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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민 / 예기치 못한 풍경

이선영

예기치 못한 풍경

 

이선영(미술평론가)

 


[예기치 못한 상황] 전의 전시 부제와 같은 제목의 작품은 밤처럼 어두운 배경 속 보석같이 빛나는 꽃밭이 있고, 그 한가운데서 분홍빛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자연 풍경 속에 난데없는 연기의 출현은 그곳이 심상치 않은 사건 현장임을 알려 주지만 여러모로 개연성이 떨어진다. 위험물질 가득한 공장이나 적이 노리는 인공구조물, 또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곳은 도시의 밤하늘에서는 사라진 별빛마저 보일 정도로 인적이 드문 들판이다. 한편 분홍빛 연기는 그 자체로 불길하다. 통상적인 색을 벗어난 연기는 ‘자연스러운’ 연소가 아니라, 갑작스러운 충격 등으로 위험한 가스 등이 폭발했을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맹렬한 기세로 수직상승하는 버섯구름 형태의 연기는 위급함을 알리는 징후이다. 조금만 흡입해도 사망할 수 있는 유독성 가스의 폭발은 충격적인 뉴스의 한 면을 차지하곤 한다. 하지만 그 의미는 사회적으로 제대로 곱씹어지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사건은 계속 일어난다. 




예기치 못한 상황, 캔버스에 아크릴, 250x214cm, 2021_Blooming Pattern, White shadow, 캔버스에 아크릴, 가변크기, 2021



Light Pattern, 캔버스에 아크릴, 각40cm, 2021_폭발의 조각, 캔버스에 아크릴, 190x130cm, 2021



미디어에서 재난을 소비하는 방식은 망각이다. 팝콘 브레인화 되는 대중들의 무신경한 상태는 웬만한 자극이 아니면 잠시의 관심도 주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세상은 더 자극적이 된다. 송수민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예술에도 들여왔다. 거기에는 징후만 있고 원인이나 어떤 결과에 따른 의미가 불확실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풍경이다. 작가는 대중매체에 보도된 전쟁이나 군사훈련 등의 이미지를 수집해서 작품에 활용한다. 신문에 날 정도면 대개 충격적인 사진들이다. 하지만 그런 자료들을 계속 수집하는 과정에서 원래 맥락은 점차 느슨해진다. 작가는 이에 대해 ‘어떤 사건을 담은 보도사진 하나를 기사와 함께 보고 저장했다. 몇 달이 지난 후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던 그 사진은 텍스트가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보도의 주인공이 되는 부분보다는 오히려 그 주변의 장면과 조형적인 요소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폭발이든 꽃이든 참고 대상은 있지만, 작가가 정작 주목하는 것은 ‘중심에서 비껴가는 요소들’이다. 작품들은 단서들을 던져 놓을 뿐, 설명하지 않는다. 수집이나 패턴의 방식은 계속된다는 것 외에 특별한 원리는 없다. 보도사진은 대개 약호화되어 있다. 하지만 작가는 약호를 벗어난 무엇에 관심이 쏠린다.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구분한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의 대조와 비교된다. 바르트에 의하면 스투디움을 알아본다는 것은 사진가의 의도와 마주침을 의미한다. 스투디움은 문화처럼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과 소비하는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하나의 계약이다. 하지만 바르트는 늘 단일한 사진의 공간에서 하나의 하찮은 것에 끌린다. 코드화되지 않는 것, 즉 푼크툼은 ‘내가 사진에 덧붙이는 그러나 이미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바르트)이다. 바르트는 통속 수사학에 지배되는 대표적인 예로 보도사진과 포르노 사진의 예를 든다. 




