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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득 / 서로를 반향 하는 우주 또는 무대

이선영

서로를 반향 하는 우주 또는 무대

  

이선영(미술평론가)


  

김명득의 직함은 ‘Media Artist/Composer’이다. 그동안 미술보다 더 국경이 없는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한 개인이 작곡가이면서도 미디어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것에는 작가적 역량 외에 미디어 혁명이 필요하다. 현대는 혼자서도 작곡과 연주가 가능한 시스템을 이전에 비해 쉽게 구비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대다. 한 방식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기기와 기술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부지런함이 요구되지만, 김명득은 자기 작품의 동시대성을 위해 그러한 수고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의 발표 무대는 종합예술이 요구하는 바를 충족하면서도, 혼자만의 홀가분한 작업으로도 작품의 상당 부분이 예측가능하다. 작품이 발표되는 가장 이상적인 장은 공연장이지만, 올 10월에 있었던 문화비축 기지에서의 공연처럼 원래 기름탱크였던 둥근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전용한 곳도, 올 11월에 대구예술발전소의 작업실의 사각 공간도 작품을 펼치는데 큰 무리가 없다. 통상적인 공연에 필요한 번잡한 세팅이 필요 없다. 노출콘크리트의 황량한 실내도 뜬금없이 한가운데 창문이 있는 방도 유연하게 활용한다. 




2021년 10월 15일 문화비축기지에서의 공연장면







움직이는 형태와 소리는 원형 공간이든 사각 공간이든 융통성 있게 채울 수 있다. 그의 공연에는 중간에 세트를 바꾸는 막간극(interlude)이 필요 없다. 물론 서사의 흐름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변화의 국면은 있지만, 그 또한 실제의 세트가 아니라 소리와 동작에 따라 무대를 채우는 시청각 정보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다. 공연이 끝나면 소리와 형태 등 작품을 이루던 요소들이 싹 거두어지면서 원래의 장소가 그대로 복구되는 마술적 무대다. 가상이 거둬지면서 갑자기 드러나는 현실 공간은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미디어를 활용하는 공연은 현실과 가상의 거리를 근접시킨다. 이미 시간만 나면 자기만의 화면을 켜는 현대인의 모습을 환경의 차원으로 구현해서 공유하는 예술이다.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 영상은 실내외 공간을 충만하게 점유하면서 춤추고 노래한다. 전자미디어가 기성의 악기나 소리 등을 합성할 수 있는 만큼 실제 무대 공연에서는 압축파일을 풀 듯 확장될 수 있다. 


가령 한 뮤지션이 원맨밴드 스타일로 작곡, 연주하는 음악이 다양한 연주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급으로 재구성되어 실연(實演)될 수 있다. 접혀져 있던 것이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공연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고, 너무 많은 협업과 분업을 통해 작가주도형의 작업이 쪼개질 때의 변화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 작가가 창조한 우주에 온전히 속해보는 경험은 문화보다는 예술이 적격이다. 문화비축 기지 T6에서 열린 2021 Global Week 시공공감(Time-Spce Resonance)에 현악기 연주자와 남자 무용수와 함께 참여한 김명득은 작업 노트에서 ‘프로그래밍을 통해 안무가(퍼포머)와 컴퓨터가 실시간 상호관계할 수 있도록 기술적 환경을 개발하고 자연이 가진 패턴의 알고리즘을 확장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비주얼 리소스에 활용한다.’고 밝히며, 어디에도 정확하게 속하지 못하는 자신의 작업 형태가 ‘음악과 사운드를 기반으로 미디어아트를 결합한 융합형 퍼포먼스’라고 정의한다. 










여러 가지 패턴이 창안되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고 새로운 맥락에 꺼내 쓸 수 있다. 이러한 패턴에는 기하학적인 요소뿐 아니라, 자연의 운동에 내재한 동적 패턴 또한 활용된다. 그는 군중이나 새 무리의 이동의 예를 든다. 무대는 어떤 의미로 결집되고 흩어지는 변화무쌍한 패턴들로 가득 찬다. 올해 필자가 두 번 본 김명득의 무대는 무용가, 음악가와의 협연이었다. 작가는 이에 대해 ‘라이브 일렉트로닉스(Live Electronics)와 현악기로 구성된 사운드’에, ‘모션 센서를 이용해 퍼포머의 실시간 움직임을 사운드와 비주얼의 변화값으로 사용하고 미리 패치된 전자 음향과 악기의 다양하고 실험적인 주법들은 음색의 표현방식을 지속적으로 확장한다’고 설명한다. 그가 사용하는 여러 전자기기는 다른 악기의 연주 뿐 아니라 그와 연동되는 비주얼 이미지를 통합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작곡과 연주는 그가 하는 것이지만, 미리 준비되어 있는 구성요소들의 실제적인 조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무용가의 동작이다. 


