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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경 / 단편을 둘러싼 환상

이선영

단편을 둘러싼 환상

  

이선영(미술평론가)


  

여러 작가가 참여한 전시에서 최윤경의 작품 시작을 알리는 벽면에는 옅은 브라운 색 코드를 입은 남성의 뒷모습이 배치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많이 사용한 색인 반 다이크 브라운 톤의 의상은 피부색, 명품 등의 색조와 연결고리를 가진다. 물감 농도 흐리게 해서 표현한 뒷모습은 잡힐 듯하지만 잡히지 않는 아스라함이 특징적이다. 명품을 소재로 한 다른 작품들처럼 불투명 막이 드리워진 듯하다. 이 작품은 성을 주제로 한 다른 작품들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우회적으로 연결된다. 연결 고리는 물신(fetishism)이다. 여러 버전으로 그려진 발이 대표적이다. 카무플라주 무늬 양말을 신은 듯 다양한 브라운 계열의 색으로 칠해진 발은 전형적인 물신숭배의 대상이다. 굳이 프로이트의 가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발을 연장하면 생식기와 닿기 때문에 발은 물신적 대상으로 여겨지며, 신발도 마찬가지다. 좀 더 울룩불룩한 형태의 남성의 발과 작은 여성의 발이 구별된다. 




우리 곁의 모든 곳 전시 전경





여러 색조각으로 이어진 듯한 거칠거칠한 피부는 이상(異象)하다. 하지만 조형적 차원으로 본다면 발은 브라운 계열의 색채가 펼쳐지는 장이며, 발뒤꿈치의 표현 또한 마찬가지다. 작가가 이번 전시 작품들이 성(gender)이 주제로 한다고 밝히듯이, 발 뿐 아니라, 엉덩이골, 남자 성기, 허벅지 등의 성적 이미지가 등장한다. 대개 욕망이 고이는 부분들이다. 어디인지 잘 알 수 없는 감춰진 부분의 선택하여 몸에 대한 흔치 않은 관점을 찾고자 했다. 작가는 아름다움 보다는 강렬함을 원했다. 여러 단편이 구성되는 경우에는 대비를 통해 강렬한 효과를 낸다. 패션 분야에서도 그러한 충격 어법이 사용되곤 한다. 몸의 일부와 명품의 색조는 전시 기간과 겹쳐진 늦가을과 어울린다. 인간의 피부는 봄의 색이 아닌 가을의 색이며, 최윤경의 작품에서 더욱 얼룩덜룩하다. 낙엽의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유한한 삶은 인간의 몸에 대한 엄청난 감수성과 욕망, 지식을 가능하게 했다. 주어진 한계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낳는다. 


그러한 의지는 때로 욕망이라고 불리며, 물신숭배의 사회는 거듭하여 경계를 설정하기에 욕망 또한 끝이 없다. 이 전시의 작품 속 소재들이 부분으로 등장하거나 흐릿한 막으로 한 겹 가려져 있는 것은 위반 충동을 불러오는 경계를 가리킨다. 최윤경의 작품에서 몸은 화면에 의해 사정없이 잘려지거나 축소되어 있는 한편, 가방, 지갑, 구두, 선글라스 같은 물건은 잘려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한 겹 가려져 있기에 마찬가지다. 부분이든 가려져 있든 그것들을 인식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몸의 경계는 가장 민감하게 파악되며, 많은 이들의 욕망의 대상인 명품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작은 화면의 경우 누군가는 자기 주머니 안의 아이폰 크기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핸드폰 크기는 한 뼘, 한 폭 만큼이나 직관적인 기준이 되었다. 물신은 보이지 않는 차원까지, 아니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작동한다, 작은 화면에 담은 두 입은 크기가 작아서 성별을 구별하기 힘들지만, 하나는 여성적, 다른 하나는 남성적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모은 붉고 도톰한 입술이 수동적—속삭이듯 말하거나 뭔가 빨아먹는 모습—이라면 볼이 밀려 나갈 정도로 이빨을 드러낸 입은 공격적이다. 그 입은 언어적 또는 육체적 폭력을 연상시킨다. 액정화면의 크기로서는 작지 않지만 그림의 크기로서는 매우 작다. 액정화면 속의 그림은 실제보다 더 밝고 확대도 된다. 단편적 시각 자체가 사진적이다. 두 입은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걸려있다. 색감, 자세, 방향 등이 모두 대조된다. 스마트폰을 참조로 한 화면의 규격은 인터넷에서 흔히 벌어지는 갈등, 즉 극도의 경쟁사회가 펼쳐지면서 남녀 간에도 애틋함과 설렘은 사라지고 툭하면 그어지는 전선(戰線)을 떠오르게 한다. 최윤경의 작품 소재는 육체적 단편과 더불어 상품 물신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전시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성적 물신이든 상품 물신이든 확실한 실체는 없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기호의 정치경제학]에서 물신숭배는 실체에의 열정이 아니라 약호에의 열정이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상품에 대한 물신숭배는 형식(상품의 논리 또한 교환가치의 체계)에 대한 매혹이다. 체계가 더 조직화 될수록 물신숭배의 매혹은 더 커진다. 매혹, 숭배, 욕망, 그리고 도착적인 향유는 체계에 관련된 것이지, 실체에 또는 초자연력에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장 보드리야르의 논지다. 대개 성적 물신과 상품 물신은 함께 간다. 소비자이며 소비되는 여성은 그 교차점에 있기 마련이지만, 이제 그 경계 또한 허물어진다. 욕망은 끝없이 이어지는 환영일 따름이다. 실제는 끝이 있지만 환영은 끝이 없다. 그것이 환영이 가지는 기만이자 매혹이다. 회화는 이러한 환영을 다루는 실재다. 해부학적 정확성으로 그려진 신체의 부분은 어떠한가? 아무리 그림이지만 공적영역에서 남성 성기의 일부가 노출된다는 것은 선정적이다. 참고로 최윤경은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즉 그동안 여성이 많이 물신화되었으니 이젠 남성 차례다 하는 식의 보복심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샤넬 시리즈









