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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 / 자연의 반복

이선영

자연의 반복

 

이선영(미술평론가)

 


김호연의 [웃음꽃] 시리즈는 웃음과 꽃을 연결시키는 일상어에 대한 시각적 번역이다. 꽃 내부에 있는 꽃술의 곡선에서 웃음을 머금은 입가의 형태가 중첩된다. 웃음과 꽃은 모두 피어난다. 닫혀있던 것이 바깥으로 개방된다. 철통같이 굳건한 자기 보호적 동일성이 타자를 환대하는 모습으로 변화한다. 활짝 핀 꽃은 환한 얼굴로 상대를 맞아주는 듯이 보인다. 여러 개의 꽃이 함께 하는 작품은 웃음 또한 꽃처럼 전염됨을 보여준다. 향기든 꽃가루이든 전염은 마술적이다. 매개 고리가 정확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식물의 생애주기를 생각할 때, 개화의 시간은 길지 않다. 웃음 또한 마찬가지다. 꽃을 찾아다니거나 곁에서 키우는 사람은 행복에 더 적극적인 사람일 것이다. 자연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는 예술을 통해 자연을 영구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꽃을 그리는 작가는 그것이 마음속에서 계속 피어있기를 바란다. 꽃은 주변을 환하게 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환한 웃음을 짓게 한다. 




웃음꽃/ acrylic on canvas/ 112.1*145.5cm 80호F/ 2020



웃음꽃/ acrylic on canvas/ 97.0*145.5cm 80호P/ 2021



웃음꽃/ acrylic on canvas/ 83.3*116.7cm 50호P/ 2021



웃음은 인간에게만 있다고 말해지며, 사회적 동물은 웃는 얼굴을 하는 상대의 표정에 민감하다. 앙리 베르크손의 [웃음](1900년)은 출판된 지 오래되었지만, 웃음에 대한 독창적 해석으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첫 문장에서 ‘웃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고 묻는 이 책에는 유용한 철학적 통찰이 많지만, 김호연의 작품과 관련되어서는 반복이라는 개념이 주목된다. 먼저 그의 작업에서 소재인 꽃은 사람의 웃음을 반복한다. 시리즈 작업을 통해 작품이 반복되고, 조형 언어에도 짧은 선을 반복해서 사용한다. 앙리 베르크손은 파스칼이 [팡세]에서 제기한 한 질문을 공유한다. 즉 그에 의하면 ‘서로 닮은 두 얼굴은 따로 떼어놓고 보면 특별히 웃음을 자아내게 하지 않는데, 함께 있으면 그 유사성으로 웃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는 ‘연설가의 몸짓은, 그 각각은 우스꽝스럽지 않지만 반복하면 웃음을 자아낸다’고 인용하면서, 참으로 살아 있는 생명에는 반복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은 코미디의 대표적인 소재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사물의 인상을 줄 때마다 웃는다’고 말하는 앙리 베르크손의 분석은 인간이 자동인형같은 사물과 연결되었을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김호연이 작품으로 호출한 꽃은 사물이 아니다. 그의 ‘웃음꽃’은 사물이 아니라 자연처럼 반복한다. 매해 다시 피는 꽃은 다 똑같아 보여도 공장에서 찍어낸 대량 생산물과 다르다. 점차 확대되어가는 기계론적 세계관에 대항했던 철학자는 ‘생명의 지속과 그 약동의 세계’를 강조했으며, 이는 ‘오직 직관에 의해서만 인식’된다고 말했다. 그의 철학은 생명은 물론 예술에도 적용될 수 있다. 시간과 기억. 그리고 삶에 대한 철학자의 사유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인 마르셀 프루스트 같은 현대 예술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일상적 경험에서 조화(造花)와 생화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생화는 조화와 달리 부지불식간에 계속 움직이기에 적어도 그것이 살아있는 동안 먼지가 끼거나 탈색이 되는 일은 없다. 




