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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규/ 잃어버린 땅

이선영

잃어버린 땅  

 

이선영(미술평론가)

 

송신규는 땅에 관심이 많다. 한국에서 땅에 관한 한 투기꾼을 먼저 떠올릴 만큼 왜곡되었지만, 그의 관심은 땅을 경제적 이익의 대상으로 보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단타성 이해 관심사가 아니라, 태초와 종말을 포함한 장기지속의 기간에 맞춰져 있다. 그림과 설치를 아우르는 작품 이력에서 땅이라는 근본적 실재는 공통 배경을 이룬다. 그것은 우선 그가 강원도 산골 소년이라는 출신과 관련 있어 보인다. ‘흙, 땅, 집, 그리고 기억의 빈터’에 살던 작가에게는 ‘산, 강, 동식물의 그림자 진 아련한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투기적인 개발에 의해 고향의 자연이 망가져 가는 것 또한 본다. 30대 초반이지만 잃어버린 고향 땅에 대한 의식이 강하게 깔려 있다. 그 또래의 젊은이는 상실할 고향이 거의 없을 것이다. 고향으로 대변되는 원형적 땅에 대한 의식은 작업 방향성을 ‘자연으로 돌아가다’로 잡게 했다. 도시의 비둘기처럼 애초에 자연에 대한 원형을 가지기 힘든 이들과 달리, 충만함에 대한 모델이 있다. 




땅으로 부터_from the ground_2021_oil on canvas_193



떠나간 자리 The Empty nest_2021_oil on canvas_145



버려진 풍경 The Neglected Landscapes_2021_oil on canvas_116x72cm



춘천 산촌 지역 유년 시절의 원초적 체험은 억압하든 고무되든 입맛처럼 평생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송신규의 유년 시절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는데, 그때도 자연은 치유적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이러한 최초의 과정은 이후 작품활동에 반향 된다. 고향에 대한 대부분의 추억이 그러하듯, 최초의 충만은 객관적이기보다는 소년의 상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개발 공화국의 여파가 그가 살던 깊은 산골도 미쳤기 때문에, 실낙원과 복락원에 대한 서사가 그의 작품들에도 스며든다. 최초의 완전함은 침해됐지만 땅을 소유할 수 없는 이에게 예술을 통한 복원, 즉 치유의 가능성은 남아있다. 그동안에 있었던 개인전들--[인간과 고향](2022), [풍경의 뼈](2021), [인간과 자연 ; 화해](2020), 끊어진 다리(2019)--은 땅이라는 근본적 실재와의 관계 속에서 일군 것들이다. 국내외 레지던시의 경험이 쌓여가면서 새로이 던져진 상황의 공통점을 땅으로 삼아 작업을 이어간다. 


어디서 작업을 하든지 땅은 연속적 무대가 되어주었다. 땅이 모든 것을 흡수하듯이 작가 또한 자신이 던져진 새로운 자리의 환경을 흡수해 왔다. 몇 천 년 만에 발굴된 고대 유적들에 대한 뉴스를 종종 접하면, 땅은 그자체가 역사를 품고 있는 저장소 같다. 석유나 석탄 등 인류가 에너지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동식물, 미생물의 잔해다. 선사와 역사시대를 통틀어 푹 곰삭은 것들은 인류에게도 유용하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땅이 품어내서 자연으로 되돌릴 수 있는 인공적 산물은 점차 많아진다. 서서히 변화하던 자연은 점차 가속도가 붙는다. ‘후진국’이 개발이 덜 되었으니 깨끗하리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 선진국 쓰레기가 후진국으로 수출되는 상황이니 말이다. 후진국 아이들은 산더미같은 쓰레기를 제2의 자연으로 삼아 살아간다. 난지도의 역사를 기억해보면, 도시에서 쓰레기 산이 매립된 것도 몇 십 년 안된다. 개발은 보다 많은 이들이 누렸던 공공재로서의 자연을 계급에 따라 분리시킨다. 




