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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혜 / 지속가능한 삶과 예술의 수렴

이선영

지속가능한 삶과 예술의 수렴 

  

이선영(미술평론가)



정승혜의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확 풍겨오는 것은 묵은 식물의 냄새다. 낙엽부터 사탕수수 껍데기까지, 야채와 과일의 부산물까지 작품을 위해 수집해 놓은 식물의 종류가 많아서 특정할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시골 냄새라고 해두자. 냉장고가 없던 시대, 긴 겨울 동안 비타민 등을 섭취하기 위해 다양한 야채를 말리는 전통이 있었다. 대부분 향수의 재료가 식물일 만큼 식물 냄새는 좋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 이동할 수 있는 동물을 비롯한 환경을 활용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다. 몇 년째 마스크 생활을 하다 보니 후각 또한 억압되는 감각이었는데, 정승혜의 작품은 시각에 비해 하등감각으로 치부되어온 후각적 감각 또한 파고든다. 최종 작품에서는 식물의 색처럼 향도 빠지긴 하지만, 자연적 재료가 주는 에너지는 보존되어 있다. 프루스트로 인해 유명해졌지만, 냄새와 기억의 미학적 관계는 잘 알려져 있다. 후각은 타임머신처럼 시간을 넘나들게 한다. 




@veggie_block_project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실행하고 있는 정승혜의 작품에서 시간성은 그자체가 중요한 메시지다. 특정 시공간의 증거물이기도 한 작품들에는 서사가 내재한다. 가령 재개발지에서 베어질 위기에 놓인 감나무로부터 나온 산물들로 만든 식물 벽돌에는 여름에 먼저 떨어진 작은 열매부터 이후의 과정까지 오롯이 담겨있다. 마치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나 호박에 갇힌 벌레처럼 일정 기간 변화된 환경을 품고 있듯이 말이다. 식물 벽돌 하나하나마다 스며있는 서사는 아카이브 형식으로 갈무리된다. [Veggie Block Project]라고 붙여진 최근 작업의 소재들은 단순히 특이한 재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작가의 비전과 수행적 실천을 담은 대안적 소재다. 기후 위기의 시대 자신의 작업이 위기를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게 하자는 방향성을 가진다. 화구와 물감 대신에 작업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식물성 재료들은 농사를 배우고 채식을 실천하는 삶과 관련된다. 


수집한 식물성 재료를 잘 말려서 벽돌을 만드는 과정에 틀을 만들어주는 두부곽은 동물의 살 대신에 작가에게 단백질을 공급해준 ‘식물성 고기’를 담았던 용기들이다. 어릴 때부터 동물의 고통에 대한 민감도가 강했던 작가는 환경적으로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공장식 축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다. 공장식 축산은 동물만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난 멜링거는 [고기]에서 가난한 국가에선 부자 나라에 지속적으로 육류를 공급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소를 사육하는데 필요한 목장의 확대로 인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기게 만들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진다고 지적한다. 모든 다른 소비재처럼 고기도 가능한 한 저 생산 비용의 시장 법칙에 따른 중요한 생산품이 되었다고 보는 저자는 소비재로서의 고기를 생산 유통하는 다국적 육류산업의 실상을 묘사한다. 또한 난 멜링거는 고기생산이 농업의 에너지 소비와 비교하여 3배 이상이나 되는 사회적 에너지 과잉임을 고발한다.

 

에너지 경제의 측면에서도 높은 고기 소비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난 멜링거는 고기소비에서 극단적인 인류 중심주의를 본다. 난 멜링거는 고대의 정치학을 인용한다. 그에 의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론]에서 ‘식물은 생물을 위해 존재하며, 다른 생물은 인간을 위해 노동을 제공하거나 식량으로서, 자연은 이 모두를 인간을 위해 생산했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고는 근대에도 이어진다. 아르멜 르 브라 쇼파르는 [철학자들의 동물원]에서 ‘동물들은 그들 자신의 의식이 없고 따라서 궁극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 궁극 목적은 인간이다’라고 말한 칸트의 예를 든다. 최근 작품의 기본 단위를 이루는 식물 벽돌은 작가 세계관의 근본적인 전환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최소한의 에너지로 환경과 어우러지는 식물적 생존의 방식에 대한 참조는 수행에 가까운 작업을 낳았다. 작업의 모든 재료들은 매일의 식사, 산책과 채집 등 작가의 생활과 관련된 것이다 보니 ‘생산성’은 떨어진다. 




