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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랩대전 2022

이선영

아트랩대전 2022

  

이선영(미술평론가)



아트랩 대전은 이응노라는 거장이 넉넉하게 펼쳐놓은 맥락에서 작업하고 실험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전시로, 한 달여 간 주어진 릴레이 개인전 기회를 두고 매해 많은 작가들이 도전한다. 올해에 참여한 여섯 작가는 미술관 안팎의 공간에서 주체(노형규, 김기훈). 일상적 삶(이서경, 이경희), 추상적 구조(김진, 임승균)에 대한 관심사를 두루 보여주었다. 특히 올해에는 야외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입체 작품들 덕분에 이응노 미술관에 최적화된 장소 특정적인 작품들도 나왔다. 


제일 먼저 시작된 노형규 전은 ‘나를 태우다’라는 주제로 한다. 작업에 완전히 자신을 갈아 넣을 기세로 작업하는 젊은 작가의 열정이 느껴진다. 자신을 온전히 태워버림으로서 오히려 자신을 쟁취하는 역설적 방식은 타자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 그에게 타자는 자기 안의 타자 일뿐 아니라 절대적 타자, 즉 신을 포함한다. 그의 작품 속 주체는 종교적 주체, 즉 신 앞에 홀로 선 단독자로서의 주체다. 근대적인 주체가 공유하는 이 관념은 모더니즘이 기독교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또한 태워 없애다라는 관념에는 희생양의 테마가 내재한다. 희생양은 신화를 넘어서 현대사회에도 작동하고 있는 사회적 규칙으로 평가된다. 유기체 자체가 연소기관이다. 예술은 그 과정을 더 가속할 따름이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만을 마주하는 가운데서도 사회와 연결된다.


짝패처럼 한 쌍으로 배치되곤 하는 김기훈의 초상사진은 언뜻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처럼 나란히 배치하지 않고 간격을 두긴 했지만, 그의 작품의 의미는 이 작은 차이에서 발생한다. 작가는 차이에 대한 감수성을 고양시키면서, 그저 코드화되어 소비되는 현 사진의 상황을 반성한다. 사진적 이미지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렌즈는 타자의 시선을 대변한다. 사진에 찍힌다는 것은 어떻게 보이는 가의 문제이고, 이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자가 생각하는 나라는 심리적 사회적 주제와 연결된다. 사진을 찍는 주체도 사진적 행위를 통해 대상을 가상적으로 소유하거나 지배하려는 관점이 있다. 사진이 생소했던 시대와 일상인 시대 찍히는 인간의 반응은 크게 다르다. 요즘의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김기훈은 오랫동안 타국에서 작업하면서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정체성의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곧 이것이 타국에서의 이방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자체의 문제임을 인식한다.


이서경은 일상의 사소한 단편으로부터 시작한다. 일상 자체가 단편이지만, 상식에 의해 연속적인 질서로 이해되고 있을 따름이다. ‘사실주의’로 불리워진 그러한 재현적 질서에 대해 현대미술가들은 저항했다. 작가가 일부러 삶의 일부를 잘라낸 것이 아니라, 연속적이라고 가정되는 질서의 본 모습을 간취해 낸 것이다. 단편들을 포획하는 이서경의 붓질은 매우 빠르다. 붓질이 드러난 화면은 크지는 않아도 회화적이며, 자신과 주변의 경험에 바탕 한 내용이 담겨 있는 구체적인 작품 제목과 달리, 그림 자체는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단편들을 오래 만지작거리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단편을 포획하는 그만의 기술이다. 전체를 일괄할 수 없는 시대에 전체를 요구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이다. 그러나 단편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단편들을 설치방식으로 배열하여 나름의 맥락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래도 간극들은 여전하다. 그 부분을 채워서 의미로 연결 짓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이경희는 자신을 ‘페인터 &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소개한다. 작가라고 뭉뜽그려지지 않는 이 두 직함의 병렬은 그림과 미디어가 겹쳐질 수 없는 지점도 말하고 있다. 근 몇 년 동안 이경희는 주로 미디어 아티스트였다. 거의 유목민을 연상시킬만큼 다양한 장소에서 진행된 작업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매체는 영상이나 설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업 차 여러 곳을 누비고 다녔던 작가에게 위기가 닥쳤다. 얼마 전에 다리에 큰 부상은 입은 후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드로잉이나 그림에 가까워졌다. 드로잉은 이경희가 무엇을 하든 간에 기본으로 깔려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무엇인가의 매개를 넘어서 그자체의 존재감을 가지게 된다. 작가는 다리를 다치면서 뭔가 받아들이는 몸을 더욱 의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미디어에 비해 그림이 몸과 더욱 직접적 관계를 말한다. 


나지막한 높이로 세워진 이응노 미술관은 고암의 작품 ‘수(壽)’에서 영감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을 압도하는 기념비적인 건물이 아니라 자연을 품고 있는 모양새로, 다른 예술 또한 넉넉히 품어준다. 김진은 프랑스 건축가 로랑 보두앵의 작품인 미술관에서 시간과 공간에 따른 빛과 그림자를 탐색했다. 작품에서 작품으로 이어지는 대화적 관계는 김진의 관심사인 빛과 그림자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림자는 종속적인 존재이며, 그자체로 주목될 수 없다, 하지만 ‘세상에 애매하게 존재하는 것들을 찾아 격을 부여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밝히는 작가는 그림자를 실체화하고자 한다. 그가 장소특정적으로 제작한 그림자 형상의 조각은 또 다른 시간의 축에서 본다면 낯설게 다가온다. 가령 한여름에 만든 작업을 한겨울에 보거나 한다면 말이다. 재현의 기원에 (대상을 비추는)거울이 아니라 그림자가 있다는 가설이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그의 관심사는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미학의 핵심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임승균은 작품이 놓일 장소와 작품 간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공주를 비롯한 중부지역에서 활성화된 ‘자연 미술’ 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해 왔다. 주변과 상관없이 유아독존 격으로 존재하는 조각 작품들도 많은 경우를 생각하면, 살짝 끼어들기 같은 자세는 긍정적으로 나가온다. 작가는 이응노 미술관의 반쯤 개방된 공간에 서 있는 소나무 아래에는 솔방울 형태의 작품을 놓았다. 금속 철제와 유리로 만들어진 창유리로 된 벽 앞에는 창을 3차원적으로 입체화한듯한 구조물을 배치했으며, 노출 콘트리트 벽면을 배경으로 해서는 일련의 단위 구조를 가지는 입방체들을 줄 지워 세워놓았다. 맥락을 형성하는 건축 자체가 구조적인 예술이고 구조에 관심을 가져왔던 작가는 건축의 안팎을 구조적으로 번역한다. 솔방울 형태도 기하학적인 측면이 강조되었다. 자연은 유기적 구조를 가지며, 구조는 유전자의 차원까지 소급될 수 있다. 구조는 만들어진 것이며 따라서 재구조화될 수 있다.


출전; 2022 아트랩 대전 작가와의 대화(이응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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