[예기치 못한 상황],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21_1



고요한 소란1+고요한소란2, 캔버스에 아크릴, 240x526cm, 2021



고요한 소란1+고요한 소란2 부분



사진에 대한 진부한 메시지를 해체하는 보석같은 담론으로 가득한 [카메라 루시다]는 공공적인 사진의 해독은 언제나 개인적인 해독임을 강조한다. 송수민의 관객은 의미를 괄호치고 공들여 그려진 분홍 버섯구름 속에서 꽃잎 못지않은 아름다움과 또 다른 풍경들을 본다. 환상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듯이 풍부한 겹을 내장한다. 이러한 선택은 대중의 무감각이나 사건의 사회적 의미 등을 삭제하는 작가의 도덕적 불감증을 말하는 것일까. 의미에 괄호를 치고 형식에 관심을 두는 것은 현대 미술의 주요 특징이다. 사회가 분업화되고 예술 또한 자율화되면서 의미는 다른 장르, 가령 사회학이나 철학, 역사학, 문학 등에서 맡는 것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예술가 특히 화가는 물감을 잘 다루기만 하면 됐다. 예술의 자율화는 의미의 무게로부터 작가를 해방시켰다. 하지만 들판의 꽃들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작가는 꽃을 그리긴 했지만 사실주의에 충실하지는 않았다. 


식물학자가 보면 무슨 종인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령 식물도감의 방식으로 자세히 그릴 수 있는 기법이 부족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가령 그렇게 그리는 작가는 신이 창조한 자연에 대한 한치의 왜곡도 없는 찬미가를 부르거나, 과학적 관심사에 충실하거나, 대상 그자체에 압도됨으로서 주체의 역할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묘사의 기술 그 자체에 탐닉하거나 하는 등등의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자연은 그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분류체계에 들어와서야 의미를 부여받는다. 송수민의 작품에 모델은 있었겠지만, 대개 이름 모를 들꽃 같은 분위기로 변화한다. 거기에 의미와 연관될 인간적 질서는 찾기 힘들다. 작가는 의미에 괄호를 치는 대신에 시각적 유사(類似)에 의한 연결고리를 작동시킨다. 작가는 피어오르는 꽃과 연기에서 시각적 공통점을 찾았다. 꽃의 개화는 폭발에 상응한다. 개화 또한 폭발처럼 압축되어있던 것이 터지면서 잠재한 에너지가 바깥으로 흩어진다. 식물의 경우 그러한 과정은 생명의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인 종의 번식과 관련이 있다. 




Blooming Pattern_White Shadow, 캔버스에 아크릴, 가변크기, 2021_1



Blooming Pattern_White Shadow, 캔버스에 아크릴, 가변크기, 2021_2



Blooming Pattern_White Shadow, 캔버스에 아크릴, 가변크기, 2021_3



[예기치 못한 상황],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2021_2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개화는 곧 낙화로 이어진다. 아름다움의 정점은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징후이기도 하다. 바깥으로 활짝 열리는 것은 동일성의 무너짐, 즉 죽음이다. 긴장 고조와 그 완화의 과정은 쾌락과 관련되어 있다. 자신의 에너지를 바깥으로 다 소진시키는 열린 형태라는 공통점으로 꽃과 연기는 연결되어 있다. 그림이라는 이미 보이지 않는 수많은 좌표들이 그어져 있는 장에서 완전한 비관계성, 즉 무의미는 불가능하다. 요컨대 무의미도 의미인 것이다. 현대 미술이 재현주의를 벗어나면서 밖으로 열린 창이라는 함의를 가졌던 사각형 화면은 변형되기 시작했으며, 송수민 또한 이러한 어법을 차용한다. 특히 보안여관에서의 전시같이 장소특정적인 작품은 다양한 형태의 화면이 활용되었다. 작가는 화이트 큐브에 가까운 청주 창작스튜디오 전시실에서도 캔버스를 피스로 나누어 공간에 설치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수 십 개의 피스가 개별임과 동시에 전체로 연결된다. 


