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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 코드로 분열하는 세계

이선영

코드로 분열하는 세계


이선영(미술평론가)

 


김윤경의 전시 [고야의 방, 판타스틱 비전(Goya’s Room, Fantastic Vision)]은 고야의 블랙 페인팅(Black Painting) 시리즈를 참고한다. 하지만 원작의 분위기와는 달리, 완전히 밝고 화사한 분위기로 반전되어 있다. 전시 키워드에 포함된 ‘환타스틱 비전’은 설치 작품에 동원된 재료들이 키치적 사물이라는 점과도 관련된다. 키치란 무료한 일상을 ‘환타스틱’하게 전환시키기 위한 대용품이기 때문이다. 필림 블롬은 [수집]에서 키치는 이상세계에만 등장한다고 말한다. ‘그곳은 우리가 꿈꿀 수 있을 만큼만 가까우며 실제로 추구하지 않을 만큼만 먼 환상의 세계’(필림 블롬)이다. 작품 속 성모마리아 상 같은 것들이 원래부터 키치는 아니었다. 종교적 성상 또한 산업 시대를 맞아 대량 생산된 상품이 됨으로서 키치의 대열에 포함됐다. 고야같이 이미 미술사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 또한 마찬가지다. 수많은 예술적 성지순례 길에 작가 관련 상품들을 생각해 보라. 




전시전경


  

키치와 (고급)예술은 정반대로 보이지만,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같이 태어난 짝패로 평가된다. 김윤경의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이 짝패다. 신화 및 종교와 관련되어 있던 예술을 자율화한 시대가 근대다. (순수)예술은 동굴벽화 때부터가 아니라 산업 시대부터 시작됐다. 키치 또한 그렇다. 예술과 키치는 겉으로만 반대되는 짝패가 되어 예술과 문화의 변증법을 추동했다. 거시적으로 봐서, 모더니즘 시기에는 순수예술에 대한 미학적 이데올로기가 키치를 지양했고 포스트모더니즘 시기에는 키치를 지향했다. 김윤경의 작품에서 환상적 비전을 더욱 강화하는 것은 키치적 사물에 많이 덧입혀지는 따스하고 화려한 색감이다. 원래의 재료를 속이는 경향이 있는 싸구려 물건들의 피상적 속성을 색깔로 강조했으며, 어떤 대상은 일부러 아무렇게나 칠해졌다. 싸구려 물건들의 가벼움을 더욱 가볍게 하기위해 작가는 미술사상 가장 우울하고 묵직한 예술가를 호명했다. 


전시장 입구 오른편에 걸린 대작 [Pilgrimage to San Insidro]는 마스킹 테이프를 이용한 유화로, 바코드처럼 수직으로 내려오는 색의 띠 사이사이로 고야의 그림에서 취해온 장면들이 끼어있다. 말년에 화려한 궁정을 떠나 낡은 저택에 칩거하며 그렸다는 벽화 [블랙 페인팅] 시리즈 중에서 선택한 장면이다. 기하학적 띠와 구상적 형태의 조합은 색이 아무리 화려해도 인물들이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동의할 수 없는 세상의 규칙에 갇혀 있든지 자기만의 광기에 갇혀 있든지 말이다. 이러한 유폐의 이미지는 코로나 시기를 통과 중인 현대에와 공감대를 이룬다. 작가는 고야가 ‘이성과 법칙이 무너진 시대의 추악한 인간 본성을 고발한 것’은 ‘코로나 팬데믹과 그 이후의 시대의 우리가 마주한 불안한 현실과 묘하게 닮아있다’고 말한다. 그림 속 색들은 바이러스처럼 분열한다. 하지만 색상이 화려해서 고독한 유폐나 어두운 감금과는 거리가 있다. 고야가 앓았다고 추정되는 광기로 친다면, 블랙이나 블루 등, 하나의 색조에 침잠해 있는 우울증이 아니라 국면 전환이 빠른 조광증에 가까운 증상이다. 








전시전경



엄격한 수직의 띠만이 눌러주고 있는 색들의 분열과 거장과의 조합은 정신의 어떤 단계에서 만난다. 그것이 만날 수 있는 이유는 양자가 비슷해서이다.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근대 세계에서 광기가 진리의 빛에 맞선 어둠의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빛이 실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광기의 어둠 속에서 일 뿐이다. 고야의 작품 중 [이성의 잠]이라는 역설적 제목은 시대정신의 발로 그자체인 셈이다. 푸코는 계몽주의로 강조된 이성 그 자체에서 광기를 본다. 광인은 더 이상 고전주의적 비이성의 분할된 공간에 갇힌 미치광이가 아니라, 질병의 근대적 형태에 들어맞는 정신병자라는 것이다. 이성의 이면이 광기이며, 양자는 빛과 그림자같이 뗄 수 없는 관계다. 김윤경의 작품 또한 어둠과 화려함의 자리 바꾸기가 일어난다. 마치 편집증과 분열증이 교차되듯 말이다. 입구 맞은 편의 벽과 전시장 가운데 설치된 작품의 재료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성품은 가격표, 즉 그림 속 수직의 띠 같은 바코드가 박혀 있었을 것이다. 

