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구름 산책자 전 / 성큼 다가온 맞춤형 현실

이선영

성큼 다가온 맞춤형 현실

구름산책자 전 (2022.9.2.—2023.1.8., 리움미술관)

 

이선영(미술평론가)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큼직한 헤드폰을 끼고 가는 사람과 초행길이라서 작은 이정표로 놓치지 않고 살펴보면서 걸어가는 또 다른 사람은 같은 시간과 공간을 체험하고 있을까. 기술의 발달은 각자 당면한 현실이 있다는 상식적인 차원을 넘어서 맞춤형 현실을 성큼 다가오게 한다. 아시아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구름산책자] 전에서 아시아라는 지역성 또한 맞춤형 현실의 산물이다. 모토구오의 작품 [당신은 거주하는가 떠나는가?]는 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방안의 모든 물건들을 잉크젯 프린트로 출력해서 채워놓았다. 사는 동안에도 죽은 이후에도 자기만의 환경은 유지될 것이다. 전염병이나 전쟁, 기후변화 같은 재앙만이 서로에게 공통의 존재감을 확인시킬 따름이다. 소위 말하는 ‘객관적’ 현실은 갑작스러운 각성을 야기하는 불쾌함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망각은 쾌락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로렌스 렉의 [네펜테 존(Leeum)]은 기억하는 고통을 경감시키는 망각의 섬을 이상향으로 설정한다. 작가 24명/팀과 작품 45점이 출품된 [구름 산책자] 전은 이미 다가와 있는 각자의 수많은 현실을 일깨운다. 




켄고 쿠마 어소시에이츠, SU;M, 2022(모든 사진의 출전은 리움미술관에 있음)



(구조물)문경원 feat 김지우, 프라미스파크_용상 플레이스케이프, 2022_ (벽면) 문경원 feat 김지우, 7 플레이스케이프 아틀라스 트라우마 유토피아 패라독스 패턴 파티클 코드, 2022



이때 미디어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미디어는 당면한 현재에서 가능한 미래의 비전을 담지해 온 만큼, 작품들이 예시하는 현실은 미래를 포함한다. 미래에 기억하는 과거로서의 현재는 다층적인 텍스트로 짜여있다. 문경원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방직기처럼 촘촘하게 도시의 구조를 짜나감에 있어 용산이라는 역사적 장소성을 텍스트로 짜 넣는다. 상상이라는 중요한 자원을 몸통으로 하는 예술은 미래를 앞당겨 보여준다. 예술은 우리가 당면해 있는 현실을 상대화시킨다는 점에서 탈출구가 되지만, ‘뜬구름 잡기’처럼 허무하고 위험하기도 하다. 앞서 예를 든 두 ‘산책자’는 각자의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도 그들의 눈과 귀를 뒤덮는 미디어는 각자의 취향에 따른 세계를 최대한 재현하려 할 것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구름처럼 포근한 환경 속에 푹 잠길 것이다. 전시는 새로운 소재를 다루는 ‘사려깊은 물질’, 자유로운 서사를 다루는 ‘이상한 서프 모프 워프’, 그리고 인지와 감각을 다루는 ‘공감각적 몰입’ 등 세 가지 주제로 나뉘지만, 세 항목은 엄격히 구별되지 않고 상호교차한다.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구름 산책자’라는 시적인 제목을 가진 전시는 미술은 수많은 협업이 이루어지는 장이다. 구름같이 감싸 안는 총체적 환경의 연출을 위해 미술을 넘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전시에서 그림이나 조각같은 대표적 미술 양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평면과 입체라는 방식으로 변주되는 그림과 조각은 많은 변형을 거쳤다. 평면과 입체는 야생성이 최대한 강조된다. 관 샤오의 작품은 중국 전통의 도자기나 나무뿌리, 산업 생산물인 바퀴살이나 셀카봉 등의 오브제 등을 조합하여 서로 섞이기 힘든 것을 섞을 수 있는 현대의 기념비를 만든다. 동굴의 표면처럼 기괴한 기지국을 탑처럼 표현한 현남의 작품은 고도로 발달한 기계문명이 오히려 자연에 가까워진다. 




