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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저기로의 유목

이선영

여기에서 저기로의 유목

 

이선영(미술평론가)

 


전인구의 반 이상이 수도권에서, 그것도 아파트 중심의 주거지에서 살고있는 한국에서 지역은 점점 더 주변화되고 있다. 코로나 같은 역대급 재앙이 닥쳤어도 흩어져 살자는 요구는 여전히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부존자원(賦存資源)이나 국토 면적으로 볼 때 그리 풍족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 인간들끼리 경쟁하는 게임이 지배적이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된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특유한 양극화는 궁극적으로 중심에도 피해가 피드백된다. 몰려 사는 획일적인 삶일수록 타자에 대한 그리움은 깊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여행을 꿈꾸고, 종종 실행에 옮기는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 한 여행] 전에는 여행이라는 키워드와 더불어, ‘그’를 불특정 다수가 아닌 작가로 설정한다. 6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전시의 기획자(윤규홍)는 ‘우리는 길게 혹은 짧게 모두 삶의 여행자이다’라고 말한다. 예술가 자체가 유목하는 자다. 그들은 실제로 이동하든 말든, 새로운 작품과 더불어 늘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는 존재다. 여기에서 저기로 간다고 뾰족한 것은 없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오갈 수 있는 여지다. 우리는 그러한 여지에서 붙박힌 삶으로부터의 자유로움과 재충전을 얻는다. [그와 함께 한 여행] 전이 열렸던 김해는 그러한 그리움을 충족할 수 있는 장소를 지향한다. 


이때 자연과 역사, 그리고 예술은 중요한 자원이 된다. 현재 보편화되어 있듯이 지역 특산품이나 그런 생산물을 중심으로 한 축제 등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한 경제적 차원조차도 문화의 옷이 입혀지지 않으면 실패한다. 이미 미술계에서 보편화된 전국의 레지던시는 유목하는 이방인들의 시점들이 각 지역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고 있다. 지자체가 그런 계기들을 활성화 시킨다면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어딜가나 같은 작품만을 고수하는 이들에게 레지던시는 그저 작업실 제공 외에 필연성이 없다. 기왕에 하는 작업, 자신을 새로운 좌표계에 던져 놓을 수 있는 도전적 자세가 요구된다. 웰컴 레지던시의 작가들은 김해 인근이 고향이거나 거처를 둔 작가가 있지만, 정작 김해 출신은 없다. 김해는 이들에게도 새롭게 연구되고 탐사되어야 하는 장소다. 그들은 지역의 특성에 대한 탐색과 연구를 레지던시를 마무리하는 총괄적 전시에 담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웰컴 레지던시 또한 전국에 깔린 예술 관련 기관으로, 해당 지역에서의 문화적 과제를 인식한다. 고대 가야 왕국에 대한 신비로운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김해는 관련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이 있고, 전시가 열리는 장소 또한 수로왕릉 일대에 자리한 김해 한옥 체험관이라는 맥락이 깔려있다. 

  

김철환의 작품에서 한옥의 방 입구에 붙은 마을의 사진들은 마루의 천정 인근에 붙여 놓았던 옛 사진첩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런 사진들과 함께 공동체도 사라졌다. 방 안에 연출된 풍경은 부재가 보편화된 지금 이곳을 낯설게 조명한다. 작가는 개발이 정체되어 있다고 믿어지는 김해 구도시를 사진과 영상에 담아 모형 기차에 실어 벽에 투사한다. 오래된 마을은 기차의 여정을 따라 공전한다. 이 풍경은 천정에 투사된 우주의 저편처럼 멀리에 있는 듯이 보인다. 그가 수집한 풍경에서 사람들은 우주인 찾기처럼 힘들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시간에 비한다면 몇 십 년 전 과거는 거의 현재와 다름이 없는데 말이다. 장두루의 작품 [내 집은 어디인가]는 작가의 본가가 있는 마산과 김해의 무계동을 왕래하면서 집의 의미를 묻는다. 물리적인 집뿐 아니라, 작업을 하는 자로서 마땅히 구축되어야 할 든든한 자신의 앞마당에 대한 요구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쟁취해야 하는 것들이다. 윈도 갤러리처럼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여러 모양의 집들, 실내에 걸린 심리지도, 마당에 걸린 포스터 형식의 작은 걸개그림들, 그리고 전시장에 울려퍼지는 나지막한 노래까지 모든 것이 크게 드로잉이라는 방식으로 묶여 맥락화 된다. 장두루에게 드로잉은 삶의 표현 수단이자 예술적 개념의 제시이다. 


