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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환 / 순환을 통한 변화

이선영

순환을 통한 변화

 

이선영(미술평론가)



무지개처럼 스펙트럼을 이루는 띠의 무리가 요동을 치며 뻗어나간다. 운동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끝은 좀 더 가는 선으로 연결되어 더 복잡한 운동을 이어간다. 전환을 포함한 순환의 여정이다. 이러한 여정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우주까지 아우르는 풍부한 은유로 거듭난다. 각자의 관객이 순환을 무엇으로 간주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전용환의 작품은 고체처럼 상대적으로 안정된 분자구조를 유지하고 있다가 액체나 기체로 변환할 때 입자들을 묶어주던 힘들이 빠져나와 에너지로 풀어지는 모습이 연상된다. 꼬리를 무는 연결고리는 난색과 한색의 조합을 통해 변환의 극적인 문턱을 표시한다. 현대가 과도기를 상시화한 이래, 처음과 마지막은 숨겨진 채 운동하는 과정은 시대정신 또한 상징하게 되었다. 공중에 널리 확산된 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다시 질서화된 형태로 돌아오는 순환 주기를 가진다. 




[Transforming Cycles], 300x230x276cm, 스텐레스 스틸, 2022(이하 모든 사진 출전 당진문화재단)



무한회귀의 신화처럼 모든 것은 되돌아오지만 (보이지 않는)원점은 서서히 이동한다. 자유롭지만 필연성을 전제하는 순환은 자연과 예술 모두에 해당된다. 반복을 통한 차이는 한 시대의 강력한 패러다임이기도 했던 직선적 진보(역사주의) 못지않은 변화를 야기하며, 순환을 통한 변화는 더욱 근본적이다. 그것은 인간의 특정 시기(근대)의 역사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이미 정복했다고 믿어지는 자연 또한 포함하기 때문이다. 전용환의 작품에 독특한 순환적 구조와 가장 가까운 예술 분야는 음악이다. 띠들은 마치 오선지처럼 춤추며 선들은 지휘봉의 움직임 같다. 인지과학을 기반으로 미술과 음악 그리고 과학의 연결을 시도하는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괴델 에셔 바흐]에서 우리는 음악을 판화가 에셔의 작품처럼 순환적(recursion)으로 듣는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순환적 구조인 뫼비우스 띠의 이미지는 모태와 연결된 인간이나 블랙홀 형태의 작품 등, 전용환의 작품 곳곳에 나타난다. 


벽에 부착되든 조각적으로 바닥에 세워져 있든, 비슷한 구조지만 다양한 작품이 가능한 것은 전용환이 수년째 다양하게 변주하는 [Transforming Cycle]이 가지는 풍부한 잠재성 때문이다. 매일의 작업을 SNS에 보고할 만큼의 부지런함은 잠재성을 현실성으로 전환시킨다. 단백질 구조 모델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작된 작품은 이제 단백질의 복합체인 인간의 여정으로 변하고 있다. 최근 작업에는 화살표 위치에 나비가 자리하고, 조만간 나비 자리에 인간상 또한 자리하면서 화학이나 물리학적 유비를 넘어설 것이다. 작업실에는 미리 잘라 놓은 기호화된 인간상이 쌓여있는데, 그것은 연금술같은 작업을 통해 인류의 서사를 담게 될 것이다. 그가 독일 유학 전에 집중했던 것이 인간을 바탕으로 하는 구상 조각임을 염두에 둔다면, 스스로도 ‘Transforming Cycle’에 있는 것이다. 작품의 개념 구상은 제외하고라도, 실제의 작업과정은 고강도의 ‘몸을 쓰는’ 조각 작업과 ‘손을 쓰는’ 채색 작업으로 나뉜다. 두 과정을 교차해서 실행해야 고된 작업의 지속성이 가능하다. 




