이다. 


최규락의 작품에서 신화화된 예술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피카소가 등장하는 작품 [7-2-3 권총]는 피카소는 자유로운 (남성)예술가로 여성 편력이 심했던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예술적 영감이 마치 여성인 양, 창조력이 마치 정력인 양 작업하고 살아왔던 작가였다. 그는 입체파로 미술사에 기여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순수한 입체파 시기는 동료 작가인 브라크와 공동으로 작업했던 불과 몇 년에 한정된다. 물론 그는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작가였고, 소년시절에 그린 그림은 사람들에게 경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입체파 보다는 청색시대나 장밋빛 시대의 그림이 더 대중적인 인기도 있었고 수많은 이즘과 재료를 실험했으며, 다작(多作)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전 생애 걸쳐 수많은 스타일을 실험했던 예술가를 이것저것 끌어 모아 꼴라주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울린다. 물론 작가는 남근을 연상시키는 권총을 가장 눈에 띄게 배치했다. 예술가, 특히 남성 예술가에 대한 풍자적 관점이 돋보인다. 




알레한드로(alejandro) 55* 30* 14



울진광어  1) 100* 30/ 2) 70* 30



태안악어 150* 50



비슷하게 정력적인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의해 고통 받았던 여성 예술가 프리다 칼로에 대한 작품도 있는 것을 보면, (남성)주체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관심은 지속된다. 피카소와 관련된 많은 사물들을 조합할 수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피카소 얼굴은 구하기 쉽지 않았을 터, 그것은 원래 최규락의 전공인 도자예술로 완성했다. 작가가 직접 만든 것을 빼고는 모두 알레고리가 있는 사물들의 조합이다. 그의 작품은 예술과 사물을 결합시킨다. 예술은 사물에 비해 비교적 의도가 명확하다. 반면 사물은 우연적이다. 최규락의 작품에서 양자는 상보적으로 작용한다. 작품 [i m hungry]에서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등장한다. 달리는 광대적 기질이 강했던 작가로, 대중에게 눈에 띄는 것을 좋아했다. 초현실주의는 난해하기 그지없는 이즘이었지만, 그는 평범한 형식을 택해 대중성을 확보했다. 작품 형식은 진부한 구상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재현적 언어를 투명한 창으로 삼아서 무의식이나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려 했다. 


흐물흐물 녹는 시계가 있는 작품은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의 하나다. 최규락은 길거리에서 오래된 시계를 줏자마자 달리가 떠올랐고, 그의 작품에 나오는 여러 요소들을 조합했다. 시계 대신에 치즈를 녹였다. 달리의 작품은 시간의 상대성을 상징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녹는 치즈로 바뀌면서 초현실주의의 기본 문법인 변화는 좀 더 직접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영원한 것은 없고 변화는 변질일 수 있다는 점이다. 꼴라주나 오브제는 입체파와 초현실주의의 발명으로 현대 미술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물론 현대미술이 있기 전 민속적 전통에 엄연히 존재하던 방법이었으나, 새삼스럽게 예술의 새로운 문법으로 체택된 것이다. 특히 꼴라주와 오브제는 르네상스에 확립되었으며 이후에 주도적이었던 재현주의를 전복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댜. 재현은 작가의 의도나 대상을 명확히 투명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꼴라주나 오브제라는 이질적 요소는 주체로부터 출발하는 모든 것을 불투명하게 한다. 




제주 조랑말, 200x200



제주 유기견 105* 90



그것은 무의미로부터 의미의 확장에 이르는 큰 범위에서 작동한다. 작품 [오아시스]에서는 83세에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터키의 유명 도예 작가의 흉상에 너른 자리를 붙였다. 주어온 스티로폼을 깍아서 대가의 품을 넉넉하게 만들고 그 품 안에서 작업하는 후배 세대들의 모습을 첨가했다. 다음은 대중문화에 대한 풍자이다. 예술과 대중문화는 근대 시대부터 경쟁관계에 있었다. 각자 자기 길을 가다가 모든 것을 뒤섞으려는 포스트모던한 흐름에 의해 다시 적극적으로 만났다. 새장에 갖힌 조커를 표현한 작품 [put on a happy face]는 새장 밖의 웃는 가면과 새장 안의 찡그린 배우를 대조한다. 가면에 내재된 분열의 요소를 표현하며, 실제로 이 배우가 그 배역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분열의 심각함을 알려준다. 실제 배우와 닮은 가면을 벗은 조커는 변신을 해야만 새장을 빠져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변신의 도구인 가면은 손에 닿지 않은 곳에 있다는 점이 비극이다. 


작품 [알레한드로]는 레이디 가가의 노래 중 사랑했던 연인이 동성애자라는 내용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연인을 잃은 슬픈 모습이지만 수집한 바이올린과 결합된 여가수는 여전히 화려하다. 마지막으로 동물 시리즈인데, 동물은 인간중심주의가 확립된 이래 타자화 된 많은 대상들 중의 하나이다. 작품 [울진 광어]에서 망가진 삽의 머리는 광어의 얼굴이 되었고 식물의 잎 새는 회를 뜨고 남은 가시들을 떠올리는 형태가 되었다. 작품 [태안 악어]는 우리는 악어를 실제로 보기 힘들다는 사실에 의해 기괴함을 더한다. 현대인에게 악어는 특정 상표를 통해서 더 자주 접할 수도 있다. 도예 작가인 최규락은 흙으로 악어를 그럴듯하게 재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거저것 모아 조립한 인공적인 악어는 악어의 실제를 더 정확하게 보여줄 수도 있다. 제주 해안가의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들만으로 구성된 작품 [조랑말]은 이제 유명 관광지로 자리잡은 제주도에 대한 역설적 인상이다. 조랑말은 제주도의 상징 중 하나이지만, 이제 상징은 순수하지 않으며 조립되는 것이다. 




oasis 290 *85 *80



oasis 290 *85 *80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에 가서 주로 쓰레기를 수집했던 작가의 선택은 처음에는 우연이었지만 나중에는 필연이 되었다. 쓰레기는 인간 삶을 나타낸다. 인간이 있는 곳에 반드시 쓰레기가 있다. 그렇지만 버려져서는 안 될 것, 또는 안 될 장소가 있다. 해안가에서 끝없이 도착하는 쓰레기는 원칙에 위배되는 현상이다. 작품 [하늘 보리]는 유기 견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담았다. 돌아온 백구라는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지만, 그런 염려 때문일까, 섬에다가 유기하면 되돌아올 일 없다는 믿음 때문인지, 제주도에 버리고 가는 유기견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떠밀려온 쓰레기로 구성된 유기 견 얼굴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더욱 슬퍼 보인다. 개의 얼굴도 바탕도 테두리도 모두 제주도에서 수집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이미지의 테두리를 금지마크로 둘러서 그런 나쁜 관례를 경고한다. 동물이 나오는 작품들은 위인이나 유명 예술가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소한 소재일 수 있지만, 최규락의 풍자정신은 거시적일 뿐 아니라 미시적인데 까지 그물망이 펼쳐져 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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