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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주 / 가상적 공공영역

이선영

가상적 공공영역

  

이선영(미술평론가)


  

건축설계 및 3D 모델링, 에니메이션, VR 필름 등을 활용하는 박윤주의 작품은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또는 보기 힘든 광대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한 공간을 흐르게 하는 시간 또한 잘 조율된 음악이다.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지만, 정말 그런 곳이 있다면 잠시라도 몸 담그고 싶은 멋진 장소들이다. 그것은 확장된 공공영역이기도 하다. 발 딛고 서서 살아가야 하는 지상적 존재에게 공간(시간도 마찬가지지만)은 가장 값비싼 자원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귀한 자원인 공간을 마음껏 주무르는 호사를 누린다. 무엇인가 설계하는 차원에는 유토피아적인 발상이 내재해 있다. 근대 문예사조사에서 건축 관련 선언문이 늘 이상주의에 가득 차 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이, 세계는 대체로 선한 의도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어지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파생된 존재로서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그 반대의 현실 또한 암시한다. 가상현실이라고 해서 우울한 현실은 완전히 떨궈낼 수는 없다. 




Corn and Wind_ Architectural narrative about the relationship, 3D animation, Single channel video 04min 22sec, 2021 



Corn and Wind_ Architectural narrative about the relationship, 3D animation, Single channel video 04min 22sec, 2021 



Corn and Wind_ Architectural narrative about the relationship, 3D animation, Single channel video 04min 22sec, 2021 



원래 지구는 그다지 좁은 곳은 아니었지만, 자연의 진화와는 구별되는 문명의 발전은 집중을 요구했다. 대규모 감염병 시대, 집중을 통해 발전해 왔던 현대가 ‘밀폐 밀집 밀접’을 피하라는 권고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박윤주가 가상세계에 구축한 또 다른 세계는 적어도 이미지 상으로 볼 때 지금의 우리를 괴롭히는 ‘3밀(密)’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원래 군사기술로부터 탄생한 가상현실의 사방을 두루 탐색하는 시선은 매끄럽게 이동하며, 시시각각으로 새로운 볼거리를 눈앞에 대령한다. 전방위적으로 탁 트인 시야, 생활의 때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정체불명의 대상들도 충분히 수납 가능한 넓은 실내, 방해받지 않고 띄엄띄엄 앉아서 각자의 일상을 즐기는 사람 등이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가상현실은 현실에서 결핍된 것을 마음껏 충족한다. 현실적 삶의 모든 크고 작은 투쟁은 각자 자기 자리를 만들고 지키려는 것에서 비롯된다. 가상세계는 공간 뿐 아니라 물건에 대한 욕망도 간접적으로 충족한다. 


작품 [Non Blue Sculpture]에 여기저기 놓여있는 대상들은 ‘사람들이 가장 선망하는 실내 아이템’(2020년 구글 애널리스틱 자료)을 근거로 배치되었다. 사놓고 안 쓰는 물건을 생각해보면, 포장이 딱 뜯어지는 순간까지가 구매된 상품의 역할이다. 이러한 잉여의 소비가 사라지면 자본주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욕망은 끊임없이 고무된다. 가상적 소유도 마음 먹기에 따라서 소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고 싶은 것을 모두 살 수도 없지만, 산다 해도 현실 공간에서는 그것들을 충분히 쟁여놓을 수 없다. 작가는 ‘소원성취의 한 방식으로서의 예술’(프로이트)를 실행한다. 박윤주의 작품은 따스한 햇빛과 청명한 공기, 살랑거리는 바람, 천사의 옷자락처럼 보이는 진기한 자연 현상인 오로라까지, 작가가 마음만 먹으면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다. 이 세계에서 자연은 사용자의 요구에 맞게 최적화되어 있다. 사막이든 바다든 허공이든 인공적 고안물에 의해 대안적인 삶의 터전으로 변화한다. 




서울미디어캔버스 전경



Red to Grey _ Architectural narrative about the object on fire, 3D animation, Single channel video 12min10sec, 2021



사각형 초원이나 바다 이미지는 경계 없는 실재를 주체의 의도에 맞게 오려진다. 그 중심에는 우주선을 닮은 듯한 인공 구조물인 건축적 세팅이 있다. 그 무대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매우 변화무쌍하다.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충족되고 그것이 놓인 대자연으로 출발하고 회귀하는 플랫폼이 된다.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담은 박윤주의 이전 영상 작품들이 삶의 중력에 의해 고난에 빠지고 파괴적인 결말을 맞는다면, 이 가상세계는 말 그대로 대안적이다. 중력이 대개 아래로 작동한다면, 가상현실 속의 요소들은 여러 방향의 연결망으로 이어진다. 현대적인 작품을 해온 덕에 고양 스튜디오에서의 레지던시가 14번째인 작가는 (현대적)유목민이다. 집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 없이 단기적으로 국내외를 떠돌며 작업하는 작가에게는 어떤 물건도 부담이 된다. 작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 외에 사사로운 물건도 소유하는 사치를 누릴 수 없다.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유한 계급론]에서 주장한, ‘과시적 소비’를 하는 부르주아의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런저런 물건들은 길 위의 유목민에게 낯설기만 하다. 


