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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국 / 색감과 질감, 형태가 하나로 수렴되는 풍경

이선영

색감과 질감, 형태가 하나로 수렴되는 풍경

 

이선영(미술평론가)

 


2022년 6월에 열린 세종 아트갤러리 초대전 작품은 65점이다. 그의 작품 리스트에 올려진 수백 점 중에서 작가의 나이 숫자만큼 고른 것이다. 전시를 위해 교직에서 정년퇴임도 몇 년 앞당길 만큼 의미와 비중을 가진 전시다. 하지만 단순히 회고전 분위기가 아니라, 작품의 40%가 올해 제작한 신작이라는 점에서 현재진행형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중심은 [산중지가山中之家], [산중지매山中之梅] 시리즈로, 자연에서 보고 마음에 담은 풍경들을 소소하게 풀어내는 삶과 그림의 일치를 반영한다. 소박하지만 단순함 속에서 더 깊이 있는 대상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꿈이다. 예술 속에서 현실과 희망은 중첩될 수 있다. 작은 집이 자아의 연장이라면, 그것을 둘러싼 논밭은 그가 일구고 살아가는 예술적 터전과 비유된다. 한지로 색감을 낸 황톳빛 대지는 여백의 이미지이며 이때 여백은 작품의 형태를 나타내는 근원적 바탕이자 생명력을 담고 있다. 


조병국은 고향 강원도를 반드시 언급해야 할 만큼, 삶과 예술의 뿌리가 한데 얽혀있다. 분리할 수 없는 것을 분리시킨 근대의 미학적 이데올로기는 예술에 더 방점을 찍었다. 삶이라는 뿌리가 제거된 예술은 화병 안의 꽃처럼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상품화는 더욱 보편화되고 세밀화되는데, 자율화된 예술은 상품과 원활하게 교환되지 않는다. 반쪽의 자유 속에서 예술은 늘 분열의 위험이 있었다. 현대미술의 중심이 서구인 점 또한 이 땅에서 작업하는 이가 처한 분열적 요소다. 조병국이 구사하는 여러 형식적 장치는 21세기에 작업하는 현대미술가이어야 하면서도, 자신의 뿌리를 배제하지 않기 위한 노력 속에서 창안된 것이다. 이번 전시에도 작가의 고향인 강원도 산골 풍경을 떠올리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그는 강원도 양구가 낳은 ‘국민화가’ 박수근에 대한 영향을 이야기한다. 작품 평문에서도 박수근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외국 작가의 경우 모네도 거론된다. 그것은 작가의 고향도 양구여서만은 아니다. 물질을 넘어선 살아있는 물성이 그와 박수근 화백을 연결시키는 끈이다. 


삶의 풍경이면서도 화면의 자율성을 동시에 견지하는 균형 감각 또한 연결 지점이다. 박수근의 작품이 다소간 모노 톤이라면, 조병국은 한지와 전통 색 한지를 쓴 조형 작업으로 독특한 질감에 더한 색감이 있다. 한지(韓紙) 바탕에 색 한지로 형태와 색감을 시각화하고 그것이 보는 이에게 감성을 보여주는 표현기법으로 작품은 색, 형태, 질감으로 종합한다. 박수근처럼 조병국의 작품에 등장하는 도상도 다소간 평이하다. 집, 나무, 꽃, 대지 등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평범한 도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표현기법이다. 그는 현재 물감과 붓 없이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조병국의 주재료는 한지로 알려져 있다. 한지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등으로 나뉜 미학을 종합하는 매개가 되었다. 수묵화를 오랫동안 그려왔지만, 2010년경부터 병행해온 한지 콜라주(collage) 작업은 이제 작업의 중심에 놓였으며, 이번 전시도 그렇다. 그가 시리즈 작업을 즐겨하는 것은 한지의 물성과 특성 때문이다. 


