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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가창 창작스튜디오 작가와의 만남

이선영

2022 가창 창작스튜디오 작가와의 만남

  

이선영(미술평론가)


  

김도경

김도경은 ‘죄지으면 지옥간다’는 말이 종교와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일상어임을 떠올린다. 종교는 없지만 지옥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청년 작가로서 현실이 지옥같이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질서가 잡혀가는 사회에서, 신입에게는 가혹한 통과의례가 있기 마련이다. 대개 노력과 열정이라는 긍정적 가치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회가 제시하는 선택지는 옹색할 따름이다. 천국과 지옥을 실재하는 것으로 믿은 시대에도 지옥의 표현은 천국보다 더 실감 났다. 지배적 상징질서에 부합하는 천국이 충만하지만 무료한 곳이라면, 지옥은 이질적이고 불안정하다. 현대의 작가에게도 지옥의 지형학(topology)은 아래에 자리한다. 작품 여기저기에 아래로 쑥 빠지는 형태들은 추락을 연상시킨다. 심리학에서도 무의식은 아래에 자리한다. 자아와 초자아의 아래에 깔린 무의식은 지양이나 승화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승화 대신에 금기 위반을 지향한다.   



김도경 작업실 전경


  

이상경

‘트랜스 아트’와 사회학, 특히 범죄사회학을 복수 전공한 이상경의 작품은 전공만큼이나 강렬하다. 규모와 상관없이 기념비적인 외양을 가진 상은 초인이자 괴물이다. 용접으로 완성한 형태에 매핑하듯 투사된 영상은 극적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폭발하는 듯한 영상 이미지와 견고한 철조의 결합은 지배적 사회가 요구하는 순응과 거리가 있다. 예술가는 규칙을 위반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범죄자와 달리 예술가는 실제가 아닌 상상의 공간에서 저지른다. 다름은 예술에서 귀한 가치지만 사회에서는 갈등의 요소다. 같은 가치가 사회학과 예술에서 선명하게 갈라지는 것이다. 초창기 작업에서 이상경은 사회적 연구를 우선시했다. 내용을 정립하고 그것을 형식으로 표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과 형식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어서 난점을 야기했다. 사회적 갈등은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드로잉 하듯이 공간에 그리는 주체는 그의 작품 제목 중의 하나처럼 ‘성장과 변화’의 와중에 놓여 있다.  



이상경, [맞대기], 2021년.


  

김소하

김소하의 작업실에는 다양한 종류의 이미지가 있지만 무채색조의 배경에 지평선이 있는 구도가 공통적이다. 한 작품에 하나씩 자리한 형상은 임박한 무엇인가를 홀로 맞이한다. 그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 즉 죽음이다. 직접 무덤 형태가 등장하기도 하고, 형이상학적 경향을 가진 드 기리코를 참조한 아치들 또한 영원으로 통하는 먼 길을 은유한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운전하면서 수없이 목격한 로드킬이다. 비명횡사한 시체를 쪼고 있는 까마귀는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의 삶과 이어지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과 만난다. 작가가 삼겹살이나 고등어를 먹으면서도 시체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작가는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냉정하다. 유기체에게 최악의 사건인 죽음을 중간에 놓고 본다. 김소하의 작품에서 죽음은 우울도 비극도 아니다. 하지만 관객은 갑자기 들이닥친 거대한 힘에 압착 되어 둘둘 말린 채 피가 뚝뚝 흐르거나 난데없는 화재 장면에서 덜컥한다. 



  김소하 작업실전경



이연주

대구 인근에 산이 많은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이연주에게 산은 모태 같은 곳이다. 가창에도 산이 많아 지금도 오고 가며 늘 보는 환경이다. 외국에 가서도 산이 먼저 눈이 꽂힌다. 산을 주로 그리다 보니 적어도 한 가지 기준에서는 지역의 차이를 확실히 반영한다. 작가에게 산은 늘 그곳에 있는 것, 즉 부모같은 존재다. 이연주의 산은 누워있는 인간의 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산은 변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상징으로, 좋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변화가 더 많아서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는 현대인을 위로한다. 하지만 산 또한 인간을 비롯한 유기체처럼 발생 당시에는 유동적이었다. 부드럽던 것이 접혀지고 펼쳐지고 단절되는 운동을 통해 지금의 그 모습이 된 것이다. 유기체 또한 모체 속에서,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원시의 습지 속에서 하나의 세포가 수없이 접혀 생명으로 발생하고 진화한 것이다. 산과 인간의 비유는 터치를 계속 쌓아가며 그리는 방식은 대자연의 실재감을 재구성한다.  



 이연주, 아빠 꿈, 80.3x116.8cm, oil on canvas, 2021



황지영

황지영의 그림들에는 부드러운 외곽선을 한 반투명 형상들이 노닌다. 중층적 화면 표면에 떠 있는 색/형상 뒤로 다양한 색으로 이루어진 추상적 원근감이 느껴진다. 이 하얀 형상이 원래는 쌀로부터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구불구불 연장되는 형태는 소화기관도 연상된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눈물 덩어리 같은 형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작가가 겪은 공황장애는 이렇게 자유로운 작품을 할 정도로 극복되었으며, 그것은 신체적 변화까지 수반된 것이다. 몸은 마음, 영혼, 정신과 연결된다. [스며든 거대한 틈] 시리즈에서 반투명 화이트는 같이 놓인 다른 색을 부정하지 않고 흐릿하게 만들면서 베일같은 중첩 효과를 준다. 막이 씌워진 듯한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것은 환상적이다. 화이트는 자신과 거의 동일시될 정도의 색이었지만, 초록, 파랑, 보라 등으로 옮겨 간다. 그때그때의 감성에 충실하며 화면을 충만하게 채우는 색들은 자신을 옭아맸던 현실에 대한 대안이 되었다. 이때 추상미술은 자유로 다가온다.    



