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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균의 산목(山木)

이선영

이해균의 산목(山木)

 

이선영(미술평론가)

 


이해균의 산목(山木) 전은 그가 그려왔던 산들과 뗄 수 없는 소재인 나무와 함께 하는 전시다. 그의 산은 강원도 지역을 특정하여 그린 것만은 아니지만, 산 일반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는 특정한 산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산의 생성 그자체를 그림의 과정으로 표현해왔기 때문이다. 첩첩산중인 강원도 지역은 자동차로 한참을 달려도 산세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 마치 함께 달리는 것 같다. 속도를 통한 시간의 압축은 산세가 출렁거리는 듯한 유동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단단하지만, 언젠가 한번 유동적이었을 때 형성된 대지의 주름이 고정된 것이 산이다. 국토의 상당 부분이 산으로 된 우리나라는 활화산같은 살아있는 지층대는 없어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모양새를 가진다. [산목] 전에서 나무는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산과 함께 한다. 산의 기본형이 용암이 굳은 바위라면 그 위를 덮은 흙과 거기에 뿌리박은 나무는 단단한 뼈를 덮은 피부와 털같은 관계를 가진다. 






멀리서 보면 산의 세부 실루엣을 이루는 것은 나무들이다. 요즘같은 동절기에 잎사귀를 다 떨군 나무들은 마치 먹이 번진듯한 미세한 선들로 능선을 덮곤 해서, 그자체가 수묵화같은 모습이다. 한국화는 아니지만, 물감을 담백하게 활용하는 이해균의 모노톤 작품은 한국적 풍경과 그림이 수렴하는 지점을 향한다. 작품 속 나무도 산과 마찬가지로 운동하는 형세가 고정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춤을 추듯이 얽혀있는 줄기와 가지들은 그 내부의 더 작은 관들의 묶음을 통해서 대지에서 뽑아 올린 양분과 태양으로부터 포획한 원소들을 교환한다. 대지의 일부로 하늘을 향해 솟은 산, 그리고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태양을 향해 가지를 활짝 뻗는 나무는 외관은 달라도, 동형적 구조를 이룬다. 산을 이루고 있는 바위와 다를 바 없이 두툼하게 표현된 나무줄기들은 살아있는 혈맥을 둘러싸며, 에너지의 움직임을 물질화한다. 이해균의 산과 나무는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을 직관적인 형태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실재를 지향한다.  


이해균의 [신 산수도-한남정맥 광교산]은 지도와 풍경을 중첩시키곤 했던 전통 시대의 지형학을 현대적 어법으로 표현한다. 털 같은 세밀한 붓터치가 가득한 화면은 일견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작가가 살고있는 수원지역의 지형도를 풍경화한 것이다. 작가는 광교산 상징 모티브로 수원의 허파인 광교저수지를 들고 혈맥과도 같은 고가 고속도로의 형태와 선을 반영했다. 이해균은 다른 작품에서도 대우주와 소우주는 연결이라는 유비(analogy)적 사고를 표현한 바 있다. 유비적 사고에 충실하다면, 함부로 자연 파괴가 일어날 수 없다. 인간과 자연이 주체와 대상으로 이항대립적으로 나뉠 때 가장 파괴적이다. 진보 또는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생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근대가 그러했다. 하지만 유비적 사고에서 자연은 단순히 도구적 대상을 넘어 깊은 감정이입의 대상이 된다. 작품 [신산수도]는 마치 지도처럼 기호를 통해 전달하는 소통방식을 보여준다. 