웃음꽃/ acrylic on canvas/ 65.2*91.0cm 30호P/ 2021



웃음꽃/ acrylic on canvas/ 116.7*83.3cm 50호P/ 2021



하지만 생명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보다 심오한 실재로서의 생명의 지속과 그 약동의 세계’(앙리 베르크손)는 인식하기 힘들게 되었다. 이성이 아닌 직관의 형식인 예술은 이러한 생명의 철학과 함께할 수 있다. 이를 인간사회에 적용할 때 자연을 비롯한 타자를 도구화하지 않는 윤리적 사고로 이어진다. [웃음]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인 ‘생명적인 것에 덧붙여진 기계적인 것’은 점차 많은 것들을 기계에 의해 자동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현대사회에 편재해 있다. 김호연은 인간과 비유된 꽃을 통해 웃음을 전달한다. 꽃 또한 인간의 웃음만큼이나 보편성을 가진다. 꽃을 보고 찌뿌리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웃음이나 꽃은 생리적이고 자연적인 진리에 바탕 한 소재다. 지난 겨울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같은 자리에서 피고 진 꽃이 또 핀 것을 보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 때가 돼서 일제히 꽃망울이 터진 모습에 사람들은 감탄한다. 그 꽃들이 언제부터 피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그것을 보고 웃는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피고지고, 그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식물은 그렇게 부활이나 영속에 대한 관념을 낳게 했다. 그러나 이렇게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것들을 예술가들은 회피한다. 꽃보다는 작품이 빛나야 하기에, 소재의 아름다움에 작품의 아름다움을 기대서는 안 되기에 그렇다. 정반대의 해결책으로 주변적이거나 추한 것들에 시선을 두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소재주의로부터 멀지 않으며 상투화될 수 있다. 김호연의 작품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그것에 상당 부분 의지하지만, 그것을 담는 조형 언어의 힘 또한 강조한다. 그는 특정한 꽃을 재현하지 않는다. 꽃이라는 기본적인 특성을 공유하는 유사한 형상일 따름이다. 대상과 형식은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조형적 형식은 평범한 꽃도 다시 보게 하며, 세상에 없던 모습으로 변신시키기도 한다. [웃음꽃]은 꽃의 형태를 빌린 상상의 표현이다. 상상도 식물처럼 발아해서 자라나고 꽃이 핀다. 최근의 시리즈에서 푸른 계열과 대조되는 붉은 계열의 꽃은 상보적이다. 작가는 두 가지 선택만으로 음과 양의 관계처럼 전체를 포괄한다. 




웃음꽃/ acrylic on canvas/ 145.5*97.0cm 80호P/ 2021



웃음꽃/ acrylic on canvas/ 162.2*112.1cm 100호P/ 2021



줄기 부분은 플러스 기호의 연결처럼도 보인다. 그것들은 종으로 그리고 횡으로 이어진다. 연결, 접속되는 생태계는 자연과 인공 모두에게 관철된다. 태양이 있는 하늘을 향하는 꽃의 방향성은 승화를 생각하게 한다. 개화는 승화이다. 작가는 선으로 꽃의 형상을 그린 후 짧은 선이나 점으로 내부를 채워 넣는다. 그것은 식물이 자기 보호를 위해 세포를 변형시킨 잔털이나, 수정을 위해 꽃가루를 흩날리는 모습이 연상된다. 하트 모양의 봉오리들은 연속적으로 활짝 피어날 것이다. 시간적 전후의 과정은 한 공간을 차지하는 꽃의 무리에 의해 암시된다. 햇빛 쪽으로 향하는 식물의 특성은 주어진 공간을 빼곡하게 채우곤 한다. 배경과의 대조가 크지 않게 은은하게 표현된 다른 작품과 달리 밝은 바탕에 강한 색으로 칠해진 꽃들의 무리가 있는 작품에서 방사형으로 펼쳐진 꽃의 외곽선은 꽃을 별처럼도 보이게 한다. 낭만주의자들이 노래했던 ‘푸른 꽃’(노발리스)이나 장독대 근처에 피어있던 도라지꽃을 연상시키는 푸른 꽃들이 밝은 바탕에 한가득 떠 있다. 


30호 크기의 화면 가득히 그려진 꽃의 형상에 작가는 점에 가까운 짧은 선을 가득 그려 넣었다. 외곽선 안의 선은 반복되지만, 그것은 기계적 반복이 아니다. 중심부에 자리한 수술대 또한 빼곡하다. 꽃은 열매를 예기(豫期)하는 풍요로움의 상징이다. 꼭 필요한 것만 있는 자연의 경제성을 생각할 때, 많은 점들은 충만을 상징한다. 꽃의 실루엣은 하트모양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관객을 마주한 위치에 놓인 꽃 한 송이는 더욱 분명한 얼굴의 실루엣을 하고 있다. 거울처럼 마주하는 화면은 눈앞의 대상을 인간의 반사로 간주하게 한다. 이 맥락에서는 동그라미 하나도 얼굴이 되고, 그 안의 선 하나하나가 내용이 된다. 초상화가들은 손바닥만한 면적 안에 선과 점의 배치로 남녀노소와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의 경우 둥글둥글한 후덕한 얼굴에 파마머리를 한 여자가 생각난다. 그 안을 채우는 짧은 선들은 꽃의 형상이자 인간의 오만가지 표정으로 조합된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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