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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아티언스 대전 / 구조에서 사건으로, 또는 재현에서 생성으로

이선영

구조에서 사건으로, 또는 재현에서 생성으로

 

이선영(미술평론가)

 


대덕 연구개발 단지를 끼고 있는 대전은 과학기술 관련 인프라가 있는 도시로, 예술 분야에서도 융복합 실험이 왕성하게 시도되고 있다. ‘아티언스 대전’은 예술(ART)과 과학(SCIENCE)의 합성어로,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두 분야의 만남을 꾸준히 지속해온 프로그램이다. 올해 전시에서는 대전의 기계, 전자통신, 생명공학, 지질자원 분야 등 6개의 정부출연연구기관과의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예술가들의 물음이 각 분야의 과학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예술 쪽에서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심정으로 진지하게 접근했음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같은 출중한 예에서 보여지듯이, 예술과 과학은 본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근대적 분업화로 인해 각각의 자율성을 확보했다. 분업을 통해 생산성을 얻은 가장 큰 분야는 과학기술이며, 새로움과 진보의 주인공으로 각광받아 왔다. 


새로운 모델의 자동차나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의 열기를 생각해 보라. 하지만 예술의 자율성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 현대미술은 대중과 멀어지고 심지어는 작가 자신과도 멀어졌다. ‘작가의 죽음’이라는 현대적 사고를 견인한 구조주의는 인간중심주의와 거리를 둔 과학에 특유한 방법이다. 물론 과학기술도 협소한 의미의 인간중심주의에 도구적으로 활용되면서 많은 위기를 낳긴 했지만, 과학의 이상은 중립적 태도이며, 어디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중립적 태도는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를 낳았고 객관성의 기준이 되었다. 물론 그조차도 상대적임이 인정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구조주의의 혁명을 시작한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에서 탐색한 예술과 과학의 관계는 양자의 융복합 시도에 대한 참조 점을 제공할 것이다. 그에 의하면 예술은 과학적 인식과 신화적 또는 주술적 사고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야생의 사고]에서 구조는 사건과 대별 된다. 레비 스트로스에 의하면 과학자는 구조를 이용해서 사건을 만드는데 비해(세계를 변하게 하는데), 손재주꾼(bricoleur, 예술가)은 일어난 사건을 이용해서 구조를 만든다. 과학에 반해서 의례와 신화는 손재주와 마찬가지로 사건들의 집합들을 분해해 보고 다시 조립도 해보며 또한 그것들을 파괴할 수 없는 부속품으로 사용하여 목적도 되고 또 수단으로도 쓰이는 구조적 배열을 만든다. 레비 스트로스가 과학/예술의 차이점으로 지목하는 부분은 개념/기호이다. 그에 의하면 과학자는 개념을 갖고 작업을 하는데 반해, 손재주꾼은 기호를 사용하여 작업한다. 개념이 현실을 존중하여 현실을 전적으로 반영하려고 하는데 반해서, 기호 쪽은 현실 속에 다소 문화적 요소가 개입되는 것을 허용하고 심지어 그것을 요구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과학의 언어가 투명성을 지향하는 것과 달리, 예술에서 기호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자 그자체로도 존재감을 가질 수 있다. 


2022년에 2년 차로 연구를 진행해온 8명의 작가들은 2022년 11월에 결과물을 전시하였는데 그 누구에게도 이번 전시작품이 그들이 이번 기회에 접했던 지식의 최종판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한 단락의 성취는 대개 다음 질문의 시작이 되기 마련이다. 그들은 이번 기회에 새로 시작했거나 이전부터 추구해 왔던 것을 보충했다. 문규철의 작품 [Spatial Rotate Oscillator]는 한국표준과학연구소과 협업하여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청각과 시각의 공(共) 감각성을 추구하는 사운드 설치 작업은 전자회로가 발생시키는 전자기장의 소리를 감지하여 빛으로 번역하고 그것이 공간을 채우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전민제의 [발자국 footprint]은 한국기계연구소과 협업하여 미세먼지를 측정하여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분필을 장착한 드로잉 머신이 전시장 바닥을 다니면서 긋는 것은 차량의 통행속도에 따라 달라지는 미세먼지의 양이 시각화된 것이다. 