조르주 장은 [기호의 언어]에서 초창기 지도를 만들 때부터 전통적인 지도 제작술에서는 실체를 모방한 기호를 선호했다고 지적한다. 이전 시대에 지도 제도사는 동시에 화가였던 것이다. 그 점은 동서양을 막론한다. 조르주 장에 의하면 지도의 기호는 실제 지형을 연상시켜야만 한다. 지도 속에 표현된 것은 실물이 축소된 모습으로 우리의 눈과 손가락 앞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기호이다. 지도는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기호를 사용하여 세상을 보여주는 표현 수단이다. 이해균의 ‘신 산수도’는 지도같은 풍경을 통해 세상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하지만 지도를 포함한 기호는 점차 추상화 된다. 만물이 코드화되어가는 지배적 추세에 거슬러 이해균이 실제의 지시대상인 대지의 이미지를 지형도 이미지에 끌어들이는 것은 지시대상과 기호가 연결되어 있었던 시대로의 소급이다. 그러한 선택을 하는 이유는 화가가 다루는 기호가 단지 기호를 넘어서 대지와도 같은 실체성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때 재현과 추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백두대간을 그린 이해균의 작품은 산을 소재로 하지만 마치 파도치는 바다처럼도 보인다. 그것은 오래된 자연에 각인된 삼세한 주름이나 푸르스름한 색상 때문만은 아니라, 산이 만들어질 때의 기세를 그대로 보존한 산맥의 운동감 때문이다. 작가는 산의 외양을 그림과 동시에 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동시에 표현한 셈이다. 여기에서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지 미학적 방법론인 재현과 생성이 하나가 된다. 미술사에서 리얼리즘 화가라고 자리매김 된 구스타프 꾸르베도 후기에 가서 그린 바다 풍경을 보면, 붓질을 살리면서도 바다의 질감을 잘 표현했다. 즉 그는 사실주의 뿐 아니라 모더니즘의 시조이기도 했던것이다. 재현은 외부로부터 접근하는 것이지만, 생성은 내부로부터의 발생에 주목한다. 생성에 방점을 찍다 보면 결국 추상화가 된다. 그러나 추상은 지시 대상과 점차 단절되면서 그 힘을 잃고, 때로 장식으로 전락하고 만다. 














하나의 실재가 아닌 다양한 현실이 경쟁하는 스펙타클의 시대에 회화를 여전히 고수하는 이의 자의식은 회화가 여전히 실재를 담보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부터 비롯된다. 이해균의 작품에서도 보이는 대지와 바다와의 표면적, 그리고 구조적 유사성은 현대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깡이 그것들이 실재계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할 때 확인된다. 이해균의 [유명산에서 바라본 명지산, 화악산]은 다소간 높은 위치에서 포착된 산의 풍경으로, 작가는 산세를 자세하게 묘사함과 동시에 산 자체가 가지는 숭고한 분위기 또한 놓치지 않는다. 작품 제목에 산 이름 세 개가 들어가 있는 만큼 화면은 기념비적이다. 2미터가 넘는 화폭은 관객은 풍경 안에 들어가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해균의 산풍경은 기념비적 장중함을 가지면서도 유동성 또한 있다. 산들 또한 태초에는 에너지의 힘을 받은 물질이었다. 강한 힘이 대지를 주름잡았고 그것의 결과가 현재의 모습이다. 


이해균의 산풍경은 그러한 주름들을 세세하게 표현하면서 강조한다. 질 들뢰즈의 책 [주름]이라는 철학적 맥락에서 보자면, 자연은 주름이 펼쳐지고 접혀지는 과정 속에 있다. 이해균은 주름 잡힌 대지인 산 풍경을 통해 ‘주름의 철학’을 예시한다. 무수한 주름으로 이루어진 산들에는 수많은 겹과 결이 있으며, 이는 자연의 실재성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라깡은 상상 및 상징과 구별되는 실재계를 이론화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실재는 비유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데, 대지나 바다가 그 예가 된다. 이해균의 산 풍경에서 파도치는 바다의 풍경도 중첩되는 것은 푸르른 기운 때문만은 아니다. 또한 그의 산은 매우 촉각적이다. 현대미술의 출발의 알렸던 세잔의 [생 빅트와르 산] 시리즈 또한 태피스트리처럼 촉각적이다. 현대 회화는 무엇인가를 보는 창임과 동시에 그자체로 존재하는 무엇이다. 이해균의 작품은 세잔처럼 자연과 회화의 언어를 종합하고자 한다.


출전; 평창문화도시재단(진부문화예술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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