에스티피엠제이 건축사사무소, 고요의 틈, 2022



stpmj 건축사무소, 고요의 틈, 2022_김초엽, 사모나 연작, 2022



백현진의 작품 [벽을 위한 그림]을 이루는 요소는 먹과 유화물감, 흑연 같은 미술 재료 뿐 아니라, 에나멜 스프레이, 김치국물, 타코 소스, 나뭇잎, 인공눈물, 손수건 등 상상을 초월하는 조합이 특징이다. 임의적으로도 보이는 이러한 재료들은 AI 알고리즘에 의해 교묘하게 조작되는 디지털문화에 대해 교란적 요소로 대응한다. 삼손 영의 작품 [가능한 음악 #2]은 기이한 사운드가 흘러나오는 점에서 백현진의 작품과 유사하지만, 첨단기술에 대해 훨씬 긍정적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개발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에 의해 물리적 법칙을 거스르는 사운드가 16개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인공지능이 가세하여 만들어진 음악은 미지의 세계를 들려준다. 이 전시에서 미술은 여러 궤도의 공전을 이끄는 보이지 않는 중심으로 작동할 따름이다. 


모더니즘의 순수한 미학은 짧은 통일감을 형성한 후 핵분열을 거듭해왔다. 학제 간 협업이 두드러지는 이 전시는 문화적 핵분열의 장이다. 아시아에 관련된 리움 미술관의 첫 전시는 ‘기존 지정학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오리엔탈리즘’으로 포장되어 소비되곤 하던 아시아 또한 그 전형성을 해체한다. 물론 아시아적 풍물이라 할 만한 것들은 풍부하게 제시된다. 켄고 쿠마의 작품에서 일본의 전통적 종이접기 방식인 오리가미가 공해를 차단하는 미래 소재와 연결되었고, 모토구오의 작품에서는 도교식 장례 풍습과 사이버 현실이 융합되었다, 루 양의 작품에서 불교의 세계관이나 수천년 전통의 발리 춤은 가상현실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전시장의 벽과 바닥에서 자라는 듯한 돌기들이 있는 아지아오의 작품은 일본 전통 정원이 모델이며 선종의 정신을 구현했다. 




카타기리 카즈야, 종이사구, 2022_ 히말리 싱 소인, 스테틱 레인지, 2020



제국주의가 득세했던 근대뿐 아니라, 현대에도 변형된 오리엔탈리즘은 대중문화 등에서 자주 발견되곤 한다. 아시아의 빈민가를 기괴한 무대로. 또는 서구 대도시 빌딩의 전광판을 가득 메우는 아시아 관련 광고 등이 디스토피아 분위기 연출에 활용하는 예가 대표적이다. 아시아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이 전시는 미디어가 동서를 막론하고 동시적으로 활용되는 도구라는 것을 알려주며, 그만큼 아시아에 대한 타자적 시선은 상대화된다. 편재하는 미디어는 예술에 의해 발굴될만한 현실이 무궁무진한 아시아에서 더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 먼저라 할 수 없는 세계화와 정보혁명은 동시대성을 촉진시켰다. 물론 각 지역의 기후가 다르듯, 미디어를 가지고 놀고 작업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정신도 물질도 아닌 정보는 공기처럼 구름처럼 편재한다.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기술과 예술

건축, 미디어, 자연, 전통 등, 공기처럼 편재하는 문화는 살아있는 기준이 된다. 건축적 스케일의 작품 속에 또 다른 작품이 있는 설치방식은 공간의 경제성 이상의 효과가 있다. 가령 돈 탄 하의 작품 [물 위의 대나무집]은 기후변화에 의해 해수면이 상승했을 때 가능한 배 형태의 집으로 고안된 것으로, 대나무와 풀, 플라스틱병 같이 구하기 쉽고 가볍고 다루기 쉬운 지속가능한 소재로 이루어진 기능적 구조물이다. 그 안에서 상영되는 작품 루 양의 작품은 작가 자신을 아바타로 만든 반쯤은 가상적인 인물이 등장하며, 아시아 전통이 모션 캡쳐 기술과 연동되어 신적 경지의 춤동작으로 표현된다. 기술과 전통이 몸을 매개로 융화되고 있다. 영상과 그것을 품고 있는 집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킨다. 이 둘의 조합은 오래된 미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돈탄하, 물 위의 대나무집, 2022_루양, 도쿠-헬로우 월드, 2021