자동차가 미세먼지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렇게 ‘발자국’으로 보여줌으로서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는 보다 강해진다. 안효주의 [95%의 행복]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협업하여 장내 미생물을 소재로 한 작업이다. 작가는 최근 몇 년간 여러 나라의 도시를 전전하며 살면서 급격한 환경 변화에 따른 건강의 문제에 직면했다. 안효주는 그 변화를 자신의 장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분포를 조사해서 표현했다. 속이 편해야 행복하고 장수한다는 오래된 속설은 작품 속 여러 과학적 지표를 통해 낱낱이 드러난다. 장인희의 [거울의 반란–part III]은 한국기계연구소와의 협업으로 롤투롤 유연소자, OLED를 활용한 ‘거울’을 연출했다. 거울은 그 앞의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 같지만, 이질성과 타자를 개입시킨다. 작가는 거울에 잠재된 분열성을 새로운 소재뿐 아니라 프로젝션과 스피커같은 기구의 공간적 배치를 통해 체험하게 한다. 전자거울 또한 투명하지 않으며, 우리의 몸과 상호작용한다. 


윤정원의 [다크 투어-랜더링스튜디오]는 한국생명공학연구소와의 협업으로 미생물을 작업에 끌어들인다. 그는 실험실 역할을 하는 가공 컨테이너 속에서 ‘비인간 동물’에 대한 탐구를 진행해왔다. 살처분되는 돼지 영상과 그것들이 묻힌 구덩이를 형상화한 입체물은 충격적이다. 여러 매체를 통해 드러나는 비인간 동물의 실상은 인간의 또 다른 미래일 수 있음을 말한다. 염인화의 [임포스터 키친 Imposter Kitchen]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의 협업으로 뇌, 신경과학, DNA 등의 지식이 총동원된 총체적 환경을 연출한다. 작가는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인 ‘나이 듦aging’ 현상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이해당사자들을 모았다. 이 현상과 관련된 수많은 담론적 장치들은 건강과 장수가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학의 문제임을 알려준다. 박얼의 [Crystal Fractals]는 한국기계연구소와의 협업으로 기어 톱니바퀴 모델을 작품화한다. 


기어들이 촘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그의 작품은 우주를 시계와 비교했던 고전주의 물리학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의 주제는 고전주의의 매끈한 모델이 아니라, 우툴두툴한 모델, 즉 프랙털이다. 박얼은 구름과도 같은 불규칙한 현상에도 내재하는 자연법칙의 경이로움을 표현한다. 홍기원의 작품 [마음 The mind]은 한국지질자원연구소와의 협업으로 초경공구폐기물 (텅스텐)의 순환을 작업에 활용한다. 마치 군고구마 굽는 통처럼 투박하게 생긴 금속 기구에 붙은 ‘마음’이라는 부드러운 제목은 그가 소재로 한 물질(턴스텐 카바이드)가 매우 단단한 물질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그의 작품은 변화가 단단함이 부드러워지는 순간 일어남을 예시한다. 과학과 예술의 융복합은 특히 예술가의 측에서는 애초의 자신의 영감(사건)의 줄기를 잡고 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낯선 언어의 장벽에서 무한 학습만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 명백할수록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특정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해당 과학기술을 다시 쓰는 것에 머문다면 예술의 비대중성에 과학의 난해함을 추가하는 꼴이 될 것이다. 과학은 비록 난해해도 산업과 결합하여 대중화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길이 있다. 예술은 특정 과학원리의 시각적 도해가 될 필요도 없다. 그것은 재현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현대미술의 여정을 되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세계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정밀한 재현과 그에 따르는 생산력을 낳았다면, 앞서 인용한 구조주의 사상의 기준에 의한다면 예술가의 출발은 사건이다. 이 프로그램의 작가들이 과학자들과 만나서 그토록 열심히 과학적 법칙을 배우려 했던 것은 자신의 영감이나 구상을 과학적 방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적인 분업을 통해 공통언어를 확립하고 치밀하게 구축된 과학의 언어에 접근하려는 노력은 한 줄기 바람 같은 작가의 영감을 현실화해줄 것이었다.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운 쪽은 예술이다. 현대예술 또한 새로움과 진보, 그리고 실험이라는 명분까지 과학과 공유하려 했지만, 분업의 벽은 높았다. 아티언스 대전은 과학기술 인프라가 깔려 있는 도시에서 제도적 차원에서 이 벽을 낮춰주려는 시도로 높이 평가된다. 특히 이런 시도는 한 두 해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장기적인 비전을 가져야 하는데 2011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그 조건도 충족시켜 가고 있다. 하지만 융복합은 대화적 자세가 중요한 것이지 한쪽으로 기울거나 환원된다면 효과가 없다. 가령 과학은 자연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다. 재현은 단순한 동어반복이 아니다. 과학적 재현은 대상에 대한 구조적 이해를 통해 재생산할 수 있다. 제 3자에 의해 정확하게 재현되지 않는 과정은 그 객관성을 인정받기 힘들다. 반면 예술적 실험은 마치 연금술적 과정처럼 비의적이며, 그 유일성을 통해서 더욱 인정받는다.   

  

출전; 2022년 아티언스 비평워크숍 작가와의 대화(대전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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