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김수자 / 사잇길로 넘나든 경계

이선영

사잇길로 넘나든 경계

 

이선영(미술평론가)

 


김수자의 작업 이력을 대략만 훑어봐도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해왔나 싶다. 작가가 속한 세대로 볼 때, 국내파에게 그리 넓지 못했던 세계 무대에서 일찍이 활동을 개시했고, 그 덕에 국내에서도 평가받은 경우다. 하지만 무작정 열심히 한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명망있는 큰 전시라 해도 자신의 철학과 미학, 더 나아가 윤리의식에 맞지 않으면 거부 의사를 밝혀왔다. 가령 ‘한국 미술의 양극단인 현대미술 그룹과 민중미술 그룹을 조사하고 병치시켰던’ 비엔나 쿤스트할레 한국 전시회에 대한 참가 거부가 그것이다. 그것은 작가 스스로 특정 화파와 무관하게 독립된 길을 걸어왔던 아웃사이더 입장을 표명한 경우다. 국내외의 수많은 전시 및 프로젝트 이력은 작업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꾸준히 도전해 왔던 적극적 선택의 결과라는 점이다. 정주를 위한 이동이 아닌, 오로지 작업을 위한 이동의 감행이다. 1957년생의 작가는 전후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인 1945년에서 1965년의 중간에 속한다. 




사진출전; 퍼블릭아트 2022년 10월호



그 나이대의 인구수가 많아서 전쟁의 폐허에서 진행된 압축적 근대화 와중에 엄청나게 경쟁적인 한국 사회를 통과해야 했다. 구태의연하게 세대론으로 한 작가에 대한 짧은 평문을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김수자의 여정에 대한 의문과 관련된다. 진화론적으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익숙한 장소를 떠난다는 것은 생존의 압박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인류의 먼 시원의 어떤 존재가 물에서 육지로 올라왔을 때, 그리고 나무에서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부터 있었던 경향이다. 김수자는 보따리라는 한국적 소재를 세계화시킨 작가로 흔히 말해지지만, 국가나 민족, 학파나 화파 등등은 작가가 회피하고 싶은 전형적인 유형이다. 상황에 대한 판단과 주관은 뚜렸했지만, 그리 투쟁적이지 못한 작가의 성향이 한국에서 세계화가 슬슬 시작되던 90년대 초에 뉴욕으로 ‘문화적 망명’을 떠나게 했다. 김수자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진 보따리는 미학이기보다는 우선 삶의 조건이었다. 자전적으로는 직업 군인인 아버지를 둔 탓에 어릴 때부터 보따리 쌀 일이 많았다. 


한복 천이 소멸하다시피 한 전통의 단절 속에 보따리가 희귀해진 현재에도 ‘보따리 싸라!’라는 말이 청천벽력같은 발언으로 다가올 만큼 한국인의 무의식에 자리잡은 것이 보따리다. 보따리는 기억과 기대, 회환과 설레임 사이에 있다. 트럭에 실린 보따리, 그 위에 앉아있던 작가의 뒷모습이 인상적인 작품 [떠도는 도시들-보따리 트럭 2727km](1997)처럼, 출발과 목적지가 아닌 과정 그자체가 중요하다. 김수자의 보따리는 세계화, 유목주의, 페미니즘 등등을 따라오게 했다. 하지만 시대와는 우연히 만나는 것이지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oo이즘’은 늘 작가를 불편하게 했다. 김수자는 1980년에 학부를 졸업했는데, 당시의 미술계는 단색화로 대표되던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이라는 양대 산맥이 자리잡고 있었다. 문화적 좌우익에 공히 적용되던 근대성은 문화적 성과이면서도 억압적으로 다가왔다. 굳이 그 ‘양대 산맥’을 좌표로 설정하자면, 김수자의 작품은 단색이 아닌 다색이었고, 민중이 아닌 민주였다. 


또는 고향 대구에서의 큰 전시 때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차라리 자신의 작업은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2011년, 대구미술관) 보따리나 퍼포먼스와 결합 되는 천의 유치찬란한 색상은 한국뿐 아니라, 김수자가 연구하고 기록한 수많은 민속 전통에서의 아름다움과 같은 반열에 있다. 가령 2010년부터 진행 중인 [실의 궤적]은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원주민들의 직물 관련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탐구다. 작품 속에 담긴 그토록 아름답고 기이한 문화적 텍스트를 짜던 이들은 이름도 남아있지 않은 평범한 여성들이었다. 2021년에 발표된 최신 버전의 ‘보따리’는 컨테이너에 오방색을 칠한 현장 설치작품으로, 보따리의 의미를 산업화된 모듈로 확장하고 있다. 2021년 리움미술관을 가득 채운 무지개빛 작품은 소리와 호흡을 매개하는 공기처럼 편재하는 빛의 현존을 드러낸다. 이 빛은 ‘진리의 은유’(한스 블루멘베르크)로서의 형이상학적 차원을 가지기보다는 신비주의 전통에 속하는 듯이 보인다. 여성은 교리와 경전보다는 사랑과 영혼을 중시해왔다. 


