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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영 / 자유를 꿈꾸는 도시

이선영

자유를 꿈꾸는 도시


이선영(미술평론가)

 


빠듯하게 돌아가는 도시적 일상, 박재영의 작품은 나날이 가속화되는 생산/소비의 주기에 의해 촘촘하게 짜여진 삶의 그물망을 느슨하게 한다. 그는 도시가 만들어진 중세부터 있었던 기대치인 ‘자유의 공기’를 한껏 불어넣는다. 물질을 연결하는 조임새들이 풀어지면서 발산된 에너지는 빛이 되어 화면을 밝게 물들인다. 박재영의 작품에도 부분적으로 등장하는 빌딩의 유리창 이미지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게 된 근대 도시에 빛을 가득 받아들이기 위한 구조물이기도 했다. 물리적 형태뿐 아니라 도시의 기능을 유지하는 기호들 역시 원래 자리를 벗어나 있다. 그것들은 물리의 법칙이 아닌, 아름다움의 규칙에 의해 재배치된다. 그의 작품은 꿈처럼 자유롭다. 하지만 꿈이 그렇듯이 현실의 조각들은 남아있다. 가령 ‘건축 설계도를 그리듯 재단된 면들로 시작한 이미지’가 그렇다. 아무리 자유를 추구한들 전적인 무(無)에서 출발할 수는 없다. 




 The Dreamer, 130.3x160cm, oil on canvas, 2022



 The Light in the Park, 130.3x163cm, oi lon canvas, 2022



수직과 수평이 교차되는 기하적 이미지들은 화면의 기본 좌표를 설정해 준다. 하지만 그것은 최초의 방향타일 뿐, 작가는 언제나 더 멀리 나아간다. 중력에서 벗어난 현실적 요소들은 조형적 기능 외에 아무 역할을 하지 않는 점과 선, 얼룩이 되어 유영한다. 노랑과 상보적인 푸른색 계열은 낮의 활력을 위한 밤의 깊이가 된다. 이번 전시에 눈에 띄는 노랑 계열의 색조의 작품군들은 햇살 가득한 도시의 분위기를 살림과 동시에, 도시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도 있다. 빛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전시 부제 [The Light in the Park]처럼 그의 작품은 대체로 밝다. 푸른 색조와 무채 색조는 밝음을 더욱 밝게 어둠을 더욱 어둡게 하는 대조군을 이룬다. 빛이 아니더라도 건축 자체가 긍정적 예술이다. 도시는 익명의 다수가 좀 더 나은 곳으로의 이동을 꿈꾸며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삶의 방식이 코드화되고 고정될수록 희망도 더욱 커진다. 


박재영은 이전에 도시를 건설하는 입장에 있었지만, 이제 그것들은 심미적 대상이 되었다. 건물이나 도시계획을 짜는 인간의 머릿속에는 이상적인 삶에 대한 (마음의)‘그림’이 있다. 문예사조사를 보면, 박재영도 존경하는 르꼬르뷔제를 비롯한 건축가들이 이상사회에 대해 큰 목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곤 했다. 그것은 건축이 회화를 포함한 다른 예술을 종합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로테스크한 건축도 그 안에서의 충만한 경험을 유도한다. 건축이나 도시 분야가 공간예술인 만큼, 박재영은 빠르게 자신만의 어법을 확보해 나간다. 현직 은퇴 후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지 채 10년도 안돼서 걸음마를 건너뛰고 작품 속에서 날아다니는 모습이 놀랍다. 좀 더 자유롭기 위해 미술을 시작했을 텐데 굳이 재현 대상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재현주의로부터 벗어나려 한 미술사조인 추상과 초현실주의 어법은 적극적으로 도입됐다. 




 The Light in the Park_2, 130.3x193.9cm, oi on canvas, 2022



 THe Light in the Park_3, 130.3x193.9cm, oil on canvas, 2022



박재영의 작품은 자유로움과 구조적 감각이, 환상과 현실이, 지각과 기억이 공존한다. 그는 ‘도시와 도시 건축물에는 삶과 죽음, 고독, 경쟁뿐 아니라 희망과 행복에 대한 기억이 공존한다’고 보면서 자신의 작업이 ‘무의식에 잠재한 도시에 대한 경험과 기억, 사유’에 ‘켜켜이 중첩되며 드러난다’고 말한다. 스케치 잔여물 등이 남아있는 화면은 매끄럽지 않다. 드로잉을 계속 겹치기도 하고 물감을 덩어리째 남겨 놓는 등 우연적인 것을 살린다. 작품이 마무리될 쯤에는 시작과는 많이 달라져 있는, 매 순간의 결정이 중요하다. 그에게 그림은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설계도면 같은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단순히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평생을 쌓아온 공간 감각이 이제 도면이 아닌 화면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2018년 첫 개인전 이후 올해 5번째인 개인전 작품들은 그가 그림을 나중에 배웠다기보다는, 그 자신에 내재해 있던 예술적 유전자가 조건의 변화로 발현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작품들이 그의 전직을 떠올리는 것은 설계 도면같은 직선적 요소의 조합이 발견되기 때문도 있지만, 그 자신도 속한 현대인의 삶의 무대라는 좀 더 큰 맥락에 놓여진다. 건축도 예술이기는 하지만, 땅 위에 굳건히 세워져야 하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 실용 분야이다. 예술만큼이나 도시 건축의 중요한 요소가 기술과 자본이다. 한국 사회에서 건축 및 도시에 관련된 왜곡된 시장구조를 염두에 둔다면, 건축 도시 관련 일은 결코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건축 공간이 인간의 삶과 정신에 주는 영향은 압도적이다. 박재영은 자신의 기억과 경험 속 건축 공간 관련 소프트웨어만 빼내어 보다 자유로운 회화적 공간에 풀어놓는다. 그는 초기 추상 화가가 물질세계에 대해서 느꼈던 한계를 공유한다. 박재영의 작품은 도시와 그를 둘러싼 자연적 요소, 무의식과 꿈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추상적이면서도 초현실주의적이다. 하지만 3차원적 현실의 조각들이 헤쳐모여 붕 떠 있는 듯한 풍경은 환상뿐 아니라, 현실의 특징이기도 하다. 




