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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덕 / 삶과 죽음의 짝패

이선영

삶과 죽음의 짝패

   

이선영(미술평론가)

 

  

들면 한 아름 될 것 같은 아담한 크기에 안이 텅 비어 있어 크게 무겁지 않은 입체 작품들은 색깔도 예쁘다. 이전의 돌조각이 폐쇄된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면, 10여년 전부터 시작한 금속 작품들인 [OPEN AIR] 시리즈는 물리적 무게를 덜어냈다. 금속 작품은 해외 전시 때 무거운 돌덩이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수고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것들은 가볍기는 하지만 작가의 손을 떠난 작업이 포함되는 여러 공정 단계를 거쳐야 하기에, 그다지 간촐해 진 것은 아니다. 스텐레스 스틸과 알루미늄을 재료로 한 입체작품은 흙과 석고 작업을 거치지만, 이후에 공장에서 도색을 해야 한다. 무게감을 덜어내는 것은 열매나 씨앗을 떠올리는 식물성 구조이다. 작가는 ‘바깥에서 나뒹구는 열매나 씨앗’ 같은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는, 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애정을 나타낸다. 지상에 우뚝 서 있는 기념비인 조각은 늘 초월에의 열망이 가득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수평적이다. 잘 익은 열매는 지상을 향하며, 씨앗 또한 땅 속에서 자신을 풀어 헤친다. 




KANGSHINDUK_open air_aluminum_2020



수직 지향성보다 수평 지향성은 소위 말하는 권력을 잡는 데 불리하다. 한국에서 여성이 조각가로 수 십 년 작업을 이어온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도 여러 궁리와 시도로 복잡한 작업실을 보면, 강신덕은 조건이 좋아 우연히 살아남은 ‘원로 여류 조각가’가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현재 진행형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마침 럭비공처럼 탱탱한 형태의 작품들은 그러한 상상을 하기에 충분하다. 강신덕의 작품에서 금속이라는 재료로의 전환은 경량 구조로의 변화이기도 했다. 열매나 씨앗이 아무리 단단하다 할지라도 돌만 하겠는가. 홈이 깊게 파여져 둥그스름한 형태는 각종 열매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작은 씨앗으로부터 시작하여 열매로 완성되는 주기에서 접고 펼치기의 과정은 반복된다. 씨앗에는 어린 떡잎부터 시작하여 싹을 틔울 동안 영양을 공급받을 작은 생태계를 압축적으로 보유한다. ‘씨앗 속에 나무가 자란 모습이’(자크 브로스) 들어있는 것이다. 씨앗에는 차후에 현실화 될 형태가 접혀 있고, 이후 싹을 틔워 햇빛을 가득 받기 위해서는 한껏 잎을 펼치며 개화를 준비한다. 


열매는 씨를 품은 채 다음 해의 부활을 기다린다. 여성은 원래 씨앗이나 열매를 다루는데 익숙했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이전까지, 남성이 사냥을 나갈 때 여성은 열매를 줍고 씨앗을 건사했다. 자크 브로스는 [식물의 역사와 신화]에서 최초 인간의 주된 양식은 사냥이 아니라 식물이라고 지적한다. 동물성 먹이는 어쩌다가 이따금씩 섭취했다. 그에 의하면 영장류는 매일매일 양식을 구해야만 하는 필요성 때문에 먹기 좋은 과일과 열매, 새순과 연한 줄기, 구근 등을 감별하는 방법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자크 브로스 [나무의 신화]에서 ‘나무 열매와 성림의 도토리가 부족해지기 시작하면서 농업이 탄생하였다’(베르길리우스)고 인용한다. 열매는 인류에게 고통스러운 노동이 탄생하기 이전의 황금시대를 일깨우는 상징인 것이다. 잘 여문 열매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알찬 씨앗같은 이미지에서 주름은 실제보다 다소간 강조되었다, 이 깊은 주름은 도색 등의 작업을 타인에게 맡길 수 밖에 없는 공정에서 섬세한 형태가 뭉개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작가의 해법이다. 


동시에 그것은 자연에 내재해 있는 법칙, 즉 접고 펼치는 주름의 방식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에는 접힘과 펼침의 연속이 있을 뿐, 종말로서의 죽음은 없다. 특히 식물은 인류에게 부활의 메시지를 주었다. 열매들은 그자체로 완제품같은 매끈한 형태와 산뜻한 색깔을 갖추곤 한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동물을 통해 씨를 퍼트려야 하기에 다양한 유혹의 장치를 탑재한다. 꽃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은 그 이유이며, 열매는 꽃의 결실이다. 물론 예술은 자연이 아니기에 작가가 강조한 부분은 있다. 일단 크기가 확대되었고, 표면은 자동차 도료라는 인공적 색채로 도포되었다. 빛나는 표면은 식물이 빛을 고정시켜 생태계에 에너지를 방사하는 메커니즘을 상징하는 듯하다. 둥그스름한 형태에 새겨진 깊은 주름은 자연의 주름처럼 기왕에 있는 부분을 더욱 강조한 것이다. 요즘 작품은 좌대 없이 그냥 세운 것도 있지만, 최근 몇 년간 국내외에서 발표된 작품들에는 대부분 좌대가 일체형으로 붙어 있다. 배꼽같은 꼭지를 중심에 둔 주름진 형태는 얼굴을 떠올린다. 