색 한지의 ‘스밈-그림’은 튜브 물감처럼 언제든 짜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업은 연속적인 맥락과 끊기지 않는 감각이 요구된다. 한지(韓紙)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했다. 작가는 문 창호지의 예를 든다. 어릴 때부터 생활 속에 배어있는 한지는 바람을 통과시키고 빛을 막아준다는 특성이 있다. 한지는 물에는 약하지만, 작가는 단점일 수도 있는 이 물성의 특징을 변형의 용이함이라는 장점으로 전환한다. 조병국의 한지 ‘스밈-작업’은 한지의 내재적 특성을 최대한 발현하여 작품으로 끌어오는데 집중된다. 재료 면에서 한지의 자체의 물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작가는 도상 또한 그가 직접 보고 느낀 것에 충실하다. 많은 공정을 거치지만 그것은 신기한 무엇을 창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또는 선택한 현실 속에 내재된 잠재성을 온전히 꺼내기 위함이다. 조병국의 풍경은 전국을 다니며 실제로 본 것에 바탕 한다. 한두번 방문이 아니라 계절마다 가면서 시간의 여운을 담아낸다. 


한두번 가본 곳에 대해서는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수없이 가본 곳은 그렇게 가야 할 필연성이 있으며, 반복 속의 차이와 사물의 본질, 정신적 내면으로 작품화된다. 작품 속 산중지가의 마을은 태어나고 자란 양구에서부터 홍천, 영월, 정선, 평창 등의 강원도 주변과 1980년초 교직에 임지를 했던 삼척, 태백 그리고 그 주변 지역 울진, 봉화, 영주 등 경상북도 깊은 산 속의 담이 없던 마을과 집이다. 또한 산중지매는 순천, 구례, 장성, 광양, 합천 등 경상도와 전라도는 지리교육 대학원에서 지리를 전공하여 촌락을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관찰한 깊은 산중의 옛집들이다. 나무와 꽃도 장소와 시기가 있다. 그저 관념 속의 풍경이거나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관념의 조율을 거친다. 이러한 연결망은 색감과 질감, 단순화 한 형태가 하나로 수렴되는 풍경을 낳게 했다. 기후 위기를 비롯한 이미 와있지만 앞으로 더 거세질 부정적 영향 아래 우리가 자명하게 생각해온 풍경 또한 기록적 가치를 더하게 될 것이다. 


그가 그린 논밭 안의 작은 집들이나 숲, 꽃 등이 더 이상 그곳에 있는 것이 신기한 환상적 풍경이 되는 날도 오리라는 어두운 전망은 과장이 아니다. 100년 후면 이 땅에서 수확하고 잡은 과일이나 어류 등이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조병국의 [산중지가] 시리즈에 나오듯, 산촌에서 소박하게 농사짓는 삶 또한 마찬가지다. 작가가 영향받은 인상파는 산업혁명에 의해 자연이 망가질 무렵 그에 대한 시적인 반동으로 생겨났다. 마이클 리비는 [조토에서 세잔까지]에서 인상파에 큰 영향을 준 영국화가 컨스타블을 인용한다. ‘상상만으로는 자연과 비교될 작품을 그릴 수 없다’고 말한 컨스터블은 나뭇잎 위로 어른거리는 햇살이나 소용돌이치는 구름의 묘사에서 사실적 표현에 대한 경의의 예를 발견한다. 더 나아가 컨스터블의 작품 [건초마차]는 철도로 절단되거나 석탄 광산으로 파헤쳐지기 직전의 풍요로운 영국 농촌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지적된다. 


