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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 / 인간과 사물의 불완전한 관계

이선영

인간과 사물의 불완전한 관계

  

이선영(미술평론가)


  

이현미가 최근에 주로 그리는 정물화들은 기존 정물화의 전통과 대화하면서 대상과 주체의  변화를 표현한다. 병에 방금 꽂은 꽃이나 막 깍아 먹어도 될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진 과일 같은 정물화는 그에 상응하는 온전한 인간 주체가 전제되어 있었다. 미술사적으로 정물화의 출현은 상업 자본을 통해 상승하는 중산층을 반영했다.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적 인간 주체에 대한 이상 또한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다. 하지만 이현미의 정물은 그때의 생생함에 비한다면 훼손된, 또는 지워진 모습이다. 정물화의 전통에 내재한 죽음이라는 알레고리는 주체의 죽음 또는 주체의 새로운 위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현미의 작품에서 어두운 배경은 정물이 놓인 밝은 곳을 단지 식탁이나 탁자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무대로 간주한다. 거기에서 사물들은 인간을 대신하여 연기한다. 일종의 사물극이다. 회화란 말이 없는 매체이니만큼 무언극이라고 해야겠다. 




 이현미, The Imperfect3_5AE_71625,45.5x37.9cm. Mixed media, 2018



물론 대부분 무생물인 ‘배우’들은 극적 행위를 취하지 않는다. 또는 못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놓인 방식, 지워진 기표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말한다. 가방과 컵, 미술 잡지 등이 놓인 탁자로 보이는 작품 [The imperfect_5AA_0194](2016)에서 다리 없는 탁자가 등장한다. 배경 또한 블랙이어서 광원이 어디인지 모호하다. 일상을 이루고 있는 가장 평범한 장면이 심연 위에 붕 떠 있는 상태이다. 탁자의 다리를 대신하는 것은 흘러내린 물감이다. 제자리를 벗어나는 물감 자국은 회화적이다. 대상의 경계 안에 얌전히 자리 잡은 물감이 재현주의에 충실하다면, 흘러내린 물감은 대상을 관객 앞에 가져다 놓은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탁자 위의 사물들을 지탱해주는 것은 물감 자국임을 암시하는 화면에서, 작가는 그림이 가지는 자율적 힘을 표현한다. 작품 [The imperfect_5AE_7148](2016)에서 컵이나 병, 화분 등 일상의 기물들이 한데 모인 정물은 정물화 특유의 구성을 벗어난다. 


보통 정물화는 시선이 들어가는 입구를 설정하고 차근차근 재현된 대상을 보게 한다. 정물화는 보기와 소유를 일치시키는 궤적을 따라 리얼리즘의 정점에 놓였다. 고전적인 정물화에서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은 전경에 어슷하게 놓인 나이프 같은 것이다. 이현미의 작품에서 우유 팩이나 티슈 곽 등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등의 재료로 만들어진 대상들은 그것이 현대적 정물화임을 알려준다. 보통 그런 것들은 주목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분리수거를 해야 할 때나 주의 깊게 볼 따름이다. 명암을 가르는 수평선 위에 나름대로 기념비적인 위상을 가지고 서 있는 그것들은 격에 맞지 않은 셈이다. 정물화의 전통에 화사하게 핀 꽃이나 생생한 과일을 그려놓고서 언젠가는 그것이 시들고 사라짐을 경고하는 알레고리가 있었다면, 이 일회용 물건들 또한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경고한다. 인간 또한 이러한 일회용품 적 상황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것인가. 인간 또한 아무 표시도 없는 저 용기(容器)들처럼 대체 가능한 익명적 존재가 된지 오래다. 


어두운 바탕이나 흘러내리는 물감 등은 아무 말 없는 이 그림에서 멜랑콜리한 느낌을 주는 형식적 요소다. 내용을 담는 것이 형식이지만, 어떤 형식은 내용을 파생시키기도 한다. 한편 놓여 있는 것들의 공통점은 모두 무엇인가를 담는 용기라는 점이다. 어떤 것은 비어있고 어떤 것은 차 있을 것이지만 그것들이 무엇인가를 담는다는 점은 그림 또한 무엇을 담는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제목에 암시돼 있듯이 무엇인가를 담는 용기들은 불완전하다. 대표적인 일회용품인 빨대 컵의 하얗게 표현된 작품 [The Imperfect3_5AE_71625](2018)는 잠시나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이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배경이 되는 흑도 마찬가지지만 백(완전한 화이트는 아닐지라도 대부분 그 근처에 있는 색이다)도 부재를 상징한다. 상복은 흑 또는 백이다. 죽음에 가까운 금욕과 엄숙을 요할 때도 무채색이 호출된다. 불완전한 느낌의 정물화다 보니 검정과 연결된 신비와 공포, 세련됨과는 거리가 있다. 존 하비는 [블랙 패션의 문화사]에서 유럽에서 검은색과 죽음이 연결된 것은 한 세계의 빛이 사라졌음과 관련된다고 말한다. 