[Transforming Cycles], 250x260x32cm, 알루미늄, 페인트, 2022



[Transforming Cycles], 250x265x38cm, 알루미늄, 페인트, 2022



이번 전시에서 125평에 달하는 널찍한 전시장의 조건은 벽에 거는 작품의 그림자 효과를 극대화하는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평소보다 벽에서 많이 띄워서 허의 공간까지 변환의 주기에 포함시킨다. 알루미늄으로 제작되고 색칠한 작품 [Transforming Cycles](2022)에서 나란히 배열된 화살표 모양의 긴 리본이 가장자리로 갈수록 강하게 운동하면서 더 복잡하게 휘는 선으로 이어진다. 리본에 칠해진 색들은 에너지의 출렁임을 가시화한다. 질서와 무질서, 면과 선의 연결이라는 기본적 형식은 많은 내용으로 확장될 수 있는 모델 또는 구조다. 벽에 거는 [Transforming Cycles](2022)는 벽과의 거리에 따라 띠와 선의 출렁임의 반영물 또한 다양한 양태를 띄게 된다. 작품의 가운데 부분은 촘촘하게 짜인 바구니처럼 질서감 있게 띠가 배열되지만, 바깥으로 나아가면서 면과 면의 사이가 벌어지고 화살표가 붙은 말단에서는 선으로 뽑혀 공중에서 요동친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이다. 역치를 넘어서는 순간에 펼쳐지는 무작위적인 운동은 통계학적으로나 그 실체가 포착될 것이다. 


주로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어 실내에 설치되는 부조는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하나하나 손으로 절곡(切曲)한다. 띠와 봉은 위로 솟구치고 아래로 내리꽂히고 사방팔방으로 자신의 잠재 에너지를 발산한다. 위와 아래를 향한 힘의 흐름은 어두운색으로 칠해져 더욱 강력해 보인다. 면의 앞뒤의 색이 달라 둘러볼 수 있는 조각작품의 특성을 살린다. 처음에 그가 이 시리즈를 공기의 순환이라는 개념으로 시작했을 때, 주요 색채는 난색과 한색의 그라데이션이었다. 이후 그의 작품에서 많이 칠해졌던 무지개색은 빛을 염두에 둔다. 조각에서 색은 다소간 부차적이지만, 초창기에 그림도 열심히 그렸던 이력이 반영됐다. 그가 좋아했던 반 고흐는 열정적인 색의 에너지로, 또 한 명의 멘토인 칸딘스키는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조형 작업과 관련된 이론적 배경을 제시해 주었다. 최근 작품에는 두세 가닥 정도 색을 뺀 것도 있는데, 다층적 차원으로 해석되는 순환에는 무색과 유색의 관계도 포함된다. 




[Transforming Cycles], 280x230x42cm, 알루미늄, 페인트, 2022



[Transforming Cycles], 230x220x30cm, 알루미늄, 페인트, 2021



부식방지 기능도 하는 도색의 과정에서 맨 처음 작가가 생각한 것은 난색과 한색의 교차였다. 다양한 색상이 등장해도 혼란스럽지 않은 것은 두 색의 근본적 상징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외과의사 레오나드 쉴레인이 쓴 [미술과 물리의 만남](Art & Physics)은 초기 인류의 정신에는 세계가 불과 얼음이라는 붉은색과 파란색 사이의 근본적인 대조로 나뉘었다고 해석한다. 전용환의 작품에서 형태로도 나타나는 음과 양의 대조는 일관적이다. 그의 작품에서 색은 변화하는 파장의 빛이며, ‘색은 가시적이게 만드는 에너지다’(존 러셀) 금속면에 칠해진 색은 빛을 포함한다. 4차원이라는 용어를 만든 민코프스키는 ‘시간과 공간은 순수한 빛이라는 연결 줄기에 의해 합쳐져 하나의 통일을 이룬다’고 말한다. 전용환의 작품은 날렵한 형태와 화려한 색채의 조합이 특징이지만, 기본적으로 조각이기에 질료의 저항이 크다. 재료의 묵직함과 노동 강도를 생각할 때, 색과 구조 모두에 영향을 주는 질량의 문제도 생각하게 된다. 


