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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 구름 위의 산책

이선영

구름 위의 산책

  

이선영(미술평론가)

 


박소영의 작품에서 땅과 하늘, 자연과 관념,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은 서로의 꼬리를 물며 순환한다. 순환이라는 가역적 과정은 시작과 끝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 층층이 그려진 박작품은 이전의 층을 완전히 말소하지 않고 각각의 세계를 보전하고 있다. 관객의 시선은 표면을 넘어서 다음 층으로 빈번하게 이동한다. 겹쳐진 시공간은 동시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 겹쳐진 상태라 어느 층도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는 풍경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실재감을 강조함과 동시에, 정지된 매체인 회화에 시간적 감각을 도입한다. ‘나의 작업은 야외를 거닐면서 영감을 받아 자연과 우주에 대한 명상과 사색을 담아낸다.’고 말하는 작가의 영감은 자연 속 산책이다. 작품은 그가 본 것, 생각한 것, 지나친 곳, 머무른 곳, 도착할 곳 등이 중층적으로 표현되는 장이다. 장지에 수묵, 안료로 그린 [유어산수(遊於山水)] 시리즈는 최근 몇 년 간 국내외에서 열린 개인전 제목들 [山水를 노닐다: Strolling in Nature](2020, 2021), [Walking in the clouds: 소요유(逍遙遊)](2014-2018)의 의미를 반향 한다. 



유어산수(遊於山水),장지에 수묵, 안료, 91×116.7cm, 2021



유어산수(遊於山水),장지에 수묵, 안료, 91×116.7cm, 2021



유어산수(遊於山水), 장지에 수묵, 안료, 80.3×100cm, 2021



붓이 매끄러운 표면을 가듯이 작가는 자연으로 가며 그 족적을 남긴다. 작품 [유어산수(遊於山水)](2021)는 하늘 위에 구름, 또는 바다 위에 섬같은 이미지 위에 한 겹 더 드리워진 금강전도 스타일의 산수다. 자연풍경은 실재감 있게 표현된 반면, 전통에 전거를 둔 산수는 베일처럼 얹혀있다. 둘 다 이미지지만 맥락을 통해 실재와 관념이라는 차이를 강조한다. 박소영의 작품에서 겹쳐진 이미지는 혼돈이기 보다는 유연한 시공간을 상징한다. 현대미술에서도 ‘컴바인 아트’로 명명된, 서로 간에 인과 관계없는 도상이나 대상들이 조합되는 작품이 있지만, 박소영의 작품은 그러한 허무하고도 파괴적인 나열이 아니다. 그러한 우연성에서 비롯되는 작가만 하는 난해한 수수께끼에 탐닉하지 않는다, 박소영의 작품에서의 병렬은 시각적일 뿐 아니라 의미의 연결고리들이 있다. 10여년 전 개인전 제목들인 [Nature in the Cosmos: 한국화 힐링을 만나다](2014), [The Cosmos and Nature](2012)에는 ‘우주’라는 키워드도 들어가 있다. 


하지만 자칫 관념론으로 기울어질 수 있는 영역을 앞으로 당겨온다, 박소영의 작품에서 우주는 구름으로, 구름은 꽃나무로 전이된다. 생각할 수만 있는 것을 보는 것으로, 만질 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킨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이루어진 4번의 개인전 제목에는 ‘Walking in the clouds’라는 개념이 포함돼 있다. 작가는 구름의 풍경을 ‘추상적인 입자 형태로’ 나타냈다. 고대 원자론자들처럼 만물을 이루는 입자와 그것이 운동함으로서 변화를 일으키는 공백이 공존하는 장이 바로 구름의 형상이다. 작가가 ‘세포처럼 보이는 입자들로 구성된 대기(大氣)의 장(場)을 만들고’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봐서 우주를 이루는 원소들은 유기체인 나를 이루는 원소들과 같음을 알 수 있다, 탄생하고 소멸하는 별을 이루고 있는 먼지 구름이나 지구상의 유기체를 이루는 구성요소나 다를 것이 없다, 자연과의 공감은 주술이 아니라, 과학이다. 과학은 오래된 인류의 상상력에 내재된 직관을 하나하나 증명하고 있다. 