대신 작가는 어디서든 자신의 작품을 펼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 기기를 ‘현대의 유목 물품’(자크 아탈리)이 활용한다. 작업하는 삶을 선택함으로서 원천적으로 차단된 소유의 욕망은 파괴본능으로 나타난다. 특히 현대미술 작가가 전시를 위해 만든 작품은 폐기 대상 1순위가 되는 아픔이 있다. 박윤주의 작품에는 또 다른 작품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자신의 작업 뿐 아니라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동료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재능있는 자들의 수많은 노고의 결집체들이 사라지는 현장은, 사치스러운 파괴를 통해 소통하는 포틀래치(potlach) 축제를 연상시킨다. 격렬한 소통 빼고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상징적 교환이다. 인류학은 소유가 지배로 변화할 가능성에 대비한 부족들의 파괴적 축제를 기록한다. 인류에 의해 창조된 것 중 극히 소수만 화려한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으며, 그것들이 시간의 시험을 이기고 살아남은 것에는 우연의 역할이 컸다. 반면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하나 기획되는 가상세계에서 우연은 없다. 




Bogenraum episode, Single channel video 03’19”, Installation, Karlsruhe 2019 



Going Gone ,Installation with Performance , Imaginary Bauhaus exhibition, , Gorki Maxim theater, Berlin, 2015 


Going Gone ,Installation with Performance , Imaginary Bauhaus exhibition, , Gorki Maxim theater, Berlin, 2015 



Watermelon weight, single channel video 06’20”, Performative installation, Dresden Kunsthaus 2016



Black to Blue_Directivity as the demonstration, Installation with Performance, Two channel video 04’59”, 2017



박윤주는 거의 독학으로 미디어 관련 기술을 습득했다. 그녀의 작품은 대개 파일 형태로 보관되어 있으며, 유튜브를 비롯한 가상적 공공영역에 업데이트 되어 있다. 하나의 작품이기도 한 하나의 소스는 여러 맥락에 다시 펼쳐질 수 있으며, 소재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도 공유할 수 있다.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의 출품작이기도 한 [뿔과 바람]은 작품의 무대인 건축적 구조는 자신이 설계했지만, 그 내부를 이루는 대리석 질감이나 배경의 구름 낀 하늘 등 그 자체로 복잡한 질감을 모델 파일을 다운받아 활용했다. 오픈소스를 활용하는 작가는 혼자서 피라미드도 완성할 수 있는 수단을 구비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의 미디어 캔버스 사업에 스크리닝 된 작품 [노인과 바다]를 채우는 특이한 사물들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변형시켜 사용했다. 전시가 끝나고 폐기할 운명에 있던 것들이 여기에서 새로이 배치되고 움직인다. 아나로그 작업에서 파괴를 일삼았던 것을 생각하면, 자신의 작품을 포함한 작품들은 재생을 넘어서 환생한다. 


작품 [Red to Grey_Architectural narrative about the object on fire]에서도 나타듯이 산불로 몰사한 동물들을 소재로 해서, ‘사후세계를 디지털 가상세계에 비유하여’ 작업했다. 오프라인을 배경으로 한 파괴는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작품 [Bogenraum episode]는 유서 깊은 장소에 남겨졌던 사물들을 실내로 던져 깨부수는 영상으로 작가는 이에 대해 ‘물건의 장례식’이라고 말한다. 놀이이자 저항인 이러한 파괴 행위는 깨끗하고 고풍스러운 실내에서 벌어지기에 더욱 극적이다. 작품 [Black to Blue]은 포로수용소라는 폭력적 장소에서 던져진 물건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궤적을 남긴다. 작품 [Going_Gone]은 전시가 끝난 작품들을 참여작가들의 합의 아래 베를린의 유명한 극장 2층에서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장면이 있다. 삶의 중력은 전시가 끝난 작품을 쓰레기로 만들곤 한다. 작품이라는 열정의 집약체는 엔트로피를 늘려 나가면서 허공으로 사라져 간다. 




