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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창인 / 대칭의 아름다움

이선영

대칭의 아름다움

 

이선영(미술평론가)



길창인은 춘천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올해 첫 개인전 ‘회귀’ 전을 열었다. 31세의 젊은 작가가 회귀하고자 하는 시점은 어디인가? 한번 접은 리플렛을 펼치면 회귀라는 말 앞에 ‘본질’이라는 단어가 배열(return to essence) 돼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소재로 컴퓨터를 이용한 재구성으로 작품을 만드는 방식에서 배열은 중요하다. 배열이 본질인 셈이다. 물론 사진예술에 대한 고민을 해온 그가 ‘본질’로 간주하는 것은 단순한 복제 이상의 무엇, 예술적 창조와 관련된 것이라 추측된다. 하지만 본질 또한 수많은 텍스트들이 짜여진 결과일 따름이라는 것을 그의 작품들이 보여준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본질을 표현한 패턴’을 말한다. 그의 어법에서 본질과 패턴은 같은 반열에 놓인다. 대칭과 반복의 구성이 두드러지는 그의 작품은 중심이 있으면서도 다중심적이다. 만다라같은 이미지가 패턴화된다면 중심은 중심들로 확장된다. 본질/가상의 이항 대립은 중심/주변의 관계로도 해석될 수 있다. 




전시 포스터



길몽 Noumenon_01, 2021.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60x85cm(이하 모든 사진 출전은 길창인)



본질 회귀의 준말인 전시 부제 ‘회귀’에서 중심이 다(多)중심화 되는 것은 다름 아닌 ‘회귀’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그의 작품에서 회귀는 반복을 의미한다. 그는 회귀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돌아감’으로 해석한다. 반복은 일회적 창조를 의미하는 예술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반복 자체를 방법론으로, 즉 본질로 삼음으로서 사진과 예술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고자 한다. 길창인은 먼저 사진이 예술인가에 대한 의문을 표한다. 재현으로부터 벗어난 순수미술을 추동하게 했던 사진의 탄생은 사진 또한 예술이라는 결론을 얻어낸 후, 다시 순수미술이 답해야 했단 질문에 스스로 봉착한다. 그는 춘천에서 사진관까지 운영 중인 신예작가지만, 사진처럼 흔해진 것이 없는 현대사회에서 작가로서의 요건은 더 까다로울 수 밖에 없다. 사진가로서의 정체성은 매번 작품을 통해서 재확인되어야 하는 고단한 도전의 과정일 뿐, 신분이 보장된 것은 없다. 그것은 사진가가 아닌 예술가 또한 마찬가지다. 


길창인의 작품은 최초의 이미지가 스스로 찍은 사진이며, 그것을 원천으로 얼마든지 다른 작품/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이다. 원천 이미지가 다양할수록 선택의 폭은 넓어진다. 이 다양한 선택지 또한 예술적이다. 춘천 지하상가에 소재한 전시실 상상언더에 총 16점 걸린 작품의 소재는 크게 전통과 현대의 건물, 그리고 자연이다. 절이나 탑같은 문화재 급의 건물이나 지역 주민이라면 알아볼 수 있는 도청, 농협, 우체국 등의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한다. 꽃이나 하늘 같은 자연 또한 춘천과 관련된다. 작가가 실재하는 것을 소재로 삼는 점은 중요하다. 기성 이미지를 활용하는 손쉬운 선택은 한계에 부딪힐 수 있으며, 향후에 저작권 등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레디 메이드’가 미학적 전략의 하나였던 다다나 초현실주의 시대만 해도 초기 산업사회에 속한다. 그 때 선택된 ‘오브제’들은 이제 거의 유일품에 가까울 것이다. 예술품에 포함되지 않았어도 그자체로 남아있는 오래된 것들은 희귀품목이 되어 물신적 체계에 끼어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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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흔했던 것일수록 빠르게 사라진다는 고고학의 법칙에 따른다면 말이다. 그래도 예술가에 의해 선택되어 미술사 서술에 등재된 사물들은 예술이 된다. 가장 유명한 것은 뒤샹의 작품 속 변기이다. 사진가로서 그는 많은 사진을 찍어왔다. 하지만 그가 예술의 단계라고 보는 것은 추후의 과정이다. 최초의 사진은 컴퓨터를 통해 구성의 변주를 거친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수많은 결정 인자들 속에서 매 순간 선택한 결과물이다. 한 작품만 빼고 같은 크기로 출력된 작품은 그것이 작품이면서도 하나의 샘플 임을 알려준다. 작은 머플러로부터 환경의 차원까지 확장될 수 있는 유동성을 가졌다. 디지털 방식은 복제와 속도를 통해 아나로그 방식이 할 수 없는 부분을 가능하게 한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따로 만들어진 음악이나 다소간 어둡게 조명된 전시장에 가득했던 향, 그리고 관객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손수 제작한 작은 부적까지, 다양한 감각을 겨냥하며 예술 이전의 감수성도 자극한다. 