이전에 돌조각 중심의 작업에도 얼굴이 연상되는 형태가 있었다. 열매로 친다면 꼭지 부분은 방향에 따라 머리꼭지나 코같은 형태가 보인다. 관객과 마주하는 형태가 얼굴이나 신체를 연상시키는 것은 시각예술의 오랜 관습에 의한 것이다. 추상적인 형태도 예외는 없다. 관객은 추상적인 모습에서도 기어코 이런저런 흔적을 연결시켜 인간적인 표정을 읽어내곤 한다. 작은 면적에 직간접적인 메시지를 끝없이 발신하는 얼굴은 그 자체가 예술작품의 모델이 될 만하다. 머리나 신체에 대한 비유로 인해 비슷한 크기가 여러 개 모여 있으면 군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1952년 생의 작가 강신덕은 초창기부터 입체작품과 평면작품을 같이 전시하곤 했다. 2000년대 초반 돌조각을 중점적으로 발표 했던 시기에는 철망에 실크 스크린을 하여 벽에 같이 붙여 놓았다. 조각작품만 놓였을 때 전시장의 하얀 벽이 아깝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신덕의 작품에서 입체와 평면은 절충적이기 보다는 필연적으로 얽혀있다. 특히 금속 작품과 같이 걸리는 렌티큘러 작품이 그렇다.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시간적 추이를 따라 감상해야 하는 렌티큘러 작품은 조각을 감상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렌티큘러는 조각가로서의 자의식이 담긴 형식이다. 렌티큘러는 여러 장의 밑그림을 활용해서 만든, 볼 때마다 다른 시각 효과를 낳는 오묘한 색의 향연을 가능하게 한다. 렌티큘러로 만들어진 평면은 그 앞에 강렬한 색을 발산하는 입체작품과 어울린다. 강신덕의 렌티큘러 작품은 정물화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정물화는 북유럽 바로크 시대에 꽃피웠다. 튜립같은 꽃의 재배와 유통으로 일찍이 상업자본주의를 발전시켰던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들은 풍요와 더불어 죽음에 대한 경고를 동시에 담았다. 자연이나 전통적 질서가 아닌 시장에 민감한 계층의 부상은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깨달았던 탓이다.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잘려져 나와 영원히 시들지 않는 화면에 안착된 대상들은 감각주의와 허무주의를 한데 버무린다. ‘stilleven(움직이지 않는 생명)’이나 ‘natura morta(죽은 자연)’이라는, 정물화를 표현하는 17-18세기의 용어들은 삶의 짝패인 죽음(바니타스, 메멘토 모리)을 상기시킨다. 


고풍스러운 배경을 가진 강신덕의 정물 또한 그러한 전통을 이어받는다. 렌티큘러의 효과에 의한 영묘한 광채는 정물화 전통에 깃든 현실과 가상에 동시에 걸쳐 있는 듯한 빛의 효과를 현대적으로 각색한다. 종이 위에 3장 정도의 그림을 그려서 3장의 색이 나오게 만든 렌티큘러는 마치 한번에 그린 듯 회화적이다. 공간을 점유하는 부피를 중시하는 전통적 조각에서 색은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다. 색은 화가의 영역이라고 치부되었다. 요즘 작품에 끌어들인 화려한 색은 강신덕의 작품이 더욱 젊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작가는 ‘빨간 구두와 노란 우비도 잘 어울렸던’ 청춘을 그리워한다. 이전의 돌 작업이 수더분하고 따스한 물성을 가졌던 것에 비해, 요즘의 금속 작업은 날렵하면서도 쨍하는 감각이 특징적이다. 그것은 단지 조각과 금속의 물성 차이만은 아닐 것이다. 형식은 늘 상 어떤 내용에 대한 형식이다. 내용을 채우는 것은 어떤 지식이나 이론으로 환원될 수는 없는 감성, 욕망, 체험 등이다. 그런 것들은 형식에 비해 견고하지는 않지만, 형식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강신덕의 최근 작품들은 굳어진 형식이 아니라 자기 감성에 충실한 것이 작가에게 가장 중요함을 일깨운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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