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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동 / 희생과 자유

이선영

희생과 자유

  

이선영(미술평론가)


  

김순동은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작품에 투사한다. 작가에게 작업은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소중한 것에 소중한 것을 담는다. 당연한 말인 듯하지만, 모든 예술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김순동이 최근 작품에서 다루는 기도, 행복, 자유 같은 가치는 주제를 배제하는 것이 미술의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는데 중요하다는 모더니즘의 미적 판단에 의해, 대중문화나 키치의 영역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하지만 김순동은 지배적인 미학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물신화된 형식주의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편이다. 투사의 주체인 자신이 등장하는 자화상이고, 작품에는 투사된 행동이 묘사 또는 표현된다. 최근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행위는 기도다. 평면적 배경에 기도하는 남자의 실루엣이 있는 작품 [기도1](2021)은 기도에 우선적으로 연상되는 고요함이나 사색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 기도하는 순간의 단면을 포착한 이미지는 강렬한 색 면이 힘찬 붓터치로 채워진다. 어떤 개체의 정체성을 유지해주는 단일한 외곽선을 대신하는 것은 생경한 색면의 흔적이다. 



김순동, 기도1, 2021, 캔버스 위에 아크릴 채색, 72.7x116.8 cm .



연한 바탕이다 보니 색면을 이루는 붓의 흔적은 더욱 강조된다. 아래로 툭툭 떨어지는 물감 흔적은 색면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형태가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기도라는 제목과 연관 짓는다면, 기도라는 절박한 행위가 개체를 개체로 응집시켜주는 것이다. 만약에 그 주체가 기도라는 행위에 충분히 몰입되어 있지 못하다면, 그 존재는 산산이 흩어질 것이다. 종교학은 율법을 중시하는 이성적 전통과 체험을 중시하는 신비적 전통을 구별한다. 전자가 사회적 제도를 중시한다면 후자는 개인적 감성을 중시한다. 후자는 지배적 전통에서 벗어나 있곤 하지만, 종교가 사회의 중심부에서 멀어지면서 그것을 내재적으로 계승한 문화와 예술에서 작동한다. 기도란 신이라는 절대적 타자와의 조우이며, 이러한 만남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할 수 있다. 기도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그것을 뛰어넘게 한다. 예술 또한 주체를 단순히 반영하거나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도약과 비약의 계기를 마련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기도를 그린 작품은 동어반복적이다. 


작업은 그자체가 기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체의 경계를 넘어서는 행위는 죽음에 가까운 위험한 것으로, 기도든 예술이든 이러한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금기 위반의 체험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작품 [기도2](2021)에서 기도하는 남자의 모습 뒤편에 홀연히 열리는 듯한 문은 기도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하다. 작품 [기도3](2021)에서 어두운 바탕에서 빛을 받으며 기도하는 사람은 푸른 색조에 물들어 있다. 그것은 새벽까지 기도를 한 모습일 수도 있다. 깊은 밤 또는 새벽의 푸른색은 이상과 신비를 향한다. 기도 또한 같은 목적, 즉 현실 속에서 이상이 이루어지기를 희구한다. [기도] 시리즈와 다른 또 하나의 작품군에는 현세적 감정이 가득하다. 작품 [행복](2019)에서 목에 감은 밧줄은 교수형이나 자살같은 불행한 사건을 떠올리지만, 작가는 그 이미지를 조금 변형시켜 그 반대로 만들었다. 밧줄을 목에 건 채 웃고 있는 여자 이미지는 거꾸로 걸려있다. 중력과 반대 방향이기에 중력의 작용을 받아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극복한다. 그래서 축 늘어져야 할 몸은 노랑 풍선처럼 떠 있게 된다. 