물리학에서 질량은 색에도 영향을 준다고 말해진다. 레오나드 쉴레인은 ‘육중한 물체 근처에서 빛은 푸른색으로 변한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빛은 붉은색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미술과 물리학]은 질량을 가진 어떤 물체 근처에 있는 시공간은 모양이 구부러져 있으며, 윤곽이 휘어있다고 전한다.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 의하면, 시공간은 육중한 물체의 존재에 의해서 주조되며, 질량은 심하게 굴곡 된 시공간의 발로이다. 휘어진 공간에 대한 비유는 초기 작업인 블랙홀을 형상화 한 듯한 작품에서도 보인다. 화살표 대신에 나비가 자리한 최근 작품은 날벌레의 어지러운 비행뿐 아니라, 순환이라는 개념과 어울리는 변태의 단계를 은유한다. 한 작품에는 여러 마리의 나비가 날고 있지만, 그것은 한 마리가 시간화 된 공간의 여정을 통과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나비가 땅속 애벌레에서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한 단계들은 그자체가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과정이며, 나비의 비행은 고난을 이겨낸 승화이다. 



[Transforming Cycles], 263x225x30cm, 알루미늄, 페인트, 2021



[Transforming Cycles], 202x175x28cm, 알루미늄, 페인트, 2019



전용환의 작품은 애초에 단백질의 구조에서 영감을 받은 터라, 생명의 순환은 분자라는 미시적인 차원과 유기체라는 거시적 차원을 포괄한다. 작가가 과학 잡지에서 본 단백질 구조는 분자생물학적 이미지다. 유기체의 구조에 대한 정보가 자리잡은 DNA에 의해서 생명의 기본물질인 단백질이 생산된다. DNA 구조를 발견한 과학자 크릭과 왓슨은 ‘DNA 내부에 암호화 되어있는 유전정보는 인간 존재의 화학적 토대에 대한 궁극적 해답을 제공할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DNA 분자 자체가 나선형으로 정렬된 매우 긴 비주기적인 패턴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지적하면서, 음악도 단순히 음표의 선적 배열에 불과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생명의 기본구조 또한 응축과 도약은 빈번하다는 점이 예술적 상상으로 이어지게 했을 것이다. 긴 띠를 이루는 DNA에 저장된 정보는 단백질로 전사되고 번역된다. 


[괴델 에셔 바흐]에 의하면, DNA에 의한 이러한 형태발생(morphogenesis)의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단백질의 언어로 번역되는 더 높은 층위의 언어로 쓰인 프로그램으로 간주 될 수 있다’. DNA가 ‘지문에서부터 머리 색깔까지 모든 것에 대한 다양한 청사진을 담고 있는 거대한 도서관’(레오나드 쉴레인)이라고 볼 때, 작품이 뻗어나갈 수 있는 은유는 무한하다. 단백질 구조로부터의 영감은 모체에서 태아가 발생하는 과정까지 이어진다. 사과가 성장하고 나비가 변태하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전용환의 작품에서 나비는 앞뒷면으로 색이 달라 더욱 다채롭다. 나비는 이번 전시작에 포함된 사과라는 구상적 도상과 함께 대중적인 접점이 가능한 요소다. 앞으로 나비 자리에 비행기나 달려가는 인간, 또는 인간의 성장 단계의 포함도 구상하고 있다. 띠나 선의 각 지점은 어떤 시간이 된다. 화살표에서 시작한 여러 변주는 기본 개념은 같지만 서사는 보다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Transforming Cycles], 270x190x276cm, 알루미늄,2022