@veggie_block_project_.jpg



시장에서 구해오거나 작가가 수집한 식물성 재료를 말리고 눌러 압축하는 모든 과정에 작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벽돌은 집을 만드는 재료인데 1주일에 1개가 나오는 정도의 속도다. 재료에 따라서 실루엣도 다양한 벽돌들은 별다른 지지대 없이도 자기들끼리 지탱되지만, 워낙 생산량이 제한된 식물 벽돌은 다른 구조들과 함께 배치되곤 한다. 타인의 노동력과 자본, 기술을 활용하여 스펙터클하게 공간을 채우는 것이 현대미술가의 능력처럼 여겨진 시대, 정승혜의 작업은 느릿하다. 하지만 꾸준하다.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식물성 벽돌은 만드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다시 대지로 돌아갈 것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변질, 또는 변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벽돌 하나마다 시공간이 담겨있고, 벽돌들 사이에도 시공간의 차이가 선명하다. 한날한시에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과의 현격한 차이다. 춘천문화예술회관 실내에서의 전시와 별도로 근처의 천(川)에 설치되는 작품은 땅과 밀착하고자 했던 그동안의 지향과는 사뭇 다른 선택이다. 


실재의 근원인 땅과는 코드화된 현실, 즉 각종 ‘OO현실’의 범람과 함께 희미해졌지만, 정승혜는 반(半)농 반(半)예술의 삶을 꿈꾸며 대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했다. 신토불이라는 말도 있듯이 ‘어떤 영양이 필요한가는 사람들이 살고있는 환경에 따라 진화해왔기 때문에 신체의 요구는 그 땅이 제공할 수 있는 것과 일치하게 된다’(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땅과 밀착해야 하는 이유다. 상품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 자급자족적 삶에 대한 희망을 키워왔다. 물론 이때의 농사는 땅을 착취하지 않는 대안의 농법이며, 이를 위해서 소규모 공동체 문화에도 참여해 왔다. 생태학적 사유는 현대문화 전반에 걸쳐 있는 근본적인 모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가진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오래된 미래]에서 경제는 갈수록 커지는 전문화와 중앙 집중화 그리고 자본 및 에너지 집약적 생활양식으로 세계를 빠르게 끌고 가고 있는데, 이는 생태적 환경 뿐 아니라 지역에 기초를 둔 자급경제를 파괴한다고 지적한다.  


올해 1월 통영에서의 작업은 해초도 활용했다. 바닷가 마을이기에 가능한 재료들이 선택되고 활용되었다. 낙엽과 굴껍질 등 온갖 잔여물이 섞어 켜켜이 쌓은 작업은 마치 퇴비같은 같은 모습이다. 썩어가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작가는 순환이야말로 영원이라고 생각한다. 근대 역사주의의 모델인 직선적 사고에 대한 대안적 사유로 순환전 세계관이 복귀하고 있다. 순환적 세계관에 의하면 변화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죽음이 끝도 아니다. 실재는 영원히 회귀한다. 하지만 올여름 한반도에 많은 피해를 주었던 폭우는 기후변화가 야기할 재난에서 땅의 상대성을 생각하게 했다. 기후 위기에 의해 해수면이 높아지면 ‘노아의 방주’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수면에 떠 있는 건축 또는 도시에 대한 실험이 이미 이루어지는 현실 또한 참조했다. 해상 위에 건축되는 도시에 대한 비전은 몰디브처럼 수몰 위기의 국가나 사막 등 자연환경이 핍박한 지역에서 왕성하게 실험되고 있다. 


최근 계획에서 가장 큰 규모는 사우디 네옴(NEOM)에 포함된 해상 부유 도시 옥사곤으로 알려져 있다. 수상 건축에 대한 정승혜만의 모델은 패트병을 모아서 부표처럼 만들어 전시장 근처의 약사천에 띄우는 계획이다. 식물 벽돌처럼 완성된 형태뿐 아니라 그것의 역사가 오롯이 기록으로도 표현되는 과정형 작품이다. 작은 천에 띄우는 작업이라서 본격적이기보다는 실험적인 모델이다. 전시장 바깥으로 나가는 선택은 작가가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조금이나마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자연적 재료를 활용한 야외 설치 작업은 이전에도 해왔다. 결국 작가가 자신의 삶과 예술의 뿌리를 내리고 싶어하는 자연이라는 것은 바깥에 있기에 그러한 번거롭고 수고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 정승혜의 작품 목록에는 바깥에 자연스럽게 융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축적 구조의 작품도 많이 발견된다. 작가는 환경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유를 삶과 작업의 지속가능성과 수렴시키고자 한다.  


출전; 춘천문화재단(춘천예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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