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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 미술 야시장 / 미술과 여행, 만남을 위한 떠남

이선영

미술과 여행, 만남을 위한 떠남

 

이선영(미술평론가)

 


‘오르막 미술 야시장’은 주요 행사가 전시 겸 판매이기 때문에 낮에도 진행된다. ‘야시장’이라는 형식은 5일(10.7—10.11) 동안 이루어지는 기간이 짧아서 밤낮으로 시간을 활용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 기간 동안 지역의 문화축제와 연계해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다. 군산에 여행온 관광객들에게 지역의 명소들을 돈 후 저녁 시간대에 이곳에 들르게 하려는 것이다. ‘군산 시간여행 축제’의 기간을 감안하여, 미술시장 사업지인 말랭이 마을도 축제권역에 포함시킨다. 1930년대부터 1970년대의 건축물이 상당히 남아있는 군산은 레트로 관광이라는 테마로 인기가 있다. ‘말랭이’ 마을도 그 시절의 기록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근대문화 유산은 추억을 넘어서 아예 처음 접하는 세대도 있을 것이다. 군산의 신흥동 말랭이 마을은 한켠에 안내소가 있을 정도로 이미 문화자원이 발굴되고 알려진 곳이다. 이 마을은 2015년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으로, 지역 원도심에 근현대 문화 콘텐츠 확장을 목적으로’ 조성됐다고 한다.




2022년 10월



하지만 과거만으로는 부족하고 새로운 것이 보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주거하기 힘든 낡은 집 28동을 공공기관이 매입하여 전시실 등으로 조성했다. 그 중 한 곳에서 올 4월에 마을 전시회도 개최하기도 했다. 문화적 맥락이 깔려있는 장소에서의 행사는 한 번의 방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연속적인 방문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을로서도 반가운 일이다. 행사 주체는 주민협의체와도 좋은 관계를 가졌다. 전시 및 판매, 네트워킹 파티와 체험 프로그램 등이 이루어졌던 곳은 원래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장소였다. 본격적인 미술 전시로는 거의 처음 열리는 것이라 마을 기록관을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비용이 꽤 들었고, 미술 전시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에도 집중했다. 이후에도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 단체들이 사용할 장소이기에 이번 기회에 공간을 업그레이드 했다는 의미가 있다. 


오래된 집을 개조한 장소는 벽면들이 많아서 소품 전시에 최적화되어 있다. ‘말랭이’란 ‘오르막’을 뜻하는 방언으로, 비스듬한 언덕에 자리한 마을의 역사를 알려준다. ‘말랭이’라는 토속어에 남아있는 역사는 조형 언어 또한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 행사의 주최자인 사회적 기업 ㈜브라이트(대표 홍정원)의 슬로건은 ‘오르막길에서 펼쳐지는 대안미술 백화점’이다. ‘오르막 미술 야시장’이 ‘대안’인 이유는 근래 들어 부쩍 커지고 있는 미술시장에 진입을 원하는 청년 작가들이 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지역의 미술관 큐레이터(군산 이당미술관, 박정현)가 선정한 청년 작가 22명이 참가했다. 평면 작품을 중심으로 1인당 3-10점 가까이 출품해서 총 120여 점이 전시됐다. 기획자는 ‘지방에서 청년의 기준은 39세 이하’라고 말한다. 젊은 세대들이 떠나는 지방의 열악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청년세대가 현실에 진입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 점차 길어지는 보편적인 상황 또한 반영한다. 


그렇게 늦게까지 예술적 청년기를 보내다가도 대개 45세 전후에는 주객관적 한계에 의해 작업을 꺽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통상적인 임금 노동자가 자신의 생애 중 가장 오래 다닌 직장의 평균 퇴사 시기가 50세가 채 안 되는 통계가 있는 것을 보면, 예술 분야가 예외는 아니다. 100세 시대, 퇴사 후 제 2, 3의 삶을 살면서 예술이 대안적인 삶의 동반자가 되어줄까. 공공부문은 그 가능성을 살리기 위한 최대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한 사회의 행복 지수에 다양한 직업군의 역할을 염두에 둔다면 각자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사회가 인정해주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지역에 기반한 작은 미술시장의 활성화는 생산자에게나 소비자에게 모두 짧기만 한 ‘주요 경력’의 시기 이외의 삶을 다채롭게 해줄 것이다. 지역 미술이 아니더라도 현대의 예술은 위기에 처해있다. 그것이 사회의 전반적인 심미화와 맞물리는 점이 역설적이다. 


예술은 사라지지만 다른 형태로 편재한다. 이브 미쇼는 [기체 상태의 예술]에서 이 세상에는 아름다움이 마치 기체와도 같이 널리 퍼지고 확산되는 반면, 예술작품은 점점 더 소멸되어 간다는 역설을 강조한다. 그의 진단 중에 이번 행사와 관련되어 주목할만한 주장은 ‘미학의 승리와 예술의 기화’라는 현대의 상황에서 관광이 하는 역할에 대한 것이다. 그는 예술의 신성화를 위해 유일하게 존속하는 의례들이 여가 활동과 관광의 영역에 있다고 한다. 그것은 현대인이 어디에서나 미학적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두 가지 형태다. 코로나 때문에 위축되었지만, 관광은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얼마 안되는 항목이다. [기체 상태의 예술]에 의하면 관광은 본질적으로 미학적이다. 관광객은 모든 타산적인 손익관계를 넘어선 감동을 찾아 나서며 즐거움의 경험을 위해 떠난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본다면 국내외 타지역의 사람들에게 ‘오르막 미술 야시장’같은 사업은 심미적 분야에서 미술과 관광 관계의 균형을 줄 수 있는 가능성으로 주목된다. 