한민경의 작품은 장유-무계 지역을 걸으며 수집한 사물들이 바탕을 이룬다. 어디서 떨어진 지 모를 수수께끼같은 것들은 상품이나 물건에서 사물이나 유물로 위치를 이동한다. 예술은 ‘사물의 편’(프랑시스 퐁주)에 선다. 작가는 이동 경로와 수집된 것들을 자세하게 기록한다. 수집된 단편들은 투명하게 캐스팅되어 탁자에 배열되고 드로잉은 원형의 띠로 설치된다. 예술가의 기록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도 부여받지 못했을지 모를 단편들은 망각의 이면인 기억을 말한다. 시공간을 작품으로 재편집하기 위해 행해진 지역에 대한 조사는 방대하고 거시적이다. 그러나 실행은 미시적이다. 그것은 피상적일 수 있는 거대 담론에 대한 대안적 방식이다. 정석우의 작품 [꽃이자 파도이며 원인 것]은 8조각으로 나뉜 피자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회화’다. 김해의 오랜 역사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지름 2미터의 작품은 지지체에 의해 고정되어 있지만, 맥락에 따라 분해해서 재조합되어 작품 제목처럼 꽃도, 파도도, 원도 될 수 있다. 시간의 층이 쌓인 도시처럼 층과 층의 간극이 살아있는 그의 작품은 김해의 유물인 청동거울에서 영감을 받았다. 작가는 거울로부터 보이는 것들은 하나의 상으로 고정시키지 않는 유연함을 배운다. 물론 유연함이 과하면 무의미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그림이자 설치인 작품 곁에 여러 기록들로 맥락을 함께 제시한다.


정민영은 한옥 마당 한 켠에 어디선가 날아와 땅에 꽂힌 듯한 구조물을 선보였다. 그것은 무계동의 대표 문화재인 지석묘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다. 작가는 현생과 내세를 잇는 묘의 의미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꿨다. 거울처럼 비치는 계단을 올라가서 볼 수 있는 영상과 시민들과 함께 만든 비즈왁스 타블렛은 나와 타자의 관계망이 짜여지는 연극적 무대가 된다. 고대 지도자의 돌무덤은 안정적이고 닫혀있지만, 새로운 버전은 열려있고, 그래서 약간은 불안정하다. 대지에 깊이 접속해 있기보다는 붕 떠 있는 새로운 지석묘는 밤에 더욱 빛을 발해서 방문자들의 포토존으로 인기를 끌었다. 지알원(GR1)은 그라피티 작가로서의 경력을 십분 활용하여 지역 내의 하청업체에서 생산되는 공업용 락카를 활용한 색상표 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담벼락에다 신속하게 그리는 작업에 필수적인 전문가용과 공업용은 차이가 나지만, 여기에서의 생산품으로 김해의 색이라 할만한 것을 뽑아낸 것이다. 1호 크기의 캔버스에 두 색상을 대조하는 식으로 배열된 수백개의 패널들은 접히고 펼칠 수 있는 병풍 형식의 판에 붙어 한옥 마루에 설치됐다. 장독대처럼 설치된 둥근 색상환의 중심에는 이주민의 언어로 기록된 항아리가 자리한다. 여기에는 주변부를 중심으로 이동시키려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다. 


출전; 김해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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