 Hole in One, 163x130.3cm, oil on canvas, 2022



 The Light in the Park_4, 163x130.3cm, oil on canvas, 2022



 The Light in the Park_5, 116.8x91cm, oil on canvas, 2022



the Dreamer_12, 116.8x91cm, oil on canvas, 2022



 The Light in the Park_6, 116.8x91cm, oil on canvas, 2022



 The Light in the Park_7, 116.8x91cm, oil on canvas, 2022



유럽인인 장 보드리야르는 미국에서 뿌리의 결여에서 발생하는 활력을 본다. 그는 [아메리카]에서 미국에 있는 모든 것은 현실적이며 실용적이지만 그것은 모두 꿈의 재료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도시는 극장에 가깝다’(데이비드 하비)고 말해진다. 대형 전광판이 빌딩을 도배하는 SF 영화 같은 장면은 현실화 되고 있다. 실제로부터 풀려나온 기호들이 이합집산하는 도시는 초현실주의와 밀접하다. 정보혁명으로 인해 이합집산의 속도는 더욱 커져 변화를 위한 변화가 고무되기도 한다. 그림은 현실보다 느리지만, 바로 그 이유로 더 빨리 갈 수 있다. 파리의 아케이드를 걸으며 느꼈던 발터 벤야민의 단상을 연구한 그램 질로크의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도시는 매혹적이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원경과 불빛과 만화경, 소리와 소음의 불협화음과 다양한 인공물과 오락거리가 쌓여있는 도시는 끊임없는 자극과 현대적 중독의 장소였다. 


도시는 그들에게 신비롭고 마술적인 꿈의 풍경이었다는 것이다. 루이 아라공을 비롯한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하면, 현대성의 신화는 자연의 강제가 아닌 인공적 생산물로부터 생겨난다. 작품 [The Dreamer]는 인간의 무의식에 세모꼴은 지붕, 사각형은 창문으로 각인됨을 알려준다. 원근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건축의 여러 차원들이 빛으로 가득한 공간 속에서 유영한다. 박재영의 작품은 자연은 물론 도시를 이루는 여러 요소들이 추상화되어 재배치된다. 작품 [Dream Journey_9]에서 도시는 이질적인 것들이 집합된 영역, 서로 다른 것들이 침투하는 세계다. 작품 [The Light in the Park_7]에서는 구축되거나 해체되는 중의 도시를 표현하는 분절화된 구조의 기계들이 여기저기서 작동한다. 그의 작품에서 선은 색이자 공간을 나눈다, 구조들 사이의 여백에서 부드럽게 출렁이는 곡선들이 직선과 대조를 이루면서 미지의 형상으로 변모한다. 




 Dream Journey, 73x117cm, oil on canvas, 2022



 The Light in the Park_9, 53x65.1cm, oil on canvas, 2022



 Dream Journey_6,  53x60.6cm, oil on canvas, 2022



도시를 이루는 직선들은 원래의 경계로부터 벗어난다. 정확한 형상으로 완성되지 않은 채 남은 얼룩이나 색점들은 다른 조형적 요소와 상호작용한다. 구조는 사람을 규정하지만, 동시에 구조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박재영의 작품에서 인간은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지만 여기저기 기호처럼 떠 있는 사람들의 실루엣 또는 그림자는 도시가 희로애락이 펼쳐지는 삶의 무대임을 알려준다. 작품 [The Light in the Park]에서 도시인들의 허파이고 로망인 공원에 대한 기대치가 있다. 공원은 정원처럼 자연과 문명의 경계 지대에 존재한다. 그의 작품에서 사람들 또한 자연이나 건축처럼 간략하게 실루엣으로 표현된다. 작품 [Hole in One]에서 직선은 부분을 점유하지만 곡선은 전체를 아우른다. 다른 색으로 칠해진 영역들은 접속한다. 그의 작품에서 현대인의 삶의 터전인 도시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유기체이다.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가는 꿈을 적극 끌어들인다. 


인류가 미래를 앞당겨 살기 시작한 때가 근대다. 근대인은 현재에 붙박혀 있어도 꿈꾸는 자다. 박재영의 작품 속 머리에 안테나가 솟아있는 인간들의 꿈은 이미 미래에 가 있다. 꿈과 여행이 만나는 작품 [Dream Journey] 시리즈에서 꿈은 여행이고 여행은 꿈이다. 박재영 작품의 색감은 대조 어법과 그것이 자아내는 낙차를 통해 활기를 표현한다. 작품 [The Light in the Park_3]에서 빛의 감각을 기준으로 한다면 푸른/노랑의 대조는 밤과 낮을 떠올리며, 시공간적 차이의 감각을 나타낸다. 노랑/파랑 대조군의 완충지대는 여백처럼 보인다. 도시에서 많을수록 좋은 게 여백이다. 여백에서 새로운 것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는 모노톤의 풍경화에서 산수화 분위기를 살린다. 작품 [the Dreamer_12]는 산수를 염두에 둔 색채지만, 동시에 콘트리트 숲인 도시의 모습도 중첩된다. 빛으로 가득한 도시는 중세 시대에 천국의 이미지이기도 했다. 예술은 그러한 천국을 앞서 보여주는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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