제작년도가 다를 수 있는 각각의 작품들의 연결은 유기적이지 않다. 수직으로 죽 붙여 놓거나 그리드 식으로 간격 없이 몰아넣는 식이다. 구성은 의미를 말한다. 작가는 비관계적 구성을 통해서 탈의미화된 작품 이미지와 보조를 맞춘다. 각각의 조각들은 계열을 이루며 연결되어 있을 따름이다. 연결고리는 시각적 유사이지 의미는 아니다. 어디에서 시작되어 끝날지 모를 확장형 구조는 의미를 개방한다. 작가는 ‘장면을 만들어 나갈 때 전체적인 구도를 잡지 않고 화면 한구석에 하나의 장면을 그리고 옆에 다른 장면을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풍경을 증식시키는 것처럼 작업한다’고 밝힌다. 그래서 ‘작품 안에서 이미지가 줌인-줌아웃 되며 각 화면마다 시점의 변화가 생기고, 비어 있는 도형이 나타나기도 하고, 화면이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250x214cm 크기로 그려진 [예기치 못한 상황] 아래에 놓인 꽃다발의 실루엣대로 오려진 화면들의 설치는 전시장이라는 실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Pattern series, 캔버스에 아크릴, 각91x91cm, 2021



고요한 소란, Volcanoes in Blooming Pattern



Volcanoes in Blooming Pattern, 캔버스에 아크릴, 182x182cm, 2021



Blooming Pattern, 캔버스에 아크릴, 40cm, 2021



꽃은 꽃답게 그려졌지만, 그것은 환영이 아니라 3차원상에 서 있는 사물이다. 만약에 뒤의 큰 화면이 어떤 불의의 사건 현장이라면 애도의 꽃다발처럼 보이기도 한다. 크기는 달라도 정사각형 화면을 가진 패턴 시리즈는 [Green and Brown Pattern], [Blue and White Pattern], [Green Pattern] 등으로, 색감에 따라서 건조한 제목이 붙여졌다. [Blooming Pattern] 시리즈는 더 작은 크기의 캔버스로 35x35cm의 정사각형 비율을 유지한다. 이 시리즈는 꽃을 꽃무늬의 단계로 만든 것이며, 정사각형이라서 사방으로 배열이 자유롭다. 수직으로 붙이거나 간격을 두고 가로 대열로 배치하여 그림을 설치적 방식으로 운용한다. 정사각형은 어느 면으로도 붙여나갈 수 있기 때문에 확장성이 있다. 한편 하나의 화면은 보이지 않는 더 큰 전체의 일부를 임의적으로 잘라낸 것 같은 구성이다. 그것은 코드처럼 한정지음으로서 확장하는 역설적 방식이다. 정사각형 화면은 마치 다양한 꽃무늬 패턴의 샘플처럼 보인다. 


작가는 다양한 원천을 가지는 대상에 통일성을 주었다. 어떤 대상이든 같은 형식의 틀을 거치면서 송수민 만의 꽃으로 다시 피는 것이다. 물감을 칠한 후 사포로 갈고 흐려진 이미지 위에 묘사한 후 다시 사포 가는 식으로 색을 섞고 채도를 낮춘다. 그 위에도 다른 색을 중첩하거나 묘사하고 다시 갈아내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대상들로 재탄생한다. 여러 출처를 가졌던 이미지는 ‘세탁’되고 원래의 의미도 휘발된다. 그것들은 균질화되고 실제로부터는 더욱 멀어진다. [Light Pattern] 시리즈는 다양한 방식의 불을 패턴화하여 40cm의 둥근 캔버스에 담았다. 둥근 캔버스 또한 정사각형 캔버스처럼 전시장 벽면에 설치적인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다. 그 옆에 배치된 작품 [폭발의 조각]처럼 불은 불꽃이기도 함을 알려준다. 불이 꽃이라면 꽃도 불이다. 때가 되어 만개하는 꽃들은 가히 폭발적이다. 꽃이 지고 단풍이 들 무렵에도 식물은 울긋불긋한 불이 된다. 