분교 운동장 branch school Playground_60.5x60.5cm_oil on canvas_2021



비닐하우스 풍경Grey House_53x45cm_oil on canvas_2021



사명산 민가축대_The site of an old house_2021_Oil on canvas_130x97cm



의암댐 터널Uiam Dam Tunnel_2017_oil on canvas_82x32cm



작가가 중요시하는 땅, 그것으로부터의 분리는 모든 분리의 원형이 된다. 그 결정적 지점은 화폐경제다. 돈은 거의 인간 사회와 함께 시작되었지만, 화폐에 의해서 세계가 연동된 시점은 근대부터다. 근대는 전통과 대별되는 시기를 말한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에서 전통문화에서 마을 사람들은 돈 없이 그들의 기초적인 욕구를 충족시켰지만, 이제 그 사람들은 국제적인 현금경제의 일부로서 멀리 있는 세력들에 의해 통제되는 체제에 더욱 의존적으로 되었다고 지적한다. [오래된 미래]에 의하면 땅에서 얻은 것으로 생활할 때는 그들은 스스로의 주인이었다. 라다크에서 2000년 동안 보리 1킬로그램은 그냥 보리 1킬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값이 얼마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저자는 새로운 경제가 사람을 땅에서 떼어놓는다고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돈을 지불하는 일자리는 우리의 생명이 의존하고 있는 물과 땅을 볼 수 없는 곳인 도시에 있다. 


고향에 남아있는 이들에게도 자기 뜰에서 키운 감자를 먹는 것보다 나라의 다른 편에서 키워서 가루로 만들고 얼리고 말려서 만든 화려한 포테이토 과자를 사서 먹으면 경제를 위해 더 낫다는 논리가 적용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거대한 수송체계, 기름값, 국제금융 변동 같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힘들에 의존적으로 되었다. 개발은 농촌의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떠나 도시로 유입하고 다시 빈민가로 유입시킨다. 앞서 예를 든 라다크의 경우는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근대화되고 있는 모든 곳에 해당하는 보편적 과정이다. 송신규는 발전주의와 진보주의를 구별한다. 그가 작업을 통해 분리를 극복하고 화해를 시도하는 방식은 땅이라는 소재 뿐 아니라 형식에도 관철된다. 작가는 땅에 묻히고 밝혀지고 다시 묻히는 영겁의 방식을 작품 제작에도 반복한다. 한 겹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별로 없다. 풍경은 그 내부에도 뒤에도 잠재된 것들이 있다. 




중도 선착장Jung-Do Quay_2021_oil on canvas_73x 50cm



건물의 뼈The Traces of Building_2021_oil on canvas_34x25cm



순천화포해변 Suncheon Hwapo Beach_2020_oil on canvas_32x81cm



Migrating home_2019_000324_animation



그림의 경우 칠하고 긁고 다시 칠하는 식으로 시간을 쌓는다. 자연 자체가 인공물과는 달리 묵직한 실재감을 가진다. 작가는 2020년 순천지역에서의 작업과정에 대해 ‘현장 답사를 다니며 오랜 흔적으로 남은 일부분의 유적지, 살다 떠난 주민 터전, 그리고 생태 현장을 관찰함으로서 자연 부산물의 표면을 연필로 문질러 대상의 질감을 기록’했는데, 이 행위는 ‘순수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염원을 반영’했다. 작가는 흔적만 남은 장소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를 찾고 상상한다. 가령 [풍경의 뼈]는 죽으면 뼈만 남듯이, 자연에서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작가는 풍경이 사람의 뼈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끊어진 다리]라는 제목은 풍경 속에 내재된 불연속적 지점들을 다시 연결하는 과제를 생각하게 한다. 폐허같은 풍경에서 발견되는 단절은 또 다른 연결을 위한 단초가 된다. 박수근 미술관 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발표한 작품 [사명산 민가 축 터](2021)에서 인공의 흔적이 분명한 축대는 터만 남아서 나무들이 차지한다. 건축을 비롯한 인공물 또한 시간이 흐르면 자연화된다. 


