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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 벌거벗은 생명, 말을 건네다

이선영

벌거벗은 생명, 말을 건네다 

  

이선영(미술평론가)

  


이수현은 최근 작품에서 동물들을 대거 출연시킨다. 인간중심의 생태계에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동물부터 인간이 야기한 생태계의 교란 때문에 멸종 위기종이 된 동물들까지 다양하다. 각 동물마다의 매력을 잘 뽑아낸 작품들은 작가가 자연을 오래 관찰하고 또 많이 그려왔음을 알려준다. 동물들은 아름다운 만큼이나 연민을 자아낸다. 동물과 함께 그것들의 자연스러운 배경으로 푸릇한 식물도 나오지만, 식물은 동물보다 인간에 의한 식민화가 비극적이기 보다는 중성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들이 동물이 살아갈 만큼 풍부한 원초적 자연의 풍부함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수현의 작품에서 동물은 단지 그 아름다움과 희귀함만으로 소재화된 것은 아니다. 많은 기혼 여성이 그러하듯 육아 때문에 30대를 거의 공백기로 보낸던 작가는 미술보다는 다소간 단촐한 매체인 문학에도 관심을 가져왔는데, 언어적 표현의 직접성에 부담을 느끼면서 다시 이미지에 집중한다. 인간이 등장해도 직접성은 마찬가지기에 서사의 매개로 동물이 선택됐다.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되, 은유적인 것이 필요했다. 




“생각나면 잘라 버리고. 생각나면 잘라 버리고. 뭘 잘라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생각만 잘라버렸어.”_91x116_acrylic on canvas_2021



걱정하지 말아요 기억하지 않을께요_acrylic on canvas_72.7x90.9_2021



“생각보다 더 오래 있을 수 있어요.”_130.3x162_acrylic on canvas_2021



그럴거였고 그러려고 그랬고 그리서 그랬습니다._acrylic on vanvas_116x91_2022



새벽 시간을 이용하여 하루 최소 4시간 이상 하는 미술 작업은 생활공간과 겹쳐지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이야기를 담게 된다. 부분들은 사실적 묘사지만, 전체적으로는 조합이어서 어떤 작품들은 초현실적이다. 상대방을 향해 말을 걸듯이 붙여진 문학적 제목과 함께 대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관객과의 가상적 대화에 임하는 은유적 대상으로서의 동물들은 대개 화면 밖을 주시한다. 작가는 동물의 눈이 관객과 마주치게 함으로서 그자체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푸른 눈과 빨간 코, 밝은 아이라인 등 미묘의 조건을 갖춘 고양이가 그려진 작품 제목 [당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저는 훨씬 소중합니다.](2021)는 고양이가 관객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온다. 작품 [자세히 들여다 보면….찾을 수 없습니다…그냥… 가볍게 보세요.](2022)에 등장하는 다섯 마리 고양이는 두 고양이의 여러 모습 같기도 하다. 그것들은 보면서 보인다. 작품 속 자연적 배경은 대개 깨끗하고 평온하다. 


하지만 하늘을 배경으로 배치된 고양이들은 지금도 살아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재현에 내재된 부재의 역설은 달이 떠 있는 밤 풍경에 중첩되어 그려진 코끼리가 있는 작품 [괜찮아…기억하는 한 사라지지 않으니…](2021)에서 분명하다. 코끼리가 풍경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첩된 모습은 이미 코끼리가 거기에 없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상어의 지느러미만 떼고, 코끼리의 상아만 떼고 죽이는 인간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야생의 존재로 인간에게 말을 건네는 동물들은 무한한 자연을 배경으로 할 때 더욱 멋지다. 푸른 하늘을 가득 담은 푸른 눈의 고양이나 시원한 수평선을 배경으로 화면 안으로 들어와 밖을 주시하는 이국적 동물이 그것이다. 하지만 하늘과 바다는 육지와 마찬가지로 위기에 처해 있다. 작품 [그래도 계속… 염원합니다. 나는.](2022)에서 이슬을 가득 머금은 생생한 이파리 아래에 수달이 기도하듯이 손을 마주한다.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_27.5x40__acrylic on canvas_2021