그것은 앨런 보네스가 [모던 유럽아트]에서 말한 자연주의적 양상이다. 이 맥락에서 모네는 당시에 유행하던 자연주의 미학, 즉 실제로 보이는 것만을 화폭에 담는다는 원칙을 받아들여, 자연광에서 대상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록은 장식만큼이나 본격적인 예술과 거리가 있다. 고향의 풍경을 떠올리는 조병국의 작품은 일견 기록과도 연결되며, 아름다움에 호소하기에 장식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현실의 기계적 반영이나 아름다운 장식은 그가 배제하는 두 방식이다. 작가가 그런 자의식은 늘 기록이나 장식적 요소가 그가 ‘정신적 활동’이라고 보는 예술의 정신성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복합적이다는 것이 ‘순수’를 침해하는 문제라면 문제다. 조병국의 작품은 마음 가는 대로 변형이 되기는 하지만, 철저히 자신이 보고 느낀 것에 바탕 한 작업을 우선시한다. 변형이 가능하기 위한 최초의 현실이 그의 마음속에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과 관계없는 관념적 풍경은 그가 전공하기도 했던 한국화를 박제화시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삶의 반영에 머물거나 ‘예술을 위한 예술’은 오히려 쉽다. 중요한 것은 양자 간의 균형 감각이다. 그가 모네의 초창기 모더니즘, 즉 현실과 예술의 자율성이 절묘하게 균형을 잡았던 시기의 작가를 참조하는 것도 박수근에 대한 존경과 같은 맥락에 있다. 그의 전시 평을 담은 기사의 제목이 [박수근 모네 사이 파고 든 한지의 빛](강원도민일보, 김여진 기자)이다. 모네나 박수근의 작품에는 그림으로서의 자족성은 물론, 그 시절의 빛과 공기마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상주의에서 색과 형태, 그리고 질감이 하나가 된 모습을 본다. 수묵화를 오래 그려온 그는 이제 한지의 질감으로 표현한다. 모네가 빛과 색, 대기와 그늘을 하나로 뭉쳤다면 자신은 한지로 빛과 색, 그리고 단순화 한 형태와 질감을 하나로 만들려 한다. 


조병국이 주목하는 모네의 현대성은 우선 빛에 대한 태도에서 찾아진다. 그는 한지의 스며드는 속성을 활용하여 자신이 본 풍경의 빛과 대기의 느낌을 색과 질감을 통일함으로서 표현한다. 모네에게 빛은 처음에는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에 충실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곧 추상의 길을 닦게 된다. 추상이 관념이 아니라 실재에 접근하기 위한 더 치열한 의식에 의해서였다는 사실이다. 버나드 덴버는 [가까이에서 본 인상주의 미술가]에서 인상주의 시대를 다룬 많은 평자들과 작가의 말을 편집했다. 그의 자료에 의하면 젊은 시절의 모네는 ‘대기와 빛 속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실제 존재 방식. 자연이 만들어 놓은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말했다. 버나드 덴버는 소설가 뒤랑티의 말도 소개한다. ‘우리는 한여름 풍경의 셀 수 없는 단면들을 지나치면서 작은 언덕, 초원, 들판이 찬란한 반사광 속에서 어떻게 하나로 녹아드는지 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연에서 빛을 창조하는 법칙이기 때문이다. 사물은 햇빛을 받아 반사할 때 대지를 감싸는 천공 아래 주변의 반사광과 한데 뒤섞여 눈에 들어온다. 이제야 화가는 이러한 현상을 처음으로 이해하고 재현하고자 한다.’ 하지만 자연에 가까워지려 할수록 멀어지는 역설에 봉착한다. 마이클 리비는 [조토에서 세잔까지]에서 모네는 빛은 시시각각 밝기를 달리하고 따라서 사물의 모습도 그때마다 변한다는 것을 의식한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고자 열망한 모네는 각기 다른 시간에 빛의 밝기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건초더미나 성당을 연속해서 그리는 작업을 시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리는 대상이 무엇인지는 거의 문제 삼지 않았다. 마이클 리비는 모네의 그림을 빛으로 짜인 별천지 같다고 표현한다. ‘성당은 빛으로 둘러싸인 물체에 불과하고 회색빛 석재에서 모네는 쉴새 없이 흔들리는 프리즘 같은 표면을 찾아낸다...모네의 그림에서 색채는 눈을 감고 보는 것처럼 혹은 눈을 너무 혹사시킨 후 보는 것처럼 어른거리듯 흔들린다. 


눈에 보이는 것을 정확히 그리겠다는 모네의 의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말하자면 어떤 사물도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는 그림을 낳은 것’(마이클 리비)이다. 앨런 보네스도 모네의 그림이 ‘지각된 사물의 본성이라기 보다는 시각 자체의 본성을 드러내는 새로운 종류의 그림’이라는 평가를 인용한다. 물론 조병국의 작품은 인상주의의 필촉분할 등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그가 접한 자연적 실재를 생생하게 담기 위한 빛을 주목하고 빛을 색으로 구현하기 위한 방법에 골몰한 점은 공통적이다. 인상주의와 다른 점은 물감 대신에 색한지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에서 중심에 놓은 [산중지가] 시리즈는 계절의 빛을 머금고 있는 대지의 표현이 특징적이다. 구불구불한 밭이랑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을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으로, 동양화에서의 부감법이 적용되었다. 하나의 시점에 고정되지 않은 유연한 원근법인 삼원법 또한 실제의 경치와 관념을 결합한다. 