이전 작품이 핵심적 뼈대로만 이루어졌다면, 요즘 도입되고 있는 구상적 요소는 관객에게 좀 더 친절하게 말을 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옛날이 구상으로 조각을 시작한 것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휴머니즘에 바탕 한 구상 조각은 먼 우회를 거쳐 색다르게 탄생하는 것이다. 전용환에게 인간에 바탕 한 ‘조각’은 지향에서 지양의 단계를 거쳐, 또 다른 차원으로의 출현을 예고한다. 선은 이야기와 연관될 수 있는 조형적 요소다. 2000년대 초반 그가 귀국해서 연 첫 개인전 리뷰에서 필자는 선으로 이루어진 그의 작품에서 음악적인 면을 주로 보았다. 그의 작품에서 풍기는 율동성은 나란히 배치된 띠가 악보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악보에 배치된 음표들이 다양한 조합을 통해 다른 선율과 화음을 만들어내듯 변주가 이루어진다. 작품의 그림자는 허의 공간까지 아우르는 울림을 표현한다. 에셔의 순환적인 작품과 바흐의 음악을 비교한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음악에서도 그러한 덧씌워진 고리들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하나의 음계(작은 고리)를 약간씩 음고를 달리해서 여러 번 연주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음악의 기능이 ‘시간의 흐름을 구성하고 그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스트라빈스키)이라고 볼 때, 조형예술가의 과제도 음악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전시회에서 음악과의 협업 가능성은 늘 열려있다. 음악과의 관계는 외적인 장식이 아니라 내적인 조응이다. 전용환의 다른 작품에서 종종 나타나는 소용돌이 치며 수렴되는 구조는 마치 꽃처럼 보인다. 화살표들은 보이지 않는 중심으로 끌려 들어가는, 또는 발산되는 힘의 방향을 알려준다. 계의 모든 것들은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가 조각을 시작할 때는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던 네트워크의 힘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서로에게 변환을 야기하는 상호적인 연결망에 대한 비유다. 벽에 걸리는 작품이 드리우는 그림자는 시각적 메아리다. 이번 전시에 출품은 안 되지만, 작가는 한두 가닥 정도 색을 칠하지 않은 부분을 남겨 두기도 한다. 




전시전경



[Space-from the one(공간-하나로부터)], 110x115x25cm, 동, 2022



 [Space-from the one(공간-하나로부터)], 76x67x16cm, 동, 2022



변환은 신경 세포부터 우주까지 여러 차원에서 일어난다. 가령 우리가 매 순간 무엇인가 지각하고 기억하고 말하는 상황에도 변환은 일어난다. 그것은 뇌의 신경 세포 연접부 사이에서 세포의 수가 어떤 수치에 도달하여 스위치가 켜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레오나드 쉴레인은 물질이 에너지로의 갑작스러운 전환은 삶을 유지시키는 태양의 분출의 원천이라고 비유한다. 태양계 질량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태양은 단순히 동그란 것이 아니라, 홍염, 즉 수십만 km까지 솟구치는 루프나 아치 모양의 불기둥들로 이글거린다. 인간의 역사에서 거대한 전환기를 이루었던 산업혁명 또한 순환의 (재)발견과 관련된다. 필립 볼은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임계질량에서 이어지는 사건들]에서 19세기 카르노가 발명한 동력생산 방식과 산업혁명과의 관련을 말한다. 카르노는 순환 장치를 고안했는데, 그의 연구는 열운동에 대한 물리학을 바탕으로 한다. 


필립 볼은 19세기 엔지니어들에게 더 나은 엔진을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등장한 분야가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평가한다. 요컨대 열역학은 변화에 대한 과학이고 변화가 없으면 아무것도 설명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바닥에 서 있는 작품에서 가장자리 부분의 운동은 더욱 자유롭다. 전능한 존재가 질서정연하게 짜놓은 텍스트는 어떤 임계점을 벗어나면 변환이 시작된다. 벽에 걸리는 작품이 도색된 알루미늄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작품은 스텐레스 스틸로 용접되어 만들어졌다. 날렵한 선과 면은 입체화되어 육중한 부피감을 보여준다. 색을 입히지 않아 금속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 여기에서도 순환은 계속된다. 화살표 띠와 선의 관계는 방향성이 어떤 결과로 이어진다는 좀 더 필연적인 과정을 표현한다. 그의 작품이 면밀한 설계도가 있고 퍼즐처럼 딱 맞아떨어져야 하는 과정을 전제하지만, 가벼운 드로잉같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살리고자 한다. 




