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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균의 ‘균열의 파라독스’

이선영

이해균의 ‘균열의 파라독스’


이선영(미술평론가)



이해균의 최근작은 추상적이다. 그의 추상은 단지 기하학적이거나 유기적이기 이전에, 무엇으로부터 이끌어낸다는 의미에서의 추상이다. 그의 경우 자연이다. 작품에는 재현적 요소는 없지만 빛과 어둠, 대지와 하늘, 물과 바람의 존재가 느껴진다. 자연적 대상을 외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에 내장된 속성을 미술 고유의 언어로 표현한다. 일종의 언어인 미술은 자연이 아니다. 조형적 언어는 자연을 비롯한 지시대상과 단절되면서 예술의 자율성이 선언되고 의식적이고 집단적으로 실행되었지만, 그러한 주류의 방식은 미술을 더욱 빈곤하게 했을 따름이다. 추상미술의 끝에는 그림은 그림일 뿐이라는 공허한 동어반복, 또는 자기지시성이 자리한다. 물론 그렇다고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는 기계 복제의 시대에 이전 시대의 재현주의를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해균은 조형 언어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연이라는 뿌리를 잘라내지 않는다. 자연은 영감과 사색의 근원이다. 




안젤리 미술관 설치전경(후원; 경기문화재단)









이해균의 작품에는 바람이 불고 햇빛이 들며, 사계절의 변화에 특징적인 색의 드라마가 있다. 작가는 자연을 모사하지 않는 대신에 수많은 겹과 결로 이루어진 자연의 본성을 조형적 언어로 번역한다. 번역이란 두 가지 다른 어법을 인정하고 그 거리 사이에서 행해지는 작업이다. 인간의 생산물은 이익을 위해 최대한 표면적인 것에 집중하지만, 자연은 시공간의 흐름을 켜켜이 쟁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연속적인 흐름과 더불어 단층과 같은 표현도 있다. 하지만 단층은 또 다른 연결을 위한 또 다른 접면이 된다. 균열이나 틈, 간극은 다른 연결의 매개가 되기에, 그의 작품은 ‘균열의 파라독스’가 된다. 파라독스란 개념은 한 방향의 인과론적 논리만이 아니라 양방향의 논리 모두를 인정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졌던 예술과 사물의 관계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예술은 순수하지만, 사물은 불순하며, 지양의 대상이 되었다. 일순간 그 진의가 파악될 수 있는 회화는 순수함을 담보해준다. 


하지만 어찌어찌하여 예술의 세계로 흘러들어온 사물은 작가의 미학적 의도를 투명하게 전달하지 않는다. 사물은 예술에 비해 불투명한 것이다. 초현실주의는 이러한 불투명성을 즐겼고, 뒤샹은 이를 개념적으로 확장시켰다. 이해균은 뒤샹의 레디 메이드의 예를 들면서 21세기에도 예술의 경계는 여전히 모호하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예술의 모호성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포장지, 간지, 나무껍질, 폐비닐 등의 물체를 수집하여 전시장으로 옮겨오는 작업’이다. 무엇인가를 보는 투명한 창과 그림자체에 주목하게 하는 불투명한 화면 사이에도 긴장감이 있다. 이해균의 유화 작업은 두툼한 자연의 물질감을 재현하면서도 표현한다. 하지만 거의 동양화적인 방식을 활용하는 그의 작품은 질척질척한 질감이 아니라, 스밈과 번짐도 있는 담백한 방식이다. 이 대목에서도 작가는 재현이 아닌 유사의 어법을 택한다. 재현은 명확한 참조 대상의 가정하지만, 유사는 계열을 이루고 계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열려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수집한 사물들, 특히 그것의 부분이나 표면은 언뜻 추상화를 닮았다. 예술보다는 사물에 에워싸여 사는 현대인에게 사물 또한 자연이나 생태계의 반열에 오른다. 작가는 자연이 쌓는 것처럼 쌓고 자연이 접는 것처럼 접으며, 자연이 펼치는 것처럼 펼친다. 자연도 예술도 주름의 접힘과 펼침이라는 방식을 공유한다. 여러 층을 만드는 그의 방식은 색과 형태의 겹침은 물론, 화면에 구김을 만들어서 입체적 효과로도 나타난다. 평면적인 작품 속에 내장된 여러 층이 힘을 받아 현실 공간으로 밀고 나오는 것이다. 작품이 단순한 환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재감을 더하기 위한 방식이다. 가상현실의 힘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현대에서 화가는 자신의 작품이 가상을 넘어서 실재적이기를 바란다. 몸과 화면이 마주치며 생겨나는 수많은 대화와 행위는 단지 코드만을 조작하는 현대적인 방식을 넘어서 예술과 예술가의 정체성을 다시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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