[산중지가] 시리즈는 멀리서 본 풍경이 주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최대한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 하는 과정을 거쳐 자신의 스타일로 형성하고 있다. 일상의 대소사 또한 이러한 거리를 가지게 된다면, 삶은 심미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작품마다 길이나 집의 배치는 다르다. 하지만 원경을 나무숲으로 둘러쳐서 그 안쪽의 마을과 전답에 아늑한 느낌을 부여하는 점은 공통적이다. [산중지매] 시리즈는 [산중지가]의 변주로, 풍경 한쪽을 거대한 매화나무로 채운다. 나무는 집에 비해 매우 큰 규모다. 작품마다 집의 배치는 다르지만, 매화나무가 압도적인 비중으로 화면을 채운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의 작품은 시점만 가변적인 것이 아니라, 대상의 규모 또한 그러하다. 그의 작업은 재현적이면서도 재현주의에 머물지 않는다. 화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매화꽃들은 깊은 공간을 나타내는 푸르름을 배경으로 할 때 우주적 풍경을 이룬다. 환한 매화꽃들은 어두운 우주를 빛내주는 별들과 같다. 


화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나무는 지하와 지상, 그리고 하늘을 잇는 매개가 된다는 점에서 세계수(世界樹)같은 위상을 획득한다. 나무가 등장하는 작품은 화면의 크기가 작아도 도상의 비중을 조정하여 기념비적인 스케일을 유지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다채로운 색감을 보여주지만, 이전에는 색 한지의 오방색으로 단색화도 실험작업도 있었다. 조병국은 자신의 그림의 바탕은 단색화라고 말한다. 한지 자체를 겹겹이 콜라주하고 두드림 작업 속에서 단색화의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은 동양화 특유의 여백과 단순화에 대한 감각이 있는데, 이 부분을 단색화같이 채우는 것이다. 비우면서 채우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의 강점은 색의 조화이다. 여러 겹 섞임을 통해 만들어지는 그의 작품은 순색보다는 간색이 두드러진다. 순색의 강함보다는 간색의 은은함이 지배적인데, 이는 순색을 중시했던 인상주의와 갈라지는 지점이다. 


조병국의 방식은 고유섭이 말한 ‘어눌하지만 은은한’ ‘한국의 미’에 대한 관심사가 반영된 것이다. 그가 계절의 여운을 포함하는 구상적 요소를 고수하는 것도 풍경이 계절과 시간의 빛을 머금은 듯한 발색이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지의 겹침은 색감과 질감을 결정짓는다. 일조량에 따라 색감과 질감은 달라진다. 겨울에는 흙색이 많다. 꽃의 표현에 있어서도 햇빛의 유무에 따라 물성이 달라진다. 그에 의하면 해가 진 후 꽃의 물성은 중후하다. 물성에는 시간성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한지 장인들은 겨울 한 철 1년생 ‘참닥’을 충분히 수확하여 그 껍질인 흑피를 저장해 놓고 사용한다. 그는 ‘한지는 ‘닥’ 섬유에 잘 결속되게 하면서도 지료가 잘 분산되게 하는 닥풀(점질물, 분산제)’은 ‘섬유의 배열을 양호하게 해주고, 종이의 강도를 증가시키며, 습지 분리가 용이하게 한다는 한지 제작과정과 물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추상이라면 색의 변주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와의 연결고리를 가지는 작품에서 시와 때에 관련된 분위기는 중요하다. 조병국이 시간의 예술이었던 인상파에 주목했던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형태의 표현은 약간 다르다. 가령 그의 [자작나무] 시리즈는 색이 밝아서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한 겹으로 붙인 것은 형태이기 때문이다. 가령 매화나무의 선은 한지를 찢어 붙이지만, 농촌의 벽색을 나오게 하려면 한지를 겹겹이 쌓아야 질감이 돌출된다. 형태가 강조될 경우 물성은 약화 된다. 어떤 부분은 한 겹으로만 살짝 처리한 부분이 있고, 어떤 부분은 두툼하게 보일 정도로 많이 겹친다. 조병국의 방법론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만 대상의 표현은 일률적이지 않다. 각각의 경우마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 한지는 물감보다 질감이 좋다. 밑 색 위에 쌓으면서 색을 조율한다. 이번 전시작품들 속에서 한지의 은은한 색감과 여러 겹 겹친 방식을 통한 질감에 방점이 찍혀있다. 