돈탄하, 물 위의 대나무집 2022_루양, 도쿠-헬로우 월드, 2021



에스티피엠제이 건축사사무소의 [고요의 틈]은 백색소음을 깔고 살아가는 현대적 환경에서 소음을 차단하는 펠트로 만든 건축적 스케일을 가진다. 196 개의 블록들을 쌓아 만든 육면체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고요해진다. 침묵의 공간 한 켠에 소설이 놓여있다. 펠트 천 구조의 작품 속 김초엽의 책은 공적인 영역에서 갑자기 사적인 영역으로 순간이동 하는 것 같다. 인간은 지구 생태계의 가장 큰 적으로 지목된 마당에, 김초엽의 SF 단편 소설 [사모나 연작]은 인간 외에 모든 것이 살아있다는 행성을 배경으로 한 포스트 휴먼적 상상력에 바탕 한다. 카타기리가 종이를 말아 만든 사구 형태의 공간은 차분한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며, 거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히말리 싱 소인의 영상이다. 


히말리 싱 소인의 [스테틱 레인지]는 냉전 시대 대립으로 히말라야 산이 핵 방사능에 오염되었고 그와 관련된 불길한 장치가 아직도 작동하고 있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아름답지만 불길한 징표인 영상의 빛이 카타기리의 종이 구조물에 되비치면서 치유의 메시지로 변화된다. 트로마라마의 영상작품 [솔라리스]에서 네온 빛 그래픽 풍경 또한 인도네시아의 킬리만탄 지형을 배경으로 한 생태계를 반영한다. 자연과 이질적인 색상은 경고와 경이 그 모두를 표현하는 것이다. A.A. 무라카미의 [영원의 집 문턱에서]는 고리 모양의 안개를 뿜어내는 장치다, 향을 가진 도넛 모양의 안개는 심해에서 탄생한 생명의 기원까지 소급된다. 구름처럼 감싸는 공감각적인 체험을 야기한다. 




전경사진_구름산책자CLOUD WALKERS_2022_리움미술관_사진 김상태



LawrenceLek, NepentheZone (Leeum), 2022



[구름산책자]에서 구름은 기상현상 뿐 아니라 무선통신의 시대에 언제 어디서든 접속가능한 하이퍼 링크를 상징한다. 그만큼 이 전시는 첨단기술의 장이기도 하다. 쿠마 켄고 작품 [SU:M]은 오염을 흡수하는 신소재 천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전시장 입구 천정에 설치되어 있다. 일정한 부피 속에 수많은 접면을 가진 구조로, 구름같은 느낌으로 떠 있다. 입구를 통과한 관객은 앞으로 많은 작품에서 수많은 주름의 안팎을 거닐게 될 것이다. 물론 첨단이란 오래된 소재를 대안적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포함된다. 카타기리 카즈야의 [종이 사구]는 종이를 말아 만든 원기둥을 모듈로 삼아 공간을 구획한다. 종이라는 오래된 재료는 쉽게 만들고 해체할 수 있는 미래적 재료로 재탄생한다. 


기술 유토피아 사회의 어두운 면 또한 조명된다. 홍민키의 작품은 이제 대세가 된 정보사회에 대한 접근성에 있어 사회적 차별이 엄존한다는 사실을 시각장애인 유투버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준다. 연진영의 [패딩 기둥]은 재고로 폐기될 패딩 300벌로 관객이 푹신하게 쉴 수 있는 의자와 기둥으로 변신했다. 무려 6미터 높이의 기둥을 촘촘히 감싸는 옷은 전시 후 기부될 예정이다. 자료에 의하면 ‘연간 6천만톤 이상의 의류와 신발이 생산되고 그 중 70% 이상이 폐기처리되는’ 현실에 대한 대안이다. 여러 벌의 옷이 아니더라도 개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낭비와 오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은 공해도 낳지만 공해를 막을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나카자토 유이마의 [바이오스모킹]은 개인에게 최적화된 유일한 패션이라는 이상을 입체 모델링 기술로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 과정을 펼쳐 보인다. 

 

출전; 아트인컬처 2022년 10월호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