전시장에 들려오는 음악처럼 무한 반복적인 그의 이미지는 환상적이며 때로는 환각적이다. 인지과학에 대한 내용을 담은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에 의하면, 우리는 음악을 재귀순환적(recursion)으로 듣는다. 호프스태터에 의하면 재귀순환은 그물구조로 둘러싸인 구조, 즉 덧씌우기(nesting) 및 덧씌우기의 변이형태들이다. 가령 이야기 속의 이야기, 영화 속의 영화, 그림 속의 그림, 러시아 인형 속의 러시아 인형(마트로시카)가 그 예다. 에셔의 판화처럼 순환적이 되어서 무한역행(infinite regress)으로 치닫는다. 프로이트가 지적했듯이 반복이 주는 쾌락이 있다. 길창인은 ‘원본 소스를 따로 보여주고 있지 않아서 전시장을 관람하는 관객들도 결과인 작품의 원본 소스를 상상하며 전시를 관람하게 한다’고 말한다. 춘천지역 사람이라면 알만한 요소도 있지만 매우 잘게 잘라서 복잡한 패턴으로 변한 작품은 의미보다 유희적 측면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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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물을 장식하는 단청은 변주를 위한 매력적인 소재다. 단청 자체가 같은 무늬의 반복에 의한 아름다움을 가진다. 작가는 단청을 이루는 색감, 특정 요소들을 선택하여 반복한다. 단청에서 세련된 배색의 스카프나 넥타이 무늬같은 패턴이 나왔다. 건축을 장식하는 예술로부터 나온 또 다른 패턴이다. 한 사찰에서 출발한 작품은 육각형 벌집 구조 속에 대칭적으로 배열된 사찰의 색감과 형태에서 추출된 요소들로 이루어졌다. 단청이 입혀진 건물로. 현판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는 이 건물의 요소를 활용한 작품에 현판 글씨가 눈에 띈다. 사찰을 이루고 있는 여러 요소 중에서 글자 부분을 비중 있게 처리함으로서 종교적 건축에서 세상에 전파하고 싶은 메시지들이 확대되어 들리는 듯하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많이 활용하는 단청은 그 자체로 반복, 대칭적 요소가 있다. 그의 작품은 대칭이 주는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전시장 가는 길에서 본 소양로의 큰 나무는 대칭적 균형을 통해 주변의 작은 나무들 몇 십 그루에 해당되는 굵은 가지들을 한 기둥에 떠안고도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 주변은 몇 년째 공사장으로 방치되어 있는데, 길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이 큰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지 못한 것도 그것이 주는 심미적 만족 때문일 것이다. 길창인의 작품에 나오는 꽃 패턴도 원래의 대칭성을 더욱 강조했다. 대칭이 주는 아름다움에 대한 여러 설명이 있지만, 꽃을 비롯한 유기적 이미지가 등장하는 길창인의 작품에는 생물학적 설명이 잘 들어맞는 듯하다. 낸시 에트코프는 [미-가장 예쁜 유전자만 살아남는다]에서 동물의 세계에서 대칭성은 발달과 기생충에 대한 면역, 생존, 번식력을 뜻한다고 말한다. 벌은 균형 잡힌 꽃에 더 많이 가는데, 이는 더 많은 꿀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균형적인 동물일수록 높은 성장, 다산, 그리고 장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와 꽃은 전체 형태를 살렸고 나머지를 추상 패턴화하여 배치한 길창인의 작품은 연꽃을 비롯해서 자연적 요소가 중심집중적 구도를 형성한다. 각각이 다 만다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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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뽑아낸 요소들 또한 대칭이고 반복이지만 기하학적인 요소는 더욱 강해진다. 전통적 문양은 현대적인 리듬으로 재편된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탑에서 출발한 작품에서 탑의 요소는 돌의 밝은색 부분만 확실하다. 눈모양의 패턴은 보는 사람을 보든 듯하여 오싹하다. 녹색 눈알이 자라면서 화면을 잠식한다. 프택탈 패턴은 움직임을 내장하고 있다. 동영상의 경우에 음악의 배경 영상으로 자주 활용되곤 한다. 시간의 추이를 포함하는 반복이다. 제임스 글리크는 카오스 이론을 다룬 책에서 만델브로트가 발견한 ‘프택탈(fractal)’의 어원이 ‘부서지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파생한 형용사 ‘fractus’임을 지적한다. 무한의 입자가 될 때까지 부서지는 형태는 자체 유사성(self-similarity)을 유지함으로서, 불규칙적으로 보이는 현상에서 규칙을 찾아낼 수 있다. 관객은 원본 소재를 감춘 길창인의 복잡한 작품에서도 ‘조직적인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연분홍 꽃으로 만든 패턴. 꽃자체가 대칭이며 작가는 그러한 요소를 극대화하고 평면적으로 확장한다. 오래된 건축이나 자연은 그자체의 신기함이 있지만, 작가는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환경 또한 작업에 포함시킨다. 오래된 건물을 하얗게 칠한 강원도의 관청은 밝은 패턴으로 되살아났다. 춘천시의 농협 건물은 간판을 살렸는데, 공적으로 착착 돌아가야 하는 기관 특유의 분위기가 담겼다.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 패턴화한 작품은 색유리로 들어오는 빛의 화려함을 돋보이게 한다. 오래된 대문에서 소재를 얻은 패턴은 푸른 대문에 붉은색으로 써있는 글자를 문양으로 만들었다. 구름 낀 하늘의 풍경으로부터 온 작품은 하늘색과 구름색이 조합되어 새로운 구름으로 탄생한다. 춘천 초등학교의 교훈이 새겨진 바위 ‘바른 생각, 바른 행동, 건강한 춘천 어린이’라는 교훈의 일부가 문자 문양으로 드러나. 반듯하게 자랄 것을 바라는 문구가 반듯한 선을 살린 구성으로 나타난다. 첫 개인전은 그의 관심사가 녹아든 다양한 소재들을 나열하는 식에 머물렀지만, 변주가 본질일 그의 작품은 다양한 가능성으로 열려있다. 


출전; 춘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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