또한 김수자에게 ‘유목’은 느슨한 자유가 아니라, 경계의 의식이 고조되는 치열한 실천이다. 낯선 장소에서 붐비는 군중 사이에서 홀로 사람들을 ‘만나는’ [바늘 여인] 시리즈(1999-)는 세계의 주요 분쟁 지역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된 것이 많다. 분단의 여파와 무관하지 않은 한국 문화에서 지금도 고질병인 이분법은 학업을 마치고 막 작업을 시작하려던 작가에게 선명하게 다가왔다. 단색화파나 민중미술로 나뉜 화단은 물론, 이후 하위문화와 결합된 키치 스타일의 세대와도 자신을 구별지었다. 대립보다는 차이였다. 물론 위계적인 인간 사회는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악습에 쩔어 있지만 말이다. 김수자에게 중요한 것은 차이를 위한 차이가 아니라, 유의미한 종합을 위한 전제로서의 차이다. 가령 수직/수평은 좌/우의 관계처럼 극적인 차이를 대변한다. 김수자가 80년대 초반에 쓴 논문은 수직 수평과 관련된 십자형 코드에 대한 것이다. 


작가는 2017년 후 한루와의 대담에서 ‘당시 자연, 캔버스, 온갖 십자형의 시각적 요소에 자리한 수직과 수평의 구조에 대해 연구했고, 이를 토대로 대학원에서 고미술에서부터 동시대 미술에 나타난 십자가 형상에 대한 졸업 논문을 썼다’고 회고한다. 수직 수평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실크스크린으로 제작된 작품 [몸의 연구](1981)에서 잘 드러나는데, 몬드라인의 구조를 연상시키는 수직 수평의 구조를 매개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관념이 아닌 몸이라는 점이 기성의 기하학적 추상과 다르다. 바늘 여인에서 수많은 군중 틈 사이로 요지부동한 작가의 자세 또한 수직적인 부분이 없지 않은지, 이후에는 와불처럼 누운 자세도 등장한다. 당시 여성 작가라는 주변적인 위치는 이항대립적 사고의 배타성과 폭력성을 날카롭게 의식하게 했다. 1980년대, 그리고 이후로도 한참을 더 그 양대 산맥은 동세대 남성 작가들의 차지였다. 끼고 싶지도 않고 낄 수도 없었던 그 시대 또한 다 나간 시점에서, 홀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여정을 소급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간 길이 진짜 예술가로 남게 한 셈이다. 


하지만 김수자에게는 ‘예술’ 또한 지양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대한 해법은 다소간 역설적이다. 김수자는 2013년 프랭크 고테로와의 인터뷰에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나의 연습은 점점 비물질화되어 왔다. 예술가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내 몸을 포함하여 물질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자급자족하고 욕망에서 해방되는 것은 제 예술에서 가장 큰 성취다. 예술적 에너지를 한계까지 소멸시켜 예술을 하거나 예술을 하는 것에서 해방되고 싶다. 이것은 단순히 예술을 하는 행위를 멈추는 것으로는 달성될 수 없으며, 역설적으로 그것은 가장 심오하고 신랄한 방식으로 충만하게 살고, 예술을 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가령 작품 [몸의 기하학](2006~2015)은 작가가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요가 매트를 사용한 작품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몸의 흔적을 그대로 담은 ‘회화’로 제시되었다. 김수자는 자신을 천이 아닌 바늘 자리에 위치시킨다. 바늘의 위치에 자신을 놓은 바늘 되기이다. 바느질을 마친 후에 바늘은 결과물에서 사라진다. 바늘은 마치 샤먼처럼 매개자일 따름이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 때 느낀 바지만, 김수자의 작품은 초월적이고 관조적이다. 거의 고정되다시피 한 금욕적 차림새 또한 그런 인상을 더 한다. 하지만 김수자의 작업이 형이상학적인 관념주의와 거리를 두는 지점은 바느질 같은 사소한 여성의 일상으로부터의 깨달음을 현대 미술의 한 문법이 된 수행성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충만하게 채워질 빈 부분이 최대한 고려된다. 전시의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전시부제와 같은 [마음의 기하학]은 관객이 흙을 주물러서 구를 만드는 체험형 작품이 제시됐다. 19m 길이의 타원형 나무 탁자는 규모는 크지만, 방식은 소박하다. 우연찮게 그 작업에 참여한 이들은 일시적인 공동체만을 이룰 따름이다. [마음의 기하학]은 명절 때 모여서 새알심을 빚는 듯한 느낌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이며, 반대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뫼비우스 띠같은 구조다. 우유니 소금사막을 떠올리는, 건축적 규모를 가지는 거울반사 형 시공간의 연출 또한 유일한 세계를 반영하거나 변형하는 차원이 아닌, 평행하게 존재하는 우주에 대한 신비로운 상상을 담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면서, 그리고 낯선 도시들에서 자신을 바늘 삼아 서 있던 경험을 말하는 대목에서, 작가는 사물 또는 사람들과 하나가 된 준 종교적인 체험을 말한다. 여러 가지로 실망을 안겨 주었던 한국에도 관심을 가질만한 샤머니즘이 있었다. 마음과 기하학은 연결될 것 같지 않지만, 작가는 그것을 천과 바늘처럼 잇는다. 천과 바늘의 만남이 무엇인가를 만든다. 부드러운 것과 단단한 것의 만남이다. 반대되는 것의 조화다. 여기에 김수자 작품의 기본적이면서도 궁극적인 메시지가 있다. 김수자가 선택한 소재인 보따리 자체가 융통성 있는 기하학에 바탕 한다. 보따리는 가방처럼 빈 상자가 아니라, 접고 펼칠 수 있는 적극적인 공간-시간을 전제하는 현대적 기하학이다. 보따리는 진화를 거듭하여 작품 [연역적 오브제](2016)처럼 우주의 알처럼 보이는 괴물체가 되기도 한다. 김수자의 보따리는 무엇이든 쌀 수 있고 그래서 무엇이라도 다시 튀어나올 수 있다. (본문에 인용된 모든 인터뷰는 김수자 홈페이지에서 참고하였다) 


출전; 퍼블릭 아트 2022년 10월호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