 [Space-from the one(공간-하나로부터)], 60x59x67cm, 동, 2016



 [Space-from the one(공간-하나로부터)], 60x60x13cm, 스텐레스 스틸, 2016



[공간-하나로부터] 시리즈는 동과 스텐레스 스틸 등 여러 재료로 만들어졌다. 원이나 사각형 같은 기하학적 형태는 물론 사과처럼 알아볼 수 있는 형태의 작품이 있다. 면이 잘려 지면서 생기는 가는 선들이 선명한 구조는 뭔가 휙 빠져나간 자국, 즉 정적인 작품 속에 속도감이 새겨진 듯하다. 잘라낸 면과 그것이 빠져나간 그물망이 다시 모여 함께 하는 작품은 처음에는 재료를 경제적으로 활용하자는 발상에서 나왔지만, 음과 양의 조화같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우주가 주체/객체의 이분법이 아니라, 상호 보완에 의해 파악된다(상보성의 원리)는 현대 과학의 메시지와도 조응한다. 알맹이와 그것이 빠져나간 틀이 마주한 [공간-하나로부터]는 하나의 판에서 양과 음이 나뉘는 극적인 순간을 표현한다. 시간의 흐름을 가시화하는 전용환의 작품에는 소리, 또는 음악이 깔려 있는데, 스텐레스 스틸로 만들어진 이 둥근 작품에서는 쩍 하며 갈라지는 소리가 날듯하다. 


[공간, 하나로부터]는 하나로부터 공간이 생겼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플라즈마 용접으로 자르면 단면이 빗살무늬처럼 남는다. 하나의 판에서 빠져나온 형태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또 다른 형태를 만든다. 하나의 공간에 원인과 결과가 공존한다. 그의 작품에서 공간은 또한 시간인 것이다. 동으로 만들어진 [공간-하나로부터]는 옴폭 들어간 사과 안쪽으로 무엇인가 생겨난다. 사과의 씨앗이 자리한 곳에서 자라나는 듯한 토르소는 사과를 모체로 만든다. 특히 사과 형태 표면에서 떨어진 알맹이들로 이루어진 모태 내 존재는 생명의 의미를 나타낸다. 나비 못지않게 대중적인 이미지인 사과는 면에서 알맹이를 빼서 만든 이원적 구조가 특징적이다. 음과 양으로 볼 수도 있는 둘은 하나에서 나왔고 결국 하나로 돌아갈 것이다. 이 구조는 금속의 재료 가격이 비싸 사과의 표면적을 계산해서 사과 형태 하나를 구성한 것에서 시작됐다. 음양으로 쪼개서 만드니 버릴 것이 하나도 없이 금속판을 사용하게 됐다. 




[Space-from the one(공간-하나로부터)], 40x84x10cm, 스텐레스 스틸, 2016



[Transforming Cycles-뫼비우스], 95x56x75cm, 스텐레스 스틸, 2012



플라즈마로 용접해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쇳물까지도 활용했다. 동으로 만든 작품의 경우에도 쪼가리들을 다 일일이 용접해서 형태를 만들었다. 필요 이상의 과잉이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자연 그자체가 경제학이다. 작가는 플라즈마 용접으로 금속을 잘라낸 빗살무늬 자국까지 형태의 중요 요소로 삼는다. [공간-하나로부터]도 ‘Transforming Cycle’을 돈다. 그 또한 선과 면 사이에 상호적 변환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나로 교묘하게 연결된 사과의 안팎은 마치 뫼비우스 띠나 클라인 병같은 위상기하학적 차원을 비유한다. 그의 작품에서 면과 선은 추상적이든 구상적이든 입체를 만드는데 기여한다. 또한 이러한 방식은 기념비적인 덩어리라는 고전적 개념의 인체상으로부터 벗어나 차원을 넘나드는 유연한 인체상을 제시한다. 그의 작품에서 인체는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고전적인 기둥(monolith)의 모델이 아니라, 안팎이 연결되어 상호적인 전환의 장인 뫼비우스 띠같은 위상을 가진다. 