실제 모델이 있었을 탱탱한 육체지만, 이미 욕망의 풍선은 쪼그라들었다. 여학교 앞에서 야릇한 퍼포먼스를 즐기는 일명 ‘바바리맨’은 사건 목격자의 비명 소리에 쾌감을 느낀다. 사회는 그를 변태라고 규정한다. 정상성의 기준이 종의 재생산에 맞춰있는 점도 변태만큼이나 기이하다. 이미 성은 종의 생산이라는 목적에 조금밖에 기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중심이 되어 주변적 성을 질서화된다. 하지만 인간은 정상이라는 기준을 필요로 하면서도 위반을 꿈꾸는 존재이다. 예술이라는 공식적 장을 통해서 정상에서의 일탈은 또다른 소통의 방식을 취하곤 한다. 남성 성기를 그린 충격적인 작품은 마치 벽 잘못 걸린 것처럼 약간 기울여 배치했다. 발이나 입 등 원래 많이 노출되는 육체의 부위보다 크게 그려졌다. 국부가 노출된 이 이미지는 미술사적 기준에 의하면 ‘누드가 아닌 벌거벗은 몸’(케데드 클라크)이다. 심미주의의 옷을 이미 입고 있는 누드가 이상적이라면 벌거벗은 몸은 현실적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바바리 입은 남성 뒷모습처럼 브라운 계열의 색이 펼쳐지는 장이기도 하다. 


최윤경의 작품에서 누군가는 상표를 보고 누군가는 브라운 계열의 색채를 보고 누군가는 남성을 볼 것이다. 작가는 잘 보이지 않는 몸의 일부를 새롭게 보여주려 했다고 말한다. 몸은 순수 미학적인, 요컨대 무관심성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 남성 성기 이미지라는 점도 자극적이지만, 작가는 그것이 여성의 성기라면 더 충격적일 것이라고 말한다. 남성이라는 하나의 성을 기준으로 여성의 성을 부재나 거세의 흔적인 상처로 보는 정신분석학의 관점은 여성을 기괴함의 원천으로 간주한다. 어떤 것이든 그것이 보여질 것으로 제시되는 한 눈길을 잡아끌기를 바란다. 늘 광고에 파묻혀 사는 현대적 환경이다 보니 상품적 물신은 몸보다 좀 더 자연스럽게 보인다. 샤넬 시리즈는 그 제품을 모르는 이도 알만큼 작품 제목에 명시되어 있다. 해당 제품의 잡지 광고를 차용한 것이라 명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 상품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에게는 모호한 한 장면이지만, 작가는 흐릿하게 나와도 딱 알아볼 수 있는 명품 광고 사진을 참조했다. 










세일이라도 하면 앞다퉈서 매장으로 달려간다는 인기 상품 중의 한 브랜드를 흐릿하게 그렸다. 이 또한 신체를 그린 색상과 비슷한 계열이다. 불투명 막 안의 명품을 잡을 수는 있을까. 소비는 또다른 소비를 부를 뿐 만족은 없다. 샤넬의 로고가 마치 눈알처럼도 보이는 기괴한 모습인 작품 [woman with CHANEL Sunglass]에서 명품에 대한 맹목적 숭배라는 풍자적 메시지는 명확하다. 상품이 아닌 상품 로고를 보는 듯한 모습이다. 명품에 대한 열광은 타인들도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더욱 높아진다. 코로나로 양극화가 더욱 심해진 와중에 명품 소비가 엄청나게 늘었다고 한다. 자본주의는 누군가에게는 이상하게 여겨지는 과열된 어떤 시장이 있다. 그 또한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남들은 쉽게 갖지 못하는 것을 갖는 경쟁, 경쟁력을 유지 확대하기 위한 또 다른 경쟁 등이 시장을 이끈다. 끝없이 펼쳐진 상품의 목록에 욕망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물신적 체계는 작가에게 기이한 광경으로 다가온다.

 

출전; 가창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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