그림이라는 2차원 평면과 연결된 실제의 밧줄은 끈 떨어진 풍선의 일부로 암시된 것이다. 작가는 풍선처럼 붕 떠 있는 느낌을 행복으로 봤다. 하지만 인간사회에서 행/불행은 상대적인 것이고 언제든 역전될 수 있다. 작가는 그림에 가변적 설치의 유희를 통해서 손바닥의 안과 밖같은 관계를 가지는 삶/죽음, 행복/불행의 관계를 표현한다. 그는 행복을 중시하며, ‘나의 인생은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왔던 45년과 작품활동을 시작하며 인생의 행복을 찾아가려는 그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행복의 구체적 내용이 작업하는 삶 그자체에 있음을 암시한다. 김순동에게 작업은 또한 자유이기도 하다. 작품 [자유](2021)에서 입을 한껏 벌리고 있는 인물은 어두운 배경색과 같은 입속을 내보인다.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 바깥을 품고 있는 주체는 자유롭다. 작가는 ‘꼼꼼하고 디테일한 표현 대신에 거친 윤곽선과 투박한 붓 터치, 무질서한 색의 배열을 사용하여 무언가를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표현을 하고자 했다’고 밝힌다. 


하지만 울음과 웃음의 표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자유는 그 반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자유/평등의 모순이 있고, 개인적으로 자유란 고독과 소외를 동반할 수 있다. 작업하는 삶 그자체가 이러한 모순 위에서 위태롭게 줄타기하는 것과 같다. 자유를 위해서 다른 여러 직업이 아닌 바로 작업을 선택했지만, 물질적 부가 유일한 잣대가 되어 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업을 열심히 할수록 가난해지는 역설이 있다.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것은 예술가 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조건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선구적이었다. 비록 작가가 이러한 운명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운동에 함께하지는 못할지라도, 예술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처한 모순을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서 간접적으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예술을 통한 참여는 점차 고립되어가던 근대시대 작가의 희망 사항이기도 했다. 단지 주제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형식을 통해서 그럴 수 있다면 더욱 좋았다. 형식은 내용보다 더 보편적이라고 간주되었다. 


김순동에게 종교적인 것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보편적인 도상을 통한 소통을 향한다. 가장 유명한 종교적 도상 중의 하나인 피에타를 다시 그린 작품 [피에타](2021)에서 작가는 피에타에 흐르는 감정을 더욱 강조했다. 밝은 배경에 선명한 선으로 내리그어진 조형적 요소는 깊은 슬픔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감정을 표현한다. 작품 [꿀꿀꿀꿀(비나이다)](2020)에서 제사상에 올리는 돼지의 머리를 대신하는 것은 희생된 남자의 머리이며, 입속에 구겨 넣은 지폐는 제사에서의 행위를 반복한다. 이 작품은 국민들을 개돼지로 보면서 돈만 밝히는 정치인을 풍자한다. 정치적 풍자와 별도로, 생산력이 높지 않았던 전통 시대에 공동체가 제사를 준비하는 것은 큰 사치였을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내어놓는 희생은 동서고금의 종교에 보편적으로 깔려있는 지고한 가치다. [기도] 시리즈에 내재 된 종교는 죽음과 부활이라는 희생 제의를 대표한다. 역사는 주인이 죽으면 따라 묻히는 노예의 순장이나 피의 희생같은 끔찍한 관례도 기록하고 있지만, 이러한 잔인함은 점차 순화되어 희생은 상징적 차원으로 남는다. 피는 포도주가 되고 살은 빵이 되며, 인간 대신에 동물이 희생되는 식이다. 


역사적 사실이 문화로 승화되었는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분분하다. 하지만 종교가 존재해야 했던 이유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또 다른 차원으로 반복되는 삶의 현실은 종교적인 것을 남겼다. 이미지의 역사는 이미지를 금기시 하던 순간에조차 종교적인 것과 깊은 관련을 맺었다. 작품 [나의 초상](2019)에서 가족이 드넓은 풀장에서 놀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다. 이상적인 행복의 모습같지만 남성/가장은 가족과 거리를 두고 있는 소외된 모습이다. 함께 물속에 있는, 그래서 각자의 경계를 푸는 상황은 펜데믹 상황에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일상일까 하는 의문마저 낳는다. 작품 [2042년의 자화상](2020)에서 망자의 초상처럼 나타나는 자화상은 어울리지 않게 입을 활짝 벌리고 있다. 2042년의 자화상이라고 하니 미래의 모습이다. 작가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에 내재해 있다. 작가가 죽음이라는 운명을 극복하는 남다른 방식은 작업을 통해 매번 새 세계를 다시 여는 행위에 있다. 작가는 다시 시작하기 위해 언제 시작한 지 모를 현재의 작업을 마무리 짓는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1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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