음과 영상만으로도 작품은 되지만, 김명득의 작업에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스위치가 되어 작가가 만들어 놓은 우주와 상호작용하는 몸이다. 김명득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하여 여러 매체의 호환성에 대한 실험을 무대에서 실현한다. 올해의 공연에서와 같은 공감각은 기본이고, 구글의 음성인식 기술을 이용하여 말과 문자, 이미지를 연동시켜 공연에 끌어다 쓰기도 했다. 작가는 물성의 전환에 관심을 가진다. 고체-액체-기체가 변환하듯이 본질은 있되 형태만 변화하는 것이다. 미디어는 이러한 변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인공지능은 인간의 두뇌와 마음도 확장할 수 있다. 지구와는 중력 자체가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펼치는 무대는 낯선 음향으로 가득했으며, 그에 따른 협연자의 연주와 춤 또한 실존적인 행위로 채워졌다. 지구와는 중력감 자체가 다른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존재는 기존에 자연스럽게 주어지던 상징적 우주를 하나하나 재구축해야 했다. 




2021년 11월 6일 대구예술발전소에서의 공연장면(사진; 이상봉)







그것은 근대 이후 사회로부터 고립된 예술가의 근본적 숙명이었지만, 이제 대중 또한 그러한 조건에 놓여있게 되었다. 예술은 시대를 먼저 가고 더 강하게 시대의 병을 앓는다. 우리는 기성 사회의 부자유와 부조리만 비판하지만, 그것은 인간을 인간이게끔 해주는 수월성의 도구이기도 하다. 기성의 상징적 우주로부터 탈피한 존재는 자유롭지만 고독하고 불안하다. 불협화음으로 들릴 수도 있는 현대 음악의 맞춘 무용수의 몸짓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무엇과 대결하는 것처럼 기괴하다. 마치 가상현실 기기를 쓴 사람의 동작이나 합성영상을 위해 기기를 부착하고 연기하는 배우같이 또 다른 차원을 염두에 둔 행위로 다가온다. 어떤 믿을 만한 좌표축도 존재하지 않는 우주에서의 방황이자 자기 자리잡기의 여정이다. 영상을 움직이게 하고 변화시키는 이는 모션센서를 작은 반지 형태로 장착한 무용수의 움직임이지만, 무용수 자신은 영상 안에 있기에 음과 형태가 잘 들리고 보일 수 있는 적절한 거리에 있는 관객의 입장과 다르다. 


시공간을 편집하는 영화는 인간과 행위를 분리시킨 대표적인 형식이다. 현대의 주도적 매체에는 분열이 있다. 물론 김명득의 작품은 영화와 달리 실시간으로 진행되지만, 전자미디어를 통한 여러 예술의 종합은 통합만큼이나 균열도 선명하다. 김명득의 공연을 굳이 영화와 비교하자면 무편집 영화인 셈이다. 그만큼 여러 요소들이 시계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자유로운 음과 동작의 만남이기에 고전주의같은 맞물림 보다는 공존이자 병치다. 각 요소들 간의 균열은 교감으로 연결된다. 무대를 가득 채운 음과 이미지는 무용수의 육체적 현존으로 인해 의미를 가지게 되며, 무용수 또한 변화무쌍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자신을 펼칠 수 있다. 무용수의 몸짓이 촉발자가 되어 그에 따라 변화하는 소우주는 행위와 환경 간의 대화이다. 이미 현대는 사람과 사람의 실제적 대화보다는, 몸과 마음의 확장이라 할 수 있는 미디어를 매개로 한 전체적인 환경과의 소통에 더 익숙해져 있다. 








개인의 희망 또는 욕망에 의해 무덤덤한 현실이 확 바뀌는 경험은 연주자와 무용가라는 실물 모델을 통해 투사된다. 몸과 가상현실의 만남은 서로의 다른 존재 방식을 대조하면서도 어차피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예술적으로 조명한다. 현대인은 놀든 쇼핑을 하든 공부를 하든 작업을 하든 일단 컴퓨터 스위치부터 켜야 하지 않는가. 이러한 변화는 불가역적이며, 보다 직관적인 방식으로의 진보를 요구할 따름이다. 현재는 과도기다. 몸과 기계는 중립적으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요구를 매개로 한다. 기술은 중립적인 진화의 결과라기 보다는 대부분 자본이 선택한다. 얼마 전 뉴스에는 콜센터 직원들이 단위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말기’를 강요받는다는 기사가 있었다. 최대속도에 맞춰진 할당 노동량을 수행해야 하는 직원들의 고통은 곧장 심신의 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런 극한의 직업조차도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이다. 노동 현장에 몸과 기계적인 것 간에 생기는 전선에 대해 ‘자유로운’ 예술가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예술가들은 그런 파편화된 노동을 피해 종합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작업을 하지만, 세상의 가혹함과 부조리는 예술에도 반영된다. 김명득의 작품은 대개 한 명의 퍼포먼서가 출연해서 그런지 실존적 고독이 느껴진다. 형태와 소리로 만들어진 움직이는 인간에게 화답해 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한다. 실제의 환경이 그렇듯이 말이다. 또 다른 통로를 향해 계속 열리는 창이 이 고독한 몸부림을 탈주와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중심이기도 할 자아를 상징하는 동심원 구조나 창살처럼 드리워진 수직선들을 커튼처럼 젖히는 장면들, 자기로부터 벗어날 창들을 상징하는 사각형 구조 등,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형태들이 그 안의 행위하는 인간과 함께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탈주를 가능하게 하는 지속적인 변모의 무대는 가상과 현실이 가까워질수록 그 힘을 발휘할 것이다.

  

출전; 대구예술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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