황지영,  LUMP 01 45×38cm mixed acrylic & oil on canvas 2014



백지훈

붓질은 필적과도 같다. 이제 웹상에서 전자서명도 널리 통용되는 것에 비한다면 붓질은 작가 손의 연장으로 인정될 만하다. 그것이 개인에 대한 법적 근거로까지 받아들여지는 것은 필적/붓질에 내재된 무의식 때문이다. 반(半)자동적 실행에서 필획의 특성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백지훈은 그것을 회화적 체계의 중요한 요소로 삼는다. 하나의 평면에 모인 붓질, 또는 각각 그려져 오려낸 붓질을 모은 것들은 일종의 어휘가 된다. 그의 어휘집은 문장으로 완성되지 못한 단편들로 가득하다. 다양한 색으로 행해진 붓질 외에 어떤 형태도 발견되지 않는 그의 작품은 전체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살아있는 개체는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 관계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백지훈의 회화적 어휘집에는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 관계가 아닌, 단편들의 집합이 있을 따름이다. 전체와 집합은 다르다. 유기적 전체를 상정하지 않는 집합은 열려있다. 하지만 이러한 열림이 때로는 죽음, 요컨대 작품으로 치면 무의미로 귀결될 수 있다는 위험이 따른다.    



 백지훈, Nontype,2020



류은미

신체의 특성이 코드화되어 개인을 인증할 수 있는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지문은 물론정맥이나 홍채, 그리고 류은미가 주목하고 있는 목소리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생활에 편리를 더하는 기술 발전은 몸을 수동화시키지만, 자본과 연관된 과학기술은 몸의 구석구석을 더욱 탐사한다. DNA같은 미시적 수준까지 가능하다. 류은미는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를 수집하여 목소리의 주파수를 나무로 조형화했다. 음성의 높낮이, 말투, 감정 등에 따라 다르게 파동쳤을 목소리는 제각각 독특한 형상을 낳았다. 목소리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기에, 각각의 파형이 새겨진 작은 나무 기둥들은 초상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무의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입상들은 여러 차원에서 존재의 흔적을 담는다. 작가는 이 형태들을 그리드 형식으로 설치하였지만, 체스판 형태도 구상했다. 체스의 말처럼 보이는 나무 기둥들은 게임을 할 것이다. 문자 또는 목소리로 매개되는 언어 또한 게임으로 간주된다.  



  류은미, The mothers, 목재, 가변설치, 2022(부분)



박지연

박지연의 [여기에 남은 선명한 자국] 시리즈는 시선의 문제를 다룬다. 물감이 줄줄 흘러내리는 화면이 많은 작품들을 보자니 시선의 열기가 느껴진다. 가령 우리 일상어에서 ‘레이저를 쏜다’는 표현이 있듯이, 시선은 다소간 공격적인 양상을 띈다. 그저 상대의 눈을 보는 것만으로 시비가 붙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방을 주시할 수 있는 포식자의 시선과 양옆으로 뚫려 있곤 하는 피식자의 시선은 비교된다. 이러한 생물학적 차원 외에도 현대 물리학은 관찰이 대상에 가하는 밀접한 영향을 말한다. 불확정성의 원리로 알려진 그것은 완전히 객관적인 관찰은 없다는 충격적인 함의를 가진다. 박지연의 작품에서 시선의 대상이 될 법한 화면 한가운데의 사물은 줄줄 녹아내린다. 작품 제목에 포함된 ‘자국’은 시선과 관련된 어떤 변화의 결과이다. 예술은 과학과 달리 처음부터 시선의 주관성을 인정하고 들어간다. 작가는 시선이 ‘틈에서 나오는 빛줄기 같다’고 말한다. 각 작품들에는 그러한 틈이 설정되어 있다. 



  박지연, 여기에남은선명한자국_mixedmdiaoncanvas_116cmx80cm_2018



김민제

김민제는 불과 두 달 전에 졸업한 신진 중의 신진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줄 곳 거기서 살았지만, 이번 레지던시를 통해서 처음 대구를 떠날 일이 생겼다. 혼자이고 싶은 소원을 이뤘다. 자신의 신상에 일어난 깊은 변화를 반영하는 최근 작품 [leaving or staying]은 대구를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50여 명의 인터뷰가 벽돌처럼 쌓은 구조적 단위체에 담겼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만남’, ‘새로운 자극을 원해’, ‘다른 세계가 궁금해’...등등의 의견이 보인다. 김민제에 의하면 언론은 ‘청년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는 한가지 내용만 줄기차게 전한다. 하지만 그가 조사한 바는 각양각색이다. 대구를 떠나고 싶은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대구가 좋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작가는 대구가 청년의 실상을 잘 알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진다. 그의 작품이자 조사 자료는 토네이도에 흩어지는 구조물처럼 불안하게 설치되어 있다. 자기만의 성에 갇혀있는 정치인들의 무지는 청년들을 계속 불안하게 할 것이라는 사회적 메시지다.  



김민제, Jenga-Leaving or Staying_ 목재_가변설치_2021(전경)



출전; 가창 창작스튜디오 작가와의 만남(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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