梅花-구름에 흘러가듯, 장지에 수묵, 안료, 61×91cm, 2021



유어산수(遊於山水),장지에 수묵, 안료, 40×50cm, 2021



유어산수(遊於山水), 장지에 수묵, 안료, 40×50cm, 2021



구름에는 빛을 제외하고 자연에는 없는 직선이 없다. 직선은 코드화된 문명의 기조를 이룬다. 미국의 외과 의사이자 미술연구가인 레오나드 쉴레인은 [미술과 물리의 만남 (Art & Physics)(1991)에서. 직선은 자연에서는 거의 결핍된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모든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형태는 곡선이거나 아라베스크 형태이다. 나무줄기와 지구 위에 똑바로 서 있는 인간만이 세로로 보이는 수직선의 형태를 닮는다. 박소영의 작품에서 직선적이지 않은 구름은 기상현상처럼 변화무쌍하며, 이해관계에 한정된 협소한 인간의 규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작가는 정선의 [금강전도]의 선을 따온다. 그 밖에 관념산수라 할 수 있는 이징의 [니금산수도]도 인용되었다. 한편 배경을 이루는 하늘/구름은 작가가 직접 찍은 풍경이거나 스케치로부터 왔다. 구름 부분을 또 다른 이미지로 채워 넣음으로서, 서로 다른 층위 간에 대조적 어법을 구사한다. 


[유어산수]에서 관념산수에 대한 선적 표현은 선 자체가 시간적 축을 따라 이동하는 듯하다. 2021년 제작된 유어산수 시리즈에서 산 즉 땅과 하늘이 겹쳐진 풍경은 산 위에 하늘이 있는 자연적 풍경과 다르다. 주름진 산의 굴곡 면은 그 기원의 유동성을 말한다. 바위 또한 구름처럼 가변적이었다. 겹쳐진 풍경은 잠재적 상태에서 현실적 상태로의 전이를 강조한다. 작품 [梅花-구름에 흘러가듯]을 보면, 풍경 속 구름은 매화로 채워져 있다. 작품 속 식물군은 사군자다. 사계절을 상징하기도 하는 ‘매란국죽’의 하나인 중의 하나인 매화는 동양 문화의 상징적 전통과 접속하는 매개로, 단순히 발견된 꽃나무가 아니다. 뭉쳤다 흩어졌다 변화무쌍한 양상을 가지는 구름은 지상의 동식물같은 (구름에 비해)상대적으로 견고한 대상들의 상대적 측면을 말한다. 어느 시기에 눈처럼 흩날리곤 하는 작은 꽃잎들은 꽃나무로 만들어진 구름을 상상하게 한다. 



梅花-구름에 흘러가듯, 장지에 수묵, 안료, 72.7×91cm, 2021



유어산수(遊於山水), 장지에 수묵, 안료, 72.7×91cm, 2021



봄에 만개하는 지상의 꽃나무들은 그자체가 구름같은 실루엣을 보여줄 때가 있다. 때가 되면 꽃구름은 꽃비나 꽃눈으로 내려와 다시 지상에서의 순환에 돌입한다. 구름처럼 꽃그늘도 만든다. 작가가 구름과 중첩시킨 꽃나무는 저 멀리 있기에 볼 수만 있는 구름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느끼게 한다.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꽃나무에서 구름보다 지척에 있으며 만질 수도 있다. [유어산수]는 타원형의 변형된 화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자연을 이루는 여러 근본적 요소들이 서로를 무화시키지 않은 채 관계들로 얽혀있는 모습을 현미경적 시점으로 변형된 화면을 통해 보여준다. 제일 위에 있는 층의 이미지는 다른 작품에서 선들이 점들로 분해되는 듯한 모습이다. 현실은 다시 잠재태로 돌아가 또 다른 현실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 무엇도 완전한 종말을 맞는 것은 없다 한 쌍으로 제작된 듯한 또 다른 타원 화면에서 선들은 산으로 일어선다. 


배경에 깔려 있어 정확하지 않았던 구름 속 식물들은 다른 작품을 통해 매화임이 드러난다. 작품 [梅花-구름에 흘러가듯]에서 작가는 구름에서 꽃을, 꽃에서 구름을 본다. 유사한 실루엣을 통한 상상적 통합이다. 구름이나 꽃나무는 하늘과 땅에서 각각 자연의 순환을 대표하는 도상들이다. 자연은 연상의 사슬을 통해 연결된다. 푸른 하늘에 꽃구름 떼들이 장관을 이루는 [유어산수]는 비처럼 눈처럼 때가 되어 떨어진 꽃잎을 즈려밟고 가는 산책길에서 멜랑콜리는 없다.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상호전환을 믿는 이에게 그것은 순환이라는 자연적 순리의 한 국면이기 때문이다. 처음과 끝을 가지는 역사주의적 관점을 계승한 근대는 발전지상주의를 낳았지만 동시에 파국적이다. 과잉된 생산력은 파괴를 통해서만 그 출구를 찾는다. 꽃구름을 즈려밟는 듯한 작업에 어려움이 없지는 않겠지만, 예술을 통해 각자의 이상향을 추구하는 삶이 바로 평화의 원형이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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