레오나드 쉴레인은 에셔의 뫼비우스 띠같은 공간과 4차원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민코프스키의 시공간 개념을 비교한다. 민코프스키의 시공간은 뫼비우스 띠처럼 생기진 않았지만, 그 띠의 표면은 시간과 공간의 통일성을 시각화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보조물이라고 본다. 공공 조각의 소재 중에서 많이 보이는 기하학적 형태가 뫼비우스 띠이기도 하지만, 전용환의 작품은 그 띠 자체를 재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의 작품은 인간의 몸을 뫼비우스 띠의 비유하는 또 다른 사고와 연결될 만하다. 엘리자베스 그로츠는 [뫼비우스 띠로서의 몸]에서 주체를 뫼비우스 띠로 비유했던 자크 라캉을 참고하면서, 인간의 몸과 마음 또한 그렇게 간주한다. 그에 의하면 몸과 마음은 두 가지 뚜렷이 구별되는 실체가 아니다. ‘뫼비우스 띠로서의 몸’은 깊이와 내면성 같은 이 모든 효과들은 주체의 육체적 표면에 각인되거나 주체의 육체성이 변형된 것으로 설명한다. 




[Transforming Cycles-뫼비우스], 80x80x80cm, 동, 2012



주체성을 잠재성이나 깊이의 모델이 아니라, 표면의 모델로 간주하는 것이다. 스텐레스 스틸로 만들어진 [Transforming Cycles-뫼비우스](2012)는 이러한 발상이 오래되었음을 알려준다, 인간 형태가 연결된 표면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영역에 태아의 형상이 자리한 이 작품은 금속으로 용접된 육중한 작업 과정을 전제하지만, 결과물은 비눗방울처럼 날렵한 모습이다. 무수한 인간상들이 얽힌 그물망 구조는 그것이 놓인 야외의 공기도 품어내기 때문이다. 인간 형태가 하나의 단위가 되어 연결된 표면이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어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기여한다. 같은 시기에 동그란 동 철사를 두들겨서 만든 [Transforming Cycles-뫼비우스]는 여러 힘의 역학관계 속에 요동치는 그물망 구조를 이루며, 모든 것이 시작되거나 사라지는 구멍을 연결하는 선들로 이루어진 웜홀같은 이미지의 작품이다. 10여년 전의 작품이지만, 이번 전시의 주제를 알려주는 씨앗같은 작품이라 호출되었다. 


레오나드 쉴레인은 천문학자의 연구를 인용하면서 ‘근접된 곳에서 시공간을 왜곡시키며, 빛이 근처를 통과할 때 단지 구부러지는게 아니라 실제로는 붙잡히며, 결코 다시 그 물체의 표면에서 달아나지 못하는 상상적인 초밀도 물체의 가능성’을 말한다. 레오나드 쉴레인에 의하면 블랙홀의 특이점은 바닥이 없는 하수구로 그 안으로 모든 것이 소용돌이쳐 들어가서는 사라진다. 물질, 에너지, 공간, 시간 그리고 빛은 모두 이 천체의 진공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거대한 별이 죽은 블랙홀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비유도 된다, [미술과 물리]는 ‘별들이 죽었을 때 그 별들의 재는 어둠 속으로 쏟아져 인간의 씨가 된다’고 말한다. 블랙홀은 시공간에서 벌레 구멍 같은 것을 만들어 만들어냈는데, 그 특이점 이래로 사라진 것은 어떤 것이든지 상반적인 화이트홀을 통해 또 다른 시간 어디엔가에 존재한다고 본다. 나비 유충 같은 작은 존재는 웜홀같은 시공간을 통과하면서 변태할 것이다. 전용환은 그의 전 존재를 털어 넣고 있는 예술작품 또한 그렇게 비상하기를 바란다. 


출전; 당진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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