상대적으로 소재와 형태는 다소간 단순하다. 조병국의 작품은 형태를 알아볼 만큼 구상적이며 다채롭지만, 붓과 물감을 쓰지 않는 독창적인 과정을 거친다. 물감에 해당되는 것이 염색된 색 한지다. 그의 작업실에는 물감의 색만큼의 다채로운 색깔 한지가 있다. 한지장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색 한지를 넘어서는 그의 방식은 수많은 겹침을 통한 또 다른 발색이다. 장인이 염색한 한지를 다시 작가가 혼색하는 것이다. 바탕은 순색이 강한 것부터 깔고 색 한지를 겹겹이 찢어 붙이고 두드리는 과정 속에서 물성이 변하면서 혼합이 일어나고 서서히 마르면서 최종 색이 발현된다. 손끝에서 담(淡)하고 은은한 색감이 나오기 위해서는 바탕이 여러 겹 이상은 가야 한다. 그래야 작가가 만족할만한 색감과 독특한 질감이 나오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가 많은 겹을 고수하는 것은 자연의 방식을 따르려 하기 때문이다. 자연 자체가 수많은 겹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랜 시간의 실험이 필요한 작업을 수행(修行)과도 비교한다. 한지 장인들이 수행한 작업에 또 다른 수행이 추가되는 것이다. 한지를 손끝으로 찍고 두드림 속에서 만든 질감은 흡사 돌담과도 같아서 작품 속의 건축적인 부분의 표현이 활용되기도 한다. 조병국의 풍경에서 나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그가 ‘닥’을 재료로 하는 한지를 사용하기 때문은 아닐까. 식물성 재질의 재료는 물성이나 색상이 스밈에 의해 만들어진다. 작가는 이러한 특성을 동양적이라고 평가한다. 염색한 한지는 인공적 물감과 달리, 자연적 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연을 최대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목적에 부합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작나무와 동백꽃 시리즈가 많이 출품됐다. 꽃은 점묘법처럼 한지를 손끝으로 찢어 붙여 색을 섞는다. 겹겹이 쌓아 두드림 속에 섞인 미묘한 색감이 나타난다. [동백꽃] 시리즈를 보면, 꽃나무들은 대지에 줄기가 박혀 있지만, 꽃의 비중은 매우 크고 화면 위로 갈수록 꽃은 패턴화된다. 


동백 시리즈는 김초혜의 시 [동백꽃 그리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떨어져 누운 꽃은 나무의 꽃을 보고 나무의 꽃은 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 그대는 내가 되어라 나는 그대가 되리’(김초혜) 서로의 시적인 그리움을 나뭇잎과 붉은 동백꽃의 질감을 부여해서 더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여수 오동도, 울릉도 관음도 등의 섬 동백은 바다 바람과 햇볕이 강하여 동백꽃, 잎, 나무 기둥이 짙게 나타나 희게 나타내고, 선운사, 백련사, 옥룡사지 등의 깊은 산 속의 동백꽃은 짙붉고 나무 기둥은 세월의 흐름 의미를 담고 기둥은 거칠고 무겁게 표현한다. 나무 기둥과 줄기 없이 꽃만 있는 것은 사찰의 문에 새겨진 문양을 떠올려 단순화 하는 방법으로 표현을 한다. 조병국의 작품은 시리즈 형식으로 제작되고 전시되기에, 꽃나무 줄기의 유무는 전체적인 맥락 속에 자리한다. 줄기 없이 꽃만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작품의 경우, 식물과 대지와의 관계가 드러나면서도 화면 상단은 추상으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이 국면에서는 색상의 대조가 중요해진다. 화면의 평면성은 강화되며, 재현적 요소보다는 추상성이 두드러진다. 모네의 화면이 수련이 떠 있는 수면과 밀착되었을 때 추상성이 강화된 것과 비교될 수 있다. 조병국은 모네라는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에게서 ‘대상이 자리하고 있는 대기의 아름다움’을 그리려는 화가의 열망을 발견한다. 버나드 덴버는 인상주의에서 추상으로의 과정을 잘 알려주는 소설가 뒤랑티의 평문을 인용한다. ‘모네는 순간의 직관을 통해 이들은 태양광을 일곱 빛깔 기본소로 해체하는데 성공했고, 그것을 다시 하나의 통일체로 화폭에 재구성해 펼쳐 놓았다...이것이 바로 자연에서 빛을 창조하는 법칙이기 때문이다’ 조병국의 작품에서 자연에 충실하면서도 그림의 내재적 규칙을 따르는 작품은 [자작나무 숲] 시리즈에서 발견된다. 이 작품들에서 하얀 나무 둥치들은 화면을 수직으로 가로지른다. 추상적 화면이지만 그가 백번도 넘게 다녀왔다는 인제의 자작나무 숲이다. 