별거아니야 진짜 별거아니야_acrylic on canvas_60.6x72.7_2021



“오늘은 몸이 천근만근이야...그래서 못가.”  “거짓말...니 마음이 천근만근 이겠지...”_2021_acrylic on canvas_91x116



그래도 계속 염원합니다. 나는_acrylic on canvas_25x37_2022



유리그릇 안에서 몸을 내민 작은 새는 깨지기 쉬운 아름다운 존재를 말한다. 뿔이 난 사슴은 제목 그대로 [전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습니다.](2021)고 말하는 듯하다. 작가는 작품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늘…보이는 곳](2022)에서 인간과 자연 간의 공존에 대한 희망을 피력한다. 아파트 촌과 산, 큰 이파리로 덮인 섬, 섬들을 잇는 다리, 하늘로 떠오르는 오색 풍선들은 평화롭다. 사이사이에 기린들, 수달, 고양이 등이 배치. 공존을 염원하는 유토피아적 풍경이다. 동물은 인간의 은유이기도 하지만, 동물 그자체이기도 하다. 작가는 동물 편을 든다. 혀를 낼름거리며 수돗물을 먹는 고양이를 그린 작품 [망설이지 마…두려워 하지 마…그거..다 네 물이야 앞으로도 그럴 거야](2021)에서 길고양이는 밥 못지않게 물이 부족하다는 섬세한 지점까지 전달한다. 이수현이 요즘 그리는 동물에서 많이 등장하는 것이 고양이다. 


유기묘를 키우면서 인연이 된 이 동물은 인간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야생성을 가지고 있는 종적 특성을 가진다. 작가를 만나러 춘천에 갈 즈음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의 여파는 고양이의 얼굴을 화면 가득히 그린 이수현의 작품을 똑바로 볼 수 없게 했다. 5월 23일 KBS 9시 뉴스에서는 미군 오산 기지에서 지난해 7월부터 12월 사이 길고양이 10여 마리를 총살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동물보호단체인 [비글구조 네트워크]가 제보한 사진은 비행기 이착륙에 방해를 줄 수 있는 ‘유해 동물’인 길고양이를 22구경 공기총으로 머리를 겨냥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철창에 갇힌 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고양이를 두고 ‘합법적 규정’에 따른 집행이었다는 미군 측의 ‘일관된’ 해명에 더욱 분노했다. 관련 신문 기사에 의하면 ‘기지 내 유해 동물처리반은 비행기 활주로 안전과 감염병 예방 등을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기사는 ‘미국 국방성 군 해충관리위원회는 군사작전 내 동물을 유기동물(Stray animals)과 야생동물(Feral animals)로 구분해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한겨레 신문)고 인용한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찾을 수 없어요_ acrylic on canvas_116x91_2022



그냥 상상한 대로만 믿고 싶습니다_acrylic on canvas_37x24_2022



괜찮아 기억하는한 사라지지 않으니_acrylic on canvas_90.9x72.7_2021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늘 보이는 곳_acrylic on canvas_116x91_2022



이 기준에 의해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금기를 어긴 고양이는 말 그대로 즉결 처형당했다. 지구가 인간만의 것이 아닌데, 누구를 위한 합법이고 규정인가의 문제가 뒤따른다. 전쟁이나 전시에 준하는 억압적 상황에서는 인간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이수현의 작품 속 동물이 인간, 특히 타자화된 인간의 운명을 떠올리는 것은 뉴스만 보면 나오는 충격적 사건들 때문이다. 작품 속 동물들은 벌거벗은 생명의 상황을 알려준다. 조르조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에서 정치의 근본 범주를 주권과 벌거벗은 생명의 관계로 새롭게 파악한다. 조르조 아감벤은 미셀 푸코의 [앎의 의지]가 ‘자연 생명이 국가권력의 메커니즘과 계산 속으로 통합되기 시작하고 정치가 생명 정치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푸코에 따르면 인류가 그리고 개개인이 단순히 살아있는 신체라는 의미로 정치전략의 중요한 관건이 될 때 사회는 생물학적 근대성의 문턱에 도달한다. 