유채색이 무채색이 되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평생 타올랐던 생체 공장이 멈추고 잿더미처럼 변하는 것이 생명이라면 말이다. 한편 형식적 요소로서의 검정은 다른 색을 빛내준다. 에바 헬러는 [색의 유혹]에서 색은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늘 다른 색들로 둘러싸여 있기에 색의 영향도 여러 가지 색, 즉 색채 배색을 전제로 한다. 색은 하얀 배경 위에서보다 검은 배경 위에서 더 빛을 발한다. 에바 헬러는 색과 감정의 관계는 우연이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일생을 통해 쌓아가는 일반적인 경험의 산물이라고 본다. 색과 감정의 관계는 심리학적인 상징과 역사적인 전통에 근거를 둔다는 것이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유기체에게 검정이 우울이나 죽음, 부재와 연관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림, 그리고 그림의 가장 성공적인 후예인 사진을 바로 그러한 흔적을 담곤 한다. 작품 [The Imperfect_5AK_6973](2017)에서 탁자 위에 가득 놓여 있는 것들은 다양한 용기이다. 


원래 하얀색일 수도 있지만, 상표도 무늬도 전혀 안 보이는 하얀 컵들은 지워짐을 말한다. 죽음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는 정물화의 전통에 견주어 본다면, 존재는 사라지기 전에 먼저 지워진다. 또는 잊혀진다. 배경의 빈 의자 또한 빈 용기들처럼 부재의 표현한다. 작품 [The Imperfect3sT](2018)에서 대상, 특히 대량 소비사회에서는 상품에서 그 표시가 없어지는 것은 존재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작가는 대상이 아니라 대상의 유령을 그리는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물건들은 그 사용자를 암시한다. 사용자 뿐 아니라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모습 자체가 일종의 초상이다. 지워진 대상은 그에 상응하는 주체를 떠오르게 한다. 옷만 남아있는 자리와 싱싱한 과일의 대조가 있는 작품 [The imperfect_5AE_7142](2016)는 정물화에 깔린 알레고리와 관련되어 부재를 나타내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배경은 명암대비를 통해 부재를 극적으로 강조한다. 


작품 [The Imperfect_5AA_01966](2017)은 작업실이 있을 법한 한적한 곳으로 가는 길이 보이는 풍경이다. 이현미의 다른 정물화처럼 사람의 흔적은 있되 사람은 없는 적막강산 같은 상황이다. 건물의 창문이나 주차된 자동차의 창은 시커멓다. 그러한 대상들은 사람을 찍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검은 창구멍들은 내가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을 의식할 수는 있지만, 내가 그 존재를 볼 수는 없다. 이러한 시선 교환의 불균형은 현대 사회 도처에 깔려 있다. 시선이 곧 권력이라면 이러한 그물망은 보이지 않는 감옥 같은 역할을 한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감시는 내재화되어 감시는 조절이 된다. 정물이든 풍경이든, 이현미의 작품에서 주체와 대상 간에 의미교환의 전제가 되어줄 시선의 교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뭔가 불완전한 상황이다. 최근 작품 [The imperfect-190549939](2020)은 이현미의 어느 정물화보다도 구체적이다. [파우스트]나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책 제목도 선명하게 보인다. 


그림 속 책 제목은 화가가 이미지를 내세워서 메시지를 전달할 때 유용할 수 있다. 어느 서점의 광고대로 ‘책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책을 만든다’면 장면은 소유주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소유주는 없지만, 잠시 자리를 뜬 듯한 모습이다. 인간은 어두운 배경 속에 생략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상품 미학’의 관점에 의하자면 이제 인간이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인간을 나타내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그 또한 일종의 죽음을 나타내기에 여전히 이현미의 작품은 고풍스러운 정물화의 전통에 속한다. 작가는 정물에 대해 ‘그것들은 형태와 색상, 디자인을 감각적으로 거느리고 있는 존재들이다. 상품 미학의 소산들’이라고 말한다. 물론 작가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일종의 미학적 거리감을 설정한다. 즉 ‘나를 둘러싼 세계를 채우고 있는 사물들의 존재를, 그 실재들이 무엇인가 새삼 주목하게 하는 것’(작가노트)이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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