그래도 돌로 쌓은 축대는 나무숲과 이물감이 없다. 작품 [떠나간 자리](2021)는 마치 건물 설계 도면처럼 공간을 나눈 구획만 남고 전체가 사라진 자리를 표현한다. 썰렁한 색감과 죽죽 그러진 붓질 자국이 빈자리를 더욱 크게 한다. 이 작품들은 작가가 양구 지역에 머물며 ‘땅의 기억을 소재로 자신의 유년 시절 추억과 자연환경, 서식지의 역사, 거처를 잃은 동물, 버려진 사물과 인간의 낯선 관계, 빈터에 대한 소회, 실재와 환상으로 구성된 전설, 설화, 민화 등’을 포괄한다. 2022년에 춘천에서 있었던 [검은 숲] 전에서 작가는 임시막사 같은 설치작품을 선보였는데, 그려진 검은 나무들로 둘러싸인 실내에는 알전구가 켜져 있어 아늑한 분위기다. 자연의 관찰자는 자연을 유목하며 야영하고, 대자연과 마주하는 주체의 공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창조한 자연에 둘러싸인 천막 천정이 있는 내부가 그것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인간은 본래의 안식처(shelter)였던 자연을 추방’했다고 보면서, ‘작은 불빛과 나무 사이로 걸쳐진 지붕으로 영혼의 쉴 곳’을 찾는다. 




The traces of nature_2020_branches and wire_Dimensions variable



검은 숲 Black Forest_2022_Mixed media_Dimension variavle



Newly restructured area_2019_plastic crates,water pipes,flower pots,branches,acrylic on panel_220x197cm



The foundation_2020_Soil and stone powder on cotton cloth_173x160cm



원시의 숲을 닮은 작가의 방은 통과의례를 위해 격리되었던 민속적 전통을 떠올림과 동시에, 코로나 시기에 강제되었던 거리두기 또한 반향 한다. 그의 작품에서 자연과 문명의 비중은 대칭적이지 않다. 푸른 물과 산이 있는 작품 [의암댐 터널](2017)에서 댐은 자세히 봐야 보일 정도다. 작품 [건물의 뼈](2021)에서 건물의 잔해로 추정되는 구조는 자연에 녹아버리는 듯한 모습이다.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비닐하우스 풍경](2021), [분교 운동장](2021), [중도 선착장](2021), [버려진 풍경](2021) 등은 대부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이며, 풍경 속 건물의 초라함과 별개로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2021년 [풍경의 뼈] 전의 작품들은 ‘삶의 터전’으로부터의 분리와 상실감을 표현한다. 작품 [인간과 자연 : 화해–순천 화포 해변](2020)에서 화면 가득한 석양은 해변의 여러 구조물을 녹이는 것 같다. 원주 토지문화 재단에서 제시한 테마를 담은 [자연으로 돌아가다](2020)는 주변의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땅 위에 설치한 작품이다.


이 전시 준비를 위해 작가는 일부러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을 다니며 관찰하고 수집했다. 우리나라 공주에서 시작된 생태예술 그룹인 ‘야투’의 ‘자연미술’의 형식을 갖춘다. 그의 방식으로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 천에 흙과 돌가루를 활용한 작품은 [자연으로 돌아가다](2020)는 둥그런 밝은 형태의 경계가 흙과 닿아 시간이 지나면 흙과 동화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하지만 땅이 품어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자연에서 추출했지만 고도로 가공된 인공품은 인간을 멸망시킨 후, 그보다도 더 오래갈 것이라고 예상된다. 재개발에 의해 쫒겨난 원주민의 흔적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분리된 다리](2019)에서 패널에 붙여진 재료들은 거의 쓰레기들이다. 쓰레기는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유력한 증거다. 떠밀려온 쓰레기로 고고학적인 연구를 하는 학자가 있을 정도다. 예술가 또한 가감 없이 시대의 단면을 사물을 통해 보여준다.


출전; 춘천문화재단; 예술소통 공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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