이브 미쇼는 우리는 모두 현실적으로나 가능태로서 혹은 욕망에 있어서 관광객이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관광은 박물관처럼 이미 이루어졌거나 미학적 경험들을 보관하는 장소들을 통해 예술을 생활에 연결시켜 줄 뿐 아니라, 예술에 활력을 부여해준다. [기체 상태의 예술]은 근본적으로 관광객으로서의 현대인에게는 늘 더 많은 박물관, 더 많은 예술, 더 많은 문화, 더 많은 예술가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예술의 기화, 즉 사라짐을 통해 본 또 다른 가능성은 여행을 갈만한 지역에서 예술행사가 많이 열려야 하는 이유다. 여행은 예술적 만남을 위한 떠남이 된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 주로 전시됐던 작품들은 전시장의 조건 때문에 작기도 했지만, 과거 유목민이 가지고 다니던 소품처럼 작아도 작지 않은 밀도와 강도를 투입한다면 단점은 장점으로 바뀔 수 있다. 또한 공공기금의 지원을 받는 미술시장 사업은 자발적으로 조성되어 있는 기존의 시장을 교란하지 않는 선에서 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하기에 공공적 성격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미술작품의 소(유)통은 전시회와 판매가 연계되어있기에 이번 미술시장 행사가 ‘전북 중심의 신진작가 네크워크’이기도 하다. 평생 작업을 하고 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청년 작가들에게 시장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다행히 미술시장은 확대일로에 있다. 올해 한국 미술시장이 사상 첫 1조 원을 넘으리라는 소식(2022.07.08. 중앙일보, 이은주 기자)도 있다. 그 보도는 상반기 미술시장 규모가 이미 5천억 원이 넘었던 시점에 나왔다. 지난 9월에 서울 코엑스에서 나란히 열린 아트페어 프리즈와 키아프(KIAF) 또한 큰 성과를 냈다. 이러한 성과들도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의하면, 지금보다 규모가 더 커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점이 미술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의 확대가 국내 미술계에 선순환될지는 또 다른 문제다. 시장은 커졌는데, 정작 한국 작가의 작품이 그만큼 안 팔린다면, 판은 우리가 깔고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셈이다.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지로 진입한다는 화려한 명분 아래, 국제적 ‘호구’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경제적 지위만큼 문화적 역량이 따라주고 있는가의 문제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일부 한국의 유명 작가들 작품가는 엄청나다. 대표적인 이가 김환기 화백인데, 그의 작품 [우주]는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 원에도 낙찰되어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 첫 100억을 넘긴 이 ‘국민화가’도 무명의 청년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몇몇 유명 작가만이 아니라, 두툼한 작가층이 시장에 진입하고 유통돼야 하는데, 특히 화랑가와 친숙하지 못한 청년 작가들에게는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다. 청년들에게 친숙한 SNS, 가령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서 직접 판매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유통은 우연적인 요인이 많다. 미술 시장은 불안정한 생산자인 작가들에게 예측 가능성이라는 신호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당장의 판매로 이어지지 못해도 지속적 맥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미술시장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새로운 ‘상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세대들의 무대가 필요하다는 점이 이번 행사를 포함한 미술시장 사업의 의미다. 군산이 ‘시간여행’이라는 컨셉으로 관광이 활성화된 것은 한국 사회의 개발의 열풍에서 다소간 주변화된 장소를 역이용한 경우다. 우리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구도심/신도심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빠른 시간 동안에 근대화를 거치면서 (재)개발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닌, 위로부터의 개발이기에 풍요가 고루 배분되지 않는다는 점이 한 도시에 두 시대가 있는 이유다. 청년들이 참여하는 예술문화 행사가 주로 열리는 곳이 바로 구도심이다. 구도심은 그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맥락 아래 공공미술 등의 사업이 자주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어차피 ‘개발’될 곳에 왜 세금을 쓰는가 하는 ‘경제적’ 논리도 있지만, 작가들은 주변화된 곳에서 ‘오래된 미래’의 비전을 본다. 


오래된 마을로서도 미술장터를 통해서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젊은이들의 왕래가 잦아진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이번 행사는 시간 여행지 특유의 고색창연한 아우라 속에서 색깔 있는 행사였다는 의미가 있다. 지역 축제라는 맥락 속에 자리한 이번 행사는 문화와 예술의 만남을 보여준다. 하루 평균 100여 명 정도의 관객들이 방문한 현장에서 실제 판매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창조된 예술작품을 기반으로 파생 상품들은 꽤 팔려나갔다. 군산시의 보조로 만들어진 아트상품으로는 포스터, 틴케이스, 에코백, 텀블러, 포토 카드, 캘린더 등이다. 하나의 원천으로 다양한 항목을 생산하는 현대 대중문화의 방식을 예술도 공유한다. 특히 작가 이름이 큼직하게 들어간 포스터는 두고두고 잘 활용될 듯하다. 판매하고 남은 상품은 해당 작가가 가져가서 또 다른 시장에서의 기회에 활용될 것이다. 지역의 청년 미술인들이 대거 참여한 이 시장은 물신의 꼭대기에 오르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지속가능한 작업을 위한 소(유)통의 현장으로 주목된다.


출전; 2022년 작가 미술장터 사업 모니터링(예술경영지원센터, 코리아리써치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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