 [예기치 못한 상황],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2021_3



The process of spreading smoke, 캔버스에 아크릴, 30x30cm 9점, 2021



기후변화나 인간의 조그만 실수 등을 통해 종종 일어나는 대형 산불은 은유적으로만 연결되는 식물과 불을 하나로 만드는 재난 현장이다. 패턴 시리즈의 또 다른 설치 방식은 꽃들 사이에 슬쩍 불꽃도 끼워서 배치하는 것이다. 수많은 꽃이 소재가 될 수 있듯이 자연 폭발의 경우 화산은 물론 해저 폭발 같은 다양한 장소가 예시된다. [고요한 소란] 시리즈는 여러 캔버스를 간격 없이 붙여 배치한 것으로, 꽃과 불꽃이 패턴으로 섞여 있다. 여러 종류의 꽃이 가득한 가운데 화산이 폭발하는 이미지들이 간간이 박혀있다. 그것이 ‘고요한 소란’인 이유는 꽃과 불꽃의 시각적 유사와 달리, 청각적으로는 완벽히 대비되기 때문이다. 식물의 꽃이 피는 것도 폭발적인 국면이지만 여기에서 소리는 나지 않는다. 식물은 동물처럼 입과 항문이 소화관으로 연결되는 식의 울림통이 없어서 바람 같은 외부 요인과 결합해서만 소리를 낼 수 있다. 또한 식물이 폭발 같은 재난의 징후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인적은 없고 식물만 가득한 송수민의 작품에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식물에 다 묻혀버린 종말론적 풍경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의 식물이 모두 그냥 풀인 것은 그것을 자신의 이익에 의해 분류할 인간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종 다양성을 갖추고 있는 송수민의 작품에서 식물은 부정적 징후는 아니다. 그것은 폭발의 소란과 대조되는 고요의 역할을 맡고 있다. 작품 [Smoke Wall]은 182x182cm의 캔버스 2/3 가량을 덮는 구름을 닮은 무정형 연기로 가득하다. 폭발 이미지를 많이 다뤄온 송수민의 작품 맥락에서 보자면, 근처에서 일어난 화산폭발의 흔적으로 보인다. 화산폭발은 고체와 액체와 기체가 무분별하게 섞여든다는 점에서 재앙이다.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것들은 거의 벽처럼 하늘을 가득 덮는다. 하늘을 가득 채운 화산재는 그자체가 재앙이지만, 그 아래의 풍경이나 화산폭발의 흔적은 무심하게도 아름답다. 대폭발은 근처의 모든 것을 고요하게 할 것이다. 




 Smoke Wall, 캔버스에 아크릴, 182x182cm, 2021



Blue and Green Pattern, 캔버스에 아크릴, 30x60cm, 2021



 [예기치 못한 상황],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21_4



작가는 [The process of spreading smoke] 시리즈에서 폭발 연기의 다양한 추이를 패턴처럼 모아서 보여주기도 한다. [고요한 소란] 시리즈는 상반되는 것들이 공존한다. 이 전시 직전에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린 전시 제목은 [고요한 소란]이었다. 코로나 사태 또한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아닌 상황에서 그에 상응하는 희생자가 나온 ‘고요한’ 소란이다. 모든 사람이 썼던 마스크는 총체적 재난과 고요함의 역설적 결합을 알려준다. [불.꽃_Light Pattern], [불.꽃_Blooming Pattern] 시리즈는 정사각형 캔버스에 불과 꽃의 이미지를 병렬시켰다. 다양한 실례를 모아놓은 것 같은 ‘패턴’들은 꽃이라는 유기물과 불이라는 무기물이 증식 또는 번져나가는 양태들을 보여준다. 작가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구한 자료들을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지만, 미술 또한 자연과학 못지않게 세계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분석하여 의미화하는 방식이다. 송수민의 ‘패턴’들은 의미의 도해가 아닌 의미가 있는 장소를 매력적으로 보여줌으로서 그다음의 단계를 가능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심미적 체험과 진리 탐구는 생각보다 매우 가까울 수 있다.   


출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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