Pink to Brown, Single channel video 13’50”, installation, 2015 



Pink to Brown, Single channel video 13’50”, installation, 2015 



Non Blue Sculpture_비파랑 조각-굳센 어떤 존재방식3D animation, Single channel video 13’53”, Barcelona Spain 2020



작품이라는 것이 결국 자신의 분신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물건이 부서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만들고 없애는 행위의 반복에 대한 회의는 가상현실 기반의 작업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작가에게 가상현실은 도피이자 돌파였다. 그 점은 작가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작가도 열심히 하고있는 메타버스(metaverse=meta+universe) 등의 개념도 있듯이, 이재 가상 ‘현실’ 정도가 아니라, 가상 ‘우주’가 될 만큼 그 비중은 커진다. 집단 감염병 사태로 현실 공간에서의 육체의 위기가 이 추세를 급격히 앞당겼다. 독일에서 재택근무를 한 경험이 있는 작가는 전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노동방식이 가능함을 깨닫는다. 박윤주의 이전 작업에서 파괴는 어느 정도는 강제된 것이다. 여러 나라를 오가며 작업하는 작가는 거의 난민과 같은 처지에 몰리기도 할 만큼 ‘표류하는’(기 드보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작품만이 자신의 중심을 잡아주기에 더욱 작업에 몰입한다. 그것은 낭만주의 이래 근대 미술가의 운명이었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삶은 다른 사람이 대신 살아주는 것’이다. 


현실을 배경으로 한 영상에는 씁쓸하고 난감한 체험으로부터 비롯된 듯한 작품들도 많이 보인다. 작품 [Watermelon Weight]는 계단의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차림으로 왕래하는 가운데, 무거운 바퀴 가방을 끌고 등장하는 여자를 보여준다. 낡아 빠져 잠금쇠도 헐렁한 큰 가방을 끌고 계단에 오르다가 공공장소에서 사적 내용물을 다 쏟는 장면이 거의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 초입에 나오는 큰 여행 가방만큼 심란하다. ‘자유롭기 위해 비워야’ 하지만, 주체의 의지가 아닌 중력의 작동에 의한 사건은 폭력적이다. 작품 [15h_Under the shadow]는 ‘2017년 5월 독일, 작은 동네 구석까지 난민은 폭주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집세를 제때 내지 못한 이는 난민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는다. 공원의 그늘은 잠시나마 집이 되어주었는데, 15시간 동안 시간의 궤적을 따라 이동하는 그늘을 맞춰 누추한 살림살이도 재배열된다. 그 옆으로 한가로이 산책하는 어떤 가족이나 하이킹하는 남자는 지배 질서의 경계 내에서 안정적인, 그리고 합법적인 존재, 즉 정주민일까. 




Orange to orange_ the Old man and the Sea , VR 3D animation, Single channel video 20’53”, 2021



Orange to orange_ the Old man and the Sea , VR 3D animation, Single channel video 20’53”, 2021



Orange to orange_ the Old man and the Sea , VR 3D animation, Single channel video 20’53”, 2021



Orange to orange_ the Old man and the Sea , VR 3D animation, Single channel video 20’53”, 2021



작품 [Pink to Brown]에서 마구잡이로 깨지는 사물들과 함께 흘러나오는 자막에는 학대받은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러 장면이 느슨하게 연결된 결론이 모호한 열린 이야기지만, 박윤주의 작품에서 파괴 이미지는 파괴를 위한 파괴가 아니라 삶, 또는 예술하는 삶에서 비롯된, 중력만큼이나 필연적인 요소다. 이러한 영상 작품은 더불어 나오는 자막 또한 절박하다. 거기에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폭발적 분노와 시위적 몸짓이 깔려있다. 나의 산물이지만 저것들을 없애지 않으면 내가 위협받는 그 역설적 상황을 무한대로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대상이 변형되고 이동하는 등의 기본 방식은 아나로그나 디지털 방식이나 연속적이다. 현실 속에서는 중력과 폭력이 가상현실 속에서는 광대한 시공간적 좌표를 배경으로 매끈한 공간을 유영하듯이 나아가면서 부드럽게 변형하는 차이가 있다. 작품 속 푸른 하늘과 구름은 그곳이 아직 지구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아나로그 기반의 작품에서 자막 등으로 나오는 서사는 설명적이지만, 디지털 방식은 좀 더 시적이다. 각각의 현실에서 우연성과 필연성의 몫은 차이가 있다. 가상현실에서 우연성이 개입될 여지는 거의 없다. 어디에서 우리는 ‘자유의 공기’를 더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유목적 삶에서 비롯된 몸으로 체득된 가혹한 현실은 작가의 상상력을 구현하는데 방해가 될 요소가 없는 방식을 선호하게 했다. 그렇다고 미디어 작업하는 시간이 절약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는 예술작품의 운명을 가상현실에서 면제받을 수는 없다.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는 박윤주의 몇 년 전 작품 클릭 수를 보니, 필자가 방금 히히덕거리면서 본 다른 유튜브의 수십만 클릭 수와 너무 비교된다. 하지만 디지털 아트로서 저작권을 보호받으며 비트코인으로 유통하는 등의 새로운 방식은 미래의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 가상현실이 이제 그냥 현실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박윤주의 작업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선택한 방식은 꽃피울 것이다. 

 


출전;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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