대지를 한정하는 영역이 암시되지만, 화면 가득히 포착된 대상은 화면을 평면적으로 보이게 한다. 자작나무 숲은 화면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띠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계절에 따라 색감이 다른 점은 작가가 실제의 표현에도 방점을 찍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작품 [불일암 가는 길]에서 빽빽한 나무숲 사이로 난 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즉 작가가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예술의 길을 상징하는 듯하다. 동백의 형태를 그냥 잘라서 붙인 것이 아니라 겹겹이 쌓아서 안의 색들을 푹 우러나게 한다. 작가는 그것을 ‘된장처럼 숙성하는 것’과 비유한다. 형태나 색의 재현이 아니라 한지만의 내재적 속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배태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제주 유채꽃은 그러한 질감을 최대한 살린다. [수련] 시리즈의 경우 바탕은 빛이 들어오면서 작품마다 분위기는 달라진다. 이 시리즈에서 작가는 간색을 활용하여 원근감을 주었다. 모네 만년의 대작들의 중심을 이루는 수련이 조병국의 소재로도 등장한다. 


물론 물감으로 그린 수련과 한지로 ‘그린’ 수련은 큰 차이가 있다. 인상파가 동양 예술에 대해 가졌던 존경심과 참조를 생각하면, 이러한 만남은 자연스럽다. 형식적으로 볼 때 모네와의 교감은 화면의 평면성과 질감의 관계에 있다. 앨런 보네스는 [모던 유럽아트]에서 모네가 사실주의자로 평가받는 쿠르베가 풍경을 그렸던 방식, 즉 물질 자체(바위, 나무, 풀, 물)의 느낌을 물감의 재질감으로 바꾸고 고유색을 고수한 방식에 대해 잘 알았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쿠르베에게 풀은 녹색이고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모네는 풀이 빛에 의해 회색, 노란색, 또는 파란색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견이 그림에서 공간적인 깊이감을 피하게 했다. 앨런 보네스에 의하면 인상주의자들은 그림이란 본질적으로 평평한 표면이라고 생각했으며, 후에는 일정한 질서에 의해 배열된 색들로 덮인 표면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접근방식이 모던 아트의 가장 근본적인 생각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이후 인상파가 아닌 작가들, 가령 마티스에게도 모든 형태는 어떤 식으로든 그림의 표면과 관련되며, 표면은 형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자각을 낳았다. 