 

전시장 입구 쪽에 설치된 또 다른 작품은 좌대 위에 상, 소반, 쟁반, 접시, 그릇 등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마치 탑처럼 보인다. 맨 위에는 이것저것이 혼합된 키메라 상이 배치됐다. 좋은 것을 다 모아 놓은 듯한 사물이 키치다. 상 위에 놓인 조각상들도 기괴하게 색이 입혀진다. 원래 그 조각상들은 화가로서의 수련을 위해 빛과 그림자만 남겨야 하는 순수한 바탕이어야 하지만, 색으로 오염된 듯한 모습이다. 현대미술가는 기존의 예술사에 어떤 ‘새로움과 진보’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인가. 고야나 색 띠, 각종 키치적 오브제들은 어디선가 끌어온 것이다. 현대의 작가는 태양 아래 새로울 것이 없는 것들을 새로 배치해서 또 다른 맥락을 만드는 일만 남았다. 이러한 경향은 패로디, 패스티쉬, 전용 등의 여러 미학적 전략을 낳았다. 마스킹 테이프를 활용한 화려한 색 띠는 동원된 소재들 간의 불연속성을 이어주는 매개로 보여진다. 








전시전경


 

고야 시대와 현대의 대화를 가능케한 형식적 장치는 색 띠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은 코드화이다. 린다 허천은 [패로디 이론]에서 패로디의 목표는 항상 예술의 다른 작품이거나 더 일반적으로 다른 형태의 기호화된 담론이라고 말한다. 패로디가 인식되고 해석될 수 있으려면 기호 입력자와 해독자 간에 공유된 기호가 있어야 한다.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기호는 더 널리 공유됨으로서 과거에 대한 전용은 더 순조로워진다. 현재는 물론 과거 전체가 대화 가능한 아카이브가 된다. 패로디나 패스티쉬, 전용 같은 포스트 모던 미학의 전략에는 자료 수집이라는 공통적 기제가 깔려있다. 전시장에 하얀 선반을 설치해서 색칠한 조각상들을 배열한 작품을 이루는 것은 상품들의 모음이기도 하다. 종교적 성상이나 선남선녀, 귀여운 아이들, 촛대와 컵 등 누구에게나 확실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 중구난방의 수집물은 하나의 색으로 칠해져 있어 나름의 통일감을 준다. 작은 선반에 다소간 과하게 늘어놓은 것들은 무분별한 취미인 키치와 짝을 이루는 수집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김윤경의 이전 작품에는 자신의 그림을 전시장에 천정까지 닿을 정도로 이중 삼중으로 걸어 놓은 것이 있는데, 거기에는 수집가의 보물 창고같은 분위기가 있다. 순도를 위한 배제 보다는, ‘그리고’로 연결된 세계다. 끝도 없이 수집하려는 이의 마음에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자기만의 원칙을 관철 시키려는 욕망이 깔려 있다. 필립 블롬은 여기에서 죽음을 극복하려는 태도를 본다, 필립 블롬은 수집을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말한다. 나비나 딱정벌레처럼 문자 그대로 죽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원래 있던 환경이나 기능, 자리에서 다른 인위적인 질서 속에 억지로 집어넣는 행위, 즉 그 물건의 쓸모, 존재 의미를 죽이는 경우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우리 안에서 수집욕을 키우고 불멸을 창조하게끔 만들고 수집은 그 산물이라는 것이 필립 블롬의 결론이다. 키치적 사물과 김윤경의 작품과의 보다 근본적인 연관 고리는 죽음의 기호에 있다. 작가는 바니타스나 메멘토 모리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다. 




전시전경



(참고도판) 이미지의 향연 전(대구예술발전소)






 

전시장 가운데는 종교적 조각상이나 해골뿐 아니라 상, 소반, 의자, 새장, 그릇, 촛대 등이 모두 기성품. 대조되는 색으로 칠해져 있다. 성모마리아 상같은 서구의 대표 종교와 동양의 탑처럼 쌓은 것들은 대개 기복, 구복을 원하는 간절한 마음과 관련된다. 이러한 상들은 이승의 초월을 지향하는 듯하지만, 이러한 초월은 이승의 행복을 위한 욕망이다. 설치물을 사이에 두고 시리즈 형식의 작은 그림들이 걸려있다. 큰 작품과 마찬가지로 마스킹 테이프를 활용한 기하적 구조다.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 쪽 벽에 노랑을 기본으로 레드. 민트. 블루 등의 색 띠가 조합된 정사각형 화면의 기하적 추상화가 2x2열로 간격을 띄어 배치된 작품군이 걸려있다. 그 옆에는 직사각형 평면 4개는 색의 띠로 화면 가장자리를 처리하여 마치 그림이나 거울같은 프레임이다. 색상의 조합은 몇 가지가 돌고 도는 순환적 구조다. 수직으로 칠해진 색의 띠의 경우 현재는 두 개지만 계열을 이루면서 무한히 접붙여질 수 있는 열린 작품이다.  


출전; 행복북구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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