근대정치는 벌거벗은 생명과 내밀한 공생관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정치의 새로운 주체는 바로 신체 그 자체다. 이수현의 작품 속 동물들은 일상적 소재를 넘어서 개명천지한 세상인 근대 민주주의 시대 생명 정치와 관련된다. [호모 사케르]는 ‘정치란 인민의 생명에 일정한 형식을 부여하는 것’(페르슈어)을 인용하면서, 벌거벗은 생명을 정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이야말로 주권 권력의 본래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이 맥락에서 보자면 즉결 처형된 미군기지 내의 고양이 사건은 정치적이다. 조르조 아감벤은 정치는 ‘비정치적인 것에 대한(즉 벌거벗은 생명에 대한) 결정’이라고 말한다. ‘벌거벗은 생명의 정치화’는 충격적인 사진을 폭로한 동물보호 단체의 행동에서도 보여지며, 평화로와 보이지만 결코 그것들이 보이는 만큼 평화롭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이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수현의 작품도 그렇다. 왜 우리는 그 아름다운 얼굴들에서 죽음을 감지하는가. 




'그거 다 니 물이야. 다 마셔'_26.5x53_acrylic on canvas_2021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저는 훨씬 소중합니다_19x33_acrylic on canvas_2021



친애하는 달라리아에게_acrylic on canvas_60.6x72.7_2022



조르조 아감벤은 민주주의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는 전체주의와 내적으로 결탁되어 있다고 본다. 전대미문의 전체주의 정치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시대의 정치가 생명 정치로 완전히 변형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정치화하는 현상’(칼 뢰비트)이 민주주의의 뒷모습인 전체주의다. 이수현의 작품 속 동식물은 생명이지만, 결코 중립적 영역에 있지 않다. 그것들은 인간, 특히 타자화된 인간을 대변한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이 말하듯이 말하는 것이다. 특히 고양이들은 인간과 친한 듯하면서도 야생성을 가진, 요컨대 동일화할 수 없는 타자의 예이다. 이수현의 작품이 은유하는 바는 고양이를 비롯한 작은 동물은 작아서 핍박받고, 코끼리나 곰, 사슴처럼 큰 덩치의 동물은 커서 핍박받는다, 핍박받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전후의 모습일 수 있음을 우리는 매일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감지한다. 인간이 동물을 타자화했지만, 타자의 범주는 점차 커지고 있다. 


이수현의 작품에서 타자는 우리를 주시하며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의미에서 윤리적이다. 진선미가 분리된 이래로, 아름다움과 윤리를 결합시킬 소재는 점차 줄었지만, 이수현은 동물에게서 그것을 다시 발견했다. 작가는 삶의 한가운데로 뛰어들면서 일상인들을 보다 관심 있게 봤지만,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을 피하고 싶었기에 동물을 사람처럼 그렸다. 사람이 동물적일 때는 부정적이지만, 그 반대는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단어가 아니라 생략표가 포함된 문장으로 만들어진 작품 제목은 이미지와 연동되어 읽힌다. 근 몇 년 동안의 개인전 제목들--[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2020), [정리된 혼돈](2021), [당신은 지금 정말 괜찮은가요?](2021), [우리가 함께하는 이유](2022), [사라졌던 것들과 사라진 것들과 사라질 것들](2022)--도 ‘가장 기본적인 것인 자연’과의 ‘공존’에 가치를 부여해온 작가의 관심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작품 속 동물들은 그러한 서사를 전달하는 매력적인 주인공인 셈이다. 



출전; 춘천문화재단, 예술소통 공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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