마티스는 빛을 머금은 색을 평면적으로 명암 없이 칠해 동시대 화가들이 모색하던 표면과 공간의 조화를 이룩했다는 것이 알렌 보네스의 평가다. 조병국에게도 수련은 모네의 수련과 같이 소우주를 이룬다. 화면 가득히 펼쳐지는 조병국의 [수련] 시리즈는 꽃만 있을 때 더욱 평면적이다. 수련은 푸른 물 사이로 섬처럼 떠 있기도 하다. 콜라주는 맨 처음 입체파에서 현대미술의 어법으로 ‘발명’될 때 현실의 다양한 차원을 제시하는 형태적 측면이 강조되었지만, 조병국의 경우에는 형태보다는 색감이다. 색한지를 찍어 붙여가며 색감을 내는 방식은 물감보다 불확실성이 높으며, 그만큼 성취도도 높다. 또한 그리기보다는 색한지를 겹겹이 찢어 붙이는 콜라주 작업은 저부조라는 요소가 있다. 그가 주로 쓰는 한지도 한지 장인들이 만든 것이다. 물론 그 종이를 만든 장인들조차도 놀라운 어떤 변화를 준다. 조병국은 한지 관련 국내외의 기획전에도 장인들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2021년 G20 로마 정상회담 기념전 [원주한지테마파크 주관] 전시에 출품한 초대 작품은 이탈리아 로마 카달루니아 시립박물관 및 주영국대사관에서 전시가 있었으며, 현재 [자작나무 숲 20-20] 작품이 주목을 받아 이탈리아 파브리아노 종이박물관에서 3년간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그가 작업하고 있는 종이는 전국의 한지 장인들이 만든 전통한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색 한지는 주로 원주, 괴산, 전주 지역의 한지장들이 만든 한지를 선택한다. 염색이 잘된 색 한지는 작가를 통해 또 다른 변신을 꾀한다. 한지장들은 ‘닥’작업을 하지만, 조병국은 전통한지를 겹겹이 쌓아서, 콜라주를 하는 작업의 차이가 있다. 콜라주는 촉각적 공간을 만든다. 콜라주는 현대미술만의 형식이 아니다. 여러 민속적 전통에서도 발견되지만 재현주의로부터 의식적으로 벗어나려 했던 현대미술에서 의미있는 형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현대미술사에서 화면의 혁명은 꼴라주를 맞을 준비했다. 꼴라주를 발견한 입체파의 선구자 세잔의 화면이 그것이다. 앨런 보네스는 [모던 유럽아트]에서 피렌체식 선원근법 체계를 좋아하지 않은 세잔의 예를 든다. 


피렌체 식의 선원근법은 뒤로 향하는 모든 선들을 소실점에서 모이게 하고 그림의 공간을 깔대기 형태로 취급하는 기법에 대한 대안을 찾았다. 세잔은 베네치아식 색조 체계를 선호했는데, 그것은 그림을 얕은 상자처럼 다뤄서 화면 뒤로 공간을 몇 겹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세잔의 풍경은 소실점이 없는 대신 공간이 평행하게 몇 겹의 층을 이루며 색채와 색조로 구별된다. 앨런 보네스에 의하면 세잔은 입체감을 주기 위한 모델링의 관행도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세잔은 색채 가감 방식, 즉 옅은 농도의 물감들을 캔버스에 직접 나란히 칠해 색채와 색조의 차이를 통해서 3차원적 감각을 내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에 의하면 세잔은 정렬과 불연속을 사용하여 형태와 색채를 반복했다. ‘나는 오로지 색을 가지고 원근법을 표현하려 했다’(세잔) 평면성을 향한 현대미술의 흐름은 장식과의 관계 설정을 요구했다. 자율성에 대한 현대미술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겹쳐지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조병국에게 한지는 중요한 재료지만, 재료는 수단에 불과하고 완성되었을 때 조형이 중요하다. 


그의 특이점은 한지를 자신만의 혼합법으로 인상주의에 버금가는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간색을 쌓다 보면 은은한 색이 나온다. 재료를 다루면서 장인의 방법과 상당 부분 겹치는 부분은 표현의 의도에 달려있다. 물론 구별은 쉽지 않다. 미술사에서 표현과 장식의 차이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있지 않았나. 하지만 마티스 같은 걸출한 작가는 양자를 조화롭게 통일시키기도 했다. 조병국이 참조하는 모네는 어떠한가. 모네의 작품도 어떤 부분은 잘 짜여진 태피스트리 같은 질감을 가진다. 현대미술의 시조라고 알려진 세잔의 화면이나 그를 계승한 입체파의 꼴라주, 특히 브라크의 촉각적 공간감 또한 마찬가지다. 조병국의 작업은 질감의 변화를 주어 만들어진 회화다. 그가 종종 함께 하는 한지 관련 기획전은 예술과 공예의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을 부각시킨다. 그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재현주의와 추상, 순수미술과 장식 등의 관계를 피해 가지 않으며, 대화적 상상력을 가지고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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